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27
27. 앞자릿수 붕괴!
지하철 안.
조은이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나는 기저귀 박스에서 몸을 내밀어 그런 조은이를 안쓰럽게 쳐다보았다. 새벽 늦게까지 동영상 플랫폼으로 여러 강의를 듣고 공부를 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
날 허벅지 위에 올려놓은 채, 동영상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조은이, 그리고 중얼거린 말들.
“웃기지 마. 뭐? 가난할수록 속여먹기 쉬워? 못 배웠다고? 너희가 뭔데, 너희가 뭔데!”
난 귀생이 했던 말들을 떠올렸다.
– 왜냐고? 너희가 가난하니까. 가난하면 못 배웠거든. 못 배우면 사기를 치기 쉬워. 반대로 생각해 봐. 우리가 이 회사를 부촌 한가운데서 열고 아무리 홍보를 한들 그 사람들이 와서 식용유나 라면, 휴지를 받아 갈 것 같아?
– 절실한 사람들만큼 사기 치기 쉬운 상대가 없어요, 아가씨 잘 들어? 이거 일억 원짜리 강의인데 특별히 말해주는 거야. 절실한 사람은 일단 마음만 얻으면 돼. 마음만 얻으면 스스로 보여주거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게 사람의 정일 수도 있고, 관심이나 사랑일 수도 있고, 돈일 수도 있고.
“끼이이잉.”
나는 고개를 숙였다.
– 툭!
그때 내 콧잔등으로 액체가 떨어졌다. 깜짝 놀라 고개를 올려다보니 조은이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러나 조은이는 울지 않았다.
모니터를 잡아먹을 듯 눈을 집중한 채 정신없이 창을 번갈아 열어가며 확인에 확인을 거듭하고 있었다.
“이 주식이 15일 동안 총 14%가 올랐고, 마지막 수, 목, 금은 상승폭이 줄어들었어. 매도량도 늘어가고 있고. 대체 에너지는 장기간 유효한데, 얼마 전 공시로 인한 상승폭은 이젠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겠지. 그럼 분명 익절하는 물량이 다음 주에 쏟아지면 단기적으로 밀려날 수 있어. 월요일 아침에 바로 매도해야겠다.”
– 툭!
“그리고 곧 다시 해외여행 풀린다고 했지? 가장 많은 이들이 찾을 수 있는 곳. 비자 없이 오갈 수 있는 곳? 일본. 그래, 일본에 취항하는 저가 항공사, 여행주. 이번 사태로 2, 3년간 가장 많이 피해를 본 곳.”
정신없이 몇 개의 차트가 올라갔다.
“최근 공시. 응, 항로 확장. 뉴스들도 나쁘지 않고. 코로나 전 최고점보다 거의 반토막이네. 이 여행주는 아예 반토막 이하고. 지루한 횡보세 이후에 소폭 상승하는 추세네? 그럼 지금보다 우상향할 확률이 높겠네? 거래량은 거짓말 안 한다고 했어.”
– 툭!
“그럼 이렇게 하자. 월요일에 대체 에너지 주 80%만 매도하고 그거 반씩 저가 항공사 주랑 여행사 주에 넣자. 단기 수익률 목표는 4~5%로 보고 매수 타이밍은 월요일 장 흐름 봐서. 조은아 할 수 있어!”
– 툭!
내 콧잔등에, 그리고 머리 위에, 경박한 형광색 귀 위에 조은이의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다다음 주에 한국은행 금리 발표잖아. 빅스텝으로 갈 가능성이 충분하고. 아직 미국 FED 금리랑 우리 사이엔 1%의 차이가 있어. 결국 점진적으로 맞춰서 올릴 거야. 모든 포지션은 다음 주 중으로 정리해야지. 금리 인상 발표 전에 다 털고 가만히 있어야 해. 발표 후 분명 떨어질 테니까. 단기 저점에 잡아야 하는 것은 그때야. 그치, 해피야?”
“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아는 게 있을 리 없었다. 그냥 이게 뜬다, 이거로 수백% 수익 난다더라 하는 코인 방송이나 주식 방송만 보고 밀어 넣었을 뿐이지, 조은이만큼 알아볼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물론 조은이의 공부도 누군가에겐 아주 기초적이고 코웃음 칠만한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제 대학교 신입생인 아이가 이런 마음가짐과 행동을 가진다는 것만큼은 박수를 받아 마땅할 것이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그리고 곧 시험이니까 공부도 해야지. 해피는 먼저 자, 알았지?”
두꺼운 전공책을 올려놓은 조은이가 가만히 날 아래로 내려놓았다. 그러나 나는 떨어지기 싫었다.
“왈! 왈!”
“하하하, 그럼 누나 방해하면 안 돼?”
“왈!”
날 다시 올려놓은 조은이는 눈물을 닦고 전공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옆의 노트에 무엇인가를 정신없이 휘갈겨 쓰며 공부하는 조은이의 무릎에서 나는 조그만 온기라도 더해주기 위해 몸을 가만히 기댔다.
***
“아, 내려야 해!”
잠에서 깬 조은이 서둘러 내가 들어가 있는 박스를 들고 아슬아슬하게 역에서 내렸다. 나도 지난밤, 조은이의 모습을 생각하다 멍하니 내릴 곳을 놓칠 뻔했다.
‘정신 차리자, 계별욱!’
“하아, 하아, 하아!”
간신히 역을 내려온 조은이가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때, 비상등을 켠 SUV가 다가왔다.
“조은 씨?”
“아, 안녕하세요!”
“타세요.”
전의 촬영에서 보았던 스태프가 빙긋 웃었다. 조은이는 서둘러 뒷좌석에 올랐다.
“오늘 촬영 장소가 아무래도 직접 찾아오기 힘든 곳이어서. 차로 가면 오래 걸리지 않으니까 염려 말아요.”
“네! 감사합니다.”
“오늘 촬영 컨셉은 이미 아시겠지만, 폭력에 상처받는 개들을 위한 것이에요. 실내 장면과 실외 장면이 있는데 햇살이 좋은 오전 중에 실외 장면을 촬영하려 해요.”
“아, 알겠습니다. 우리 해피를 중점적으로 찍는 거죠?”
“네. 지금 가는 곳은 버려진 투견장과 개 농장이에요. 방치된 시설인데 촬영 허가를 받느라 고생 좀 했죠.”
“아아…”
차량은 시 외곽을 지나 한 야산의 산길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임도를 따라 올라가자 비포장으로 바뀌는 길이 나왔고 곧이어 산 중턱에 너른 공터가 나왔다.
이미 도착해 있던 스태프들이 조은이와 내가 내리자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었다.
“우리 해피 왔네! 안녕, 조은 씨?”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부탁은 우리가 드려야지, 지난번 촬영 건이 결과가 너무 좋아요. 후작업하면서 다들 엄청 만족했다고.”
저마다 한마디씩 하는 가운데, 감독이 다가와 나를 번쩍 들었다.
“우리 해피! 오늘도 잘할 수 있지?”
“왈!”
“아유, 그새 불알이 더 커졌네.”
“아왈왈왈!”
모든 이의 시선이 내 다리 사이로 향하는 것을 깨닫고 나는 낑낑대며 다리를 오므렸다. 하아…
“영지 씨, 일단 오늘 컨셉에 맞게 해피 분장 좀 시켜봐요.”
한 스태프가 날 안고 구석으로 데려갔다. 그리곤 검은 물감을 물에 풀어 온몸에 덕지덕지 바르기 시작했다.
“우리 해피는 얼굴부터 완벽하니까, 완벽에 아주 조금만 더 금칠을 더하는 거야. 알았지?”
별로 듣기 좋은 말은 아니었다. 그 완벽이 무엇을 말하는지, 내가 왜 선택 당했는지는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검은색과 갈색 칠을 한 후 마른 수건으로 비벼대니 온몸에 지저분한 얼룩이 생겨났다. 그다음엔 붉은색 분장이었다.
마치 피가 말라붙은 것처럼, 끈적이는 검붉은 물감을 눈 밑과 다리 사이, 입 주변에 발라놓고 드라이기로 말렸다. 나는 따뜻한 바람을 만끽하며 주변을 훑어보았다.
녹슬어 잔뜩 방치된 수십 개의 개장들. 곳곳에 털과 오물들이 말라붙어 있었다. 반쯤 찌그러진 밥그릇에는 먼지와 빗물만이 가득했다.
‘하아, 처참하구만. 도대체 왜…’
“영지 씨, 분장 끝났어?”
“네! 와서 보세요.”
감독과 몇몇 스태프가 다가와 나를 보자마자 ‘세상에’ 하며 탄식을 내뱉었다. 한 여성 스태프는 뒤를 돌아 훌쩍이기까지 했다.
“예전엔 불쌍하고 비루했었는데, 이젠 가히 세상 종말급, 아포칼립스급 아픔을 담고 있구먼. 특히 이 무채색 개장에서 빛나는 저 형광색 귀와 꼬리는 완벽한 부조화, 아름다운 세상의 뒷면에 존재하고 있는 가혹한 현실을 드러내고 있어.”
“왈!”
‘그만하시오!’
보다 못한 나는 짧게 짖으며 빨리 촬영을 하기를 재촉했다.
***
찌그러진 철망.
나는 피투성이가 된 채 오물과 마른 개똥으로 뒤덮인 그 뜬장(바닥까지 철조망으로 된, 개나 닭 등의 가축을 가둬놓는 장이다. 땅에서 띄워 설치하여 배설물이 바닥으로 떨어지도록 만들었다.)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바깥에서는 개들이 공포에 질려 울부짖고 있었다.
내게 다른 구원의 손길은 없었다. 이대로 끌려 나와 다른 개들의 싸움에서 물어뜯겨 죽게 될 것이었고 그대로 끓는 물이 담긴 솥 안으로…
“끼이잉, 끼이이잉…”
나는 겁에 질려 몸을 돌돌 말았다.
그때 철망이 열리고 커다란 손이 내게로 다가왔다. 이젠 내가 투견장으로 끌려갈 차례였다. 나는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그 검은 손을 쳐다보았다.
“컷! 컷!”
감독이 재빨리 외쳤다. 그리곤 선글라스를 벗은 후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았다.
“아, 이건 광고가 아니라 다큐멘터리라 해도 믿겠어. 어떻게, 어떻게 이런 눈빛이…”
“그러게 말이에요. 욕심 같아서는 다른 씬을 당장이라도 만들고 싶은데요?”
“다른 씬? 다른 씬이라…”
“예를 들어 저렇게 뜬장에 가둬진 상태에서 다가오는 손이 구원의 손이라는 것이죠. 그때 조명으로 개장을 환하게 비추고, 해피의 시점에서는 뒤에 태양이 뜬 듯 눈부신 가운데 검은 실루엣이 선명해지면서 나타나는 게…”
“조은 씨?”
“그거죠! 폭력은 안 된다는 것과 동시에 이렇게 죽어가는 강아지들을 도와달라, 구원해 달라는 메시지까지.”
“좋아, 완벽해. 그거 추가해서 찍어도 시간 괜찮아.”
조감독이 서둘러 촬영 스태프들을 모아놓고 추가 콘티를 그려가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감독은 날 안은 조은이에게 다가왔다.
“조은 씨, 부탁이 있어요. 지금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는데 좀 도와줬으면 해서.”
“네? 어떤 것인데요?”
감독은 조은이에게 방금 전 나온 아이디어를 설명했다.
“아, 그 정도라면 가능하겠네요. 그냥 천천히 해피에게 손만 뻗으면 되는 거죠?”
“응, 그래요. 그 정도만 하면 될 것 같아. 괜찮을까?”
“상관없어요. 제가 도움이 된다면 그렇게 해야죠!”
감독이 고개를 끄덕이며 분장을 담당했던 스태프를 불렀다. 나를 거지꼴로 만들어놨던 그 스태프는 서둘러 메이크업 재료를 꺼내 조은이를 앉히고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바쁘게 돌아가는 현장의 상황을 보며 나는 기분이 좋았다. 내가 인정받고 즐겁게 일할 수 있다는 것이, 그것으로 다른 이들도 만족시키고 조은이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신기했다.
‘어쩌면 난, 연기에 꽤 재능이 있을지도 모르지. 만약 환생을 한다면 뒤늦은 나이지만 연기학원을 다녀볼까?’
나는 코를 벌름거리며 톱스타가 된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
모든 실외 촬영과 인근에 섭외한 한 가옥에서 진행된 실내 촬영까지, 모든 촬영을 끝낸 후 조은이와 나는 감독 앞에 섰다.
“다음에도 좋은 기회가 온다면 조은 씨에게 연락해도 될까?”
“물론이죠.”
“오늘 추가로 도와줘서 너무 고마워요. 정해진 예산이 있어서 더 챙겨주기는 어렵지만, 약속한 비용은 오늘 안으로 정산해 줄 테니 염려 말아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곧 첫 번째 광고가 뿌려질 거야. 그걸 보면 꽤 놀랄지도 몰라요. 아마 사람들이 해피를 엄청 알아보고 찾게 될 걸? 그것만으로도 굉장히 재미있는 삶이 시작될 거야.”
“아, 그런가요?”
“믿어도 좋아요. 정말 수고했어요.”
조은이는 감독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나 역시도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감독에게 감사하다는 눈인사를 보냈다.
“우리 해피, 해피 덕분에 이번 촬영도 너무 완벽하게 끝났어. 앞으로도 지금처럼 계속 못생기고 비루해야 한다. 알았지?”
“왈!”
“이건 놀라운 재능이란다. 그 어느 개도 갖지 못한. 앞으로 또 보자.”
감독과 헤어진 우리는 스태프의 차를 타고 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플랫폼에서 지하철을 기다릴 때, 조은이의 핸드폰에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핸드폰을 꺼내든 조은이의 입이 떡 벌어졌다.
내 머리 위의 빚태창의 숫자가 정신없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종료일 2026년 3월 8일 오후 10시 13분. 현재 순자산 -2,929만 6,540원]드디어 맨 앞자리 숫자가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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