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48
49. 이모(1)
[종료일 2026년 3월 8일 오후 10시 13분. 현재 순자산 -2,610만 7,550원]방송에 대한 정산금이 입금되었다.
이번 주 내내 기말고사 준비로 정신이 없었던 조은이가 통장을 확인하곤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훌쩍였다.
“끼이이잉…”
내가 환생한 지 3개월.
아직도 빚태창은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었다. 하지만 처음 내 머리에 빚태창이 떴을 때의 금액을 난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3,750만 2,230원’
무려 1,140만 원이다. 어마어마한 금액이 줄어들었다.
거기엔 공익광고 촬영비, 펜션 촬영비, 상금, 방송 수익, 아르바이트비, 주식에 대한 수익 등이 모두 포함되었다. 아 참, 내가 선물한 80만 원도.
조은이는 빚태창의 정확한 숫자를 모를 것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자신의 통장과 주식계좌에 찍힌 평가액을 통해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를 충분히 느끼고 있을 것이었다. 그보다 더 값진 보상이 어디 있으랴.
“흐흑, 나 뭔가 되게 열심히 한 것 같기는 해. 그런데 그 이상으로 큰 행운이 찾아온 것 같아. 해피야, 그렇지?”
“왈!”
“이젠 갚아도 될 것 같아, 이모에게 빌린 돈. 당장 전셋값은 아니더라도 내 첫 등록금을 내 주신 것은 돌려드릴 수 있게 됐어. 2학기도 면제받았으니 지금 드릴 수 있을 때 드리는 게 도리겠지?”
‘아, 그렇다면…’
솔직히 말하자면 잠시 보류하라고 말하고 싶었다.
주식계좌에 있는 주식 평가액과 잔액, 그리고 조은이의 통장에 있는, 이번에 입금된 방송 수익까지 더해진 400여만 원의 돈을 합치면 정말로 1,100만 원이 넘었다.
시드머니로서는 더 이상 완벽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이제 20살 아닌가. 하루에 1%의 수익이 나도 11만 원이 오를 것이었다. 2%면 22만 원이다. 물론 내려갈 때도 그만큼의 금액이 빠지겠지만 적어도 이 정도의 큰돈을 다시 모으는 것은 쉽지 않았다.
450만 원의 1%와 1,100만 원의 1%, 두 배가 훌쩍 넘는 차이였다.
‘하다못해 조금만 더 불리고 갚아도 되지 않겠어?’
나는 조은이의 손을 발로 긁었다. 450만 원에서 다시 상징적인 1천만 원을 채우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방학부터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생활비로도 그만큼 나가는 법이었다.
“할머니! 잠깐만!”
나를 쓰다듬던 조은이가 바깥에 대고 노파를 불렀다.
온몸에 부덕한 향기를 내뿜으며 노파가 등에 효자손을 꽂은 늠름한 모습으로 들어왔다.
“잉, 왜 그리여?”
“저기, 할머니. 이것 좀 봐봐.”
노파는 조은이가 가리킨 화면을 봤으나 정확히 어디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몰랐다. 알아듣기 힘든 단어의 나열과 숫자들, 그리고 그래프들이 노파를 어지럽게 했다.
“잉, 할매는 이런 것 봐도 몰러.”
“이 아래 숫자 있잖아, 760만 원.”
“잉? 이것이 그런 돈이냐? 어디 보자. 일,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 잉 그러네. 아유, 이 돈이 누구거여? 누구 돈이 이렇게 많어?”
“그리고 지금 내 통장에 380만 원 정도 있어. 얼마 전에 방송했었잖아, 그 돈이 들어왔거든.”
“오메! 이게 지금 니 돈이여? 전부?”
노파가 깜짝 놀라 조은이를 쳐다보았다. 조은이가 배시시 웃었다.
“놀랐지?”
“시상에, 뭘 그리 열심히 하고 있는가 혔더니. 어째 광고로 돈을 벌고도 이 할미를 안 주고 있는가 혔더니 이렇게나 많이 모아버렸네.”
“그래서 나, 이모가 내준 1학기 등록금 있잖아. 나중에 졸업하고 갚으라 했던 것, 그거 돌려드리려고.”
“그, 그러냐.”
노파가 머뭇거렸다. 나 역시 노파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노파로서는 당장 그 돈을 쓰지 않더라도 조은이가 계속 가지고 있기를 바랄 것이었다. 생활비로 쓴다고 해도 든든하기 그지없었다.
“어차피 나랑 할머니랑 열심히 일도 하고, 곧 나도 방학 동안 종일 알바 자리 찾을 테니까. 졸업할 때까지 갚아야 할 돈을 계속 떠올리며 모든 것을 계산하기도 그래. 당장 전세금까지야 못 갚지. 그래도 등록금은 갚아드리고 싶어.”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야 할매가 뭐라 그러것어.”
“대신 남은 돈에서 할머니 절반 드리려고. 200만 원! 그것으로 할머니 병원도 가고 관절약도 사자! 응? 맛있는 것도 먹고.”
잠깐 침묵이 흘렀다. 노파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니 돈이여. 할매는 알아서 열심히 애끼고 벌어서 니 묵이고 입힐 테니께, 그 돈 나 하나도 필요 없어.”
“왜애, 준다고 해도 싫어해? 당장 쓸 데도 많잖아.”
“그거야 나라에서 나오는 것이랑 내가 버는 것으로 당장 굶진 않잖여. 내가 더 많이 돌아다녀도 될 것이고. 그러니 그 돈은…”
노파가 머뭇거렸다.
“그 돈은 나중에 우리가 여기 나갈 때 보태 쓰거나 할매 없이 조은이 니 혼자 남았을 때 써야 혀.”
“무슨 소리가 그래?”
“손녀헌티 아직 돈 안 받아도 된다, 이 말이여! 그리고 이모 집에는 언제 갈려고?”
“토요일 오전에. 다녀와서 오후에 카페 알바 가야 하니까.”
“잉, 그리여. 할매는 못 간다. 니가 잘 갔다 와. 안부 전하고.”
그 말에 조은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 할머니도 같이 가면 좋지.”
“공부만 하기에도 바쁜 손녀를 이렇게 일까지 하게 만드는 할매가 뭔 낯짝이 있다고 가것냐.”
“아이, 정말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라니까 그러네. 할머니가 나 맡아서 얼마나 애지중지 키워주셨는데 말을 꼭 그렇게 하고 그래.”
“차라리 그 집에 갔으면 네가 더 나았겠지.”
“할머니, 그런 생각은 이제 정말 그만하시고. 여하간 그렇게 알아요. 마침 매도할 때도 됐다 싶어서 미리 매도해 놨었어.”
조은이가 밝게 웃었다. 그리곤 주식계좌의 돈을 바로 통장에 이체했다.
***
토요일 아침, 노파가 차려준 밥을 뚝딱 해치운 조은이는 나를 씻기기 시작했다.
“고놈의 똥개는 뭐 하러 데려가냐.”
“어허! 이래 봬도 이렇게 돈 번 것, 우리 해피 공이 얼마나 큰데요? 우리 대견한 해피, 이렇게라도 바깥 공기도 쐬고 둘이 데이트도 해야지.”
“나 준다는 200만 원으로 저 보기 흉한 불알 확 떼버려라. 그 돈이면 열 번은 떼었겠다.”
“아왈왈왈! 왈왈!”
‘거 자꾸 일을 만들려 하시네!’
“어허! 다 알아보고 있거든요?”
“!!!”
나는 깜짝 놀라 조은이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조은이는 ‘헤헤’거리며 웃기만 할 뿐이었다. 이윽고 뜨거운 드라이기의 바람이 내 몸을 말렸다.
“빈손으로 그냥 가는 것 아니여. 들어가기 전에 과일이라도 사 가는 거여.”
“잘 할 테니 염려 마세요, 으이구! 손녀를 이렇게나 못 믿어!”
조은이가 자신만 믿으라는 듯 ‘아자아자’ 하며 외치곤 나를 가방에 넣었다.
토요일 오전, 벌써 훌쩍 다가온 여름인지라 더위가 만만치 않았다. 가뜩이나 답답한 가방 안은 금방 더운 공기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 헥! 헥! 헥! 헥!
“덥지, 조금만 참아. 응?”
“왈!”
조은이도 오늘따라 내 가방이 꽤 무거운지 이마에 땀을 훔치며 역까지 도착한 후 잠시 앉아 쉬었다. 시원한 생수를 사 나누어 마신 우리는 플랫폼으로 내려가 서쪽으로 향했다.
“설날 때 뵙고 벌써 반년 만이다. 그치? 그때 정말 감사했는데.”
“끼잉, 낑.”
나야 내가 환생하기 전이니 모르는 이야기였다. 다만 조은이가 정말로 이모라는 이에게 감사해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냥 말로만 들어도 좋은 분인 것은 확실했다.
‘어쩌면 상당히 좋은 환경에 계실지도…’
곧이어 내린 역 주변은 온통 고급스러운 아파트로 가득했다.
‘상당히 좋은…이 아니라 아주 진짜 좋은 환경인데?’
나는 깜짝 놀랐다.
조은이는 익숙한 듯, 한 단지의 상가로 들어가 과일 한 박스를 샀다.
“저기, 죄송한데 쉽게 들고 갈 수 있게 묶어주실 수 있나요? 제가 강아지 가방도 들어야 해서요.”
“물론이죠, 잠시만요.”
직원이 박스를 묶는 동안 조은이는 화려한 아파트 단지를 둘러보았다. 그 눈에 선망의 빛이 어렸다.
이윽고 직원이 내민 과일상자를 힘겹게 든 채, 조은이가 한 동의 입구에 서서 출입구의 인터폰을 눌렀다.
[여보세요?]“이모, 조은이요!”
[응, 어서 와!]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선 조은이는 엘리베이터 19층을 눌렀다. 그리고 곧이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미리 열어놓은 문 안으로 들어섰다.
화려한 아파트.
아니, 실제로 이게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30년간 생활하면서 단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던, TV에서나 보던 아파트였다. 커다란 그림과 고급스러운 장식장, 어항. 넓은 거실 한가운데의 대리석 탁자. 소파.
안은 이미 시원하게 에어컨이 틀어져 있었다.
“이모!”
“잠깐만, 음식 올려놓은 것 불 좀 줄이고!”
유쾌한 소리와 함께 곧이어 한 중년의 여성이 다가왔다. 기품 있어 보이는 얼굴의 여성이었다.
“아유, 개도 있는데 무겁게 이것까지 들고 왔어? 학생이 무슨 돈이 있다고 이런 거 사 오지 말라니까.”
“아하하하, 아니에요.”
“얘, 해피는 어째 더 요란해졌니?”
조은이가 가만히 가방을 열었다. 그러나 나는 낯선 환경에 위축되어 바깥으로 나오지 못했다.
“왜 그래, 해피야! 잘 뛰어다녔으면서.”
“화장실에 배변패드도 깔아놨구만. 갑자기 얌전이네? 그나저나 밥은!”
“점심은 아직이요.”
“그래, 같이 먹으려고 차려놨어. 네 이모부는 낚시 갔어.”
이윽고 식탁에 갈비찜과 잡채, 그 외 다양한 반찬이 차려졌다.
“개를 안 키우니 사료도 없잖아? 그래서 갈비 삶은 것 몇 개 건져놨어.”
“와, 왈!”
‘감사합니다!’
내가 게걸스럽게 발골 작업에 열중하는 동안, 조은이와 이모는 식사를 했다. 식사를 하며 여태 있었던 일들, 특히 광고 촬영과 방송 출연, 투자 등을 이야기하자 이모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하다, 조은아. 너는 머리가 아주 좋은 아이야. 나는 알거든. 정말 잘 됐다.”
“뭐, 열심히 하다 보니까요. 하하하.”
“그래, 할머님은 잘 계시고?”
“그럼요.”
“아직까지 내 욕 하시는 건 아니니? 너 뺏어오려 했다구. 아하하하.”
“에이. 제가 선택한 거잖아요.”
대충 알 것 같았다. 어린 조은이를 두고 언니의 딸, 즉 조카이기에 더 나은 환경에서 책임지려 했던 이모와 손녀이기에 자신이 거두려 했던 할머니 사이에 다툼이 있었으리라. 그리고 조은이가 선택한 것은 할머니이리라.
그것을 감안한다면 이모가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 한 것이 이해가 되었다. 노파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조카를 돕기란 조심스러웠을 것이다.
“뭐, 지금처럼 열심히 하면 좋은 날이 오겠죠! 이모, 저 이제 시작이에요! 스무 살!”
“그래, 그렇지. 언니도 진짜 이렇게 조은이가 바르고 예쁘게 큰 것을 봐야 하는데…”
밥상 앞에 침묵이 흘렀다.
조은이가 간신히 운을 뗐다.
“하늘에서 보고 계시겠죠, 아빠랑.”
“그래. 당연히 그럴 거야. 내가 형부 만나는 건 정말 반대했었는데, 그래도 사람이 좋아 만난다는데 뭘 어쨌겠어. 좋은 사람이긴 했어.”
이모의 표정이 씁쓸했다. 나는 갈비뼈를 훑으며 힐끔 조은이를 쳐다보았다. 마치 죄인이 된 것처럼 조은이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2학기 준비는 잘 되고? 등록금은?”
“아! 맞다, 저 2학기 등록금 면제받았거든요? 우리 해피가 사기꾼을 잡았는데요!”
조은이의 열띤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모가 맞장구를 치고 박수도 쳤다. 그리곤 뼈를 핥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대단하다, 해피가. 그러고 보니 1월에 봤을 때랑 분위기가 완전 달라진 것 같아.”
“그래요?”
“뭔가 다른 개 같기도 하네? 엄청 성장했나 봐.”
“에이, 이미 10살이나 됐는데.”
“아니, 크기를 말하는 게 아냐. 이모가 이래 봬도 사업하는 사람이라 이런 눈은 어디 안 간다?”
날카로운 눈이 나를 예리하게 노려보았다. 무언가 불안해진 난 고개를 스윽 돌렸다.
“더 못생겨진 건 맞네.”
“왈! 왈!”
“아하하하, 아 참! 이모, 저기 있잖아요…”
조은이가 가방에서 봉투를 꺼냈다.
“이게 뭐야?”
“저 1학기 등록금 내주신 거요. 이번에 촬영도 그렇고 주식도 그렇고, 제가 어느 정도 목돈을 모았거든요. 1학기 잘 다녔으니 이제 돌려드릴 때가 되었다 싶어서요.”
이모가 흐뭇하게 조은이를 바라보았다.
“나 이거 받을 생각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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