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58
59. 뒤는 없다
아침이 밝았다.
아니, 밝았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는지 모르겠다. 거의 새벽이나 다름없이 어두웠다. 먹구름은 그렇게나 짙었고 비는 계속 어마어마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조은이와 나, 노파와 도화선녀가 우산을 나누어 쓴 채 새벽에 간신히 나온 집 앞에 도착했다. 이미 완벽하게 잠겨버린 집, 마치 바닷물이 차오른 것처럼, 주방 창 안으로 창턱까지 차오른 흙탕물이 보였다. 그 위로 떠오른 그릇과 배변패드, 말표 사료 알. 저 멀리 조은이의 학교 점퍼.
“…”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모든 것을 집어삼킨 그 흙탕물만 바라볼 따름이었다. 현관으로 내려가는 계단도 이미 깊은 웅덩이나 다름없었다. 어제 저기를 내려가 문을 열고 우리를 구해준 도화선녀는 정말 큰일을 한 것이었다.
“아이고, 신령님. 세상 힘들게 사는 이들에게 어찌 이런 재난이… 훠이, 수살귀야! 여기가 어디라고, 훠이! 짤랑짤랑! 내 입 방울 소리에도 신력이 묻어있다, 속거퇴주하라, 짤랑짤랑!”
도화선녀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조은이의 품에 안긴 나는 계단 쪽 웅덩이에 둥둥 떠 있는 유모차를 쳐다봤다. 모래주머니를 담아 나르다 뜯어진 저 바구니 부분은 늘 내가 앉던 곳이었다.
“아아! 어디 있다가 오셨대!”
마침 2층의 문이 열리고 우리에게 경고를 해 주었던 남자가 내려왔다.
“요 앞에 이분 집으로 피해 있었지요.”
“새벽에 구급차 번쩍이고 사람 소리 들려서 깜짝 놀라 깼는데, 창문으로 보니 다들 나와 계셔서 그래도 다행이라 생각했지요. 그러잖아도 한 한 시간쯤 전인가, 행정복지센터 직원이 와서 사진 찍어 갔어요. 전화를 해도 안 받으신다고.”
“내 전화는 저 안에 있으니께. 우리 조은이 전화는 거기 등록 안 되어있을 것이고.”
“제가 다들 나와서 계신 것 봤다고 이야기는 했어요. 일단 그리 가 보세요. 이것저것 접수해야 할 거예요.”
사내의 말에 노파와 도화선녀가 고개를 끄덕이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렸다. 그러나 날 안은 조은이는 다른 쪽으로 향했다.
“조은이 니는 안 가냐?”
“난 가서 할머니랑 나 며칠이라도 입을 옷 좀 사 올게. 그리고 컴퓨터 연결할 케이블들도. 그것 말고도 며칠만 있는다 하더라도 필요한 게 많을 거야.”
그 말에 도화선녀가 역정을 냈다.
“우리 집에 옷 많아! 나 입는 옷도 있고 너 입을만한 옷도 있어! 돈 아껴! 먹을 것도 하나도 사지 마!”
그 말에 조은이가 슬프게 미소 지었다.
“어떻게 그래요. 아무리 그래도 염치란 게…”
“너 지금 염치 따질 때 아니야. 잊지 말아, 정말로 지금은 염치 안 따져도 돼.”
도화선녀의 말에 조은이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래도 케이블은 사야 했다. 적어도 조은이는 정말로 끝을 보려고 하고 있었다.
“그럼 케이블만 사서 갈게요. 아주머니, 제 전화번호는…”
조은이가 도화선녀에게 자신의 전화번호를 입력시켜주곤 날 안고 모든 게 다 있는 잡화점으로 향했다.
골목마다 완전히 침수되어 막힌 하수가 빗물에 섞여 마치 산꼭대기부터 파도치듯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우리 집 외에 다른 곳들도 난리였다. 몇 시간 전의 우리처럼, 일가족이 바깥으로 나와 멍하니 물바다가 된 반지하를 쳐다보는 이들도 있었다.
곳곳에 구청에서 나온 트럭들이 작업 인력을 태우고 멈춰서 있었다. 구급차와 순찰차도 보였다.
역대급, 정말로 역대급 폭우 속에서 반지하와 저지대의 모두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
“어, 여기에 꽂고. 마우스는… 응! 살아있네. 키보드도.”
본체에 연결할 여러 케이블을 사 온 조은이는 한쪽에 앉아 컴퓨터를 세팅하고 있었다. 벌써 오늘 장은 시작했다. 48,000원에서 연습계좌는 멈춰있을 터였다. 그래도 조은이는 핸드폰으로 매매하지 않고 가만히 전원을 켜서 이것저것 확인한 후 공유기와 랜선을 찾아 거실과 작은 방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놀라울 정도로 침착했다. 나라면 절대 저리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조은이는 완벽하게 지금의 상황을 이해했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았다. 해야만 할 것이기도 했다.
나는 다른 어떤 것보다 지금의 조은이의 모습에서 스켈핑의 자세를 느꼈다.
“되려나? 된다! 나와 있는 랜선이 있었네!”
조은이가 인터넷 창을 열어보곤 빙그레 웃었다.
마침 문이 열리고 노파와 도화선녀가 들어왔다. 라면과 무거운 생수, 그 외 쌀과 부식거리들이 한가득이었다.
“왈! 왈! 왈!”
나는 꼬리를 흔들며 반가워 짖었다. 조은이가 재빨리 나가 도화선녀의 손에서 생수를 받아들었다.
“아유, 그래도 이번에 난리가 났다고 산더미처럼 쟁여두고 침수된 세대에 긴급히 불출한다고 나눠주더라. 그나저나 요 5층은 엘리베이터도 없어. 저번에도 느꼈는데 이런 데서 어떻게 살아, 글쎄?”
“참나. 이런 데라도 사니까 보살님이랑 개령님이랑 조은이도 데리고 오지! 실컷 물 들고 와 죽겠는데, 말은!”
도화선녀의 일침에 노파가 라면 묶음과 즉석밥을 내려놓으며 한숨을 쉬었다.
당장 용숭초등학교의 체육관에 침수된 이재민들을 수용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나 거기에 간다고 해도 여기보다 나을 것 같지는 않았다.
“조금만 신세 좀 집시다. 내가 나중에 꼭 갚을 것잉게.”
“안 갚아도 된다니까 그러네? 우리 개령님 두고 가면 좋지 뭐.”
“해피는 안 돼!”
둘의 아웅다웅을 뒤로하고 조은이는 매매 프로그램을 열었다. 그리곤 뉴스와 시황을 체크했다. 그걸 본 노파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조은이, 너는 이 상황에 그걸 다 켜고 시험해 볼 정신이 있냐?”
“이것 아니면 안 돼. 이걸 해야 해, 할머니. 그래야 우리, 다시는 침수 안 당해.”
다시는 침수 안 당한다는 말에 담긴 의미를 나는 이해했다. 멍한 표정의 노파 뒤에서 도화선녀가 중얼거렸다.
“저, 저 기운 봐. 아주 주변에 잡귀들 다 내쫓겠네. 손녀 건드리지 마세요! 지금 손녀 주변에 대운 들어와 있으니까.”
“또, 또 쓸데없는 말은.”
조은이가 매매를 시작했다. 벌써 오전 11시였다.
***
집중력.
도화선녀는 향냄새 폴폴 나는 전안에서 기도를 하고, 노파는 거실에서 TV를 보며 전국의 피해 상황에 눈물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미 먹어버린 맥시봉의 빈 껍질을 정성스레 핥고 있었고, 조은이는 벌써 40번째 매매를 하고 있었다.
숨은 쉬는 것일까 싶을 정도로 몸을 고정한 채 오로지 키보드와 마우스 위의 팔만 움직이는 그 모습은 정말로 무서울 만큼 진지했다.
+650원
+400원
+320원
-200원
+300원
-170원
+290원…
머릿속의 빛태창 가장 끄트머리의 숫자가 정신없이 변했다. 하나 확실한 것은 분명 아주 조금씩 올라가고 있었다.
“하아아, 오늘 끝.”
조은이가 마우스를 내려놓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평가액은 52,700원. 세 종목을 잡아두고 정말 정신없이 매매를 해댔다. 48,000원에서 거의 10%의 수익을 냈다. 그것도 11시부터 2시 반. 겨우 3시간 반 만에.
매일 이렇다면 21일간 누적 수익률 300%가 불가능하지 않아 보였다. 그럼 정말로 조은이의 목표가 가능할 수도 있었다.
당장 48,000원이 아닌 480만 원이라 치면 아까 올라갔던 숫자는
+65,000원
+40,000원
+32,000원
-20,000원
+30,000원
-17,000원
+29,000원…
무시할 수 없었다. 800만 원이라면 거의 두 배 가까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이 엄청난 결과에 깜짝 놀란 채 조은이를 쳐다보았다.
“비가 와도, 우리 집이 침수되어도 장은 열리니까. 이건 불행이 아니라 다행인 거야. 감사한 일이야.”
오싹했다.
벼랑 끝에 선 이가 잡은 동아줄을 이보다 더 절실하게 보여주는 것은 없었다. 그 고도의 집중력, 그 증거로 조은이의 등은 흠뻑 젖어있었다. 폭우가 쏟아져 실내는 서늘했는데도 말이다.
“하던 것 다 끝났어?”
어느덧 기도를 마치고 나온 도화선녀와 TV를 보며 생라면을 부수어 먹던 노파가 라면 조각에 스프를 찍어 조은이에게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 깨물어 먹던 조은이가 살짝 미소 지었다.
“이 와중에 웃기는.”
“웃어야지. 웃어야만 해.”
“바깥에 비가 좀 약해졌다. 집에 한번 다시 가 볼까?”
“가서 뭐 하게요. 가져올 것도 없고 가져올 수도 없는데. 모레나 되어야 비가 그친다는데, 언제 물 퍼낼지도 알 수 없다면서요.”
“그래도. 이럴 줄 알았으면 네 서랍에 사진들이라도 가져올 것을.”
노파의 말에 조은이가 움찔했다. 나는 걱정스레 조은이를 쳐다보았다.
잠시 조은이의 눈가가 벌게지는 듯했다. 그러나 애써 감정을 수습한 조은이가 억지로 웃었다.
“지금 할 수 있는 걸 해야지. 그걸 꺼내서 슬퍼할 시간은 없어요. 마음에 있는 것으로 충분하니까.”
“마음에 있는 것?”
“과거가 변하지 않는다면, 현재를 열심히 살아야 미래라도 바꿀 수 있잖아?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그 와중에 반드시 가지고 나와야 할 게 사진들이 아니라 이 컴퓨터였다는 것은 그런 의미라 생각해, 할머니.”
“뭔 소리여?”
“내가 정한 것이 그것이라고.”
강한 아이였다. 상상도 못 할 정도로.
***
결국 금요일까지 비는 내내 내렸다. 감사하게도 구청의 봉사단들은 이재민인 우리가 임시로 머무르는 도성암까지 부식과 생필품을 가져다주었다.
나 역시 최대한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도화선녀가 ‘개령님! 오줌 좀 작작 싸요!’ 하면서 눈을 부라리며 깔아놓은 신문지에 얌전히 오줌을 쌌다.
인스턴트 음식이 밥상의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그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했다. 그리고 조은이도 만족했다.
어느새 친자매처럼 가까워진 노파와 도화선녀도 서로 치고받으며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토요일 아침, 정말로 거짓말처럼 하늘은 구름 사이로 새파란 색을 보여주고 있었다. 드러난 햇살은 따갑기 그지없었고, 온 동네를 다 적신 빗물은 지독하게 습한 기운을 내뿜으며 대기 중으로 흩어졌다.
거의 일주일 가까이 바깥을 나오지 못했던 이들이 모두 골목으로 나왔고 말려야 할 것들을 내어놓았다.
운이 좋게 구청 직원들이 와서 침수된 반지하에 양수기를 대고 물을 퍼내기 시작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반대편 호스로 쏟아지는 물이 이제 막 말라가기 시작하는 골목길을 다시 적시며 흘러갔다.
“어휴, 어떡해.”
“쯧쯧…”
“살림 다 버리게 생겼네. 어쩜 좋아.”
모여든 동네 주민들이 양수기의 소음 속에 천천히 수위가 낮아져 가는 반지하를 들여다보았다. 열려있는 주방 창문 사이로 엉망이 된 실내가 보였다.
조은이와 나, 노파는 그런 풍경을 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이제 양수기로는 여기까지예요. 나머지 바닥에 고인 것은 대야 놓고 쓰레받기나 다른 것들로 직접 퍼내셔야 할 겁니다. 수중 펌프도 있는데 그건 지금 다른 데 다 가 있어서 받으시려면 시간이 좀 걸려요.”
“아유, 이만하면 됐지유. 수고혔네요.”
노파가 비틀거리며 안으로 들어가 부엌 한쪽에 흠뻑 젖어 찌그러진 비지밀 박스를 열어 비지밀 몇 병을 들고 와 직원들에게 건넸다.
흙투성이가 된 그 병을 받아든 직원들이 차마 먹지 못하고 주머니에 넣었다.
“감사합니다.”
조은이가 고개를 숙였다. 한 직원이 조은이 품에 안긴 내 머리를 쓰다듬은 후 배수가 완료된 내부를 사진 찍었다.
“피해접수 하셨죠? 긴급구호자금 신청해서 받으시고요. 힘내세요,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네.”
직원들이 돌아간 후 조은이와 나, 노파는 안으로 들어갔다.
퀴퀴하게 썩은 냄새, 지독한 물비린내.
진흙이 갯벌처럼 가득 찬 바닥은 미끄럽기 그지없었다.
전기까지 완전히 나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남아있는 싱크대와 가구, 옷가지와 이불, 가전제품들이 유령처럼 생명을 잃은 채 서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
조은이가 나지막이 내뱉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