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219
221. 조은이의 생일, 그리고 남은 1년(2)
특별하게 오늘의 저녁은 단체 파티였다. 그래서 노파는 일찍 가게를 닫고 들어왔다.
조은이의 생일. 축하하는 자리를 가진다면야 엄청난 팬들, 개똥팸이 찾아올 것이었고 크리에이터들만 따진다고 해도 일부러 와서 자리를 빛낼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조은이는 미리 방송을 통해 양해를 구했다. 부디 조용한 생일을 보내고 싶다는 의지가 이렇게나 컸다.
물론 노파와 내가 전부는 아니었다. 일부러 버스를 타고 온 도화선녀와 하칸까지, 요 근래 인연을 맺은 이들이 아파트까지 찾아왔다.
“아이고 개령님! 우리 개령님!”
한 손에 케이크를 든 도화선녀가 미리 아파트 정문 앞에 나와 있던 우리를 보자마자 반가이 뛰어왔다. 그 뒤로 하칸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케밥이 잔뜩 든 비닐봉지를 들어 보였다.
“하루머니! 케밥 그립지!”
“하나도 안 그립다. 내 돈 잡아먹은 귀신 괴밥!”
노파의 일갈에 시무룩해진 하칸과 함께 모두 아파트로 올라왔다. 점심때 새로이 장을 봤던지라 저녁상은 아침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푸짐했다.
“혹시나 해서 하칸 아저씨를 위해 여기, 양고기 갈비 조림은 할랄 인증된 것으로 사 왔어요.”
조은이의 말에 하칸이 슬쩍 미소를 지으며 속삭였다.
“나, 한국 와서 삼겹살 혼자 5인분 먹어요. 우리 친구들! 무한리필, 쫓겨난 적 있어요.”
그 말에 조은이가 웃음을 터트렸다.
케이크가 올라가고 불이 켜진 가운데, 도화선녀의 선창으로 생일 축하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무엇인가 내 마음속에 ‘이것이 작지만 아주 소중한 행복’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안에 내가 속해 있고 내가 여기까지 조은이와 함께 만들어왔다는 자부심이 솟아올랐다.
“왈! 왈왈!”
나는 신나게 밥상 옆에서 꼬리를 흔들며 짖었다. 그런 나를 보고 모두가 웃었다. 단 한 사람, 도화선녀만 빼고.
나는 날 지그시 바라보는 도화선녀의 눈을 피했다. 평상시와는 다른, 무언가 상당히 강한 눈빛이었다.
“저기, 조은아.”
“네, 아주머니.”
“혹시, 요즘 우리 개령님이…”
나는 재빨리 일어나 도화선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 품 안으로 휙 뛰어들었다. 깜짝 놀란 도화선녀가 날 안고 조심히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제발, 제발!’
나는 절박한 눈으로 그 이상 말하지 말라고 도화선녀를 쳐다봤다. 그런 내 눈을 읽었는지, 도화선녀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머니, 왜요?”
“아니, 개령님이 염색을 새, 새로 해야 할 것 같아서. 너무 분홍색만 하니 무언가 변화가 필요할 듯해. 봄도 되고 말이야.”
하필 말을 둘러대도 그런 쪽으로 둘러대다니, 나는 황당하기 그지없었지만 그래도 날 생각해서 얼른 말을 바꾼 그 모습이 너무나 고마웠다. 감사의 표시로 도화선녀의 팔을 살짝 긁은 후 나는 조은이 옆으로 되돌아왔다.
“어떤 색이 좋을까요? 사실 벚꽃에 어울리는 게 또 핑크라.”
의외로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조은이의 모습에 도화선녀가 말을 더듬으며 ‘오, 오방색! 오방색! 우리 전통 색깔이기도 하잖아!’하고 대답했다.
“오방색이요?”
“흰색, 빨간색, 초록색, 검은색, 노란색! 딱 좋네, 좋아! 운수대통하겠다.”
“끼이이잉…”
이건 뭐, 전에 했던 레인보우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었다. 그 색깔들을 상상해본 나는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물론 아무리 그래도 우리 조은이가 이런 것에 홀딱 넘어갈 리는…
“와, 너무 좋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암, 이래야 우리 조은이지.
오히려 오방색으로 하라는 말을 꺼낸 도화선녀가 더 놀라고 있었다. 아무렇게나 내뱉은 말이 이렇게 크게 되돌아오다니, 차마 주워 담지도 못한 채 겁먹은 눈으로 날 쳐다봤다.
“개, 개령님. 그게…”
“크르르르르…”
“하루머니! 아춤마! 오팡색이 뭐예요?”
하칸의 물음에 조은이가 얼른 다섯 가지 색을 설명했다. 그 색으로 물들 내 귀를 떠올려봤는지 하칸이 인상을 구기며 날 쳐다봤다. 노파도 벙찐 가운데, 오로지 조은이만 싱글벙글이었다.
“그러고 보니 곧 한국관광공사 콘텐츠 촬영도 있는데 우리 전통 색인 오방색 귀, 진짜 의미 있고 잘 어울리겠다. 아이디어 대박이에요, 아주머니!”
“으, 응…”
“내일 당장 염색해야겠다, 그치? 우리 해피.”
“끼이이잉…”
그렇게 모두의 우중충한 표정 속에 혼자 신난 조은이였다.
맛있는 식사가 끝나고, 노파가 내어온 과일과 케이크를 즐기며 다들 담소를 나누던 그때, 도화선녀가 나를 조심스레 안고 약간 떨어져 앉았다.
“개령님, 개령님!”
“와, 왈?”
“개령님, 지금 아파. 맞지요? 그리고 점점 더 아파질 거야.”
“…”
나는 입을 다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나를 안타깝다는 듯 바라보던 도화선녀가 무언가를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입으로도 뭔가 주문처럼 웅얼거렸다.
그리고 한참 후, 가만히 눈을 뜬 도화선녀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개령님,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어. 그게 개령님의 몸이 가지고 있는, 타고난 운명이야. 다만 운명을 어떻게든 바꾸고 이겨내는 것이 사람이거든요? 개령님이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해.”
맞는 말이었다.
나는 고맙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
모두가 돌아가고 설거지도 다 끝났다.
한참 동안 웃음이 떠나지 않았던 거실도 조용해졌고 노파도 오늘 나름 열심히 음식을 만드느라 노력했는지 피곤하다며 일찍 안방으로 들어갔다.
자신의 생일. 그리고 이런 휴식이 너무나 소중하다고 말했던 조은이였지만, 이렇게 조용한 밤이 찾아오니 스윽 컴퓨터를 켜고 회사 메일들과 업무 문서들을 체크하는 듯했다.
“낑! 끼이이잉!”
나는 조은이의 발목을 긁었다. 날 안아 든 조은이가 웃으며 허벅지 위에 날 내려놓았다.
‘그놈의 일 좀 그만하라니까.’
나는 조은이가 뭘 보고 있는지 보려고 고개를 들었다.
“!!!”
[강아지 노령견 주의할 점]검색창에 입력된 것들은 그것이었다. 조은이는 몇 개의 페이지를 열어 일반적인 상식과 전문적인 상식까지 보고 있었다.
“대형견은 무조건 관절… 우리 해피는 중형견이지만 그래도 관절이 중요하다네? 아직 아픈 적이 없긴 한데. 그리고…”
‘반려견 치매’
그것을 클릭한 조은이가 나오는 내용들을 가만히 읽었다. 아무래도 익숙한 곳을 갑자기 낯설게 느낀다거나 갑자기 폭력적으로 변한다거나, 배변에 이상이 생긴다거나. 지금의 내게 해당되는 부분들이 당연히 포함되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조은이의 표정이 점점 심각해졌다.
“할머니, 할머니!”
날 안은 조은이가 노파를 부르며 안방으로 들어가다 뉘렇고 지독한 공기에 눌려 황급히 거실로 도로 나왔다. 아마 저 냄새를 계속 맡다간 조은이도 인지장애가 올 것이 분명할 정도로 오늘 하루 ‘잘 먹은’ 노파의 방귀는 어마어마했다.
“잉, 왜 그리여.”
“아니, 나오지 말고! 여기서 이야기하자. 문 활짝 안 열어도 돼요. 그냥 내가 내 방에서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까?”
“뭔 소리여!”
조은이의 다급한 말에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와하하하할! 와하하하할!’하고 웃는 날 본 조은이가 조금은 풀어진 표정으로 노파에게 물었다.
“혹시, 요새 해피 이상한 행동 한 적 없어?”
“잉? 그 똥개가 왜? 또 똥 쌌냐?”
“똥을 싸는 것이야 언제나 건강하게 잘 싸지. 그것 말고, 갑자기 사람에게 달려들어 물려 한다거나 길을 헤맨다거나 하지 않아? 막, 같은 자리 빙글빙글 돌고.”
예전에 분명 그렇게 한 번 멈춰선 적이 있었다. 나는 노파가 그것을 떠올리지 않기를 빌었다.
“잉? 그런 것 없다. 네가 저번에 사람 물었다 해서 데려가지 말라며. 안 데려가니 모르지. 데리고 다닐 때도 딱히 요상한 적은 없었는데? 같은 자리 빙글빙글 도는 것은 매일 아침 그렇게 하지 않냐?”
“아아, 그건 내가 물어보는 것과는 다른 것 같아. 일단 이상한 건 없다는 거지? 다행이다.”
노파의 귀찮음과 둔함이 오히려 빛을 발한 셈이었다. 나는 다행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방으로 돌아온 조은이는 몇 가지 정보들을 더 본 후 ‘괜찮겠지. 아닐 거야.’라 중얼거리곤 컴퓨터를 껐다. 그리곤 날 침대 위에 올려놓고 빤히 바라보았다.
“해피야, 손!”
“왈!”
“해피야, 짖어!”
– 척!
“해피야, 돌아!”
– 벌러덩!
“해피야, 누워!”
– 빙글빙글
모든 것을 반대로 하는 우리의 놀이. 그것을 본 조은이가 ‘흐음, 아무런 이상은 없는 것 같은데’라 중얼거리며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그래, 이럴 때도 한결같이 둔한 우리 조은이. 제발 둔해야 해.
“해피야!”
갑자기 침대에 누운 조은이가 턱을 괴고 내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 아름다운 눈에 귀의 염색이 다 빠진 바보 같은 표정의 한없이 못생긴 내가 비쳤다.
“뀽♥!”
나는 일부러 밝게 웃으며 에어키스를 조은이에게 보냈다. 그런 날 사랑스러운 듯 바라보던 조은이가 가만히 안더니 자신의 입술을 내 입에 가져다 대고 ‘쪽’ 하고 뽀뽀를 했다.
“우리 해피 오래오래 건강해야 해, 알았지?”
“왈!”
“만약에, 진짜 만약에 말이야. 아프면 바로 누나에게 말해야 하는 거야. 절대로 숨기면 안 돼?”
“왈…”
“그리고, 만약에 우리 해피가 아프더라도 누나는 절대 우리 해피 포기 안 할 거야. 해피에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다른 걸 다 포기하더라도 해피는 절대 누나 옆에 꼭 둘 거야. 알았지?”
“…”
나는 떨리는 눈으로 조은이를 바라보았다.
지금 조은이의 말은 나에게 엄청난 힘이 되고 위로가 되었다. 아울러 지금 내게 생긴 문제를 이야기해야 할지 고민에 빠지게도 만들었다.
나는 빛태창의 금액을 떠올려보았다.
[종료일 2026년 3월 8일 오후 10시 13분. 현재 순자산 16억 2,687만 1,620원]크리스마스 시즌에 판매했던 초코똥의 수익금이 얼마 전 들어왔다. 아파트 가격도 조금 올랐고 꿀잼의 주식도 상당히 올랐다. 펀드와 직접투자의 결과도 꾸준했다. 정확히 1년이 남은 시점에서, 나는 이제 14억만 채우면 되는 것이었다.
‘아니, 역시 말 못 하겠어.’
올해 걸린 수많은 것들을 어떻게 포기할 수 있겠는가.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조은이 옆에 가만히 앉았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내 똥꼬는 황금을 낳았다. 돈 똥꼬의 기적이 여기까지 모든 것을 끌고 왔다. 절대로 여기서 그만둘 수는 없었다.
도화선녀의 말처럼, 내가 최대한 이겨내서 이 몸이 타고난 운명이라는 것을 바꾸거나 하다못해 뒤로 밀어라도 내야 했다.
“코오오오오, 코오오오오…”
상념에 싸인 내 귀에 조은이의 쌔근쌔근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턱을 괴었던 모습 그대로 조은이의 눈이 감겨있었다.
“왈!”
“어, 어?”
내가 가볍게 짖자 깜짝 놀란 조은이가 눈을 번쩍 뜨더니 그대로 자연스레 날 보며 누워 눈을 감았다. 팔을 벅벅 긁자 조은이의 팔이 열렸다. 그 안으로 들어간 나는 조은이의 숨소리를 들으며 살포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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