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29
29. 도화선녀(2)
사진을 찍네, 신고를 해야겠네, 한참을 들썩이던 조은이는 결국 지각 걱정에 어쩔 수 없이 노파에게 ‘절대 증거물을 버리지 말라’ 이르고는 학교로 떠났다.
그리고.
나는 멍하니 노파를 바라보고 있었다.
노파는 차려진 음식을 들고 와 맛있게 먹고 있었다. 밑에 수북하게 깔린 맥시봉 껍질을 보노라니 정말로 울화가 치밀었다.
“으르르르, 왈! 왈!”
‘도대체 당신은 왜 그러십니까!’
“아유, 왜 그려! 우리 해피 하나도 안 줘서 그런겨? 사람 먹는 거 개가 먹으면 큰일 나. 바로 죽는겨! 아무거나 먹어선 안 되는겨!”
‘당신이 지금 아무거나 먹고 있지 않소!’
정말 대책이 안 서는, 입만 열면 모순에 가득 찬 노파였다. 게다가 엄밀히 따지면 저것은 나에게 차려진 상 아닌가? 어제 그 도화선녀라는 아주머니가 비록 하는 행동은 굉장히 수상쩍었지만 적어도 내게 주는 음식에 무엇을 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여, 조은이에게 말하지 말어! 할매가 특별히! 우리 해피헌티!”
“왈! 왈! 왈!”
‘오오오, 맥시봉? 약과? 아니, 사과도 좋아! 떡도!’
“요거, 요 북어. 어디서 봤는디 개한테 북어가 그리 좋댜. 강아지 낳고도 북엇국 끓여 준다드라.”
그러더니 노파는 북어를, 그것도 머리 부분만 떼어서 나에게 휙 던졌다.
“부지런히 먹어. 생선도 대가리가 가장 맛난 법이여. 쪽쪽 빨어.”
“아왈왈왈왈! 아왈왈왈왈!”
나는 분노로 맹렬히 짖어댔다. 그러거나 말거나, 노파는 절편을 하나 입에 넣으며 ‘아유, 바깥에 놔뒀는지 떡이 굳었네. 이게 그리 맛있는 떡인데.’ 하며 중얼거렸다.
결국 난 북어 대가리 대신 말표 사료를 씹어 먹으며 내게 주어졌으나 내 것이 아닌 음식들을 슬프게 바라보았다. 아울러 도대체 왜 나에게 이런 것들을 차려주었는지, 그 도화선녀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분명 어제 나를 보며 ‘신령님, 신령님은 그냥 개가 아니야! 맞지요? 개 안에 아주 귀한 영혼이 들어가 있어, 나는 그게 보여요!’라고 말했었다.
그래, 분명 이 해피의 몸 안엔 내가 들어가 있으니 엄밀히 따지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게다가 대상대감, ‘엄청난 재물을 버는 대상대감이 들어간 개’라고 했다.
내가 30억을 벌도록 도와주어야 하니, 결과를 떠나서 그것도 빗나간 것은 아니었다.
‘용하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자신이 모시겠다느니, 좌정하라느니 하는 말은 매우 꺼림칙했다. 나를 ‘개령님’이라 부르는 것만 봐도 그랬다.
‘일단 이 집을 알고 있는 것으로도 무언가 불안해. 조은이 말대로 신고하는 게 나을지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저도 모르게 북어 대가리를 맛나게 빨았다.
“해피야, 이제 할매랑 가야지?”
“왈!”
운동 삼아 파지와 공병을 주우러 갈 시간, 그리고 내게 있어선 바깥 공기를 신나게 쐴 수 있는 시간! 노파가 꺼낸 목줄에 목을 내밀며 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오늘도 이 할매랑 여기저기 돌고 오자?”
“왈!”
이윽고 유모차 바구니에 날 실은 노파가 골목으로 나가 느릿느릿 걷기 시작했다. 그때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어 뒤를 휙 쳐다보니.
‘!!!’
한 손에 방울, 한 손에 맥시봉을 든 도화선녀가 몇 개의 건물만큼 떨어진 빌라의 5층에서 이쪽을 바라보며 입으로 짤랑짤랑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베란다 창문에 卍자와 함께 빛바랜 ‘부처님오신 날’ 종이 등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왈! 왈! 왈!”
‘저기구나, 맞아! 도성암!’
내가 뒤를 보며 맹렬히 짖자 노파는 ‘응? 해피야, 왜 그려?’하며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잽싸게 몸을 숨긴 도화선녀, 결국 노파는 동네 시끄럽게 짖지 말라며 날 구박하고는 다시 파지가 있나 둘러보며 골목을 나아갔다.
결국 나는 골목 한 바퀴를 도는 내내 불안해서 계속 두리번거리느라 제대로 동네 구경도 하지 못했다. 노파 또한 오늘은 그다지 소득이 없었는지 풀이 죽어 다시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때, 집 앞에 도화선녀가 서 있었다.
“왈! 왈! 왈!”
내가 맹렬히 짖어댔으나 도화선녀는 전혀 도망가지 않았다. 일부러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맥시봉을 들고 방울처럼 흔들어대었다.
“오시네, 오시네! 뉘가 오시냐, 우리 대상대감 오시네!”
“잉? 저게 뭔 개소리다냐?”
노파가 고개를 갸웃하자 도화선녀가 씨익 웃으며 앞으로 다가왔다.
“할머니, 나 요 앞에 도성암에 있는 도화선녀라고 하는데요.”
“예, 예?”
“아유, 저기 보이는 저 빌라! 신동아맨션 501호!”
노파가 도화선녀가 가리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 부처님오신 날 등과 옥상 안테나에 매달린 홍백기를 바라보았다.
“잉, 잉!”
“아침에 우리 개령님 드시라고 내가 상도 차렸는데.”
“에? 우리 집 앞에 그런 험헌 것을 놓고 도망친 것이 그쪽이여?”
‘험헌 것은 무슨, 자기가 다 먹어놓고.’
나는 노파의 그 뻔뻔함에 혀를 내둘렀다. 그러거나 말거나 도화선녀는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노파의 손을 잡았다.
“우리, 이웃인데 같이 이야기 좀 합시다. 응? 네?”
“무, 무슨 이야기. 나는 점 같은 것을 보질 않아유. 그런 것 안 믿어.”
“아유, 누가 돈 받는대요? 이웃끼리인데, 공짜로 봐 줄 수도 있지. 응? 와서 커피 한잔해요.”
“공짜? 공짜라 했지유?”
하아, 정말이지 답이 안 서는 노파였다. 그러나 노파는 도화선녀가 낀 팔짱을 풀지 않고 연거푸 분명 공짜라 했다는 확인만 받고 있었다. 게다가 ‘술을 올리기 때문에 집에 공병도 많다’는 말에 홀랑 넘어갔다.
“그런데 내가 지금 개가 있어서.”
도화선녀의 눈이 번쩍했다.
“그래요, 이 개령님! 아니 이 개, 이 개도 같이 올라와야지. 얼마나 할 이야기가 많은데요, 응?”
“그럼 커피나 한잔 마실까나?”
노파는 못 이기는 척도 아닌, 오히려 신나서 자신이 앞장서서 도성암이 있는 빌라를 향해 유모차를 끌고 가기 시작했다. 그 뒤에서 싱글벙글 웃으며 따라오던 도화선녀는 으르렁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공손히 합장을 했다.
“우리 개령님, 우리 개령님!”
***
힘겹게 5층까지 계단을 오른 노파가 숨을 몰아쉬는 가운데, 도화선녀가 싱글벙글 웃으며 문을 열었다.
열자마자 들리는 조용한 불경 소리와 향냄새를 제외하면, 의외로 일반 살림집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다만 벽에 몇 가지 한복(아마도 무복이라 하는 그것이겠지?)과 무속화가 걸려있는 것이 특별했다.
잔뜩 긴장한 나는 노파의 품 안에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무리 그래도 나쁜 짓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노파도 내심 안심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여기 전안, 아랫방으로 오세요. 어서.”
그리고 작은 방의 문을 여는 순간, 이제야 제대로 들어왔다는 느낌이 팍 들었다.
두 단으로 마련된 제단에는 장군상과 할머니상, 그리고 신령이 산삼을 들고 있는 상이 모셔져 있었고 그 아래엔 과일과 과자, 떡 등이 놓여 있었다.
앞의 향로에서는 아직 채 꺼지지 않은 향로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신령 상 뒤로 열두 개의, 한자로 쓰인 위패들이 늘어서 있었다.
“아유, 편히 앉아요! 우리 보살님 어서. 그 개령님도 편하게 내려놓으시고.”
도화선녀는 노파와 나를 억지로 앉힌 후 커피를 준비하러 거실로 나갔다.
“아유, 이런 데 말만 들어봤지 이렇게 직접 구경하기는 처음이네. 그렇지, 해피야?”
“왈! 왈!”
‘지금이라도 나가요!’
나는 노파의 팔을 긁으며 짖었다. 그러나 노파는 연신 ‘그래도 공짠데’라 중얼거리며 불안한 눈으로 전안을 훑어보았다.
“자아, 자아! 우리 보살님, 커피 드셔야지. 우리 개령님은 여기 햄 좀 썰어왔는데.”
“왈!”
오오, 도화선녀님 센스 굿. 나는 싸구려 햄 몇 조각에 마음을 열고 노파의 품에서 뛰어내려 신나게 씹어 먹기 시작했다. 노파는 나를 말리려 했으나 앞의 도화선녀가 뿜어내는 포스에 밀려 차마 막지 못했다.
“일단, 우리 보살님 만나서 반가워요. 응? 내가 이 동네에 오래 살았어도 되도록 바깥에 나가지를 않아서 보살님이랑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지 뭐야.”
“아유, 그래요? 그래도 이렇게 인연이 닿으니까 좋네.”
“그래, 일단 풀어드려야지. 약속은 했으니까.”
“용한가벼유?”
“그럼! 용하지. 여기 용숭동 오기 전에는 나도 아주 잘 나갔어요? 사람들 줄 섰다니까? 예약 받고 그랬어.”
도화선녀의 자랑에 노파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그런데, 어째 이래유?”
노파의 질문에 도화선녀가 고개를 숙였다. 햄을 씹어 먹던 나는 도화선녀의 얼굴에서 쓸쓸한 미소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뭐, 돈도 많이 벌었고. 돈을 벌다 보니 더 벌고 싶어서 하지 말란 것 하다가 벌전 맞았지. 그래서 한쪽 눈이 이렇게 되었잖아요?”
“시상에!”
“한쪽 눈이 이리된 후론 맞춰도 절반밖엔 못 맞춰! 그래서 그냥 조용히 빌고 있지요. 그나저나 이름이랑 사주 좀 줘봐요.”
“나, 박복녀. 태어난 생은 1949년 5월…”
노파가 생년 일시를 말하자 도화선녀가 고개를 갸웃했다.
“잠깐, 박복녀? 이름이 왜 그래, 우리 보살님?”
“왜. 복녀가 이상혀요?”
“아니, 복녀는 죄가 없지. 성이 죄… 이 말도 웃기네? 박 씨 세가에게 벼락 맞겠네. 여하간 박복이 참 그렇네?”
도화선녀의 말에 노파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저 정도야 성명풀이라 볼 수도 없지만 그래도 그 이름에 절망하는 이가 나 외에 더 있다는 사실에 나는 왠지 모를 동질감이 느껴졌다.
“그런데, 우리 형제자매 쪽이 ‘복’이 돌림이라…”
“그래요? 그럼 뭐가 좋을까. 박복자, 박복한, 박복해, 박복희, 박복순… 아냐, 이거 답 없다. 이름에도 기운이 있는데 이건 박복이 붙은 순간 어쩔 수 없다고 신령님이 말씀하시네? 사주도 못 보겠다. 이름 기운이 다 잡아먹네.”
“아유, 어쩐댜.”
“일단 이름 떼고 사주만 봐도… 자식 복은 없어. 있어도 하나. 아들. 그런데 아마 아들이…”
도화선녀가 말끝을 흐리고 조심스레 노파를 올려다보았다. 노파가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알겠으니 넘어가고. 보니까 말년 운은 아주 좋긴 하다. 여태 험한 세상 모진 풍파 몰아쳤어도 말년엔 편안하게 발 뻗고 자네. 주변에서 크게 도와줄 상이다. 혹시 지금 누구랑 살아요?”
“우리 손녀. 조은이여. 안조은.”
“아유, 이름이 다 왜 그래! 그래도 함께 있는 이로부터 크게 부귀를 누릴 상이니 손녀에게 잘 해! 한다는 것 다 하게 해주고. 손녀 생년월일 좀 줘봐요.”
노파가 조은이의 사주를 불러주자 도화선녀가 방울을 흔들면서 무엇인가를 적어 내려갔다. 그래도 그 모습은 꽤 무속인다워 나는 내심 감탄을 했다.
“영특하네. 타고난 머리가 좋고 심성이 바른 아이야. 지금부터 운이 뻗어 나가고 있어. 나중에 크게 될 아이네. 그런데 이 아이도 자신의 운도 좋지만, 주변의 기운이 그 운을 개통해주는 느낌이야. 뭐지?”
그때 노파와 도화선녀의 눈이 내게 닿았다.
“다른 식구는 없어요?”
“잉 없어유. 손녀랑 요 똥개 뿐이유.”
“거봐. 대운 몰고 오는 개령님 맞다니까? 우리 개령님 이름이 뭐예요?”
“해피, 안해피.”
“아유, 이 집안 이름이 다 왜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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