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32
32. 광고의 효과(1)
왜, 가끔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정말 평범하게, 지독히도 평범하게 시작한 하루인데 인생이 바뀔만한 거대한 사건이 벌어지는 날.
너무 뜻밖에 일어나고, 미처 생각지도 못하게 일어나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거대한 격랑의 너울을 두 번, 세 번, 네 번 연달아 맞아버리는 날.
이날이 바로 그랬다.
시작은 평범했다.
나는 분명 조은이의 품에서 잠들었지만 눈을 뜨니 노파의 품 안이었고, 게다가 이불 속이었다. 매캐한, 눈앞이 노래질 정도로 지독한 부덕 가스에 주님, 부처님, 조상님, 저승사자를 차례대로 만날 뻔하다 간신히 나왔다.
그리고 거실로 나가 먼저 기지개를 켰다. 앞발은 왼발, 뒷발은 오른발, 이렇게 교차되게 쭈우우욱 뻗은 다음 엉덩이를 뒤로 빼고 허리를 폈다.
온몸이 풀렸다 싶어 강아지 패드 옆에 놓인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사료를 씹어 먹은 후, 세워놓은 페트병에 오줌을 찍, 싸곤 조은이의 방으로 들어갔다.
알람이 울리기 전, 어떻게든 조은이의 품 안으로 파고들면 내 따뜻한 체온과 온몸에서 발산되는 부덕한 향기에 조은이는 눈을 비비고 일어났다.
조은이가 씻는 동안 노파는 아침을 차렸다.
– 콩나물, 콩나물국, 콩나물밥 + 알파
– 시금치무침, 시금치된장국 + 알파
– 무나물, 무와 시금치를 넣은 된장국 + 알파
– 볶은김치, 김치콩나물국, 김치볶음밥 + 알파
가히 노파는 한 가지 재료로도 환상적으로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내었다. 그래도 손녀라고 무엇이라도 단백질류는 꼭 챙겼고, 과일도 그게 귤이건 방울토마토건 사과건 꼭 올려놓았다.
사실 나에겐 언제나 들쑥날쑥한 모습(애정을 보였다가도 똥개라고 내쫓는 등)을 보였지만, 노파의 조은이에 대한 사랑은 크나큰 것이었다. 옆에서 지켜본바, 그만한 사랑을 받았기에 조은이는 이렇게 바르게 자랄 수 있었음을 잘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조은이도 아무리 바빠도 아침 식사만큼은 꼭 노파와 안방에서 같이 먹었다.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아 아침 뉴스를 같이 보는 것이 내게도 정해진 일과였다.
오늘도 그랬다.
얼마 전, 아침의 단백질이 노년에겐 매우 중요하다는 TV 프로그램을 본 노파는 식사가 끝나면 꼭 콩으로 만든 두유 ‘비지밀’, 그것도 달콤한 맛이 아닌 고소한 맛을 한 병씩 마셨다.
“조은이 니도 하나 먹을텨?”
“아니, 난 됐어.”
“단백질 먹어야 한다드라.”
“여기 계란후라이도 있고 된장국 안에 두부도 많이 들었잖아. 충분해.”
“학교에서도 끼니 거르지 말어.”
“아이, 염려 마. 해피나 단백질 챙겨주라.”
쫑긋! 나는 귀를 세웠다. 이놈의 노파, 나에게 어서 치킨이나 족발을 대령해라! 하다못해 저 계란후라이나 된장국의 두부라도 건져줘라!
그러나 노파는 내가 환생하고 나서도 골백번은 들었을 그 레퍼토리, ‘사람이 먹는 것 개가 먹으면 큰일 난다’라는 말을 하곤 쉰 김치를 찢어 내 입에 넣었다.
‘크하… 진짜 저 김치는 없어지지도 않아. 아니, 냉장고 김치통은 무슨 화수분인가?’
오만상을 찡그리며 입맛을 다시고 있을 때,
“어?”
TV를 보던 조은이의 눈이 커졌다.
자연스레 나와 노파도 TV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비가 쏟아지는 흑백의 폐허 속.
쓸쓸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저 멀리, 한 여자의 뒷모습이 어른거렸다. 그때 등장하는 한 마리의 추레한 강아지, 클로즈업된 눈물에 흠뻑 젖은 눈. 그리고 그 눈에 비친 여자의 기다란 머리카락, 바람에 흩날리는 옷.
아름다운 조은이가 뒤를 돌아보곤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눈에서 아주 천천히 시점이 멀어지며 기다란 주둥아리, 그리고 무채색의 화면 속 너무나 선명하게 빛나는 경박한 형광 분홍색의 귀.
‘저, 저거 나잖아!’
다음 화면.
비에 젖은 폐허 속, 나는 눈이 시릴 정도로 선명한 귀와 꼬리를 흔들며 저 멀리, 주인으로 착각한 한 소녀의 뒤를 쫓아 뛰어가기 시작했다.
앞발이 물방울을 밟을 땐 초슬로우 모션으로 발이 닿음과 동시에 물구덩이의 물방울이 흩어지는 연출이 나와 간절함을 더했다.
그리고 밑으로 흐르는 자막.
[저 여기 있어요, 저를 두고 가지 말아요.]눈물을 흘리며 하늘을 향해 짖는 사이, 바로 옆에서 ‘빠아아앙’ 하는 경적과 함께 환한 빛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물구덩이 사이에 쓰러진 나는 바르르르 떨다가 혀를 길게 뺀 후 천천히 눈을 감았다. 감은 눈에서 주루룩 흘러내리는 눈물이 클로즈업되었다가 다시 멀어졌다.
그리고 여성의 나레이션.
[한해 유기되는 반려견 10만 마리. 지금도 가족을 기다리는 강아지들은 매년 그만큼씩 늘어나고 있습니다.]그리고 하늘을 향해 배를 보이며 쭈욱 뻗은 내 모습. 시커먼 고환은 아슬아슬하게 ARS 전화번호 뒤의 ‘♥’로 가려졌다.
“저, 저거! 저거 지금 해피여? 그리고 조은이 너여?”
노파가 덜덜 떨며 나와 조은이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우리 모두 쉽게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시키는 대로 열심히 찍었을 뿐이었는데, 그게 이렇게나 어마어마한 편집이 되어 나타날 줄은 정말로 꿈에도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미 공익광고는 끝났지만 조은이는 입을 벌린 채 TV를 주시하다 가까스로 한마디를 내뱉었다.
“대, 대박. 저렇게 멋지게 나오는 거였어?”
절대 공감이다.
나도 이렇게나 완벽한 연출과 편집이 이루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게다가 시커먼 하늘, 무채색 폐허 속에서 도드라지는 귀와 꼬리는 내 추레함을 극도로 끌어올리는 완벽한 배색의 효과였다.
그때 조은이의 핸드폰에 알림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어? 이 시간에 뭐지?”
핸드폰 화면을 열던 조은이는 깜짝 놀랐다.
“왜 그리여? 또 돈 낼 것 있어?”
“아니아니, 과 친구들이랑 선배들. 방금 광고 너 맞냐고. 다들 봤나 봐.”
한참을 메신저에 답변을 보내던 조은이는 서둘러 밥을 먹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할머니, 학교 다녀올게요. 그리고 우리 연예인 해피! 누나랑 이따 밤에 또 같이 놀자?”
“왈! 왈! 왈!”
조은이가 학교로 출발한 후, 노파는 설거지를 마치곤 일상을 시작하기 위해 내 목에 목줄을 채웠다. 그리곤 유모차 바구니에 날 싣곤 아직도 신기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세상에, 우리 조은이가 저렇게 멋지게 텔레비전에 나오고. 아유, 세상에.”
“왈! 왈! 왈!”
‘나도 나왔어요! 그것도 내가 못생겨서 얻어진 기회야!’
“아유, 시끄러. 얘는 무슨 별것도 아닌 광고에 못난 얼굴 살짝 나와 놓고선 이리 유세여? 조용히 혀! 여기 사람들 시끄럽다고 하겠어!”
아아아… 진짜 저 정도면 간밤에 잘 때 머리를 긁다가 ‘객관화’라는 부위의 뇌세포를 모두 죽인 것이 아닐까? 아주 조금만 생각해보면 자신이 지금 한 말, 그리고 바로 직전에 한 말 사이에 어마어마한 모순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 텐데.
나는 노파의 저 뻔뻔함에 질려 고개를 홱 돌린 채 바구니에 누워 있었다. 그리곤 아까의 광고를 곱씹어 보았다.
어쩌면 정말로 이번 광고로 인해 나에게, 그리고 조은이에게 어마어마한 변화가 생길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예전, 뺀질뺀질하게 생긴 걸덕이가 했던 그런 방송도 가능할 수 있을 것이었다. 확실히 그냥 못생긴 강아지보다는 TV에 나온 못생긴 강아지가 조금은 더 콘텐츠로 유리할 것이었다.
나는 혹시나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하여 고개를 길게 빼 보았다.
하지만 역시, 오전의 골목엔 나와 있는 이들이 거의 없었고, 간혹 있더라도 별 관심 없이 지나갈 뿐이었다.
‘역시, 직접 찍은 조은이와 나만 설레발 쳤나 보다. 할머니도 당연히 자기 가족이니 놀랐던 것이고.’
괜히 오버했다는 생각에 나는 조금은 민망스러워 다시 얼굴을 바구니 안으로 집어넣었다.
“아유, 오늘은 다른 사람이 먼저 한 번 돌았나 보다. 영 시원치 않네?”
노파가 툴툴거리며 이마의 땀을 닦았다. 아니나 다를까, 유모차 위에 올려진 파지의 양은 평상시의 반절도 채 되지 않았다.
“오래간만에 역 앞, 우리 귀생 오라버니와의 추억이 있는 곳까지 나가볼까?”
“왈! 왈! 왈!”
이 할머니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만! 하아… 진짜 저 귀생 뽕을 어떻게 빼야 하나.
으르렁거리는 날 무시하며 노파는 조용필의 ‘슬픈 베아트리체’를 ‘슬픈 에리자베트’로 개사하여 흥얼거렸다. 그리곤 근린공원과 시장, 역 앞 대로가 있는 쪽으로 유모차를 밀며 나아갔다.
확실히 집 근처의 골목보다 훨씬 건질 것이 많았다. 두꺼운 박스와 누군가 버린 잡지, 그리고 오래된 여관 앞에 놓인 공병 등을 잔뜩 주운 노파는 신이 나서 역 앞까지 나가보았다.
예전 귀생이가 사기를 치던 체험관이 있던 그 큰 빌딩. 빌딩의 옥상에 설치된 대형 옥외광고판에서 아까의 광고가 다시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유! 해피야, 저기 너 또 나온다!”
“!!!”
나도 노파를 따라 광고를 다시 주의 깊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유, 아유, 우리 조은이 좀 많이 찍지. 아유! 우리 해피 주둥아리 긴 것 봐라. 저렇게 슬프게 우네, 아유!”
‘아 좀, 조용히 좀 하지!’
나는 속으로 노파에게 꾸짖을 갈(喝)을 외치며 광고가 끝날 때까지 감상했다. 고환을 가린 하트는 신의 한 수였다.
그때.
광고가 끝나자마자 나는 주변이 매우 소란스러워졌음을 깨달았다. 고개를 돌리니 시장의 사람들이 옥외광고판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노파가 큰 소리로 중얼거리니 주변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려던 이들이 광고를 보곤 다시 바구니 속의 나를 본 것이었다.
“저기, 할머니. 방금 저 광고에 나온 강아지가 이 강아지 맞아요?”
한 커플이 노파에게 물었다. 노파는 얼떨떨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해피 맞슈. 왜, 왜유?”
“아니, 뭐랄까 진짜 기가 막히게 생겨서요. 연기도 잘하고. 와아… 이렇게 보니 정말이네? 그 귀와 꼬리 색깔이 CG가 아니었어!”
커플이 노파에게 날 사진 찍어도 되냐고 물었다. 노파가 허락하자마자 핸드폰 카메라가 내 얼굴로 다가왔다.
– 스마일~!
‘스마일 못 하겠다!’
– 찰칵!
그것을 신호로 잠깐 외출 나온 듯한 간호사부터 시장의 상인들까지 날 보며 신기해하고 사진도 찍기 시작했다.
“엄마, 나도 찍을래! 저 강아지랑 같이 찍을래!”
“할머니, 우리 아이가 강아지랑 같이 사진 찍고 싶다는데, 낯설어서 강아지가 물진 않을까요?”
“안 물어요, 우리 해피는 순해서 백날 때려도 사람을 안 물어요.”
‘아니, 그건 물지.’
여하간 나는 꼬마 숙녀와도 사진을 찍고 시장의 충남 정육점 주인과도 사진을 찍었다.
“아따, 내가 관상을 좀 보는데, 이 강아지는 보통 인물이 아니여. 아주 크게, 아주 크게 못생겨질 인물이여.”
“여기서 더 못생겨지면 어떡하라구!”
“어르신, 그나저나 등뼈 남은 것 좀 드릴까? 이거 삶아주면 개들이 좋아하는데. 물론 집에서 드셔도 돼요. 팔다 남은 거라.”
“좀 줘 봐유. 공짜쥬?”
“사진값이라 생각해요. 가자마자 바로 삶거나, 아니면 냉동실에 넣어야 해!”
나는 이 쏟아지는 관심에 잔뜩 주눅이 들어 고개를 아래로 숙이려 했다. 하지만 그때, 사람들이 몰려있자 무슨 일인가 하여 나타난 경찰이 나를 보곤 깜짝 놀랐다.
“어, 이 개! 저기 저 빌딩에서 사기 치던 등골젠 놈들 잡은 강아지잖아. 내 바지 물고 따라오라고 했던. 여러분, 이 개가 사기꾼 잡은 개예요. 어르신들에게 사기 치던 놈들 잡은. 상장도 받았다니까요? 의견이에요, 의견.”
몰려든 사람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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