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25
25. 낭만사기꾼(8)
다행스럽게도 비상계단의 문은 열려 있었다.
계약서 철을 물고 있는 턱이 아프기 그지없었고 뛰기에도 영 거추장스러웠다. 시야도 가려 불편했고 다리 움직임까지 방해해 넘어질 뻔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감수해야 했다.
오면서 봤던 맞은편의 남구 용숭동 지구대, 무조건 거기로 뛸 생각이었다. 조은이와 노파가 저들의 말빨과 무력시위에 밀린다면 반드시 경찰의 힘으로 해결해야만 했다.
“이 미친 개새끼가!”
어느새 내 뒤에 따라붙은 직원 하나가 욕설을 하며 손을 뻗었다. 그러나 계단을 내려가는 상황에서 허리까지 숙여 날 잡기란 쉽지 않았다.
나는 후방을 교란하듯 형광 핑크색 꼬리를 신나게 돌리며 코너를 꺾었다.
– 우당탕!
결국 불안한 자세로 고개를 숙여 손을 뻗던 직원은 그대로 계단을 굴렀고, 그 뒤로 쫓아오던 다른 직원들도 발에 걸려 연달아 넘어졌다.
‘꼴좋다, 이 은갈치들아!’
나는 뒤를 돌아보며 헤헤거리다 그만 입에 물고 있던 계약서 철을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그 계약서 철에 다리가 걸려 앞으로 고꾸라졌다.
“깽!”
하여간 남 보고 비웃을 것 하나 없었다. 같은 꼴이 된 나는 재빨리 일어나 계약서 철을 향해 주둥이를 벌렸다. 순간 넘어져 있던 직원의 손이 그 계약서 철을 꽉 잡았다.
‘내 거북선 뉘런 입질을 받아랏!’
“아아악!”
나는 그 더러운 손을 무자비하게 물어버린 후 다시 잽싸게 계약서 철을 물고 뛰어 내려갔다. 뒤로 구두가 연이어 날아왔지만, 다행히 맞지 않았다.
“저 개새끼, 잡히면 진짜 죽여버린다!”
“헥! 헥! 헥! 헥!”
예전, 핸드폰을 물고 밤거리를 뛰어가던 때만큼이나 힘들었다. 게다가 지금은 바로 뒤에서 쫓아오는 추격자까지 상대해야 했다.
간신히 1층 로비를 가로질러 바깥으로 뛰어나가자 길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 모두 날 쳐다보았다.
형광색 귀와 꼬리를 한 더럽게도 못생긴(인정합니다.) 강아지가 웬 서류철을 들고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라니, 세상 두 번은 못 볼 풍경이긴 했다.
하지만 난 아직 바뀌지 않은 신호 때문에 미칠 것 같았고, 그사이 벌써 직원 셋은 내 뒤로 거의 따라붙고 있었다.
‘어쩔 수 없다.’
나는 그대로 차량들이 세게 오가는 도로로 뛰어들었다.
“꺄악! 저 개, 저 개!”
“아, 어떡해! 누가 좀 잡아줘요!”
“엄마, 사고 날 것 같아!”
– 빵!
– 빵, 빵빵!
– 끼이이익!
“야이, 똥개 새끼야!”
행인들의 걱정 어린 외침과 경적을 울리며 급정거하는 차들의 욕설을 온몸으로 들으며, 나는 사거리 한가운데에서 공포에 떤 채 우왕좌왕했다.
내 뒤를 쫓던 직원들도 차마 차들이 쌩쌩 달리는 사거리 한가운데로는 쫓아오지 못한 채 그저 날 노려보며 씩씩대고 있었다.
– 빠아아아아아앙!!!
어마어마한 경적 소리에 나는 본능적으로 건너편으로 뛰었다.
순간,
“꺄아아아아아악!!!”
사람들의 비명이 크게 울렸고, 나는 하늘이 시커메지는 느낌을 받았다. 미처 속도를 줄이지 못한 버스가 바로 내 머리 위를 지나간 것이었다.
‘뛰, 뛰지 않으면 죽어! 여기서 우왕좌왕하면 안 돼!’
그때 파지를 줍는, 고물이 가득 실린 리어카를 끌던 어느 노인이 비틀비틀거리며 차도로 걸어왔다. 그리곤 손을 번쩍 들어 오가는 차량들을 막아 세웠다.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노인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 후 재빨리 길을 건넜다. 몰려든 사람들이 저마다 날 구해주려는 듯 손을 내밀었지만 나는 그 사이로 잽싸게 몸을 피했다. 그리곤 지구대를 향해 달려갔다.
***
“너, 또 헬멧 안 쓰고 타고 다니고! 오토바이 번호판 가리려고 인형 주렁주렁 매달지 말라고 했지.”
“아, 한 번만 봐주세요, 죄송해요.”
지구대에 도착하니 문 앞에서 한 경찰에게 혼나고 있는 범죄, 아니 범재가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 옆에는 노란 머리를 한 지혜가 세상 짜증난다는 듯 담배를 뻑뻑 피우고 있었다.
“길거리에서 흡연하지 마!”
“아, 제 맘이거든요?”
“담배 당장 안 꺼!?”
“끄면 되잖아요!”
– 휙!
“너 방금 담배꽁초 무단투기. 현장 적발이다.”
“주, 주우면 될 것 아니에요!”
역시나 환상의 케미를 자랑하는 커플. 으휴, 니들이 그렇지 뭐.
‘아, 아니지!’
나는 범재와 지혜를 탈탈 털고 있는 경찰 앞으로 가, 계약서 철을 내려놓고 미친 듯이 짖었다. 여기 좀 보라고, 내가 뭘 가져왔는지 보라고 울부짖었다. 형광색 귀와 꼬리를 사이키델릭하게 흔들어대며 구두를 발로 긁었다.
“어? 이거 조은이가 안고 있던 개잖아?”
“와, 진짜 귀엽다. 우리도 개 키울까?”
“오빠! 월세도 밀렸다며, 뭔 소리야!”
“남자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마라. 월세 낸다고!”
경찰이 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뭐야, 이거 유기견인가?”
“왈! 왈! 왈!”
내가 거푸 계약서 철에 발을 가져다 대며 짖자 경찰이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그것을 집어 들었다. 그리곤 가만히 넘겨보았다.
“유기견에 유실물이야? 어라, 잠깐.”
경찰의 눈에 계약서의 내용, 즉 양도증과 인수증, 대금차용증의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아래에 적힌 상호.
“등골젠? 거기, 사거리의 빌딩에 현수막 붙어있던 데 아닌가?”
“왈!”
나는 맞다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경찰의 혼잣말을 들은 범재가 아는 척을 했다.
“아, 거기 할머니들 맨날 겁나게 들락날락하고 라면 받아오던데.”
“오빠, 우리도 거기 가서 라면 받아올까?”
“나, 남자 차범재야. 우리 지혜에게 라면 안 먹인다.”
“오빠, 어제도 우리 라면 끓여서 술 마셨잖아!”
둘의 사랑이 요상하게 익어가는 동안 경찰은 고개를 들어 저 건너편 빌딩을 쳐다보았다. 나는 애가 탔다. 지금 그 안에 있을 조은이와 노파가 걱정되어 참을 수 없었다.
“왈! 왈! 왈!”
내가 바지 밑동을 물고 그쪽으로 계속 잡아당기자 경찰은 빤히 날 쳐다보았다. 나는 내 커다란 두 눈에 여태 없을 진지함을 담아 마주 보았다.
“너희, 안으로 들어가 있어. 일단 이 앞 빌딩에 다녀올 테니, 범칙금은 그때 끊는다. 오토바이 압수야.”
“아, 좀! 그러지 마요!”
범재의 비명을 뒤로한 채 경찰은 날 안고 빌딩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
– 끼이익!
경찰이 7층의 문을 열었을 때, 안의 사람들은 아까와 그대로였다. 날 놓친 직원들은 바로 올라와 있었다.
하지만, 노파는 힘없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조은이의 뺨에 손자국이 선명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조은이가 경찰의 품에 안겨있는 날 보곤 반가워 외쳤다.
“해피야, 해피야!”
“왈!!!!!!”
난 경찰의 품에서 뛰어내려 귀생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곤 미친 듯이 그 앙상한 발목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악! 악! 이 똥개 새끼가!”
– 퍼억!
“캐애앵!”
귀생이의 발길질에 얻어맞은 난 저만치 나동그라졌다. 재빨리 다가온 조은이가 낑낑대는 날 안아 들었다.
“경찰 아저씨! 이 사람들, 다 사기꾼이에요! 불법 계약 맺고 물건 강매해요! 우리 할머니가 취소해 달라고 하니 밀어서 쓰러트리고, 제가 따지니 제 뺨도 때렸어요!”
“어허, 이 아가씨가 왜 이래? 증거 있어? 계약 취소가 어렵다고 하니 스스로 뺨을 때리고 자해했잖아, 응? 여기 우리 직원들이 다 봤어.”
그 말에 쓰러져 있던 노파가 비틀비틀 일어나서 귀생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그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야, 야이 사기꾼 놈아! 어서 물건 가져가라, 어서 물건 가져가! 그리고 감히 우리 귀한 손녀를 때려? 야이 쌍놈의 자식아!”
경찰이 와 있으니 더 대응하기가 난감했는지 귀생은 피식거리며 웃을 뿐이었다. 그 뒤의 직원들은 표정이 굳은 채 귀생만 쳐다보았다.
“경찰 양반, 지금 보이죠? 이 늙은 노파가 저를 폭행하고 있어요. 현행범이에요. 물건? 그래, 우리가 가져가고 계약은 없던 것으로 해 드릴게. 그러니 폭행에 대해서만 조서 씁시다, 오케이?”
완벽하게 넘어가려는 것이었다. 물건 가져가고 계약은 없던 것으로 해준다고 하니 다행이긴 했으나 또 폭행으로 뭘 걸고넘어질지 몰랐다.
정말 악독한 인간이었다.
그때, 경찰이 뒤춤에서 계약서 철을 꺼냈다.
“이거 뭡니까? 이 계약들 다 뭐죠?”
“아, 그건 말이죠…”
그제야 귀생의 눈이 떨리기 시작했다. 뒤에 선 직원들도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경찰이 그런 그들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리곤 가슴께에 매달린 무전기를 눌렀다.
– 삐리릭! 치이이익!
“사업장 조회. ㈜등골젠. ㈜등골젠. 그리고 하나 더, 대표자…”
경찰이 계약서 꾸러미의 아래에 적힌 이름을 보았다.
“방귀생.”
“저, 저 할아버지가 방귀생이에요!”
조은이의 외침을 들은 경찰이 무전기를 끈 채 귀생에게 주민등록증을 요구했다. 주저하던 귀생이 한숨을 푹 쉬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지갑의 주민등록증을 꺼냈다.
그것을 확인한 경찰이 무전기를 눌러 귀생의 주민등록번호를 조회 신청했다.
***
며칠 후.
나는 노파의 품에 안겨 남구 경찰서를 방문했다. 계약서 철에 적힌 피해자들이 모두 모이는 날이었다.
“아이고, 귀생이 오라버니! 이게 무슨 일이야!”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노파와 나는 깜짝 놀랐다. 노파의 손을 잡고 체험관으로 향했던 해자 할매가 묵묵히 고개를 숙인 귀생의 등을 때리며 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단한데, 저 사기꾼! 와… 주도면밀한 것 봐. 해자 할매도 뒤에서 구워삶았구만. 옥장판 팔아넘겼어!’
나는 혀를 내둘렀다. 남구와 수평구에서 피해를 입은 노인들이 몰려들어 더러는 울며 더러는 화를 내며 귀생을 쓰다듬거나 때리고 있었다.
무섭게 생긴 형사가 노인들을 제지했다.
“자아, 자아! 조용히들 하시고! 돈은 다 돌려받을 수 있고, 돈 대신 차용증을 쓴 분들도 모두 무효가 됩니다, 이 계약은 성립할 수 없으니 금전적 피해는 없어요. 다만 한 분 한 분 저희 조사에 따라 증언을 해주셔야 합니다.”
그 말에 모두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형사가 명단을 들고 한 명씩 이름을 불렀다.
“도당해 님, 우을해 님! 피해자 님! 박복녀 님…”
이름처럼 살아온 듯한 노인들이 형사의 호명에 손을 들었다.
한 명 한 명, 짧게 조사를 마치고 본인의 계약서를 확인하며 피해 사실 진술서를 작성했다. 노파 또한 날 꼭 안은 채 부들부들 떨며 엄지손가락을 인주에 누른 후 진술서에 꾸욱 지장을 찍었다.
처음 와 본, 그것도 피해자 신분으로 와 본 경찰서가 주는 무게감에 노파의 몸이 덜덜 떨렸다. 그 느낌을 온몸으로 받으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다행이야.’
순간, 머리 위의 빚태창의 숫자가 변하기 시작했다.
[종료일 2026년 3월 8일 오후 10시 13분. 현재 순자산 -3,523만 1,130원]480만 원이 줄어들었다! 방금 진술서에 지장을 누름과 동시에 계약의 파기가 최종 성립, 빚태창의 숫자가 변화한 것이었다.
“왈! 왈! 왈!”
나는 기뻐서 크게 짖었다. 노파가 놀라 얼른 내 머리를 눌러 내렸다. 하지만 이미 들어올 때부터 요란한 색깔로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켰던지라 형사들이 모를 리 없었다.
“아, 그리고 그 강아지.”
“예? 예. 제가 조용히 시킬 거구만유.”
“아니, 그 강아지가 이번 사건 해결에 아주 큰 일을 했습니다. 피해 방지뿐만 아니라 수배범들을 잡는 데에도요. 물론 현장에서 우리 일을 돕고 적극적으로 진술해 준 여학생 덕분이기도 하죠. 손녀신가요?”
“예, 우리 손녀. 안조은이.”
“손녀가 견주인가요?”
“예, 해피는 저랑 우리 조은이가 키우지요.”
“손녀분은 경찰서장 표창과 상금을 받습니다. 그 요란한 강아지도 ‘남구의 의견(義犬)’이라고 표창받고 사진도 찍을 겁니다. 신문에도 나고. 추후 폭행 관련으로 피해자 진술할 때 본인에게 자세히 이야기해드릴 것이지만, 우선 그리 알고 계세요.”
“예?”
복녀의 입이 떡 벌어졌다.
내 입도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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