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245
247. 제 이야기는요
‘어…?’
나는 돌처럼 굳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할 정도로 얼어붙은 가운데, 심장만이 터져버릴 정도로 뛰기 시작했다. 내 손에서 떨어진 캔커피가 바닥을 데구르르 굴렀지만, 감히 주울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조은이는 그대로였다.
하얀 피부, 긴 머리. 그리고 대충 입은 듯한 저 헐렁하고 따뜻한 후드티. 저것은 이맘때쯤이면 항상 집에서 입던 그 옷이었다. 언제나 빛이 나는 눈동자와 아름다운 코, 그리고 작은 입술.
강단이 있어 보이면서도 다시 보면 또 한없이 순수해 보이는 얼굴.
그리고 그 얼굴엔 약간의 슬픔이 서려 있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해피를 안은 조은이는 멀찌감치 내가 서 있는 것을 살짝 쳐다보았으나 이내 고개를 돌렸다.
“해피야, 누나랑 바람도 쐬어야지. 아프다고 계속 집 안에만 누워있으면 안 돼. 하루에 몇 시간을 자는 거야, 응?”
“끼이이잉…”
그때 해피가 고개를 들어 내 쪽을 바라봤다. 그리고 자꾸 몸을 꿈틀거렸다. 이쪽으로 오려는 듯 발버둥을 쳤다.
“해피야, 왜? 쉬 마려워? 걷고 싶어? 제대로 몇 걸음 걷지도 못하면서.”
조은이는 가만히 해피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해피는 비틀거리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내게로 다가왔다.
내 눈앞이 흐려졌다. 내가 들어가 있던 몸, 내게 몸을 빌려준 강아지. 그 강아지가 뿌연 눈동자를 한 채 간신히 걸음을 옮겨 내 발밑에 섰다.
나는 가만히 허리를 구부려 앉았다. 그리고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온몸에 힘이 빠진 해피는 그런 내 손을 할짝할짝 핥아댔다. 내 눈에서 쏟아진 눈물이 바닥을 적셨다.
“어머, 우리 해피가 아파서 원래 낯선 사람에게는 다가가지 않는데… 어?”
내가 눈물을 쏟고 있는 것을 보았는지, 조은이는 말을 멈추고 가만히 서서 우리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저, 저기요. 가, 강아지… 아, 안아봐도 될까요?”
“아… 네.”
나는 천천히 해피를 들었다. 그리고 내 품 안에 꼬옥 껴안았다.
그냥 개일 뿐이다. 그리고 내가 누군지도 모를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렇게 나에게 다가와 내 품 안에 안겼다는 것은, 그리고 마치 날 위로하듯, 자신은 괜찮으니 염려 말라는 듯 내 얼굴을 핥는다는 것은 굉장히 감동적이고, 또 특별한 경험이었다.
나는 아예 목을 놓고 울었다.
그냥, 모든 것이 신기했고 또 감사했다. 그리고 미안하기도 했다. 이 엄청난 감정의 파도를 무어라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나는 이 모든 것을 잇는 고리가 되어준 이 강아지에게 정말로 감사했다.
“괘, 괜찮으세요? 잠시만요, 제가 편의점에 가서 티슈를 좀…”
“흐흐흑, 아니요.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그냥 해피를 보니 갑자기 눈물이 나서요.”
“어? 해피를 아세요?”
“아… 유, 유명하니까요.”
나는 눈물을 닦으며 간신히 얼버무렸다. 그리곤 얼른 해피를 조은이에게 넘겨주었다. 내 품에서 떠나간 해피가 ‘끼이이잉’하며 슬프게 울었다.
“그런데 방송도 안 하고 광고도 슬슬 안 나와서 이제 많이들 모르실 텐데. 하하하. 설마! 개똥팸은 아니셨겠죠?”
개똥팸, 오래간만에 듣는 이름이다.
“아니, 개똥팸은 아니고요. 엄청 해피를 좋아했거든요. 마치 제 자신처럼요.”
“아하하하, 그러셨구나. 감사합니다. 해피 좋아해주셔서요. 그리고 저,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울지 말고 힘 내세요. 그럼 저는 이만.”
조은이는 씩씩하게 웃으며 자리를 떠나가다 다시 돌아왔다.
“으아아아! 그래도 이렇게 해피를 아껴주시는 분을 두고 그냥 휭 가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 제가 따뜻한 비지밀 한 병 사드릴게요, 이리 오세요. 그만 우시고요!”
나는 엉거주춤 일어났다.
“비, 비지밀만 빼고 다른 것 마시면 안 될까요? 비지밀엔 안 좋은 추억이 있어서.”
“그러세요. 우리 해피가 누군가에게 이렇게 먼저 다가가서 안기고 애교도 피우는 것, 정말 오랜만에 보거든요.”
우리는 같이 편의점으로 향했다.
***
조은이는 비지밀, 나는 레몬홍삼차.
뭐 그렇게까지 나이가 많지는 않은데 여하간 그게 어울려 보였나 보다. 우리는 잠시 편의점 안의 테이블에 앉았다.
“우리 해피 어디가 그렇게 좋으셨어요?”
“저, 저를 변화시켰거든요.”
“변화요? 우리 해피가 아저… 아니 그쪽 분을 변화시켰다고요?”
나는 천천히 이야기했다.
내가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가 정신을 잃은 것. 그리고 3년 만에 깨어나 돈 한 푼 없이 세상에 나온 것. 겨우 기억을 되찾고 500만 원을 손에 쥐고 고시원에 들어간 것과 공장을 다니며 아주 열심히 살고 있는 것, 밤늦게까지 일하고 교육도 받고 자격증도 딴 것. 그것을 통해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것 등을 이야기했다.
그건 ‘난 이렇게 잘 살고 있어. 그러니 안심해도 돼’라는, 조은이를 향한 일종의 설명이었다.
꾸벅꾸벅 조는 해피를 안은 채 조은이는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진짜 대단하시네요. 아주 멋지세요. 이런 분에게 우리 해피의 존재가 도움이 되었다니, 저 정말로 뿌듯해요. 그래도 방송도 다 내렸는데, 어떻게 다른 곳에서 찾아보셨나 봐요.”
“아, 방송뿐만 아니고. 어쩌면 저는 해피에 대해서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적어도 지난 3년 동안.”
“우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요?”
“네, 정말로요. 해피가 내다논보이즈의 휘와 조은 씨를 구하기 위해 산을 올라갔을 때, 온몸이 부서졌었잖아요? 그중 앞다리가 완전 박살이 났었죠? 그거 멧돼지가 물어서 올리다가 그렇게 된 거예요.”
나는 웃으며 그때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걸 들은 조은이의 표정이 굳었다.
“마, 맞을지도요. 의사 선생님이 분명 앞다리는 무언가 강한 것에 물려서 바스러진 것 같다, 근처에 맹수가 있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말을 했었거든요.”
“미국에서 해피의 싱글벙글 초코타임 행사했었을 때, 길 엄청 막혔잖아요? 그때 ‘우리’를 도와주던 그 샌프란시스코의 노숙자 할아버지. 버틀러 대위였나? 그리고 커다란 개 이름이 래쉬.”
“래쉬.”
조은이는 동시에 내뱉었다. 그리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한 번 입이 열리니 무언가 계속 튀어나왔다.
Animals Got Talent의 결선 무대에서 고로의 팀이 버린 리모컨을 주워왔던 이야기, 그리고 가짜 초코똥 사건, 비 오는 날의 판촉 행사 등.
“그, 그렇죠. 진짜 우리 해피 이야기를 좋아하셨나 보다. 아까 앞다리는 그렇다 치더라도 샌프란시스코의 버틀러 할아버지와 래쉬 이야기도 방송으로 슬쩍 했었는데 모두 기억하시고.”
그러고 보니 방금 말했던 결선이나 가짜 초코똥, 판촉 행사 등도 전부 방송이 되었던 것들이었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팬 미팅, 그 분식점에서 했을 때요. 그때도 저는 도둑놈을 잡기 위해 엄청 뛰어나갔어요. 그리고 조은 씨 일행이 잘 쫓아오라고 중간중간에 똥을 쌌었죠. 마지막에 바보처럼 혼자 쳐들어가다 잡혀서 얻어맞고 눌려서 숨이 멎은 채 쓰레기봉투 안에 넣어졌었죠. 간신히 꺼내지긴 했지만요.”
“마, 맞아요.”
“TV 촬영도 기억나요. ‘세상에 이런 뭣 같은 일이’랑 ‘열려라! 동물 환장’ 이런 것들. 그때 참 재미있었죠. 아, 당시 우리가 살았던 빌라도 되게 좋았는데. 그 빌라로 이사 오기 직전에 개장수에게 끌려가서 정말 죽다가 살아났죠. 겨우 탈출하고 내려오는데 경찰차가 보였을 때의 그 기쁨은…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제 탈출을 도와줬던 강아지 장군이가 떠올라 엄청 슬퍼요.”
어느 순간 나는 ‘우리’, ‘저’라는 말을 쓰고 있었다. 3인칭이 아닌, 내가 해피였던 때로 완벽하게 돌아가 있었다. 그 추억을 하나하나 꺼내자니 다시 눈앞이 뿌예졌다.
“그래도 가장 잘했던 것은 폭스넷 대회에서 우승한 거예요. Animals Got Talent보다 저는 그 대회의 우승이 더 기뻤어요. 왜냐면 반지하를 이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니까요. 솔직히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는데, 밤에 몰래 조은 씨 컴퓨터를 쓰면서 이상하게 딱 꽂힌 종목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걸 살펴보다가 이게 되겠다 싶어서 창을 일부러 띄워놨었어요. 조은 씨가 보길 바라면서. 그 주식이 디케이테크솔루션.”
“디케이테크솔루션.”
또 동시에 말이 나왔다.
조은이는 날 보고 있지 않았다. 그저 멍한 눈으로 어딘가를 쳐다보며 내 이야기를 듣고 있을 따름이었다.
“이제 와서 이야기하는데, 로랑이. 아니, 점례에게 똥폭탄 터트렸을 때요, 그때 점례가 조은 씨에게 막말 퍼부었잖아요? 그것에 대한 복수로 싼 게 아니라, 몸스터치 햄버거 주워 먹고 그것 때문에 탈이 났던 거예요. 아하하하.”
나만 웃었다. 나만 울면서 웃고 있었다.
“그래도 침수되었을 때, 그리고 바퀴벌레랑 싸웠을 때. 이젠 모두 추억으로 남았잖아요? 제게 있어서도 그것들은 정말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추억이에요. 그것 때문에 ‘개령님’, ‘개령님’하는 도화선녀님과도 친해지게 되고. 맨날 맥시봉 흔들면서 간절함이 붙으면 입으로 방울 소리를 내도 진짜 방울이 된다나. 그게 말이 되나요? 하기야… 날 보고 생령, 30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들어가 있다고 바로 맞추시긴 하시더라.”
“…”
“귀생이 잡으러 조은 씨 뒤따라 그 7층 건물 뛰어올랐을 때도 진짜 기억에 남네요. 그때 조은 씨 뺨 맞은 것에 얼마나 분했던지. 하지만, 나는 그놈 발을 깨무는 것보다 그놈 손에 든 계약서 뭉치를 물고 튀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어요. 결과적으로도 그게 옳긴 했잖아요. 상도 받고, 상금도 받고. 2학기 장학금도 받고.”
“아…”
조은이는 아예 입을 벌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아낌없이 모든 것을 다 털어놓고 있었다. 이대로 돌아서도 후회 없도록, 정말로 그 추억들이 내게 얼마나 소중했는지 전부 꺼내놓았다.
이제 가장 마지막이 하나 남았을 뿐이다.
“하지만, 제가 맨 처음 해피가 되어 한 것 중 가장 잘한 것은요, 그거예요.”
“그, 그거요?”
“조은 씨가 학과에서 신입생 대상 모의투자대회 상금 10만 원 받았을 때요, 그걸 보고 ‘아, 이 사람은 무언가 대단하다’라는 느낌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전 미친 듯이 제가 살던 집을 찾아가서 핸드폰을 물고 왔어요. 그리고 이체했죠. 이것으로 너 다 해보라고.”
“…”
“80만 원. 작긴 하죠. 그래도 그건 제가 당시에 할 수 있었던 최선의 방법이었고 가진 모든 것이었으니까요. 고민하다가, 결국 입금자 명에…”
그 순간 조은이가 내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여태 내가 했던 이 엄청난 이야기들의 가장 마지막을 확인하려는 눈빛이었다.
여태 내가 본 조은이의 눈 중 가장 빛나고 날카로웠다. 아울러 진지하기 그지없었다.
“조은위한선물이라 썼죠.”
그 눈이 새빨개졌다. 그리고 방금 전의 나처럼,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 아저씨는 도대체 누… 누구세요?”
나는 목젖까지 차오르는 울음을 간신히 눌러 삼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마지막 인사를 해야 했다.
“저, 저는 계별욱입니다. 3년 동안, 2023년 3월 9일부터 2026년 3월 8일까지 해피의 몸으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3년간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고 다시 이렇게 살아갈 용기도 생겨났습니다.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행복하시고요.”
나는 정중히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리고 가만히 뒤를 돌아 편의점의 문을 열고 나왔다.
완전히 어두워진 밤거리를 내려다보며, 내가 가졌던 마지막 소원이 이제야 제대로 풀렸음을 알아차렸다. 응어리가 진 것도 없고 후회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편의점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 아파트 단지를 나설 때,
– 꽈악!
누군가가 뛰어와 내 뒤에서 날 힘껏 껴안았다.
“가, 가지 마세요.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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