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236
238. 회상
뿌연 덩어리들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검은 덩어리, 노란 덩어리, 하얀 덩어리. 주변도 온통 희뿌연 질감의 덩어리들뿐이었다.
그 덩어리들이 뭉치고 또 흩어졌다. 나는 그 모습이 기이해 고개를 갸웃했다.
“해피야, 굿모닝! 오늘은 어떤 해피이려나?”
무언가 울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깜짝 놀라 몸을 웅크렸으나 적어도 내게 공격적이지는 않은 듯해 천천히 고개를 들곤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리고 앞을 내딛던 중, 쿵! 하고 쓰러지고 말았다. 뿌옇고 노란 바닥 사이에 그만큼이나 높이가 있는 공간이 있는지 몰랐던 것이다.
“해피야, 괜찮아? 괜찮은 거야?”
덩어리가 나를 향해 다급하게 외쳤다. 나는 다시 일어나 비틀거리며 앞을 향해 걸어갔다. 바깥에서 들리는 소리. 그리고 덩어리가 움직이는 모습,
– 부더더더덕! 더덕! 덕! 더더더더더덕!
“꺄악! 할머니, 제발 안방에서 그러라고!”
“이게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여!”
곧이어 뉘런 기운에 휩싸인 덩어리가 지옥의 냄새를 풍기며 내 앞을 지나갔다.
‘이건 분명 해로운 존재다!’
나는 그 뉘런 덩어리를 향해 ‘왈왈’ 짖고는 어디선가 나는 음식 냄새를 찾아 걸어가다 어딘가에 부딪혔다.
– 쿵!
“깨앵! 깨앵!”
“저 똥개가 왜 문에 부딪히고 난리여?”
나는 두리번거리다가 이 하얀색의 커다랗고 딱딱한 덩어리가 지나갈 수 없는 것임을 깨닫곤 그 옆으로 발을 움직였다. 그리곤 음식 냄새를 따라가다 멈춰선 채 그대로 오줌을 쌌다.
“뭐라 하지 마! 내가 닦을 테니까!”
“그리여. 얼른 닦아라. 나도 인자 가게 나가봐야 하니께. 아유, 어묵값이 또 올랐어! 순대도 오르고! 이거 가격 올려야 하는 것 아니여? 다른 데는 어묵 하나에 막 천 원, 지하철역에서는 천 오백 원도 받더라.”
“안 돼! 아이들 장사에 그렇게 가격 올리면 누가 오겠어! 올리더라도 600원을 700원으로 올려. 그래도 남잖아.”
“장사를 하라는 거여, 말라는 거여!”
“그걸로 돈 안 벌어도 괜찮아. 내가 충분히 버니까.”
“회사도 그만둔다고 말했다며.”
“이제 해피랑 많이 놀 거야. 할머니랑 다 같이 여행도 다니고.”
그 말을 뒤로하고, 나는 하얀 색과 갈색이 있는 덩어리로 다가갔다. 맛있는 냄새는 여기에서 풍기고 있었다.
– 덜그럭!
순간 내 앞발에 차갑고 촉촉한 느낌이 전해졌다. 깜짝 놀란 나는 얼른 뒤로 물러섰다.
“저 똥개가 인자 물그릇도 엎어버린다. 아니, 눈앞에 있는데 왜 그걸 밟어?”
“어, 자… 잠깐만.”
다른 검고 하얀 덩어리가 내게 다가와 날 조심스레 안아 들었다. 따뜻하고 포근한 냄새, 그리고 날 절대 해치지 않을 것 같은 느낌. 나는 그 덩어리를 핥기 위해 혀를 낼름낼름거렸다.
“할머니, 해피… 해피 눈이 왜 이렇지? 희뿌옇게 변한 것 같아.”
“뭐, 뭐라고? 해피 눈이 어떻게 되었다고?”
뉘런 기운의 덩어리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곤 가만히 앞에 섰다.
“조은아, 일단 해피 데리고 병원 한번 가 봐라.”
“으, 응. 알았어.”
***
“백내장입니다.”
하얀 덩어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는 무언가 밝은 빛을 쳐다보고 기계 소리를 들은 후 바닥에 다시 놓였다. 갑갑함에서 벗어난 나는 따뜻한 곳에 앉아 정성껏 내 앞발을 핥았다. 이상하게 그 놀이가 너무나 재미있었다.
“백내장이요?”
“이게 초기에는 견주님들도 쉽게 알아차리기 힘들어요. 그리고 보통은 만 6살 이후부터 조금씩 나타나는 편인데, 해피의 경우 저번에 수술하기 전 검사에서 의외로 눈은 깨끗했었거든요. 12살인데도 이 정도라니, 눈은 타고난 것인가 싶었지요.”
“그런데 왜 갑자기 이렇게 된 걸까요, 선생님?”
“노령이다 보니 발병했을 때 단계별 진행이 이렇게 급속도로 나타나네요. 조금은 놀랍습니다. 이것 참…”
안이 침묵으로 가득 찼다. 나는 멍한 눈으로 덩어리들을 쳐다보았다.
“그럼, 우리 해피는 어느 정도의 단계인데요?”
“초기에서 그다음 단계, 망막에 얇은 막이 덮인 것처럼 보이는 단계입니다. 일단 백내장 영양제와 안약을 처방해 드릴 것이고요, 아직 수술까지는 고려하지 않을 테니 꾸준히 검사를 받고 또 투약하면서 관리해 보죠.”
“가, 감사합니다.”
그리고 덩어리는 나를 들어 가방에 넣은 후 나왔다. 무언가 설명을 듣는 소리와 질문하는 소리. 그것을 들으며 나는 다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
“어때, 해피야?”
덩어리가 조금은 선명해졌다. 그것은 긴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고 눈을 깜빡였다. 무언가 날 뒤덮은 것 같은 안개가 조금은 사라졌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주변을 보며 원근감과 형태의 구체적인 모습들을 구분할 수 있었다.
“왈! 왈왈!”
선명해진 시야가 반가워 나는 신나게 꼬리를 흔들며 짖었다. 그런 날 한없이 쓰다듬는 손길이 너무나 부드럽고 달콤했다.
***
[종료일 2026년 3월 8일 오후 10시 13분. 현재 순자산 27억 1,489만 9,910원]“네! 개똥팸 여러분, 반갑습니다. 아니, 너무한 것 아니에요? 크리스마스이브인데 왜 다들 제 방송에 들어오시는 거예요? 이러면 고마우면서도 뭔가 되게 슬퍼요. 여하간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 해피도 해피 크리스마스!”
내 손이 번쩍 들려서 흔들렸다.
나는 찢어지게 하품을 한 후 다시 주저앉았다.
“하하하, 제 깜짝 발표 이후 사실 엄청 많은 분들이 빠져나가실 것으로 생각했어요. 그래도 생각보다 아직, 마지막 방송까지 함께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저도, 해피도 힘이 부쩍 나네요. ‘급전필요한남자’ 님? 네, 절대 후원은 받지 않고 있습니다. 아예 도네이션 창 닫은 지 오래니까, 다른 생각 마시고 스스로를 위해 맛있는 것 사드세요!”
무언가 기분 좋은 음악 소리가 흐르는 가운데, 나는 내 몸에 입혀진 반짝거리는 옷을 쳐다보았다.
“네, 이 옷은 벌써 작년이네요. 어라? 정확히 1년 전인가? 하여간 라스베이거스에서 ‘해피의 싱글벙글 초코타임’ 행사할 때 입었던 걸 보고, 제가 해피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 준 거예요. 와, 정말 시간 빠르다.”
그리고 여자는 무엇인가를 움직였다. 네모난 것 안에 작은 풍경이 펼쳐졌다. 신나는 음악 소리 속에 여자와 아주 작은 무엇인가가 열심히 무엇인가를 말하고 또 뛰어다니고 있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환호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보셨죠? 이게 그때 라스베이거스 행사. 여기에서 입었던 옷이 너무 인상적이었거든요.”
한참 동안 네모난 것을 보며 즐거운 듯 이야기를 하던 여자의 목소리가 조금씩 잦아들었다.
“그 1년 전, 저는 엄청나게 행복한 나날들이 계속될 것만 같았어요. 생각해보니 지난 3년 동안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달려왔어요. 행복했죠, 정말 행복했어요. 그리고 지금도 행복해요. 개똥팸 여러분, 그거 아세요? 전 지금도 아주 행복해요, 해피가 있어서.”
“끼이이잉…”
나는 가만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가장 소중한 존재와 최대한 함께 있고 최대한 더 아껴주세요. 알았죠? ‘불국사앞회덮밥’ 님, 소중한 존재가 없다고요?”
그녀는 잠시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그리곤 눈을 뜨곤 빙그레 웃었다.
“아니요, 아직 알아차리지 못한 걸 수도 있어요. 그리고 내게 소중한 존재가 없다고 생각되더라도, 나는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일 수 있어요. 그럼 날 소중한 존재로 생각하는 이에게 그만큼의 사랑과 관심을 더해 주세요. 그럼 우리 모두 소중한 존재를 가지게 된답니다.”
곧이어 다시 네모 안에 무엇인가가 올라왔다. 아주 다양한 장면들이 음악 소리와 함께 흘러나왔다. 나는 그것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이번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처음 방송을 시작했을 무렵부터 지금까지, 순서별로 사진들과 영상들을 골라 붙여보았어요. 지금 보시는 사진은 아마 여러분은 처음 보시는 사진일 거예요. 맨 처음, 애견 펜션 촬영 아르바이트가 있었는데 거기 지원하기 위해서 당시 살던 동네의 공원에서 해피와 함께 찍은 사진이에요.”
나를 안고 이야기를 하는 여자, 그리고 그 여자가 안고 있는 못생긴 분홍색 귀와 꼬리의 강아지. 나는 그 모습이 우스워 ‘헥헥’거리며 작게 웃었다.
“다음엔 그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찍었던 사진. 저기, 3년 전의 걸, 아니 로이 오빠 보인다. 두찌도 보이네요. 저 뒤에서 노려보고 있는 사람은 아마 로랑 님이려나? 하하하.”
그리고,
“이건 해피가 공익광고 찍었던 부분이에요. 이때 감독님이 ‘해피는 진짜 사람 말을 알아듣는 것 같다’라고 했었거든요? 그런데 저도 그렇게 생각을 했던 게, 전에는 그렇게까지 느껴보지 못했는데 갑자기 해피가 엄청 똑똑해진 거예요. 너무 신기했어요.”
무언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멍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이 사진은 해피가 사기꾼들을 잡고 경찰서에서 상을 받을 때 사진. 그리고 이건 폭스넷 투자대회에서 일반인 부문 1등을 했을 때. 바로 옆에서 하트 만들고 계신 분은 엄청난 단타 매매 투자자로 굉장히 많은 구독자를 보유하고 계신 ‘청담동오리발’ 님이세요!”
사진이나 영상 어디에도 못생긴 강아지가 있었다. 그 강아지의 눈빛은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무엇인가 반드시 해 내겠다는 듯 반짝반짝거렸다. 강아지뿐만 아니었다. 그 강아지를 안고 있는 여자의 눈도 너무나 초롱초롱했다.
둘이 굉장히 잘 어울려 보였다. 아름다운 한 쌍 같았다.
“헥헥헥헥!”
나는 너무나 보기 좋은 모습들과 그에 어울리는 음악에 행복해졌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웃었다. 꼬리를 흔들고 귀를 펄럭였다.
“우와! 해피도 기분 좋은가보다! 그렇지, 해피야? 이 모습 다 기억나?”
나는 어서 다음 부분으로 넘겨보라는 듯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었다. 그런 나를 여자는 깜짝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오늘, 우리 해피가 엄청 기분이 좋은 것 같아요. 아니면, 어쩜 아주 잠시 기억이 되돌아온 걸까요? 그건 아닌가? 맞나?”
나는 화면이 넘어가지 않자 답답해 ‘왈! 왈왈!’하고 짖었다. 그런 내 반응을 본 여자가 다시 무엇인가를 만졌다.
“그리고 이건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아주아주 엄청난 사건이요. 일명 ‘똥 폭탄’이라는 건데, 이것 때문에 저는 로랑 님에게 정말 큰 잘못을 저질렀지요. 얼마나 사죄했었는데요. 이때 분명 해피가 ‘쏘리’라고 쌌었어요. 우연이었겠지만 그것이 지금의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계기였죠.”
그리고 다음 장면.
“이건 ‘세상에 이런 뭣 같은 일이!’랑 ‘열려라! 동물 환장’에 나왔던 장면들. 해피가 처음으로 공중파 탔던 순간들이고, 드디어 Animals Got Talent – Korea 예선이랑 본선 장면들이다!”
그리고 다시 화면이 멈췄다. 나는 얼른 이 재미있는 것들을 보자고 여자의 팔을 긁었다.
그때 눈물에 젖은 얼굴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해피야, 넌 정말 얼마나 많은 것을 해왔던 거야? 응?”
“끼이이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