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53
54. 폭풍 전에는 늘 고요하다
도화선녀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
도화선녀는 다 터진 대파와 부러진 우엉을 들고 사천왕상처럼 주변을 향해 눈을 부라리며 걷고 있었다.
“짤랑짤랑! 입으로 내는 방울 소리에도 간절함이 붙으면 진짜 방울이 됩니다, 짤랑짤랑!”
그 뒤로 어깨를 추욱 늘어트린 조은이와 내가 망자의 혼령처럼 따라갔다. 창피해 죽을 것 같았으나 여하간 우리를 구해준 이였고 맥시봉을 준 이였다.
“저기, 아주머니!”
“천상삼기일월성, 통천투지귀신경! 어허! 난 도화선녀라고 해. 난 선녀야.”
“아, 네. 도화선녀 아주머니.”
“휴우… 그래, 왜?”
포기했다는 듯 도화선녀가 뒤를 돌았다. 조은이가 슬그머니 옆으로 다가섰다.
“물 조심…이 뭐예요?”
“어? 그게 뭔 소리니?”
도화선녀는 진심으로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오히려 당황한 것은 나와 조은이였다.
“아니, 아주머니가 아까 공원에서 저를 겁주던 애들을 그 대파와 우엉으로 마구 때리시더니 갑자기 절 보고 물 조심하라고 하셨잖아요.”
“어머, 내가 그랬어? 이상하네. 그분이 오셨다 갔나 보다. 가끔 조상신 말고 엄청난 장군신이 슬쩍 왔다가 나갈 때가 있거든. 나도 기억 못 하는 말을 할 때가 있어. 뭐 반은 맞고 반은 틀리지만.”
“그래서 물 조심이 뭔가…”
“물 조심해서 나쁠 것 뭐 있니? 하여간 우리 개령님 잘 모셔. 이거 하늘이 내려준 인연이야. 똥꼬가 뭘 하더라도 가만 내비두고. 알았지?”
“아, 네…”
도화선녀는 집 앞에 도착해서 웃더니 엉망이 된 대파를 내밀었다.
“이, 이건 뭐예요?”
“지금 네게 필요할 거야.”
“네?”
“야, 사골 끓인 게 여기까지 냄새가 진동한다. 대파 많이 넣어 먹어. 피 맑게 해줘. 알았지?”
김이 팍 새버린 우리를 두고 도화선녀는 정체 모를 경문을 외우며 우엉을 허공에 대고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뒤로하고 우리는 집으로 내려왔다.
“뭔 산책을 이리 오래 혀? 그리고 그 손에 든 대파는 뭐여? 아주 박살이 났네.”
“아, 저 앞에 점집 아주머니가 줬어. 필요할 거래서.”
“야, 용하네. 그러지 않아도 아까 저녁에 넣어 먹은 게 끝이라 대파 좀 사려 했는데. 하여간 요상한 사람이랑 말 섞는 것 아니여.”
글쎄, 내 생각에는 이 노파보다 저 도화선녀가 백 배는 더 정상으로 보이긴 했다.
조은이는 다시 컴퓨터를 켜곤 예전에 찍은 사진과 걸덕이와의 방송 URL 등을 SNS에 올리곤 다시 공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무엇이 생각났는지 검색창을 열었다.
조은이의 품에 앉은 나는 조은이가 입력하는 단어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해피 똥꼬] [로이와 두찌 해피 똥] [해피 똥 싸는 모습]“푸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
이윽고 나온 검색 결과에 조은이가 눈물을 흘리며 배를 잡고 웃었다. 나는 화면 가득 뿌려진 썸네일들을 보며 정신이 하늘로 승천할 뻔했다.
하나하나 일일이 클릭해보던 조은이가 웃다가 숨이 막혀 가슴을 쳤다.
“컥! 컥! 커헉!”
“아유, 얘가 왜 이래! 조은아, 무슨 일이야!”
“아, 아하하하! 할머니, 이거 봐봐.”
조은이가 서둘러 마우스를 움직여 예전 라이브 방송 편집본을 열었다. 그리고 내가 똥을 싼 장면을 찾기 시작했다.
“아유, 여기가 방송국이구만! 가만히 있어 봐, 처음부터 보자. 우리 이쁜 조은이, 아유. 요 똥개는 귀가 왜 이렇게 요란혀.”
“아왈왈왈왈! 왈왈!”
‘당신이 5회분을 한 번에 다 썼잖아!’
“아냐, 아냐. 나중에 보시고요. 지금 중요한 건 여기, 여기!”
그리고 플레이된 영상.
내 엉덩이가 크게 확대되더니,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장면이 터져 나왔다.
[으, 으아아아아!]의자에서 벌떡 일어난 조은이가 허둥지둥 가방에서 물티슈를 꺼내 들고 내게 뛰어왔고, 나는 뒤이어 일어난 참사를 깨닫고 얼어붙은 채 겁먹은 눈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며 계속 똥을 쌌다.
[해, 해피야! 해피야!] [깨애애앵! 캥! 캥!]내 똥꼬를 닦아주는 조은이와 자괴감에 울부짖는 나, 펄럭이는 형광색 귀와 꼬리. 그리고 웃음을 참느라 얼굴이 용광로처럼 달아오른 걸덕이.
“쟤가 니 남자친구냐? 방송국 사장?”
“아, 아니라니까! 봐봐!”
[아, 와! 로이와 두찌 채널 사상 최고의 방송사고가 터졌습니다, 여러분 그렇죠? 진정하세요, 진정하세요! 푸훕!]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우리 해피가 많이 급했나 봐요, 아까 메이크업 받을 때 배변판 있는 휴게실에 두긴 했는데! 죄송합니다! 중요한 방송에서 해피가 똥을 싸서 죄송합니다!] [아하하하, 아! 미치겠다. 조은 님, 괜찮아요! 그렇게 사과하실 것 아니니 제발 이리 와서 앉아요, 크흐흐흐.]영상을 가만히 본 노파가 조은이의 품에서 나를 뺏어 들더니 내 엉덩이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요, 요 똥개가! 귀한 자리에서! 방송국 사장님 앞에서 사람 창피허게 똥이나 싸 대고!”
– 퍽! 퍽!
“깨앵, 깽! 깽!”
“요 똥꼬가 문제여! 요 똥꼬가! 우리 조은이 창피하게 똥이나 퍼질러 싸고! 니가 한 게 뭐가 있냐! 우리 방송국 사장님, 조은이 남자친구 앞에서! 집안 망신을 시키고!”
“할머니, 그만! 정말 왜 그래? 그런 것 아니라니까? 아니, 알지도 못하면서 왜 해피를 때리냐고! 이게 다 해피 덕분에 나간 방송인데.”
“더 때려서 버릇을 고쳐놔야 혀! 어디 가서 똥 안 싸게!”
“깨애애앵!”
나는 서러워서 울부짖었다. 가뜩이나 사람들 앞에서 똥을 싼 것도 창피하고, 그것이 저렇게 수없이 플레이되고 재생산되는 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꼬상권을 무시하는 이런 처사 속에서 가장 큰 견권유린을 당한 것은 나인데!
“그만해! 때리라고 이거 보여준 게 아니잖아. 이것 봐봐. 사람들이 이 똥 싸는 부분만 따서 이렇게 만들었다니까?”
노파에게서 나를 뺏어 든 조은이가 더 미웠다. 이 집에 온 이후, 처음으로 조은이가 노파보다 미운 순간이었다.
그러나 조은이의 품 안에서 꺽꺽대며 울던 나는 조은이가 연달아 눌러대는 것을 보곤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헥헥헥헥! 키헥헥!”
“그치? 해피야, 네가 봐도 재미있지?”
중요한 영화나 드라마의 클라이맥스가 나오기 직전, 딱 끊기고 내가 똥을 싸는 모습으로 이어지거나 그 외 여러 잡다한 사진 속에 내가 똥을 싸는 모습이 합성되어 있었다. ‘국똥견’, ‘개똥견’, ‘똥싸견’ 등 다양한 별명이 붙여져 있었다. 심지어 ‘도사견 vs 똥싸견’ 같은 기괴한 질문도 올라와 있었다.
리플도 다양했다. 대부분이 내가 광고에 나온 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여전히 불쌍하기 짝이 없다는 말부터, 이제 저 개 얼굴 들고 길거리 못 다닐 것이라는 둥, 벌써 해외에도 밈으로 퍼지기 시작했다는 둥 보통 난리가 아니었다.
‘야아, 진짜 똥꼬가 한 건 했네.’
나는 신기한 눈으로 여러 글들을 계속 쳐다봤다. 조은이는 아직도 킥킥대고 있었다.
“뭣이 좋아? 나는 창피해서 못 보겠다. 인자 해피 데리고 밖에 안 나갈란다. 누가 ‘저 개가 방송국에서 똥 싼 개요?’하고 물으면 우리 집 개 아니라고 할란다.”
“왈! 왈!”
‘제발 그러세요!’
노파는 혀를 쯧쯧 차며 ‘당장 갖다 버려야겠다’라며 중얼거리곤 조은이의 방을 나갔다.
한참을 웃던 조은이가 몇 개의 GIF 파일들을 저장해 SNS에 올리곤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그래도 딱 끊고 집중할 때엔 완벽하게 집중하는 조은이였다. 그렇게 한참을 책과 영상을 번갈아 바라보다, 주식 매매 프로그램을 열고는 참가 신청 페이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름, 주민등록번호, 실명 확인,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 최초 투자금…
하나하나 채워나가던 조은이의 손이 마지막 작성란에서 멈췄다.
[대회에 나서는 이유]“흐음…”
깜박이는 입력창을 바라보다 조은이가 침을 꿀꺽 삼키곤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예전에 할머니와 우리 집 강아지 해피랑 뒷산 산책을 하다 멋진 아파트가 지어지는 현장을 바라본 적이 있어요. 그런 집에서 하루라도 살아보고 싶습니다. 제게도 그런 목표를 이룰 능력이 있는지, 간절함이 깊어지면 그것이 노력이 되고 능력이 되는지 알고 싶습니다.그리고 저를 믿어주시고 응원해주시는 고마운 분들에게, 그 믿음과 응원이 절대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멋진 출사표였다.
***
늦은 밤까지 정신없이 공부를 한 후, 조은이는 자리에 눕자마자 바로 잠이 들었다. 새근거리는 숨소리를 뒤로한 채, 나는 조은이의 품에서 슬그머니 기어 나와 노파의 안방으로 들어갔다.
노란 기운이 가득한 안방. 늘 우리가 있을 때는 전기세 아끼라고 선풍기를 산들바람으로 틀어놓고, 자신이 잘 땐 강풍으로 바꿔놓는 얍삽함에 분노하며 나는 노파의 얼굴에 엉덩이를 대고 방귀를 뀌었다.
– 푹!
‘군자의 복수다.’
“아유, 아유! 귀생 오라버니, 향수 뿌렸어요? 크흥, 크흐으으으….”
‘환장하겠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노파는 끝끝내 귀생이가 자신에게만은 진심이었을 거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절대 안 되지, 암.
– 푸욱!
‘한 방 더 받아랏!’
“아유! 귀생이 오라버니, 속 안 좋으신가 보다. 크흐으으으.”
나는 어이가 없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곤 어둠 속에서 리모컨을 찾아 TV를 켰다. 그리곤 경제 방송을 틀고 보기 시작했다.
접수 마감은 이번 주 수요일, 다음 주 월요일 장 시작부터 부여된 아이디와 비밀번호 계정으로 로그인해 참여가 가능했다.
일단 이번 주 장은 별다를 게 없이 지지부진했다. 글로벌 악재랄 것도 없었고 뚜렷한 호재도 없었다. 다만 꾸준히 악화되는 경기 침체 때문에 전반적으로 주식 시장이 탄력을 받지 못한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그래도 이번 대회에 한해서는 조은이는 초단타 위주로 갈 생각이니.’
좋은 전략이긴 했다.
몇 가지 방송을 더 훑어본 뒤 나는 뉴스 채널을 틀었다. 사건 사고와 스포츠 뉴스가 지나고 일기 예보가 시작되고 있었다.
[이번 8호 태풍 ‘올레’는 기존의 경로를 대폭 변경하여 현재 필리핀 남서부 방향에서 일본 오키나와 남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점점 주변의 열대요란과 병합해 세력을 크게 키워 ‘매우 강’으로 커진 상태인데요, 일본 오키나와 현은 모든 선박에 대한 출항 금지와 더불어 해안가와 산사태 예상 지역의 주민들에게 강력한 대피 권고를…]이윽고 화면은 비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넘실대는 파도를 보여주었다. 필리핀에서만 수십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고 많은 이들이 죽거나 실종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었다.
[일본 기상청은 현재 올레가 일본 오키나와 남쪽 약 630㎞ 해상에서 중심 기압 955헥토파스칼, 중심 최대 풍속 초속 46㎧, 강풍 반경 310㎞의 ‘매우 강(최대풍속 초당 33~43m)’ 태풍으로 발달해 시속 32㎞ 속도로 북동진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 상태라면 우리나라는 당초 예상과는 다르게 태풍의 직접 영향권에 들어갈 수 있을 가능성이…]그리고 이틀 후, 사흘째에는 본격적으로 상륙할 것이라고 했다. 남쪽 해안은 내일 밤부터 강한 파도와 함께 많은 비가 쏟아질 것이라며 기상예보는 끝을 맺었다.
‘물 조심’
이상하게도 도화선녀가 한 그 말이 쉬이 잊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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