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229
231. 꿈
“별욱아! 일어나야지! 얼른!”
“아이 씨, 조금만 더 자고요.”
“엄마도 빨리 식당 나가야 해! 어서 밥 먹고 공장 가야지!”
“밥 안 먹고 더 잘래, 응? 엄마.”
“너 자꾸 늦으면 해고한다고 라인장인가 뭔가 하는 사람이 그랬다며! 얼른!”
사실 아까부터 알람은 울리고 있었다. 가장 짜증나는 게 알람이었다. 그게 알람인 줄 알면서도 나는 애써 무시하려 했고, 정말이지 모든 뇌가 정지된 채 오로지 잠만 생각하는 좀비처럼 팔을 허우적대며 핸드폰을 찾아 ‘5분 후 재알람’을 켠 상태였다.
하지만 엄마의 재촉만큼은 내가 끌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 딸깍!
“아, 엄마! 불! 불 좀 꺼! 5분 후 일어난다니까!”
엄마는 이불까지 잡아당겼다. 그 이불의 끄트머리를 잡고 실랑이를 하던 도중, 5분이 벌써 지났는지 알람이 다시 울려댔다. 결국, 나는 오늘도 여느 때와 똑같은 아침을 맞이하게 된 셈이었다.
“어제 밤새도록 불 켜져 있더니. 게임했니? 아니면 그 코인인가 뭐시기인가 그거?”
“신경 쓰지 마요, 생각하면 열불 나니까.”
까치집이 된 머리로 잔뜩 인상을 쓰는 날 보며 엄마는 혀를 차고 나갔다. 지난주 들어온 월급 210만 원 중에서 150만 원을 뚝 떼서 물을 탔는데 그때보다 더 빠지고 있었다. 남은 60만 원, 핸드폰 요금과 밥값, 차비까지 하려면 여간 빠듯한 게 아니었다.
이번 달에서 카드값은 무리다. 또 리볼빙으로 눈덩이가 되어가겠지.
‘분명 리딩방에서 반등 포인트, 저점 잡았다고 했는데. 고래들 매집 시그널 나왔다고 했는데…’
짜증이 잔뜩 피어올랐다. 그런 내 앞으로 김치찌개와 계란후라이, 호박 나물과 김이 올라간 작은 밥상이 차려졌다.
“얼른 먹어. 엄마는 먼저 나갈 테니까.”
“뭐? 같이 먹지, 왜?”
“어제 늦게 끝나서 설거지 못 하고 나온 것들 많아. 그나저나 별욱아, 너 돈 좀 있니?”
“돈? 왜…?”
나는 불안한 눈으로 엄마를 쳐다보았다. 사실 돈을 벌면서 단 한 번도 온전히 엄마에게 준 적은 없었다. 아니, 일부라도 준 적이 없었다. 내가 번 돈은 내 돈, 그리고 엄마가 번 돈은 아들인 나를 책임지고 또 집안을 꾸려갈 생활비로 써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가슴 한편에는 ‘이제 성인이 되었는데 밤늦게까지 일하면서 힘들게 삶을 꾸려가는 엄마를 외면해도 되느냐’는 스스로에 대한 비난과 반성이 있었지만 결국 ‘나도 내가 벌어 내 인생을 사는 게 중요하다’라는 괴상한 자기방어의 궤변이 훨씬 더 컸다.
“아니, 엄마가 요새 자꾸 몸이 좀 이상해서. 종합검진을 제대로 받아봐야 할 것 같은데 그게 알아보니 생각보다 가격이 좀 되더라. 종합병원에서.”
“그거, 나라에서 하는 그거 안 받았어?”
“그거랑 다른 거야. 올해는 해당 안 되고.”
“엄마가 월급 받은 것으로 하면 되잖아. 엄마도 돈 벌잖아.”
내 말을 들은 엄마는 멍하니 날 쳐다보았다.
나도 안다. 나보다도 적게 받는 그 돈을 어디에 다 쓰는지. 결국, 엄마 역시 언제나 마이너스였다. 오히려 월급날이 다가와서 돈이 다 떨어지거나 주식과 코인이 왕창 폭락할 때마다 내가 요구하는 대로 몇 십만 원이고 계속 내어주느라 전혀 돈을 모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것을 모두 알고 있는, 아니 이 모든 것의 원흉이라 할 수 있는 아들이 저런 말을 하니 얼마나 속이 상할는지. 나는 내 스스로 ‘참 뻔뻔한 말을 했다’라는 자책감에 후회하며 애써 고개를 돌렸다. 무어라도 변명거리를 찾아야 했다.
“이번 달 월급 좀 늦어진대. 그리고 받아도 나도 여기저기 메꿀 것 많아. 엄마가 알아서 해요.”
“…그래.”
“그러니까 평상시 몸 좀 신경 쓰지! 왜 아프고 그러냐고!”
나는 미안함에 더욱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런 내 목소리에 엄마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엄마가 알아서 할게. 다녀온다.”
그리고 엄마는 나가며 힘없이 반지하의 현관문을 닫았다.
죄인이 된, 아니 오래전부터 죄인이었던 나는 고개를 숙인 채 말없이 수저질만 했다. 그래도 아들이라고 새벽처럼 일어나 새 밥에 새 찌개를 끓이고 나물도 새로 했을 것이었다.
바보같이 수저질만 하는 나를 비웃듯, 커다란 바퀴벌레 한 마리가 싱크대 바닥에서 나와 부엌을 돌아다녔다.
“씨발, 또 뭔데!!!”
나는 고함을 치며 수저를 바퀴벌레를 향해 강하게 내던졌다. 바닥을 맞고 튀어 오른 수저가 싱크대에 부딪히며 요란한 소리를 내는 가운데, 용케 목숨을 부지한 그 바퀴벌레는 나를 비웃듯 크게 한 바퀴 돌며 다시 싱크대 바닥으로 숨어들었다.
***
“야, 계별욱이. 가불은 안 된다니까? 애당초 우리 공장에 가불은 없는 것 알잖아. 하도 가불 땡기고 튀는 놈들이 많아서. 그래도 네가 하도 사정해서, 내 특별히 총무과에 말해서 해준 게 몇 달 전이잖아.”
“이번엔 진짜 좀, 상황이 그래서 그래요.”
“내가 공장 쇳가루 밥만 30년이다. 너 같은 놈들 수백, 수천 명은 봐 왔어. 가불은 습관이 돼. 너, 전에 뭐랬어? 딱 한 번이랬지?”
“라인장님, 진짜 부탁드려요. 어머니가 아파서 그래요. 종합검진 받아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요.”
그 말을 들은 라인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무리 억세고 대쪽같아도 어머님이 아프다는데 그것을 몰라라 할 상황은 아니었다. 엄청난 꼰대고 무시무시하게 원칙주의자였지만 의외로 정에 약한 이였다.
“휴우… 인마, 너 바로 지난주가 월급날이었잖아. 그건 다 어디 가고!”
“공과금 밀린 거랑 이것저것 빚 갚는 데 다 썼어요. 차비랑 밥값, 핸드폰 요금만 겨우 남겨놨어요.”
이 정도면 거의 넘어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라인장은 자판기에 300원을 넣고 커피를 하나 뽑아 들고는 연달아 담배를 세 대나 피웠다. 자신이 지켜오고 있는 신념을 무너트리는 것에 있어서 어느 정도는 스스로를 설득시키고 합당한 이유를 대야 할 시간이 필요했다.
세 번째 담배가 다 마신 종이컵에 틀어박혔다. ‘치이이’ 소리를 내며 꺼지는 담뱃불과 위로 피어오르는 한 줄기 연기가 마치 내 초라한 모습을 보는 듯해, 나는 얼른 고개를 돌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뭐, 네 상황이 그 정도라면야 어쩔 수 없지. 나도 인마! 홀어머니 밑에서 커서 네가 남 같지는 않았어. 그래서 더 하는 말이야. 공장에서 돈을 모으려면 술, 여자, 도박 그리고 가불을 피해야 돈 모은단 말이야.”
“네, 잘 알고 있어요.”
“이번 한 번뿐이다. 따라와.”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총무실을 향해 걸어가는 라인장의 뒤로 잽싸게 따라붙었다.
그리고 한참 후, 나는 월급의 절반인 105만 원의 이체를 확인한 뒤 가불 확인 서류에 사인을 하고 나왔다.
“고맙습니다, 라인장님! 지각 안 하고 열심히 일할게요.”
“그리고 너 인마, 이리 와 봐.”
“네?”
나는 머뭇거리며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는 라인장에게 다가갔다. 라인장은 날 한참 쳐다보더니 하도 낡아 가죽이 다 갈라지고 뜯어진 지갑을 꺼내 5만 원짜리 두 장을 내 손에 쥐여줬다.
“나도 형편이 그래서 많이는 못 준다만, 그래도 내 라인에 있는 놈인데 이런 이야기를 듣고 그냥은 못 있겠다. 가서 어머니 맛있는 것 사 드려.”
“아…”
“어머니 계실 때 잘해, 이 새끼야. 내가 까마득한 인생 선배로서 하는 말이야. 새겨들어!”
“네, 알겠습니다.”
나는 허리를 숙여 라인장에게 인사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고마웠다.
그리고 나는 그날, 10만 원을 입금하고 115만 원을 이체해 물린 코인에 물을 탔다.
나는 쓰레기 같은 놈이었다.
***
“끼이이잉…”
나는 눈을 떴다.
아무런 것도 보이지 않았고 들리지 않았다. 그저 흐릿한 눈으로 천장에 있는 아주 환한 빛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쓰레기.’
‘나는 필요 없는 놈.’
‘나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되는, 평생 스스로 아무것도 해 본 적 없는 놈.’
‘나는 살아있을 가치가 없는 놈. 그래서 이렇게 잊혀져도 아무에게도 기억되지 않을 놈.’
맞는 말이다. 나는 그런 놈이다.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
고등학교 졸업식.
‘어라? 아까 분명 공장에서 라인장님에게 가불을 요청했었는데 왜 고등학교 졸업식이지?’
나는 깜짝 놀라 주변을 둘러봤다. 여기저기에서 어색한 정장을 입은 친구들이 서로 사진을 찍으며 웃고 떠들고 있었다.
아, 엄밀히 말하면 친구는 아니었다. 그저 같은 반이니 ‘친구’라고 표현했을 뿐이다. 저들에게 내가 친구일 리도 없었고 나 또한 그들을 친구라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멍하니 뒤에 앉아 고개를 숙이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오로지 나만 교복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그 교복은 낡아 헤져 있었다.
“야, 계별욱!”
그 심드렁한 목소리에 나는 깜짝 놀랐다. 심장이 덜컹거렸다. 순간적으로 양손을 들어 머리를 가렸다. 저렇게 날 부르고 나선 언제나 배구 스파이크질을 하듯, 매섭기 그지없는 손바닥이 내 머리를 때렸었다.
“푸하하하! 이 새끼 쪼는 것 봐라.”
“야, 야! 오늘 졸업식 날인데, 설마 우리가 이렇게 졸업식 날까지 널 갈구겠냐? 야, 고개 좀 들어 봐!”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나는 슬그머니 손을 내리고 고개를 들어 3년 내내 날 괴롭히던 이들을 쳐다봤다.
– 빠악!!!
“푸하하하하! 또 속냐? 계또속이네, 계또속!”
너무나 아팠다. 그리고 굴욕적이었다. 여기저기서 웃고 떠드는 소리가 전부 나를 향하는 것만 같았다.
내 뒷덜미를 강하게 잡은 그놈은 날 이리저리 흔들며 히죽거렸다.
“그래도 이제 너 못 볼 생각 하니까 졸라 아쉽긴 하다. 이제 대학교 가면 누구를 데리고 노냐?”
날 괴롭히던 놈들 모두 대학을 갔다.
참 이상했다.
어쩌면 공부를 열심히 하며 쌓인 스트레스를 풀려 했던 것일까? 왜 담배도 피우고 몰래 술도 마시고 날 괴롭히던 놈들이 저렇게 대학교에 가는 것이지?
그게 어디가 되었든 상관은 없었다.
결국, 어디이건 간에 ‘대학’이라는 것은 저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 줄 것이었다. 캠퍼스를 누빌 것이고 ‘학번’이라는 것을 받고 ‘과’라는 또 다른 집단에 소속될 것이다. 그리고 여태 몰랐던 새로운 이들을 만나고 즐거이 웃으며 또 다른 관계를 만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졸업을 하면 이력서에 중요한 줄이 들어가는 것이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저들은 나와 다르다.
아니, 애당초 졸업식을 하는 이 순간부터 저들은 나와 완전히 다른 출발점에 서는 것이다.
“그런데 계별욱, 넌 씨발 공부도 안 하고 여태 3년 동안 뭐 했냐? 응? 너, 원서는 넣어봤냐? 어디라도?”
너희가 그런 말 하지 마! 너희 때문에 나는 숨도 못 쉬고 학교를 다녔어! 너희 때문에 수업도 제대로 못 듣고 쉬는 시간에 끌려가서 괴롭힘당할 생각에 3년 내내 얼굴만 파묻고 있었다고! 그래서, 그래서 꼴찌를 도맡아 했던 것이 나잖아!
물론 그런 말을 면전에서 대 놓고 할 용기는 없었다.
“에휴, 벌써부터 니 인생이 졸라 깝깝시럽다. 노력 좀 하지 그랬어, 이 새끼야.”
– 짜악!
나는 마지막까지 저 매서운 손바닥을 막지 못했다.
노력…
노력…
무슨 노력? 어떻게?
***
“끼이이잉…”
한참을 다시 꿈을 꾸었나 보다.
나는 뿌연 눈을 들어 천장의 빛을 다시 쳐다봤다.
여기가 어디이고 내가 누구인지, 지금 내가 계별욱이 맞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아니, 알고 싶지 않았다.
‘나 같은 건 이대로 죽는 게 나을지도 몰라.’
내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리고 난 다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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