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227
229. 세 번째 촬영(3)
“일단 내리지 마세요. 안조은 이사님도 해피도 고개 숙이고 있어요. 어서!”
박건혁 본부장이 차 안에서 다급히 소리쳤다.
– 쿵! 쿵! 쿵!
“야! 내려! 어서 내려!”
“우리 오빠한테 눈웃음 흘리지 마! 재수 없는 년아!”
완전히 광란의 분위기였다. 차량에 대고 발길질을 하는 이들, 무언가 막대기 같은 것으로 내려치거나 돌을 들어 찍고 있었다. 날카로운 못 같은 것으로 차를 긁어대는 이도 있었다.
공포에 질린 조은이가 날 꽉 안고 고개를 숙였다.
겨우 팬들을 헤치고 등장한 경찰이 소리를 지르며 호루라기를 불었다. 마침 정문의 주차장에 도착한 휘가 내렸는지, 좀비떼 같던 팬들은 ‘꺄아아아아’ 소리와 함께 앞으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이때예요. 어서 내리세요, 어서요!”
박건혁 본부장이 황급히 외치며 먼저 내려 조은이와 나를 끄집어냈다. 경찰들이 호위하는 가운데, 한 직원이 주방 쪽으로 난 쪽문을 열며 어서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다.
***
결국, 한국관광공사 담당자와 휘의 매니저, 경찰들까지 나서서 강력경고하고 나서야 팬들은 식당의 정문에서 멀찌감치 물러섰다.
“본부장님, 차량이 엉망이 되었어요. 찌그러진 것도 찌그러진 건데, 날카로운 못으로 욕설을 새겨놨어요. 이거, 세차 수준으로 끝날 게 아니에요. 찌그러진 것 펴고 도색도 새로 해야 할 듯한데요.”
울상이 된 직원이 박건혁 본부장에게 차량의 상태를 설명했다. 안에 들어와 있던 경찰이 ‘블랙박스에 촬영도 되었을 테고, 주차장의 CCTV도 있어 특정하면 찾을 수 있다’라며 설명을 더했다.
“신고 접수하시려면 하셔도 되긴 합니다.”
그러나 박건혁 본부장은 고개를 내저었다. 일이 더 커지길 원치 않는다는 제스처였다. 그걸 본 한국관광공사 담당자와 휘의 매니저가 와서 사과의 뜻을 전했다.
“보험 처리하면 될 일이니까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오히려 우리 안조은 이사님이 더 걱정입니다.”
일부러 조은이를 언급한 부분에서 박건혁 본부장의 깊은 배려가 보였다. 조은이도 자리에서 일어나 멋쩍게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하필 ‘반려동물과 함께 식사할 수 있는 식당’의 취지로 야외의 테라스에서 식사를 하는 장면이었다. 휘와 조은이는 세상 살벌한 눈치 속에서 식사해야 했다.
“이것이 강화도의 특산물인 순무 김치이고, 이 젓국갈비는 새우젓을 넣고 맑게 끓인 돼지갈비 찌개인데…”
음식점 사장의 설명에 조은이와 휘 모두 어색하게 감탄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휘라고 해도 조은이를 태운 차량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위협을 받고 피해를 입었다는 것에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마치 장벽처럼 저 멀리서 여기를 주시하는 수많은 팬들. 카메라에 비치지는 않겠지만 그들의 비명과 함성, 그리고 살벌한 눈빛들을 완벽히 무시할 수는 없었다.
“와아, 이거 되게 맛있겠다. 그런데, 이게 뭐라고 하셨죠?”
“아, 젓국갈비. 방금 설명 드렸는데…”
“NG, 다시 갈게요!”
결국 여기서도 촬영은 점점 늦어졌다.
어떻게든 먹방 촬영을 마치고 식당 안으로 들어온 모두는 급하게 대책 회의를 시작했다. 애당초 예상된 촬영 시간은 여러 가지 문제로 벌써 한참은 오버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찰까지 가야 하는 일정도 남아있었다.
휘의 매니저가 나서서 말했다.
“여기도 이런데, 사찰이라고 사람이 없겠어요? 분명 있을 거예요. 감당 안 돼요. 이렇게 통제 안 된다면 우리 아티스트에 무슨 문제가 생길지 몰라요.”
하, 어이가 없네. 그러니까 그 아티스트의 팬들 때문이라고!
“크르르르…”
“해피야, 제발. 응?”
조은이의 부탁에 나는 다시 뉘런 건치를 쏘옥 숨겼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벌써 저녁이에요. 이제 와서 사찰 씬을 빼버리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요. 강화도에서 사찰이 얼마나 중요한데.”
한국관광공사 담당자와 촬영작가의 말에 모두들 침묵에 빠졌다.
그렇다고 내일 다시 이어서 촬영을 한다는 것도 문제였다. 조은이는 모를까, 내다논보이즈의 휘는 모든 일정이 거의 년 단위로 미리 다 짜여 있었다. 당장 내일도 출국해야 한다고 했으니 미룰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장소를 바꾸고 콘셉트를 수정하죠. 오늘 스케줄은 어떠세요?”
“아, 저는 오늘 이 촬영 외에는 없어요.”
“저도 그래요. 이 정도 야외로 나오는 종일 촬영은 보통 저녁이나 밤에는 스케줄을 잡지 않아요.”
“그럼 기존에 준비되었던 사찰 촬영은 폐기하고, 급히 다른 사찰이나 암자를 섭외해서 템플 스테이 같은 콘셉트로 가는 것 어때요? 진짜 하는 것은 아니고, 참선하는 씬과 느끼는 감정 같은 것으로 마무리 짓는.”
꽤 좋은 아이디어였다. 스튜디오 꿀잼과 휘의 매니저 모두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이자 한국관광공사 담당자와 촬영작가가 강화군청 내에 대기 중인 다른 공무원과 긴급히 통화했다.
촬영이 가능한 곳, 그것도 이렇게 급작스럽게 가능한 곳을 찾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더러 괜찮다는 곳이 나와도 상대가 내다논보이즈라는 말에 난색을 표하고는 했다. ‘휘가 왔다 간 곳’이라는 이력은 식당이나 다른 관광지면 몰라도 사찰에 있어서는 조용한 참선이나 법회 등에 큰 방해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꾸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암담한 가운데 드디어 한 곳과 연락이 닿았다.
“서해암이라는 아주 작은 암자인데 스님 한 분이 계시는 곳이래요. 강화도와 서해가 모두 내려다보이는 고려산 절벽 쪽에 있는 암자인데 의외로 천년 고찰이래요.”
“괜찮네. 좋네요!”
모두 안도하며 다행히 잘 마무리될 수 있다는 것에 기쁨을 표했다. 그러나 박건혁 본부장과 휘의 매니저는 그다지 표정이 밝지 않았다.
“거기, 차량은 이동 가능한 곳이죠?”
“네, 그런데 약간… 뭐랄까, 비포장 임도인데 아주 가끔씩 산림청에서 나오는 차량 정도가 다니는 곳이라고 해요. 일단 차량은 근처까지는 진입이 가능하다고 하네요.”
“차량을 돌릴 수는 있어요?”
“있…겠죠?”
담당자가 몇 번 더 전화하며 길에 대한 정보를 받아적었다.
“일단, 이쪽에서도 차 한 대에 최소한의 인원만 모아서 가는 것으로 해야 할 것 같아요. 아무래도 두 대 이상 가면 차량 돌리면서 빠지는 것도 그렇고 비켜설 곳도 만만치 않을 듯하니까.”
결국은 휘 소속사의 차량에 박건혁 본부장과 조은이가 나와 함께 타기로 했다. 꿀잼 측 촬영기사로부터 카메라를 건네받은 박건혁 본부장이 미소를 지었다.
휘 쪽도 매니저가 직접 운전을 담당했다. 촬영기사와 촬영작가까지, 최대한 인원을 줄여도 방송 기자재 때문에 리무진 밴이 꽉 찼다.
“최대한 간략하고 빠르게 찍고 올 테니까요, 조명 장비도 최소화했어요.”
“네, 안전에 유의하시고요. 도착해서 촬영 시작할 때 전화 주세요!”
어느새 노을이 짙게 지기 시작했다. 휘의 매니저가 급히 휘갈겨준 메모를 받아들었다.
“황금만물상에서 우측에 있는 길이 임도 시작 지점, 임도 시작 지점에서 쭈욱 20여 분 이상 차량으로 올라가면 서해암 표지가 보이고 산길 따라 30분 걸어야 한다고요?”
“뭐 손전등도 있고 핸드폰 불빛도 있으니까요.”
“카메라랑 기자재 옮기는 데 쉽지 않겠다. 고생 좀 하셔야겠어요. 힘 좀 쓰시는 분들은 한 번 더 왔다 갔다 할 수 있습니다.”
“안전하게, 빨리 끝낸다면야 등산 좀 했다고 생각하죠, 뭐.”
모두 서둘러 기자재를 싣고 리무진 밴에 탑승했다. 급작스럽게 많은 사람이 타니 켄넬 안으로 들어간 쥰이 크게 짖으며 난동을 부렸다.
‘어째 좀 불안한데? 그냥 안 찍어도 분량은 충분할 듯한데…’
나는 조은이의 품 안에서 불안한 눈으로 두리번거렸다. 이상하게 감이 좋지 않았다.
이런 감은 인간보다는 개의 몸에서 더 뚜렷하게 발현된다. 아마 쥰의 저 몸부림도 많은 사람이 탄 낯섦과 함께 무언가 미묘하게 느껴지는 위험에 대한 본능적 감지 때문일지도 몰랐다.
다행히 팬들은 휘가 탄 차량까지 공격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미친 듯이 몰려들며 경찰의 제지를 피해 차창을 두드리고 이쪽을 봐달라 소리치고 있었다. 모두 긴장을 한 가운데 간신히 팬들의 포위를 뚫고 읍내로 내려올 수 있었다.
“이제 속도 좀 낼게요. 곧 밤이네요.”
매니저가 고려산의 반대쪽을 향해 차량을 몰기 시작했다. 붉게 타는 노을이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
“와, 여기가 맞나?”
“그나저나 생각보다 너무 빨리 해가 지는데요? 괜찮겠어요?”
“가 봐야죠.”
서로 한두 마디씩 주고받는 가운데, 차량은 임도의 입구에 들어섰다.
가장 먼저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 것은 임도의 한가운데 난 풀이었다. 사람의 허리 높이로 자라난 풀들은 한동안 이곳으로 차량이 다닌 적이 없음을 의미했다. 물론 등산객이나 암자를 오가는 소수의 신도들은 여기서부터 산길을 걸어 다녔겠지만 풀이 많은 가운데보다는 차량의 바퀴 자국이 있는 양측 가장자리로 다녔을 것이었다.
게다가 바깥쪽, 비탈진 쪽으로 난 경계도 풀이 무성했다. 어디까지가 땅이고 어디까지가 비탈의 시작인지도 감 잡기 애매했다. 결국엔 최대한 안으로 붙어야 했다.
“이런 길 다니기엔 이 리무진이 좀 많이 크네.”
“그러네요. 운전 조심하시고요.”
저마다 앉은 자리에서 침을 꿀꺽 삼켰다. 속도는 아주 느렸다. 안전을 위해 조금씩 나아가다 보니 시간이 곱절로 걸리기 시작했다. 이미 노을은 사라지고 밤이 찾아오고 있는 가운데, 차량은 하이빔까지 켠 채 산길을 조심히 나아갔다.
“그냥 되돌릴까요? 더는 안 될 것 같은데…”
“아니, 여기에서 차량 후진으로 못 내려가요. 위험해서 절대 안 돼요.”
여태 올라왔던 높이와 시간을 생각한 모두는 결국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에 포기를 한다고 해도 차량을 돌릴 수 있는 공간이 나와줘야 하는데, 이렇게 큰 리무진 밴이 돌릴만한 공간이 나올지는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다.
“와, 여기는 전화도 이제 안 터진다.”
“그래도 암자 가까이 가면 다시 터질 겁니다. 제가 암자 스님과 통화를 하긴 했으니까. 조, 조금만 힘내보죠.”
한국관광공사 담당자의 눈총을 받은 강화군청 공무원이 서둘러 모두를 향해 힘내자고 용기를 북돋웠다.
아까부터 운전대를 잡은 휘의 매니저는 말이 없었다. 온 힘을 다해 이 엄청나게 위험한 임도를 빠져나가기 위해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임도 위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길은 더 좁아지고 운전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곳곳, 길 사이로 드러난 바위가 차량을 치고 밑바닥을 긁었다.
“끼이이잉…”
“괜찮을 거야, 해피야. 오늘 촬영 끝나면 누나랑 집에 가서 푸욱 쉬자, 알았지?”
“왈! 왈왈!”
나는 겁먹은 조은이를 위로하기 위해 큰 소리로 짖었다. 그래, 나까지 겁을 먹는다면 조은이는 더 당황할 것이었다. 정신 차려라, 계별욱!
“아! 앞에 뭐야!”
순간 매니저가 비명을 질렀다. 모두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보니 집채만 한 멧돼지가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하이빔 꺼요! 헤드라이트 꺼!”
“아, 아!”
그러나 이미 늦었다. 주변에 새끼라도 있는지, 그 멧돼지는 머리끝까지 화가 난 채로 이쪽으로 돌진했고 매니저는 무의식적으로 멧돼지와의 정면충돌을 피하기 위해 핸들을 비탈 쪽으로 돌렸다.
– 쿠우우우웅!
“어, 어? 어어어어어!”
순간 차체가 기울어졌다.
“후진기어! 뒤로! 핸들 반대로 감고 빨리!”
박건혁 본부장이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사람과 기자재를 잔뜩 실은 리무진 밴은 쉽사리 뒤로 후진하지 못했다. 바퀴가 정신없이 헛돌았고 타이어 고무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그리고…
헛도는 바퀴 덕에 흙더미와 풀이 파여나갔고 차량은 둔중하게 비탈 쪽으로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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