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39
40. 바선생과의 사투(4)
사내는 득의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이것이 아무리 연막탄을 터트려도 단발성에 그치는 이유라 할 수 있겠죠. 그리고 또 하나.”
사내의 손짓에 마크가 곳곳의 장판을 뒤집었다. 이 부분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나 사방팔방을 뒤집으니 마치 치부가 드러나는 것만 같았다. 노파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끼이이잉…”
“하나 더. 바퀴벌레는 따뜻한 곳을 좋아하지요. 바로 이 냉장고 뒤. 이 오래된 냉장고는 물받침이 아래 있잖아요? 잘 안 비우셨을 테니 넘칠 것이고, 그럼 습해지죠. 그 뒤에 냉장고를 돌리며 올라오는 열기까지 더해지면…”
마크와 사내가 ‘끙차!’ 하며 오래된 냉장고를 잡아 앞으로 빼서 돌렸다. 그곳의 벽면과 모서리에도 바퀴벌레들이 모여 있었다.
“아주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 법이지요.”
마크가 알라바바에서 산 기계를 정리하는 동안 사내가 손을 으쓱하며 노파의 앞에 섰다.
“이제 돌아갈까요?”
“…”
사내의 말이 맞았다. 이렇게나 엉망진창인 상태임을 알고 나니, 차마 다른 곳에 견적을 물어볼 엄두란 나지 않았다. 그사이에도 저 틈으로, 다른 곳곳으로도 이 악마의 배설물 같은 것들이 쏟아져 들어올 것만 같았다.
“어, 얼마유?”
“지금 당장 작업에 들어가면 약 세, 네 시간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그리고 비용은 50만 원.”
“5, 50만 원?”
노파의 입이 벌어졌다. 나 역시도 생각보다 엄청난 가격에 깜짝 놀랐다. 방역으로 유명한 전문 업체도 이 정도로 비싸지는 않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1년 책임 방역. 그 안에 다시 나타나면 무상 서비스해드립니다. 절대 비싼 가격이 아닙니다. 그리고 바퀴벌레는 내부적 침투만큼 외부적 침투도 중요하지요. 방충망과 보일러 연통, 그 외 다른 침투로를 싹싹 막아드립니다. 저 싱크대 아래와 베란다의 틈새, 배수관까지 전부.”
“우리 싸장님, 확실해요. 베퀴벌레 진짜 안 나와요. 믿어주세요!”
사내와 마크의 믿음직한, 그리고 제발 맡겨달라는 절절한 표정(급전이 필요한 듯한).
말한 조건까지 감안한다면 어쨌거나 시켜볼 만했다. 노파가 침을 꿀꺽 삼켰다.
“40에는 안 될까? 봐유, 여기 나랑 요 개 둘만 살어! 내가 돈이 어디 있어!”
“작은 방에 대학 교재 봤습니다, 어르신. 아까 문 앞에서 손녀분과 문자도 주고받았고요.”
“에휴, 40에 하자. 응?”
“우리 마크, 이만한 기술자 어디 딴 데에서 못 봅니다. 물론 저 역시도 마찬가지고요. 우리 첨단 장비 안 보셨어요? 게다가 우리가 특수 조제한 약물, 인체에 무해하고 바퀴벌레만 싹 죽이는 이 약물… 비쌉니다.”
“오우! 그건 진짜 우리가 맨틉니다. 치약 넣고…”
“마크!”
사내의 일갈에 마크가 움찔거리며 입을 닫았다. 그러나 노파는 후퇴하지 않고 사내의 손을 덥석 잡았다.
“내가 우리 아들 같아서 그래, 응?”
“아니, 어르신! 아들이면 돈을 더 주셔야죠.”
“아들이 하나 내게 잘해준 것이 없어. 속만 썩였고.”
“그럼 왜 제가 아들 같다는 겁니까, 뭔가 안 맞잖아요.”
“응? 제발, 응?”
“하아… 이 동네는 정말 다른 구에 비해서 바퀴벌레가 되게 약삭빨라요. 별도의 지능을 갖추고 있다고 해야 하나? 생명력도 강하고요. SSS급 헌터인 우리니까 이 가격에 가능한 겁니다.”
“아유, 그러지 말고…”
노파의 애원에 사내가 한참을 침묵했다. 그러더니 결국 못 이기고 입을 열었다.
“45만 원. 더는 안 됩니다. 저도 우리 어머니 같아서 이렇게 빼 드리는 겁니다.”
“그래? 그리여, 그렇게 혀. 그런데 그쪽 어머니가 어땠는디?”
“제 돈만 쏙쏙 가져가고 제게 해 준 것 하나 없었어요.”
되로 주고 말로 받은 노파였다. 노파가 울그락불그락하는 사이, 사내가 바깥의 차량에서 짐을 꺼내기 위해 나가며 중얼거렸다.
“5만 원은 마크, 니 추가 수당에서 깐다.”
“싸장님 나빠! 싸장님이 베퀴벌레야!”
***
위아래, 하얀색 방진복에 마스크와 헬멧까지 쓴 사내와 마크가 뒤에 농약 살포제 통을 멘 채 들어왔다. 무언가 그 차림만으로도 든든하게 믿음이 갔다.
“치익, 치익. 아아! 여하간 모든 곳에 특수 약품을 살포하고 마지막엔 일상생활이 가능하도록 깨끗하게 닦아낼 것입니다. 그리고 약품이 퍼지는 동안 실내의 틈새들을 완벽하게 메꾸고 보수할 테니, 어디 가서 식사라도 하고 느지막이 돌아오십시오. 칙, 치익.”
“싸장님, 입으로 치익 치익 소리 왜 자꾸 내요?”
“마크, 어서 안으로 들어가.”
믿음직한 2인조가 안으로 들어갔다. 별달리 할 것이 없어진 노파와 나는 파지와 공병을 수거하기 위해 유모차를 끌고 동네 마실을 나갔다.
***
어젯밤의 사투가 벌어졌던 벽과 음식물 쓰레기통이 놓인 자리.
하얗게 치약물이 말라붙은 가운데, 수십 마리의 커다란 바퀴벌레들이 죽어있었다. 그 끔찍한 모습에 진저리를 친 노파가 서둘러 유모차를 밀었다.
노파가 파지를 줍는 동안, 나는 머릿속의 빚태창을 주시했다.
[종료일 2026년 3월 8일 오후 10시 13분. 현재 순자산 -2,849만 3,170원]빚태창의 숫자는 어느덧 월요일의 폭락 이전으로 점차 회복하고 있었다. 그만큼이나 조은이의 매수 타이밍은 괜찮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오늘 45만 원이 나간다. 거기에 또 조은이의 차비나 점심값, 노파의 밥값까지 더한다면 아슬아슬하게 -2,900만 원을 채울지도 몰랐다.
‘진짜 쉽지 않네…’
“저리 비켜 봐, 이 공병 좀 싣자.”
노파가 내 옆에 낡은 비닐봉지를 내려놓았다.
– 바사사삭!
그때, 비닐봉지 안에서 바퀴벌레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아왈왈왈왈! 아왈왈왈!”
나는 부리나케 바구니에서 뛰어내려 정신없이 짖어댔다.
“아유, 동네 사람들 다 나오것다! 해피야, 조용히 안 혀?”
노파가 화를 내다 내 눈이 향한 곳을 보곤 깜짝 놀라 손에 든 신문으로 그 커다란 바퀴벌레를 때려잡았다. 그리곤 비닐봉지를 꺼내 안의 병들을 확인했다.
“끼이이잉…”
결국 이런 삶 속에서 바퀴벌레는 언제든 다시 집안에 발생할 수 있었다. 가끔 박스에 든 책 뭉치나 다른 고철 더미 등을 주울 때, 노파는 늘 현관 바깥에 쌓아두곤 했다. 그 묶음 사이에 바퀴벌레의 알이 있을 수도 있었고 통조림 캔 안에 바퀴벌레들이 들어가 숨어있을 수도 있었다.
무거운 침묵.
노파가 하는 일, 그리고 바퀴벌레. 꼭 둘이 무조건 연관되어야 할 것은 아니었지만, 이 진득한 삶의 굴레 속에서 그것들이 가지는 이미지는 분명 아주 조금은 맞닿아 있었다.
나는 슬픈 눈으로 노파를 쳐다보았다. 이 일을 그만두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그녀에게 이것은 살기 위한, 생활비를 벌기 위한 활동임과 동시에 자신이 ‘무엇인가 하고 있다’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또 남에게 증명할 수단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이 주는 가치는 얼마 안 되는 돈보다 몇십 배, 아니 몇백 배 더 중요한 것이었다.
다른 일을 쉽게 할 수 있는 나이도 아니었고 그만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공공근로 자리도 쉽게 날 수 없을 것이고 분명 몇 번 나가보다 이게 더 쉽다 싶었을 것이었다.
누군가의 눈에는 도피로 보였을 수도 있다. 그래도 이것을 선택한 데에는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 없을 만큼의 사정과 고민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자신이 선택한 이 일을 노파는 매일 꾸준히 해오고 있었다.
둥글게 만 신문지, 그리고 거기에 묻은 찌부러진 바퀴벌레의 사체.
노파가 그것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
나는 깜짝 놀랐다.
노파가 쌓아놓은 파지를 다시 들어 한쪽 구석에 내려놓았다. 그리곤 공병이 든 비닐봉지도 원래 자리로 내려놓았다.
텅 빈, 엄밀히는 바구니에 내가 앉은 유모차를 끌며, 노파는 여태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끼이이잉…”
‘갑자기 왜 그래요.’
그러나 노파는 말이 없었다.
‘하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아마 다시 바퀴벌레가 생길 것 같은, 아니 분명히 그리될 것 같은 일을 자신 스스로가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뒤늦은 충격이었을 게다. 그리고 그 충격 속엔 ‘왜, 어째서 나는…’이라는 자신에 대한 물음도 숨어있을 것이었다.
“해피야, 가자.”
“왈!”
“아유, 아직 오라는 시간이 되려면 멀었는데… 그러고 보니 아침도 안 먹었네. 우리 해피도 배 안 고프냐?”
“왈! 왈!”
“시장에 가서 오래간만에 순대국밥이나 한 그릇 먹어볼까? 머릿고기 좀 사서 우리 해피도 줘야겠다.”
“!!!”
나는 깜짝 놀라 노파를 쳐다보았다. 평상시라면 있을 수 없는 일, 그러나 노파의 표정은 단호했다. 그 눈빛은 몹시나 단단했다.
***
꿈인지 생신지 모를 머릿고기 포식!
[종료일 2026년 3월 8일 오후 10시 13분. 현재 순자산 -2,850만 9,170원]국밥과 머릿고기 한 접시로 16,000원이 나갔지만 전혀 아깝지 않았다. 오래간만에, 아니 내가 해피로 환생한 이래 노파가 외식한 것은 처음(귀생이에게 뜯긴 것을 제외하고 말이다.)이었다. 게다가 호기롭게 머릿고기 한 접시까지 시켜 바깥에 매여진 내게 놔 줬다.
실컷 먹고 계산을 한 후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마침 작업은 끝나 있었다. 먼지와 약품투성이가 된 방진복과 마스크를 벗으며 사내가 혀를 내둘렀다.
“잘못 불렀네. 45만 원이 아니라 90만 원을 부를 것을.”
“잉? 이미 끝난 일이여!”
“안에 들어가서 확인해 보세요. 제가 하나하나 설명해드릴게. 마크? 외부에 난 틈들 다시 한 번 꼼꼼히 체크하고 주변에 나올 만한 곳이나 모일만한 곳에 남은 약품 다 뿌려 놔.”
사내와 함께 안으로 들어서니 말끔하게 닦인 실내가 눈에 들어왔다. 무거운 농 등 가구도 둘이 끄집어내어 처리한 듯, 조금씩 낯설어 보였다.
“자아, 싱크대 제대로 해 놨고! 여기 배수관 틈도 실리콘 쐈고요. 안에도 독한 약품 뿌렸고 곳곳에도 연고형 살충제 짜 놨으니 염려 없을 겁니다. 바퀴벌레 똥도 다 닦아냈고.”
다음엔 장판.
사내가 장판을 열자마자 본능적으로 우리는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그 안은 쾌적했다.
“완벽하죠? 구석구석 전부 약품으로 닦아놨고 내부, 외부 유입 전부 막았습니다. 자아, 이것 보세요.”
하얀색 비닐봉지에 가득 담긴 바퀴벌레 사체들. 딱 봐도 어마어마해 보였다.
“우리 아니면 절대 못 하는 작업이에요. 저도 마크랑 간만에 생명에 위협을 느낄 정도였어요.”
노파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조은이에게 전화를 걸어 사내를 바꿔주었다. 사내가 상황을 설명하고는 사진 찍어놓은 것을 보내겠다고 한 후 전화를 끊었다.
– 띠링!
곧이어 울린 알림을 확인한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입금 완료됐습니다.”
[종료일 2026년 3월 8일 오후 10시 13분. 현재 순자산 -2,895만 9,170원]‘뭐… 어쩔 수 있나.’
외부까지 확인시키고 떠나려던 사내에게 노파가 얼른 비지밀 두 병을 꺼내 건넸다.
“수고혔어요. 이것 마시고 가요. 응?”
“네, 감사히 마실게요. 혹여 또 나오면 연락 주세요. 1년 안에 무상 AS 들어가니까.”
노파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음식물 쓰레기통 주변과 벽면, 하수구 주변으로 남은 약품을 도포하던 마크가 비지밀 병을 들고 밝게 웃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