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244
246. 해후
나는 정말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라인장의 말대로 국비 교육을 신청해서 주말엔 종일 교육과 실습을 병행했다. 평일엔 잔업을 도맡았고 주말엔 내내 학원에서 살았다.
그래도 나는 그것이 너무나 행복했다. 열심히 배우고 일을 하면서, 내 나이가 아직 젊디젊다는 것을 깨달았고, 내가 하기에 따라 내 미래도 조금씩 남들만큼 열릴 수 있다는 것도 느꼈다.
집에 들어오면 깨끗한 방이 날 반겼고, 세탁기로 잘 빤 빨래는 옥상에서 바짝 말라 있었다. 시원하게 틀어놓은 에어컨은 언제나 내 피로를 말끔하게 풀어주었다.
그리고…
가을이 지나고 날씨가 제법 쌀쌀해지고 있었다.
나는 교육을 수료하고 수료증과 관련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날, 아래의 대패삼겹살집에서 나는 라인장과 날 응원해주었던 동료들을 초대해 푸짐하게 삼겹살을 쐈다.
비록 대패삼겹살이었지만 나에겐 그 무엇보다 멋진 식사였다. 내가 내 힘으로 이루어낸 결과를 들고 남에게 식사를 대접한다는 것이 이렇게 기쁘고 보람찬 일인지 정말로 몰랐다.
“우리 별욱이, 내년에 주임 달겠네!”
“백 프로 달지. 혹시 알아? 나중에 박 라인장님 뒤로 계 라인장님 생길지도.”
“지금부터 라인 잘 타야 하는 법이야.”
오가는 소주와 맥주잔 속에 나는 연신 고개를 꾸벅이며 인사를 했다.
“그나저나, 우리 별욱 씨,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여자친구 없나? 아, 누가 좀 소개해 줘봐.”
“그러네. 나이도 딱 찼는데. 더 늦으면 오 대리처럼 큰일 난다? 거기에 머리까지 빠지면 진짜 김 과장 된다?”
라인의 노총각 둘이 얼굴이 빨개진 채 연신 헛기침을 해 댔다.
나는 씨익 웃었다.
여자친구는 몰라도 꼭 보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딱 한 번만, 정말로 한 번만 보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은 봐도 괜찮을 것 같았다.
***
조은이를 본다는 것을 생각하자 마음이 엄청나게 들뜨기 시작했다. 연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작업을 이어갔고 쉴 때는 ‘뭘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여러 가지 상상을 했다.
물론 무슨 꽃다발 같은 것을 들고 가서 무릎을 꿇을 것도 아니었다. 휙, 나타나서 ‘내가 3년 동안 해피 몸 안에 있었다’ 하며 외칠 것도 아니었다. 미친놈 취급당하기 십상이었다.
여하간 내가 하고 싶은 것은 고백 같은 것은 아니었다.
그냥, 정말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딱 한 번 멀리서 보고 싶을 뿐이었다.
그렇게 본다면 모든 것을 완벽하게 떠나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나는 이번 주말, 토요일에 해피분식을 살짝 찾아가 보기로 했다.
***
‘하아, 하아, 하아.’
와. 심장이 장난 아니게 뛰기 시작했다.
정말로 마음을 정한 후, 오늘까지 어떻게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나는 가쁜 숨을 간신히 진정시키며 집을 나섰다.
해피분식까지는 버스를 타고 역에 도착해서 지하철을 탄 후, 수평역에서 내려 다시 마을버스를 타야 했다.
‘내가 이만큼이나 떨어져 있었구나.’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버스에 올라탔다. 그리고 버스의 차창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서야 얼마나 정신을 놓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검은색 면바지, 무릎은 툭 튀어나와 있었다. 머리도 더벅머리, 게다가 세광산업이 노랗게 빛나는 작업 점퍼.
언제나 그 차림이었기에 정말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차려입은 것이었다.
‘괘, 괜찮아. 앞에 나서지도 않을 텐데, 뭐. 멀리서 얼굴만 살짝 보고 그대로 되돌아올 거니까.’
나는 새빨개진 얼굴을 푹 숙였다.
지하철을 타고 수평역에 내리니 정말로 폭풍 치듯 추억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반지하를 탈출해 처음으로 빌라 2층으로 이사를 갔을 때가 떠올랐다.
언제나 스튜디오 꿀잼에서 회의를 마치면 이 역에 내려서 마을버스를 탔었다. 그리고 꼬북시장에 내리면 작은 전통시장과 상가들이 나타난다. 만둣집, 떡집, 옷가게… 뒤로 걸어가서 돌아가면 하칸의 케밥가게도 있다.
‘하아, 하아… 떨지 말자, 계별욱. 별거 아니야. 그냥 잘 있나 얼굴만 보는 거야.’
마을버스에서 내린 나는 수평초등학교 후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너무나 익숙한 풍경들이 ‘어서 오라’는 듯 날 환영했다. 혹시나 싶어 주변을 두리번거렸으나 당연하게도 아는 이는 없었다. 어차피 내가 그들을 안다고 해도, 그들이 ‘계별욱’을 알 리는 없긴 했다.
그리고 모퉁이를 돌았을 때.
저 멀리 해피분식 간판이 보였다.
나는 비틀거리다 간신히 전봇대를 붙잡았다. 무언가 쭈뼛쭈뼛 뒷머리가 서는 느낌이었고 온몸에 오한이 들었다. 엄청난 것을 마주해야 한다는 긴장감에 자꾸 숨이 가빠왔다.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나는 분식집으로 향했다.
열려있다! 그리고 저 어묵 통에는 김도 올라오고 있다. 떡볶이 두 종류를 끓이는 빨간색, 보라색 쿠커도 보인다.
그리고…
노파가 있었다.
앞에 선 아이들에게 호통을 치며 돈을 뺏듯이 받아드는 그 모습은 그대로였다. 8개월 가까이 지났건만 얼굴도 옷도 그대로였다. 마치 어제도 본 모습 같았다. 당장이라도 뒤로 고개를 돌려 ‘이 똥개가 또 순대를 달라고 혀?’하고 혀를 찰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조은이도 해피도 저 안에 있을 게 뻔했다. 조은이는 시간이 나면 늘 노파를 도왔으니까. 그리고 오늘은 주말이니까.
해피분식이 가까워질수록 내 발걸음은 점점 느려졌다.
그리고 나는 드디어 해피분식의 바로 앞까지 다가갔다. 그러나 완벽히 앞에 서기가 두려웠다. 그저 비켜선 채로 멍하니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점쟁이! 뒤에서 가만있지 말고 김말이 좀 에어 후라이 그걸로 덥혀!”
“보살님, 진짜 바쁜 사람 불러내서 이러는 것 아니야.”
“조은이 지금 시험 준비 때문에 바빠! 어차피 거기 있는 것보다 여기서 나 돕고 용돈이라도 버는 것이 낫지!”
“누가 보면 시급이라도 제대로 쳐 주는 줄 알겠네.”
저, 점쟁이?
나는 머뭇거리다 큰마음을 먹고 분식집 앞에 섰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너무나 익숙한 풍경, 그리고 사람이 되어 처음 보는 노파와 도화선녀의 모습. 주걱으로 떡볶이를 뒤적이던 노파가 날 보며 퉁명스럽게 물었다.
“거기, 아저씨는 뭐 드실라고?”
“아, 아! 저기, 순대 1인분이랑 떠, 떡볶이 1인분이요.”
“뭘 그리 떨어유? 점쟁이! 순대 좀 썰어! 많이 썰지 마!”
아니, 손님 앞에서 많이 썰지 말라고 소리치는 건! 하여간 이놈의 노파는 그대로였다.
나는 떨리던 심장이 다시 조금씩 잦아드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떡볶이 접시를 받아 내려놓고 이쑤시개로 하나씩 찍어 먹었다.
‘음, 맛있네. 2천 원이면 진짜 요즘 같은 때에 싸다.’
곧이어 순대가 가득 든 접시가 내어졌다. 노파가 뒤를 보며 눈을 부라렸다.
“1인분이라고, 1인분! 이건 장정 열 명이 먹것다.”
“보살님, 그렇게 인심 쓰다간 망해. 망해도 그냥 안 망해. 쫄딱 망해!”
역시 도화선녀는 그대로 물러서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내게 접시를 내민 노파가 괜히 한마디 더했다.
“2인분인데 그냥 주는거유. 뭐, 양심이 있으면 2인분 돈 내것지.”
“푸, 푸훕!”
진짜 용케도 장사를 하는구나 싶었다. 조은이와 저 도화선녀 아니었으면 망했지, 진작 망했어.
나는 순대와 떡볶이를 맛있게 먹다가 목이 메어 종이컵을 들고 어묵 국물을 떴다.
“많이 마시면 짜. 적당히 마셔.”
하아, 진짜 체하겠네.
그때였다.
“어? 저기 아저씨. 나 좀 봐봐요, 나 좀.”
안에 있던 도화선녀가 고개를 갸웃하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아저씨, 내 눈 좀 볼래요?”
“왜 그래, 점쟁이? 이 손님, 아는 사람이여?”
“어? 이상하게 아주 낯이 익네. 얼굴은 처음 보는데 기운이, 기운이 왜 이렇게 낯이 익지?”
나는 멈칫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그러나 도화선녀는 계속해 내 쪽으로 다가왔다.
결국 나는 버티지 못하고 주머니에서 만 원짜리 하나를 내려놓은 후 미친 듯이 도망쳤다.
“어? 어? 왜 그냥 가! 손님! 잔돈!”
“점쟁이! 그냥 둬. 순대가 2인분이잖아.”
“2인분이어도 잔돈이 엄청 남지! 이 보살님, 진짜 미쳤어! 그나저나, 저기요!”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앞만 보고 정신없이 뛰었다.
‘하아, 하아, 하아… 도화선녀님 진짜 용하시네!’
한 1분만 더 있었으면 ‘개령님?’하고 물었을지도 몰랐다. 아니, 단언컨대 분명히 그랬을 것이었다. 들키기 전에 분식집을 나올 수 있어서 정말로 다행이었다.
그나저나 결국 내 떨리는 나들이는 이렇게 반쪽으로 끝나게 되는 걸까? 그렇다면 어차피 못 볼 것, 추억이라도 더듬어보고 싶었다.
***
근처의 빌라를 쳐다보다 나온 나는 그대로 예전 반지하가 있던 동네를 찾았다. 인심 좋은 정육점 사장이 있는 시장, 내가 귀생이를 잡았던 빌딩, 그리고 파출소.
조은이와 처음으로 사진을 찍었던 근린공원, 그리고 뒤로 한참을 올라가 나오는 다세대 밀집 지역.
반지하 앞에 섰다. 범재와 지혜는 나갔는지, 아직도 자는지 집 안은 불이 꺼진 채 조용했다. 우체통에 가득 꽂힌 미납 독촉 고지서들과 스티커로 붙여진 법원 등기 알림이 이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곤 먼발치서 신동아맨션을 쳐다보았다. 5층에 달린 빛바랜 종이등과 도성암 문구. 이 반지하가 침수되었을 때, 그 끔찍한 시간과 더위를 피할 수 있도록 자신의 곁을 내어준 도화선녀가 사는 곳이었다.
‘언젠가 저기로 뭐라도 사서 택배로 보내야겠다.’
나는 앞으로 가서 주소를 핸드폰에 입력한 후 뒷산을 따라 오르기 시작했다.
조은이와 같이 오르던 뒷산 산책로. 어떤 때는 노파도 함께였다. 그리고 그렇게 셋이 오르던 날,
바로 이 자리에서 조은이는 나를 꼭 안은 채 저기 멀리 보이는 아파트 단지들을 바라보며 아랫입술을 깨물었었다.
꼭 저런 곳에서 살고 싶다고. 꼭 가보고 싶다고.
그리고 조은이는 지금 저기 살고 있다.
돌아가기 전, 잠시라도 들러서 그 아파트를 보고 싶었다.
***
“1,300원입니다.”
내 게임이 종료되기 직전, 노파가 몇 초를 남기고 비지밀을 샀었던 그 편의점. 다행히도 아르바이트생은 바뀐 상태였다. 그게 아니라면 눈치라도 좀 줄려 했건만.
나는 따뜻한 캔커피를 홀짝이며 아파트 단지를 따라 걸었다. 무릎이 툭 튀어나온 바지와 지저분한 운동화, 작업 점퍼 차림이 아파트와 어울리지 않기는 했지만, 그저 산책 정도이니 아무도 뭐라 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리고 102동 앞에 서서 가장 위층을 바라다보았다.
이미 어둑해진 저녁, 위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조은이는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겠지.
이제 스물셋, 한강대학교 3학년. 아주 많은 일을 했었고, 아주 많은 것을 이룬 아이.
‘잘 살아. 진짜 행복하게. 그래야 내 3년이 후회 없잖아.’
나는 쓸쓸히 웃고는 마지막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그리고 그때.
아파트 현관문이 열리고 조은이가 해피를 안고 걸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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