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41
42. 변화의 시작(2)
다음 주 일요일에 촬영 약속이 잡혔다.
걸덕이는 예고 영상을 빨리 만들어야 한다며 나와 조은이의 사진, 그리고 짧은 영상 몇 개를 부탁했고, 조은이는 예전 공원에서 찍은 사진들과 내가 팔짝팔짝 움직이는 모습과 말표 사료를 심드렁하게 씹어 먹는 모습 몇 개를 찍어 보냈다.
“해피야, 누나 잘하는 거겠지? 무한 리필 고기부페 오픈했습니다!”
조은이는 나에게 물음과 동시에 이제 막 출구에서 나온 남자에게 전단지를 나누어주었다. 워낙 타이밍이 기가 막혀 ‘잘하는 거겠지?’라는 물음이 방송 출연을 말하는 것인지, 전단지를 나누어주는 모습을 말하는 것인지 헷갈렸다.
도로 건너 맞은편 출구에선 노파가 머리에 보자기를 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전단지를 나누어주고 있었다.
오늘은 일요일, 마침 한 명 더 필요하다는 말에 옳다구나 싶어 조은이가 냉큼 지원한 것이었다.
“가면 뭘 해야 할까? 너무 떨지만 않으면 좋겠다. 무한 리필 고기부페, 쇠고기 맛있어요!”
조은이가 올라오는 커플에 재빨리 전단지를 내밀었다.
“어? 안조은!”
“에? 아, 송희야! 오래간만이다!”
조은이가 전단지를 집어 든 커플 중 또래의 여자를 보며 깜짝 놀랐다. 여자 또한 조은이의 팔을 잡으며 반가워했다.
“우와, 조은아! 졸업하고 처음이다! 연락 좀 하지!”
“야, 야! 연락은 너도 할 수 있었잖아! 음하하.”
“그나저나 여기서 뭐해? 이건 뭐야?”
송희와 남자친구의 눈이 조은이가 쥐여준 전단지로 향했다.
“아, 나 아르바이트하고 있지. 세 시간에 삼만 오천! 이거 저기 봐봐, 저기 세종 빌딩 보여? 아오, 저 빌딩에 안 좋은 추억이 있지. 등골젠!”
“등골젠?”
“아니아니, 그게 아니라 여하간 저 빌딩 4층에 [처묵소 프리미엄 쇠고기 뷔페]라고 쓰여있지? 거기 전단지야. 이거 가져가면 쇠고기 초밥 4조각 서비스래. 그리고 SNS에 태그하면 음료수 한 병 공짜.”
“와아, 역시 부지런하다, 안조은. 그나저나 너 한강 대학교 갔댔지! 빡세지 않아? 어때?”
“아이고, 공부야 다 똑같습니다. 빡센 건 이 전단지 안 받아 가는 사람들이 빡세고요.”
그때 송희의 남자친구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더니 조은이와 옆, 전봇대에 매여 있는 날 번갈아 쳐다보았다.
“저기, 송희야. 송희 친구야?”
“아, 조은아 이렇게 인사하는 것도 되게 웃기다. 내 남자친구. 학교 선배야. 나 CC지룽~!”
“아이고 우리 송희, 장하다! 참 좋은 청춘입니다요. 그래, 어쩐지… 데이트 하느라 연락이 없었구만. 저는 안조은이고 송희 고등학교 친구예요. 밥 안 먹었으면 얼른 이거 들고 처묵소 가보세요. 혹시 알아요? 1번 출구에서 안조은이 나눠준 전단지 들고 왔다고 쇠고기 초밥 두 조각 더 줄지.”
넉살 좋은 조은이를 한참 쳐다보던 남자가 조심히 물었다.
“혹시 그, 광고 나오신 분 아니에요? 한강대 광고녀.”
“네, 네에? 무, 무슨 녀요?”
순간 조은이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리고 심하게 말을 더듬거렸다.
물론 걸덕이와의 전화로 인해 자신이 꽤 여기저기 알려졌다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을 직접 만나게 된다는 건 예상치도 못한 일이었다.
당황한 조은이를 본 송희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남자친구를 쳐다봤다.
“요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자주 나오거든. 그리고 이 강아지, 해피!”
“왈!”
‘맞소!’
나는 나를 알아봐 준 이 훈남을 향해 맹렬히 한 번 짖고는 형광색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아, 실제로 보니 더 못생겼네.”
“끼이잉…”
훈남은 송희에게 핸드폰을 열어 재빨리 몇 가지를 검색해 보여주었다. 그걸 본 송희가 깜짝 놀랐다.
“어머! 너 광고 찍었어? 나야 별로 TV나 다른 것 신경 안 써서 몰랐는데, 안조은! 대박이다.”
“으, 으하하하… 페이가 쎄서 찍었는데, 사실 해피가 찍은 거고 나는 겉절이야, 겉절이.”
“겉절이 수준이 아닌데? 우와, 이 강아지가 저 짤방의 그 강아지?”
송희가 가만히 나를 내려다보았다.
“왈!”
“되게, 음… 파이팅스럽게 생겼다!”
“그, 그렇지?”
‘뭐가 그렇지냐!’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조은이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조은이는 완전히 당황한 채 허둥지둥 이 상황을 모면하려 애를 쓰고 있었다.
“저, 저기! 송희야, 나 아르바이트하는데 자꾸 이러고 있으면 저 4층에서 매니저가 매의 눈으로 쏘아볼지 몰라! 얼른 데이트해! 밥 먹으려면 4층의 처묵소! 그 전단지 가져가면 쇠고기 초밥 4조각! SNS 해시태그 달면 음료수 한 병 공짜!”
“야야, 저기서 여길 어떻게 본다고. 그나저나 우리 조은이 완전 인기녀다! 우리 오래간만에 만났는데 사진 찍자. 응? 내 SNS에 올려야지? 조은이 나랑 친구라고! 그리고 이 해피도 봤다고!”
조은이의 난감한 표정은 나 몰라라 한 채 송희는 남자친구에게 핸드폰을 건넨 후 나를 덥석 안아 들곤 조은이 옆에 섰다.
“안조은, 사랑해애~!”
“으, 응. 나두~!”
어쨌거나 친한 친구가 알아봐 주고 함께 사진을 찍자는 것을 조은이가 마다할 리는 없었다. 당황한 기색은 금세 사라진 채, 조은이는 송희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다음엔 조은이 네가 해피 안고, 내가 옆에서 하트 할게!”
“응, 그래!”
그렇게 몇 컷을 더 찍은 후 송희는 지금 처묵소로 가겠노라며 조은이와 내게 ‘파이팅!’을 외쳤다.
“그래, 파이팅! 이따가 내가 돈 받으러 올라갈 때까지 너 있었으면 좋겠다.”
“언제 끝나는데, 알바?”
“두 시간 후?”
“야야, 두 시간 동안은 못 먹지! 암튼 연락할게! 이렇게 보니까 진짜 좋다.”
“아니면, 나 금, 토요일은 오후에 10시까지 숭한 사거리의 카페로제에서 알바 하거든? 언제 놀러 와. 휘핑크림 가득 올려줄게. 푸하하하!”
“그래, 꼭 놀러 갈게! 안조은, 아자!”
송희와 훈남은 웃으며 조은이와 내게 손을 흔든 후 처묵소 방면으로 떠나갔다. 한동안의 폭풍이 지나가 조금은 숨을 튼 조은이가 나를 내려놓고는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 해피, 누나 따라 알바도 나오고! 엄청 착해. 아까 안 놀랐지?”
“왈!”
“그래, 그럼 하던 것 마저 해야지. 안녕하세요, 이거 받아가세요! 무한 리필 고기부페 오픈했습니다! 처묵소에 전단지 들고 가시면 쇠고기 초밥 드려요오!”
조은이는 아까와 전혀 다르지 않은 얼굴과 움직임으로 재빨리 전단지를 챙겨 들고 오가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
역시 조은이가 생글생글 웃으며 적극적으로 나누어주다 보니 이쪽의 소진이 훨씬 빨랐다. 조은이는 나를 안고 횡단보도를 건너 맞은편의 노파 쪽으로 향했다.
“끼이이잉…”
나는 움츠러들었다.
보자기를 쓰고 코끝까지 마스크를 올린 노파가 세상 음흉한 모습으로 전단지를 건네고 있었다.
“맞은편 고깃집. 좋슈.”
“받아봐유. 고기 확실혀유.”
“고기. 무한 리필 쇠고기!”
아직 가득 남은 전단지. 조은이가 한숨을 쉬곤 노파의 전선에 참전을 선언했다.
“할머니, 그거 이만큼 이리 줘봐. 그리고 해피는 여기 잠시 묶어둘게. 가만히 있어?”
“왈!”
날 전봇대에 묶은 후, 조은이는 노파의 전단지를 빼앗아 부지런히 오가는 이들에게 나누어주기 시작했다. 세상 음침한 노파의 손길과 목소리완 다르게, 몇 옥타브는 높은 듯한 조은이의 목소리와 활력이 오가는 이들의 손에 전단지를 팍팍 안겼다.
결국 오래 지나지 않아 노파의 전단지도 바닥이 났다.
오늘 가지고 온 전단지를 모두 뿌린 조은이와 노파가 기세 좋게 4층 처묵소로 향했다.
“7만 원! 둘이 세 시간 해서 7만 원! 대박.”
“아유, 조은이 네가 혼자 다 했지! 고생이여.”
“해피가 도와준 거지. 나 힘 내라고 응원도 하고. 하하하!”
긍정 에너지가 폭발한 가운데, 엘리베이터가 4층에 도달했다. 그리고 문이 열리는 순간, 조은이와 노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문 바깥으로 길게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 그 사이로 사장이 ‘87번, 87번 몇 분이세요? 두 명! 두 명 자리!’하고 안에다 대고 외치고 있었다.
“할, 할머니. 여기 이렇게나 장사 잘 되는 곳이었어요?”
“이렇게 잘 되었으면 전단지를 뿌렸것냐. 신기허네. 전에 돌릴 땐 안 이랬는데.”
그때 대기 손님을 체크해 안으로 들여보내던 사장이 노파와 조은이를 보곤 황급히 뛰어왔다.
“세상에, 오늘 덕분에 대박 났어요! 1번 출구, 1번 출구에서 나누어 준 사람이 누구야? 학생이야?”
“네? 네에.”
“뭘 어떻게 나누어준 거야? 다들 1번 출구에서 받고 왔대. 내가 갑자기 사람이 몰려오기에 물어봤다니까.”
사장이 싱글벙글 웃더니 봉투에 5만 원짜리 두 장을 담아 주었다.
“오늘 아주 미어터지네. 보너스로 더 넣었어요. 수고했어요. 필요하면 또 전화할게요!”
“아아앗! 감사합니다!”
조은이가 깜짝 놀라 봉투를 받곤 고개를 숙였다.
[종료일 2026년 3월 8일 오후 10시 13분. 현재 순자산 -2,799만 6,880원]드디어 앞자리가 -2,800만에서 -2,700만으로 줄었다!
나는 기쁘기가 그지없었다. 무언가 확 줄어들지는 않아도 분명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에는 틀림이 없었다. 게다가…
사장이 잠깐 기다리라 하더니 안에 들어가서는 비닐봉지를 하나 가지고 나왔다.
“이거. 우삼겹이랑 등심, 토시살, 갈빗살 조금씩 담았으니 집에 가서 구워 드시든지 찌개에 넣어 드시든지 하세요. 어르신 고생하셨어요, 학생도 오늘 너무 수고했어. 다음에 또 부탁해요!”
뜻밖의 횡재.
조은이의 웃는 모습과 적극적인 아르바이트가 이런 엄청난 복을 양쪽에 가져온 것이었다. 사장에게 거푸 인사를 하곤 조은이와 노파는 어안이 벙벙한 채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다.
“대박, 대박…! 돈도 3만 원이나 더 받았는데 쇠고기도 이렇게 많이 싸 주셨어! 할머니, 오늘 우리 이거 구워 먹자!”
“그리여, 그리여! 우리 조은이 양껏 먹어야지! 실컷 먹어라, 할매가 구워줄게. 남은 걸로는 찌개도 끓이고.”
“아싸! 오늘 나도 엄청 먹고, 할머니도 엄청 먹고, 해피도 엄청 먹고!”
“개한테 쇠고기 같은 것 주는 거 아니여. 사람 먹는 것 개가 먹으면 큰일 나.”
“아왈왈왈! 왈왈왈!”
깡통에 든 강아지용 고기 통조림에도 ‘Beef’라 쓰여 있는데, 도대체 저 노파는 무슨 소릴 하는지…
여하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모두가 즐거운 기분이었다. 중간, 송희가 보내준 아까 찍은 사진까지 보며 노파와 조은이는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진짜로 나랑 해피를 알아보더라니까?”
“조은이 너랑 해피가 그리 유명하다고?”
“그렇다니까? 다음 주에는 방송도 찍어. 인터넷 방송.”
“그리여? 그건 몇 번 틀어야 나오냐! 아유, 해자 할미에게도 자랑 좀 혀야것다.”
“아니, 그런 방송 아니고…”
“왜, 그때 그 방송국 사장이라는 총각이 전화한 것이 그거 아니여?”
“방송국 사장 아니라고오!”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대화. 그러나 정말로 다이내믹하기 그지없는 몇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나는 조은이의 육탄 방어와 주도면밀한 작전 아래 갈빗살과 등심을 실컷 먹을 수 있었다.
갑작스럽게 뱃속에 기름칠을 가득 해서 그런 것인지, 한 이틀은 설사로 고생을 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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