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22
22. 낭만사기꾼(5)
이윽고 노파가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호들갑스러운 노파의 목소리와 함께 ‘아유, 이렇게 연고를 발라주는 손도 고와요?’ 하고 노파에게 금칠을 해대는 귀생이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끼이이잉…”
나는 바깥으로 뛰어나가 이 모든 상황을 뒤집어놓을 수 없어 너무나 답답했다.
이윽고 무엇인가 계약을 설명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곤 안방 문이 열렸다.
“내가 도장을 워디다 뒀더라?”
“왈! 왈! 왈!”
“요 똥강아지가! 감히 우리 귀생이 오라버니에게! 지금 이 할매를 행운의 그 뭐냐 에리자베트로 만들어주려 귀한 기회를 주시는데!”
‘하아…’
“한 번만 더 난리 치면 아주 바깥으로 내쫓을 겨. 말 들어, 안 들어?”
“끼이이잉.”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 나를 매서운 눈으로 쳐다보던 노파가 텔레비전 아래 서랍에서 싸구려 목도장을 하나 찾아 거실로 나갔다. 그리곤 내가 미처 나오기도 전에 문을 쾅! 닫아버렸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다시 문에다 대고 귀를 기울여야 했다.
“우리 여사님, 정말 좋은 기회 잡으신 거예요. 다만 절대 내가 이렇게 팔았다, 내가 이걸 얼마에 샀다고 말하면 안 되는 것 아시죠? 가족에게도 말하면 안 됩니다.”
“가족에게도요?”
“그럼요. 생각해보세요. 어느 누가 이백만 원짜리를 백이십만 원에, 그것도 돼팔 프라이팬 세트 포함해서 샀다고 생각하겠어요? 다 말하죠. 엄마, 내 주위에 누구도 알려줄게! 할머니, 그거 너무 싼 것 아냐? 사기야! 인터넷에서 이백만 원에 팔아! 그것도 VAT 10%는 별도야!”
“VAT요?”
“아, 이게 세금이 붙어요. 이런 세계적으로 특별한 가치를 지닌 고부가가치 특수 상품은 VAT라고 세계무역센터설립기구에서 국제법상 가격의 10%를 세금으로 붙여요. 그러니 인터넷에서는 이백하고도 이십만 원에 팔리지요. 그것까지 따지면 백이십만 원은 뭐다?”
“배, 백만 원이나 할인!”
“오케이. 사실은 우리 여사님이 사는 물건에도 그 VAT는 국제법상 붙어요. 하지만 그건 제가 우리 여사님과 만난 인연으로 세계무역센터설립기구 총장과 직접 통화해서 면제시켜주도록 할 겁니다!”
“아유, 나를 위해 그런 귀한 분과 직접 통화까지!”
“방귀생, 이런 남자입니다. 로맨스가이에 음유시인이자 낭만가객. 전 세계에 친구를 둔 세계를 품은 남자.”
점점 가관이었다. 아마 저 사기꾼은 지금 자신이 하는 말에 스스로 취해 있을 것이었다. 하긴 아무리 취해봤자 저 노파만큼 취해 있겠냐만.
“자아, 제가 말한 것은 여기에 다 적혀있어요. 그리고 여기, 이 부분은 꼭 봐야 해요. ‘등골젠에서 진행하는 이 특별 가격 한정 프로모션은 계약 체결 후 절대 취소가 불가능하며 취소할 시 상품 정가의 열 배를 보상한다.’ 이겁니다. 그런데 네 개, 충분히 팔 수 있어요. 아마 40개도 팔 겁니다.”
“그럼요, 이렇게 싸고 좋은데. 그 프랑스 누이 왕이 계란후라이도 해 먹는다던 그것도 주고.”
“돼팔, 돼팔 프라이팬. 그럼, 여기에 이제 도장을 꾸욱 찍으세요.”
“아, 여기유.”
아, 안 돼!
“왈! 와와와왈! 아왈왈왈!”
나는 목이 터져라 짖어댔다. 그러나 이런 미칠 것 같은 내 마음을 무시한 채, 노파는 도장을 꾸욱 찍고야 말았다.
“아유, 우리 여사님. 목도장이 여사님처럼 고와요.”
“요 앞에서 이천 원에 판 것인디, 이렇게 또 쓰이네요.”
“더 좋은 곳에 많이 쓰일 겁니다. 내일, 이제 마지막 공연이 있는데, 그때 사람들에게 정가에 팔고 여사님껜 몰래 네 개를 드릴 거예요.”
“나, 아직 돈이 없는데. 우리 손녀 아르바이트 끝나고 받아야 하는데.”
“그것도 다, 방법이 있다 이 말이쥬! 내일 만나서 다 설명해드릴 테니.”
“그게 무슨 방법이에유?”
“여사님의 신용을 믿고, 물건이 소진되기 전, 미리 선입금을 우리가 융통해 주고 물건을 여사님께 먼저 주는 것이쥬. 여사님을 믿고 우리가 물건값을 대납해드린다!”
“이, 잉?”
“내일 다 설명해드릴 테니, 아무 염려 말고 대박 나실 생각만 하세요. 여사님이 잘돼야 저도 좋지유.”
결국 계약은 체결되고 말았다.
물론 이런 사기 계약은 충분히 법적 효력을 무효화시킬 수 있을 것이었다. 애당초 저 불공정 계약사항부터 모든 것이 허점투성이일 게 뻔했다. 다만, 그것을 저 노파가 대처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우리 조은이가 그 사기꾼들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가 의문일 뿐이었다.
‘아, 세상도 참 너무하다. 어떻게 저런 사람들을 그냥 놔두냐. 그리고 저런 노파에게 내가 어떻게 30억을 벌어다 줄 수 있겠냐고!’
나는 꺼이꺼이 울면서 분노로 노파의 베개에 오줌을 찍찍 싸댔다.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겨우 그것뿐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 부더더더더덕, 덕! 덕! 덕! 덕!
“아유! 남사스러워라. 제가 너무 긴장을 해서인지 장이 안 좋아졌나 봐유, 귀생 오라버니 괜찮아유?”
“크헤에에엑! 케엑! 칵! 크웍! 하아, 하아… 여사님, 아주 방귀 소리도 고, 고와요.”
“아유, 곱긴유. 그냥 가죽 북 치는 소리밖에 더 되나유.”
“저도 장이 안 좋은데, 다시 한 번 들려주시면 멜로디를 입혀 화음을 만들어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유?”
– 부더더더더덕, 덕! 덕! 덕! 덕!
– 삐이이이이익! 삐들 삐들 삑!
‘잘들 논다.’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차라리 저곳에 안 나간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여사님, 이렇게 우리 둘이 음악을 만드니, 마치 베토벤의 합창 같아요.”
“그 가수는 또 누구여? 배, 배씨 뭐요?”
“어허허허, 그런 사람이 있어요. 아주 유명한 오케스트라 지휘자지요.”
“세상에 그런 사람도 친구예요? 우리 귀생 오라버니.”
“뭐, 가끔 핸드폰으로 통화나 하는 사이랄까. 제 색소폰 소리를 참 좋아하는 친구죠.”
더 할 말이 없었다. 나는 넉다운, 넋다운 된 채 그저 저 사기꾼이 제발 이 집에서 나가주기만을 기도했다.
마침 원하던 계약도 끝냈겠다, 이곳에서 더 이상 노파의 방귀 냄새에 화답할 자신이 없었는지 귀생이 부스럭거리며 일어섰다.
“그럼, 여사님. 내일 공연 때 또 뵙겠습니다.”
“아유, 귀생 오라버니. 조심히 살펴가세유!”
“그리고 혹시 관심 있으시면 장에 좋은 우리 등골젠의 ‘젠장환’이라는 건강 보조 상품도 있는데, 나중에 기회 되면 꼭 소개해드릴게요. 여사님, 장이 아주 안 좋으셔.”
“고맙지유!”
마지막까지 영업력에 기염을 토한 귀생이 문을 열고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바깥까지 따라 나가 인사를 한 노파가 들어와 안방 문을 열었다.
“캥! 캐앵! 켁!”
방금 전 둘이 베토벤의 합창을 열연했던 증거가 내 코를 들쑤셨다. 헛구역질하는 나를 번쩍 든 노파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춤을 췄다.
“세상에! 하나 팔아서 육십만 원이 남으면, 네 개면 순이득이 이백사십만 원! 그럼 그걸로 또 두 개를 늘려 여섯 개를 팔면 삼백육십만 원! 세 개를 더 늘리면 오백사십만 원이 순이득이여! 귀생이 오라버니에게 말하면 분명 물건을 계속 빼 줄겨!”
‘미쳤소. 정신 차리시오, 당신은 미쳤소!’
***
얼마 후 카페 알바를 마친 조은이가 피곤한 얼굴로 들어왔다.
“우왁! 이게 뭔 냄새야, 할머니!”
“잉? 아유, 저 똥개가 또 방귀를 뀌었나 보다. 불알을 빨리 떼야 방귀도 덜 뀔라나.”
‘하아… 그냥 죽이시오.’
나는 만사를 포기한 표정으로 말표 사료를 씹어 먹었다.
“그리여, 우리 조은이. 밥은?”
“오늘따라 너무 바빴어. 엄청 배고파.”
“잉, 그리여. 그럼 뭐 맛있는 거라도 시켜먹어라. 통닭 같은 것. 할매가 사줄까?”
노파의 갑작스러운 말에 조은이가 이게 웬일이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평상시에 뭘 시켜먹으려 치면 ‘집에 라면도, 김치도, 콩나물도 먹을 것이 천지’라며 눈을 부라리던 할머니가 이렇게 나오니 놀랄 만했다.
“웬일이야? 우리 할머니. 무슨 좋은 일 있어?”
“잉? 아유, 그냥 그런 것이 있어.”
“뭔데, 뭔데!”
그때 조은이의 눈이 아까 노파가 귀생과 들어올 때 들고 왔던 두루마리 휴지 두 통에 꽂혔다.
“헐, 할머니. 거기 또 갔다 왔지?”
“아녀, 그런 것이 아녀.”
“그럼 저 휴지는 또 뭐야? 뭘 자꾸 받아와, 수상하게!”
“수상한 것 아니라니까 그러네! 그나저나 뭐 통닭 안 먹어?”
“흐음… 이상한데? 치킨 좋지.”
결국 조은이도 더 추궁하는 것은 포기한 채 핸드폰을 들어 배달앱을 켰다가 다시 닫았다.
“하아, 요새 배달비 왜 이러냐. 그냥 가서 사 올게. 그게 낫겠다. 해피야, 갈까?”
“왈! 왈! 왈!”
조은이는 날 들어 꼭 안고 다시 신발을 신었다.
시원한 바깥 공기를 쐬며 조은이는 연신 하품을 해댔다. 아무래도 피곤이 많이 쌓인 듯했다. 그 얼굴을 보노라니 아까의 참사를 막지 못한 죄책감이 밀려왔다. 누구는 배달비도 아까워하는데…
“낑, 끼이이잉. 낑.”
“왜 그래, 해피야. 무슨 일 있었어?”
“낑…”
설명할 재간도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답도 나오지 않았다.
‘조은이가 잘 때 핸드폰 메시지로 남겨볼까? 아냐, 그렇다면 오히려 더 이상할지 몰라. 누가 자신의 집을 쳐다보고 있다고 생각할 테니까.’
그럼 아까 노파의 계약서를 찾아 보여줄까?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노파가 어디에 숨겼는지 알 턱이 없었고 겨우 말티즈인 내가 뒤질 수 있는 곳은 너무나 한정적이었다.
‘일단 천천히 생각해보자.’
13,000원에 옛날통닭 두 마리를 포장한 조은이 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향했다. 아래에서 올라오는 닭 튀긴 냄새에, 꿀꿀한 기분과는 별개로 입에서 자꾸 침이 흘렀다.
“내일 첫 촬영인데, 우리 해피 잘 할 수 있지?”
“왈!”
“누나는 엄청 기분이 좋다? 해피가 우리에게 가져온 굉장한 행운이고 또 행복이잖아? 나는 우리 해피가 그렇게 사람들에게 이쁨받고 널리 알려지는 게 정말 신기해.”
‘이쁨받는 것은 분명 아닌데…’
“내일 피곤하면 누나에게 와서 낑낑대. 알았지? 누나가 우리 해피 힘들어서 못 한대요! 하고 큰소리칠 테니까.”
아니, 네게 돈을 벌어줘야 해. 쓰러지더라도 난 그것을 해내야 해. 시키는 대로 다 할 자신이 있어. 나는 사람 말을 알아듣는, 사람인 강아지 해피니까.
집으로 들어간 조은이는 상을 꺼내 갱지에 든 치킨을 펼쳤다. 후추와 깨가 들어간 맛소금을 한쪽 구석에 뿌린 후 노파와 조은이는 맛나게 치킨을 뜯어 먹기 시작했다.
“우리 해피, 아~!”
“왈! 왈!”
나는 기쁨에 겨워 조은이가 주는 퍽퍽살을 맛나게 먹었다. 정말 환상적인 맛이었다. 그러나 노파는 역시 그냥 보고만 있지 않았다.
“개한테 그런 것 주면 죽어!”
“에이, 한가운데 가슴살은 괜찮아! 많이 주는 것도 아닌데. 잘 먹어야 내일 촬영도 잘 하지!”
“왈! 왈!”
‘당신이 뀐 방귀가 날 죽게 만드오!’
그때, 촬영이란 말에 노파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조은아, 그런데 그 촬영이 두 번에 얼마라 했지?”
“응? 해피가 두 번 촬영해서 이백만 원이고, 내가 한 번 촬영하는데 초상권 때문에 삼백만 원이라고. 합치면 오백만 원.”
“그거 나중에 들어오면 이 할매가 가만히 잘 보관하고 있을게, 바로 줘. 알었냐?”
“아… 그거 2학기 등록금 낼 때까지 내가 한 번 잘 굴려볼까 했는데.”
조은이도 그 돈의 용도를 정해놓고 있었다. 그리고 다만 얼마라도 수익을 내 볼 생각도 하고 있었다. 역시 벌어서 기분이 좋은 것으로만 끝나는 아이가 아니었다.
나는 조은이의 그런 마음이 기쁘면서도 노파 때문에 걱정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노파의 집요한 요청이 계속되었다.
“아유, 이 할매가 잘 보관할 테니까. 나중에 니가 달라고 하면 더 보태서 줄 테니까. 응?”
“왜? 도대체 왜?”
“생활비 통장에 넣고 무슨 일 생기면 쓸라고 하제!”
생활비라는 말을 이길 수는 없었다. 결국 조은이는 고개를 숙였다.
“아, 알았어. 그런데 함부로 쓰면 안 돼. 내가 알바도 하고 있잖아, 부족하지만. 그래도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그거 등록금으로 꼭 가지고 있어야 해.”
“염려 마, 할매 믿지? 잉?”
“으, 응.”
조은이는 말없이 치킨을 뜯어 먹었다. 그러나 식욕이 다 달아난 듯했다.
나 역시 그랬다.
하필 내일 촬영이 있었고, 또 귀생이의 공연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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