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28
28. 도화선녀(1)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가볍기 그지없었다.
아니, 사실 내가 가벼울 것은 없다. 나야 기저귀 박스 안에 들어가 있는 몸이니까. 가벼운 것은 그런 박스를 들고도 힘든 기색이 없는 조은이였다.
아까 본 지하철 안의 광고 모니터. 그리고 지금 보이는 빌딩의 전광판. 저 식당 안에 있는 텔레비전.
저곳에서 조만간 내 얼굴이, 그리고 조은이의 얼굴이 나온다고 생각하니 꽤 신기했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얼떨떨하고 실감이 안 났지만, 그와는 반대로 당장 확인해보고픈 마음도 컸다.
“와, 믿기지 않아. 정말 놀라워.”
“왈!”
“하아, 이대로 그냥 들어가기엔 정말 아쉽다.”
“왈! 왈!”
‘데이트! 데이트!’
나는 조은이를 보며 신나게 짖었다. 그때 말했던 대로 같이 한적한 곳에 가서 치킨을 먹는 상상을 했다. 혹시라도 조은이가 캔맥주를 마신다면 실수로 캔을 엎은 후 몇 모금이라도 할짝대고 싶었다.
“헥! 헥! 헥! 헥!”
그러나 조은이는 한참을 생각하다 인근의 마트로 향했다. 대형 마트는 아니지만 나름 정육과 생선 코너 등도 갖춘 동네 마트였다.
“해피는 여기 있어. 얌전하게. 백숙 해 먹자. 백숙 먹고 싶다.”
‘백숙? 아니, 뭐 그것도 나쁘지 않지. 백숙 좋지. 그 할매와 같이 먹는다는 것이 좀 그렇지만.’
조은이는 매장 직원에게 양해를 구하곤 박스를 주차장의 한구석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목줄을 기둥에 잘 묶은 뒤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조은이가 돌아올 때까지 박스 입구에 얼굴을 내민 채 촬영 후의 나른함을 만끽하는 톱스타의 자세로 심드렁하게 누워 있었다.
“와! 이 개 좀 봐!”
“삐에로 같다.”
“야! 짖어봐! 멍! 멍!”
그때 어디선가 나타난 한 떼의 초등학생들이 나를 보며 놀려대기 시작했다. 나는 영 귀찮다는 듯 고개를 돌리고 박스 안으로 몸을 말았다.
– 쿡!
“깽!”
깜짝 놀랄 만큼 아픈 통증에 비명을 지르며 뒤를 돌아보았다. 아까의 초등학생 무리 중 가장 덩치가 크고 못돼 보이는 아이가 앞에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 손엔 나뭇가지가 들려 있었다.
“와, 소리 낼 줄 아네? 또 찔러볼까?”
“아왈왈왈왈!!!”
나는 뛰쳐나와 이를 드러내며 맹렬히 짖어댔다. 깜짝 놀란 덩치가 뒤로 물러서다 나동그라졌다.
“아, 깜짝이야. 이 똥개가! 서준아, 네가 가진 비비탄 총 좀 줘봐!”
서준이라는 이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나만큼이나 못생긴 아이가 덩치의 말에 손에 든 장난감 총을 건넸다.
‘아, 저건 아프겠는데? 게다가 눈에 맞으면!’
나는 겁이 나 얼른 박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문이 없으니 뚫린 곳에 대고 쏘는 총알을 막을 수 없었다.
– 탁! 탁!
“깽! 깨앵!”
그깟 비비탄 따위라고 하기엔 불법 개조라도 했는지 제법 따끔거렸다. 게다가 뒤로 돌아 으르렁대다 얼굴에 맞을까 감히 몸을 돌리지도 못했다. 엉덩이와 허벅지에 따끔한 통증이 계속되는 가운데, 한 방이 정확히 내 불알에 맞았다.
나는 세상이 노래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캐애애앵!”
“와, 얘 운다, 울어! 아하하하. 복수다!”
그때,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딱 멈췄다.
그리곤 곧이어 ‘퍽! 퍽! 팍!’하고 무엇인가를 정신없이 휘두르는 소리가 났다. 마치 개방파 거지가 타구봉을 휘두르듯(아… 그건 일단 내겐 좋은 표현이 아닌데) 경쾌한 타격음이 이어졌다.
나는 조은이가 마트에서 뛰쳐나왔나 싶어 재빨리 고개를 내밀었다.
‘엥?’
그러나 눈앞에서 경쾌한 무공을 선보이고 있는 이는 조은이가 아니었다. 북한의 김정일이 생각나는 파마머리에 한쪽 눈이 사시인 중년의 아주머니가 장바구니에서 북어를 꺼내 아이들을 현란하게 때려대고 있었다.
타격음이 터질 때마다 자욱한 연기처럼 북어 살이 가루가 되어 피어올랐다. 그 극한의 무공에 개념 없던 초딩들은 ‘우와아아앗’ 소리를 내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저 싸가지 없는 것들! 저 귀신이 잡아갈 것들! 어디서 감히 이 귀한 개님을 때려! 아이고, 신령님! 천상삼기일월성, 통천투지귀신경!”
‘뭐, 뭐야?’
나는 깜짝 놀라 그 아주머니를 쳐다보았다.
한참을 씩씩대며 아이들이 사라진 방향을 쳐다보던 아주머니가 내 앞에 공손하게 꿇어앉았다.
“본 제자는 용숭동의 신동아맨션 501호에 도성암을 세우고 전안 모셔 기도하는 보살로, 도화선녀라 합니다. 우리 개신령님.”
“왈! 왈! 왈!”
‘저리 가! 당신 뭐야! 아이들보다 당신이 더 무서워!’
도화선녀라 자신을 소개한 아주머니는 가만히 고개를 내려 날 쳐다보았다. 사시가 된 한쪽 눈에서 무언가 기운이 어른거렸다. 코 옆의 사마귀에서도 신묘한 기운이 피어오르는 듯했다.
“신령님, 신령님은 그냥 개가 아니야! 맞지요? 개 안에 아주 귀한 영혼이 들어가 있어, 나는 그게 보여요!”
‘헉! 이 사람 뭐지?’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러나 도화선녀의 말은 계속되었다.
“신령님! 내가 우리 신령님 모셔야 해. 사람들이 나보고 이젠 신력이 없다고 하는데, 무슨 소리? 나는 알 수 있어. 조상신이 말씀하신다, 이 개는 그냥 개가 아니다. 엄청난 재물을 버는 대상대감이 들어간 개다! 개신령이다!”
“끼이이잉, 왈!”
나는 무언가 두려워서 그냥 가라고 짖었다. 그러나 도화선녀는 장바구니에서 약과와 옥춘을 꺼낸 다음 아이들을 후드려 패 머리가 떨어져 나간 북어를 기저귀 박스 앞에 내려놓았다.
“차린 정성 하나 없어도 태산같이 받으시고~ 이제 도화보살 손 잡고 전안에 올라 영검함이 하늘을 치솟도록 돈벼락을…”
“저기, 뭐 하세요?”
도화선녀가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홱 돌렸다. 대파와 백숙용 닭, 마늘 등이 들어 있는 비닐봉투를 든 조은이가 황당한 표정으로 도화선녀와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넌 누구냐!”
“우리 해피 주인인데요?”
“개 주인!”
– 후다다닥!
도화선녀는 조은이가 개 주인이라 밝히자마자 약과와 북어 등을 내팽개치고 부리나케 도망갔다.
“헐, 방금 뭐야?”
조은이가 박스 앞을 치우다 나를 빼낸 후 아예 기저귀 박스까지 뜯어 버려버렸다.
“이제 박스 집은 그만! 좋은 집 하나 누나가 알아봐 줄게.”
“왈! 왈!”
나 역시 크게 환영하는 바였다. 한 손엔 장 본 것을 들고, 한 손엔 내 목줄을 쥔 채 조은이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골목길을 올랐다.
“끼잉!”
그러나 나는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도화선녀가 양손에 방울과 맥시봉을 든 채 저 멀리서 날 따라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고, 이 제자 두고 어딜 가십니까! 개신령님. 아니 개령님!”
“왈! 왈! 왈!”
나는 저 뒤에서 이상한 사람이 따라오고 있다며 맹렬하게 짖었다. 조은이가 내 모습에 놀라 뒤를 돌아보았으나 그보다 더 빠르게 도화선녀는 전봇대 뒤로 몸을 숨겼다.
“이상하네? 가자, 해피야.”
“끼이이잉.”
나는 어쩔 수 없이 조은이가 이끄는 대로 집으로 향했다. 그러나 얼마 못 가, 한 골목의 폐의류 수집함 뒤에서 방울과 맥시봉을 흔드는 도화선녀를 또 발견했다.
“개신령님, 짤랑짤랑. 입으로 내는 방울 소리에도 간절함이 붙으면 진짜 방울이 됩니다, 짤랑짤랑!”
“아왈왈왈! 왈!”
“응?”
그러나 이번에도 도화선녀는 잽싸게 몸을 숨겼다. 그렇게 집에 다 와서까지 우리를 따라온 도화선녀는 우리가 어디로 들어가는지까지 확인하곤 모습을 감추었다.
아이들에게서 날 구해준 것으로 봐선 나쁜 사람은 아닌 듯했지만, 무엇인가 꽤 기이한 사람이었기에 별로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스토커처럼 기분 나쁘게 뒤까지 밟다니,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내 걱정은 닭 삶는 냄새와 함께 말끔히 사라졌다.
노파는 연신 함박웃음이었다.
“아유, 촬영하느라 얼마나 수고혔어? 아유. 잘했어.”
“뭘, 난 한 것 없어. 우리 해피가 다 했지.”
“그리여, 우리 해피 장허다. 잉. 이리 와, 우리 해피.”
“왈! 왈!”
나는 노파의 손짓을 피해 재빨리 조은이의 뒤로 향하려 했으나 노파의 손이 더 빨랐다. 언제나 느릿느릿하지만 날 때릴 때나 안을 때만큼은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우리 강아지, 우리 똥강아지! 해피야아~!”
내 영혼이 탈진할 때까지 배방구를 해대는 노인을 향해 조은이가 웃으며 말했다.
“여하간 이걸로 열심히 잘 굴려봐야지. 2학기 때 장학금이 아직 어찌 될지는 모르니까. 내가 밤마다 공부하고 있는 게 있어.”
“그리여. 그것은 이 할매가 절대 안 건드릴 테니까 우리 조은이 마음대로 혀.”
“고마워, 할머니.”
곧이어 닭이 다 삶아졌다. 뜨끈한 대접에 놓인 닭은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럽기 그지없었다. 나는 꼬리를 살랑거리며 앞에 앉아 연신 입맛을 다셨다.
능숙한 솜씨로 닭 다리를 뜯어내고 해체한 노인이 조은이의 그릇에 다리 두 개를 모두 올려놓았다.
“에엥? 할머니도 드셔야지.”
“필요 없어. 늙은 할매가 무슨 낯짝이 있다고 이런 것을 먹것냐. 요 닭 모가지만 쪽쪽 빨아먹을 겨.”
“에이, 왜 그래? 어서 드세요! 할머니가 많이 드셔야 나도 편하게 먹지. 해피도 편하게 주고.”
그 말에 노파가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곤 빙긋 웃었다.
“우리 해피, 오늘 할매 품에 꼬옥 안겨 잘껴?”
“와, 왈!”
‘싫소!’
나는 질색을 하며 몸서리를 쳤다. 내 오감 속으로 그 부덕한 소리와 향기가 형상화되어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상하게 해피가 할머니 방에서 자면 꼭 온몸에서 냄새가 나.”
“얼매나 방귀를 뀌어대는지. 아유, 못 살것어. 그 닭고기도 주지 마. 또 뀔라 겁난다.”
“왈! 와와왈! 왈!”
나는 어이가 없어 소리치며 강하게 항변했다. 그건 당신의 장이 좋지 않은 것이라고, 그 쉰 김치가 원인일 것이라고. 그리고 내 혼신의 연기로 번 돈이니 나도 이 백숙에 당당한 권리가 있다고 외쳐댔다.
조은이가 닭가슴살을 고이 찢어 내 그릇 위에 올려놓았다.
“우리 해피, 고생했어. 이것 먹고 푹 쉬어. 알았지?”
– 촵! 촵! 촵! 촵!
나는 정신없이 닭가슴살을 먹기 시작했다. 소금을 찍어 먹으면 더 좋았으련만, 그래도 이것만 해도 큰 호사였다. 촬영장에서 간식을 먹고 고급 사료를 먹었어도 그것은 개를 위한 음식이었다. 이 닭가슴살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아, 맞다. 할머니! 아까 마트에서 장 보는데 웬 아줌마가 해피 앞에 약과랑 북어 놓고 중얼중얼거리더라?”
“그래? 누구여?”
“몰라. 파마머리에 눈 한쪽이 살짝 불편하신 분이던데. 코 옆에 사마귀도 있고. 알아?”
“모르겠는데. 뭐 이 동네가 좁은 것이 아니니까.”
조은이는 고개를 갸웃하다 노파의 별일 아닐 것이라는 말에 다시 식사에 집중했다.
그리고 다음 날.
학교에 가기 위해 신발을 신고 문을 열던 조은이가 깜짝 놀랐다.
“이게 뭐야! 할머니, 나와 봐!”
부리나케 뛰쳐나온 노파와 나는 깜짝 놀랐다.
문 앞에 정성 들여 약과와 옥춘, 떡, 사과, 북어가 차려져 있었다. 아 참, 맥시봉도 함께.
그리고 문 위쪽으로는 부적도 하나 붙여져 있었다.
상 앞에 놓인 종이.
[우리 개령님, 아침 식사 부족해도 태산같이 받으시고, 부디 이 제자 기억해 주시고 좌정해 주십시오.]어제 그 도화선녀가 왔다 간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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