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23
23. 낭만사기꾼(6)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폐허가 된 재개발 현장의 한 콘크리트 더미 사이에서 나는 벽돌을 타고 흐르는 빗물에 혀를 대고 목을 축였다.
“찹! 찹! 찹! 찹!”
– 쿠르르르릉!!!
그때 어마어마한 굉음과 함께 천둥이 치고 번개가 번쩍했다.
“깽!”
깜짝 놀란 나는 겁에 질려 몸을 웅크렸다. 내 주변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완벽하게 고립된 그 절망감. 나는 슬피 울면서 비를 맞으며 어두운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조은이와 함께 했던 모습, 첫 키스, 주식계좌에 돈을 이체해 줄 때의 떨림.
그리고…
노파와 귀생이.
“왈! 왈! 왈! 왈! 아오~~~~~~!”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조은이가 무척이나 보고 싶었다.
비에 흠뻑 젖은 나는 콘크리트 더미에서 내려와 비틀비틀 어둠 속을 걸어 내려갔다. 겨우 폐허를 지나 한 골목길로 들어섰을 때, 저 앞에서 조은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왈! 왈! 왈!”
나는 반가운 마음에 눈물을 흘리며 뛰어갔다. 그때 마침 옆 골목에서 아주 밝은 빛이 다가오더니…
– 끼이이이이익!
– 쿵!!!
나는 하늘로 떠올랐다. 아아, 이대로, 이대로 나는 형광 분홍색 귀를 가진 천사가 되어 무지개다리를…
깨꼬닥!
“컷! 와아아…! 이거지, 이거야!”
엄청난 환호 소리와 함께 메가폰을 든 감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내 위의 살수차가 물을 뿌리는 것을 멈췄고 지미집 카메라가 ‘위잉’ 소리와 함께 돌았다. 바닥에 떨구어진 내 눈을 클로즈업하여 찍던 카메라맨도 어깨를 들썩이며 일어나 울먹거렸다.
“크흑, 크흐흐흑. 죽으면 안 돼, 해피야!”
“와아, 우리 민혁 씨 또 감정이입 제대로 했네. 카메라맨이 연기에 너무 이입하면 안 좋아.”
“저도 울 뻔했는걸요. 아아아, 어떻게 저런 연기가!”
나는 주변의 찬사를 받으며 일어나 온몸의 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곧장 조은이에게 달려가 꼬리를 흔들어댔다.
“응, 우리 해피 너무너무 잘했어. 누나도 울 뻔했어!”
수건으로 내 젖은 몸을 닦아주며, 눈이 새빨개진 조은이가 연신 코를 훌쩍였다.
***
일단 내가 찍게 될 공익광고 두 개. 그중 하나는 ‘반려동물을 버리지 말아요’라는 컨셉의 내용으로 유기된 강아지의 비통한 삶을 다룬 것이었고, 또 하나는 ‘반려동물을 학대하지 말아요’라는 컨셉의 내용으로 실컷 얻어터진 내가 사람이 다가올 때마다 두려움에 몸을 떨고 오줌을 지리며 겁먹은 얼굴로 카메라를 바라보는 컨셉이었다.
오전 중에 조은이와 행복한 씬을 실컷 찍은 나는, 오후 촬영 내내 살수차의 물을 맞으며 이 공터에서 혼신의 힘을 다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각 카메라 모여. 모니터해야지.”
모니터 화면으로 1번부터 4번 카메라와 지미집, 그리고 드론까지 찍은 화면을 확인한 감독이 뒤를 돌며 눈시울을 닦았다.
“정말… 정말 추레해. 비루하기 그지없어. 어떻게 이 흑백의 도시 속에서 저 귀와 꼬리 색깔만큼이나 선명하게 도드라지는 슬픔을 표현할 수 있는지. 신이 주신 마스크야. 조물주가 좀 기분이 많이 안 좋은 날 빚긴 했지만.”
“왈! 왈! 왈!”
‘그게 칭찬이냐, 욕이냐!’
나는 더 이상 날 무시하지 말라며 맹렬히 짖었다.
사실 이렇게 짖기는 했지만, 나 역시 무언가 제대로 나왔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콘티를 설명하고 동선을 가리킬 때, 나는 이미 모든 것을 같이 들었고, 굳이 조은이나 스태프가 간식으로 유혹하지 않더라도 가야 할 곳을 정확히 알고 걸었다.
비참한 컨셉임을 알았기에 일부러 힘없이 고개를 숙이고 귀도 늘어트렸고, 걸을 때는 발을 비틀거리며 당장이라도 배고픔에 쓰러질 것만 같은 분위기를 그려냈다.
개가 이만치나 찰떡같이 원하는 것들을 소화해 낸다는 것, 분명 이들로서도 기적 같은 일일 것이 분명했다.
나는 조은이의 품 안에서 스태프가 가져다준 육포를 질겅질겅 씹으며 톱스타가 된 기쁨을 만끽했다.
“아마 첫 광고는 편집 작업과 최종 검토를 마쳐 빠르면 2주 후부터 엘리베이터 안의 광고화면이나 빌딩의 대형 광고판, 그리고 텔레비전의 공익광고 등으로 송출될 겁니다. 그리고 다음 주에 찍을 ‘반려동물을 학대하지 말아요’도 1주일 늦은 3주 후부터 송출이 될 것이고요.”
“아아, 네에.”
감독이 이후의 계획을 설명하며 빙그레 웃었다.
“아무래도 제가 엄청난 재능을 가진 강아지를 만난 듯합니다. 사실 이런 일을 하다 보면, 감독으로서 어떤 감이란 것이 생겨요. 내가 찍는 게 정말 대박이 나겠구나, 혹은 별로겠구나, 같은.”
“그, 그런가요?”
“이 광고는 꽤 센세이션이 될 것이고, 우리 해피는 분명 많은 이들에게 널리 알려질 겁니다. 다양한 의뢰가 들어오는 건 물론 인터넷 스타가 될 수도 있고, 뭐 어마어마한 일들이 벌어질 수도 있어요.”
“어머, 해피에게요?”
“그럼요. 유명 인터넷 짤방 같은 것으로 쓰일 수도 있겠죠. 하나의 밈이 될 수도 있고.”
‘흐음, 그건 좀 곤란한데? 이 얼굴이 어떤 식으로 쓰일지 대충 감이 온단 말이야.’
나는 그 부분은 살짝 염려가 되었으나 다른 촬영 의뢰가 들어올 수 있을 것이라는 말엔 크게 만족했다. 분명 하나하나가 모두 돈이 될 것이었고 빚태창의 빚도 빠르게 줄어들 것이 분명했다.
일단 그 노파의 말도 안 되는 계약을 파기해야 하는 것이 우선이었지만, 여기에서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집에 가는 대로 방법을 생각해 보리라.
‘엥?’
그때 내 머릿속의 빚태창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종료일 2026년 3월 8일 오후 10시 13분. 현재 순자산 -3,521만 4,750원]이었던 숫자가 미친 듯이 올라갔다. [종료일 2026년 3월 8일 오후 10시 13분. 현재 순자산 -4,001만 4,750원]‘어, 어? 어?’
빚이 갑자기 4천만 원으로 늘어났다. 이번에 촬영으로 오백만 원을 벌면 정말 무언가 더 꽉 졸라매고 뭐라도 해서 앞 자릿수를 2로 바꾸고 싶었는데, 단박에 4로 늘어나고 말았다.
“캐, 캑! 캑!”
“아, 해피야! 해피야! 왜 그래!”
조은이가 깜짝 놀라 나를 안고 발을 동동 굴렀다. 다른 스태프들도 헐레벌떡 뛰어와 나를 보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지었다.
‘아, 지금 이 시간이면! 설마 귀생이, 이 자식이!’
어제 귀생과 노파의 대화가 떠올랐다.
– 나, 아직 돈이 없는데!
– 그것도 다, 방법이 있다 이 말이쥬! 내일 만나서 다 설명해드릴 테니.
– 그게 무슨 방법이에유?
– 여사님의 신용을 믿고, 물건이 소진되기 전, 미리 선입금을 우리가 융통해 주고 물건을 여사님께 먼저 주는 것이쥬. 여사님을 믿고 우리가 물건값을 대납해드린다!
– 이, 잉?
– 내일 다 설명해드릴 테니, 아무 염려 말고 대박 나실 생각만 하세요. 여사님이 잘돼야 저도 좋지유.
맞다. 이것이었다.
분명 엄청난 고금리의, 되지도 않을 차용증을 내고 돈을 빌린 것으로 만든 뒤 물건을 떠넘겼을 것이었다. 그들로서는 정해진 기한 안에 480만 원을 안 갚으면 그 이상을 어떻게든 뜯어낼 것이었다. 뻔했다.
“왈! 왈! 왈! 왈!”
나는 분노에 몸을 떨며 미친 듯이 허공에 대고 짖어댔다. 그런 나를 보고 스태프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조은이에게 물었다.
“해피가, 해피가 왜 그러죠?”
“아, 아마 오전, 오후 내내 촬영을 하다 보니 조금 예민해진 것 같아요!”
“그럼 잠시만요!”
스태프가 모니터를 보며 연신 눈물을 짜내고 있던 감독에게 다가가 내 상태를 알리며 무엇인가를 물었다. 감독이 고개를 끄덕이곤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오늘 촬영은 완벽히 퍼펙트하니 돌아가셔도 좋다고 말씀하시네요. 다음 주 촬영 장소는 내일 문자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저는 해피가 걱정이 되니 그럼 먼저 일어나 볼게요!”
조은이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기저귀박스 가방(얼마나 튼튼한지 아마 100년은 쓸 것만 같았다.)에 넣고 사람들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리곤 재빨리 촬영장을 벗어났다.
“해피야, 괜찮아? 누나가 미안해. 괜히 너 너무 무리시킨 것 같아. 자꾸 스트레스 받을 것 같니? 죄송한데 다음 촬영 못 한다고 말할까?”
“끼이이잉, 낑!”
‘아냐, 그러지 마. 이게 얼마나 좋은 기회인데!’
나는 물끄러미 조은이를 바라보았다. 날 걱정할 필요가 하나도 없음에도 조은이는 빨개진 눈으로 그보다 더 빨간 귀를 한 나를 슬프게 내려다보았다.
***
“어? 하, 할머니. 이게 뭐야?”
박스 가방을 든 채, 조은이가 멍한 눈으로 중얼거렸다. 나 역시 할 말을 잃은 채 입을 쩌억 벌렸다.
2미터는 될 듯한 기다란 박스. 그 겉면에 쓰인 [등골젠 은나노 게르마늄 옥매트 스페셜 리미티드 에디션 특대 1호]의 글씨가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마치 중세시대 성벽에 통나무를 쌓듯, 벽면에 세워진 옥매트 4박스와 그 아래, 조은이가 혼자 들기도 버거울 정도로 큰 정사각형 박스 네 개. 루이 27세가 계란후라이 해 먹을 때 쓰던 돼팔 프라이팬 종합 세트 5호.
우리의 표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노파가 싱글벙글 웃었다.
“아유, 얼매나 친절한지 차로 여기까지 다 날라줬댜. 이거 하나가 얼마를 냄겨주는지 알어? 60만 원이랴! 네 개면 240만 원!”
“그게 무슨 말이야? 할머니가 이거를 파는 거야? 왜? 할머니가 이걸 왜, 누구에게, 어떻게 팔아?”
“말 좀 들어봐. 요것이 그 미국에서 우주선에 타는 우주인이 피로를 풀려고 쓰고 쏘오련의 그 운동선수도 쓰고. 북한의 김정일이…”
노파는 신이 나서 내가 들었던 그것을 그대로 조은이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조은이는 노파의 말을 들으며 표정이 점점 굳고 있었다. 여태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그 살벌한 표정에 나는 깜짝 놀랐다.
기분이 좋아 웃으며 설명하던 노파도 조은이의 표정을 보곤 점점 말소리의 크기가 줄어들었다. 그래도 말은 끊지 않고 자신이 돈이 당장 없으니 그쪽에서 ‘대납’해주는 조건으로 사인을 하고 물건부터 급히 받아왔다는 것까지 얘기했다.
그 말을 하면서 노파도 아차 싶었는지 얼굴이 새파래졌다.
“그, 그러니까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냐, 조은아?”
“그 계약서 좀 보여줘 봐.”
“이, 잉.”
조은이가 노파가 머뭇머뭇 내민 계약서를 낚아챘다.
[일금 사백팔십만 원정을 ㈜등골젠으로부터 차용하여 상품의 대금으로 지급한다. 해당 금액은 15일 안으로 반환하며 미반환 시 월 12%의 이자를 원금에 더할 것임을 인정하고 이를 수락한다.]선명한 문구가 들어왔다.
“그, 그래도 이것을 팔기만 하면 분명 돈이 된다고. 이게 정가보다 아주 금방 팔릴 거라고…”
– 팍!
조은이가 거칠게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가 컴퓨터를 켰다. 나는 있는 힘껏 조은이의 허벅지 위로 뛰어올라 자리를 잡았다.
오래된 본체에서 굉음이 울리는 가운데, 로딩까지의 시간이 끔찍하게 길게 느껴졌다.
이윽고 인터넷 포털을 켜 ㈜등골젠을 검색해 본 조은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 역시도 조은이가 펼친 화면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럴 줄 알았지.’
‘(주)등골젠 피해자 모임 카페’, ‘등골젠, 진짜 조심하세요. 우리 어머니가 당했습니다.’, ‘연락 안 되는데 방법이 없을까요?’, ‘돈 갚으라고 내용증명이 날아왔네요. 무조건 가압류부터 진행한다고 합니다.’ 같은 글들이 가득했다.
“할머니, 거기가 어디라고 했어?”
“잉, 그 근린공원 대로 사거리에 가장 높은 빌딩 있잖여. 역사 옆에. 거기 7층.”
“지금 가. 나랑 바로 가.”
조은이가 벌떡 일어나서 핸드폰을 쥐고 바깥으로 나갔다. 나도 잽싸게 뛰어나가 같이 가자고 짖었다.
“그래, 해피야. 해피도 같이 가자.”
얼굴이 파래진 채 몸을 덜덜 떠는 노파가 신발을 신고 우리 둘을 뒤따랐다.
조은이의 눈에서 빛이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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