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59
60. 출사표
– 촤아아아악, 촤악!
“후우….”
– 촤아아아악, 촤악!
“하아…”
노파와 조은이, 그리고 노파의 손에 끌려 나온 도화선녀까지 모두 빨간 고무대야를 사이에 두고 빗자루와 쓰레받기로 진흙탕을 쓸어 담고 있었다.
“아유, 난 이런 것까지 할 줄 몰랐네!”
“사람도 살렸는데 끝까지 책임을 져야지!”
“보살님, 신령님이 그러는데 보살님 되게 뻔뻔하시대. 신령님이 그러신 거야, 내가 아니라.”
“푸하하하하!”
노파와 도화선녀가 티격태격하는 것을 들은 조은이가 허리를 펴며 웃었다. 땀에 흠뻑 젖은 머리카락이 얼굴에 달라붙었다.
모두 이 우울한 분위기를 억지로 이겨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었다. 나도 그런 분위기를 읽었기에 미끄러운 바닥을 뛰어다니며 주우우욱 뒹굴어 힘든 작업을 하는 이들에게 웃음을 더하려…
“저 염병할 똥개가 힘들어 죽겠는데 지 씻겨달라고 지랄을 허네!”
– 퍽! 퍽!
“깨애애애앵! 깽! 깽!”
“우리 개령님 때리지 말어! 개령님이 앞으로 얼마나 큰일을 하실 분인데!”
“아유, 꼴 보기 싫어!”
결국, 본전도 못 찾고 어두운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어야 했다.
2층에서 고생한다며 사다 준 시원한 생수를 마시며 모두 오늘 작업을 마무리했다. 어차피 더 긁어 담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이젠 완전히 마른 후 긁어내고 닦아내야 했다.
물론 그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내일은 이것들 다 끄집어내서 말리거나 버려야 할 텐데.”
도화선녀의 말에 노파와 조은이가 한숨을 내쉬었다.
버리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어차피 이렇게 흠뻑 젖은 옷들과 이불, 그리고 전자제품과 가구들은 빨아서 말린다고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금방 곰팡이가 슬 것이고 악취를 내뿜을 게 뻔했다.
문제는 그것들을 다시 채워 넣어야 한다는 것.
거기에 얼마나 돈이 들어갈지 상상하기 힘들었다. 있을 땐 낡고 삐걱거렸어도 그냥 썼던 것들이 막상 없을 때는 하나하나마다 몇 십만 원, 몇 백만 원이었다. 당장 냉장고만 봐도 그랬다.
중고센터와 고물상을 돌아다녀 채워 넣는다고 해도 조은이와 노파에겐 큰돈이 들어갈 것이 뻔했다. 도화선녀의 살림을 봐도 도움을 주기는 힘들어 보였고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
그래도 긴급구호자금이 얼마 나오겠지만 그것으로는 택도 없을 터였다.
“제가…”
“응?”
모두 조은이를 쳐다보았다.
“제가 알아서 할 거예요. 우리 집 다시 채워 넣는 것.”
“니가 무슨 돈이 있다고. 그 대회 나간다는 그거, 그거 말하는 거여?”
“응. 할 수 있으니까, 채워 넣는 거 걱정하지 마, 할머니.”
조은이의 말에 노파가 기가 막히다는 듯 ‘허허’하며 혀를 찼다. 하지만 여기에서 그런 조은이를 믿지 않는 것은 노파뿐이었다.
“왈! 왈!”
나도,
“손녀가 보살님보다 낫네! 사람이 마음을 먹으면 사주가 주는 흐름도 바꾸는 법이야! 기운을 자기가 만들어 내. 얼마나 씩씩해?”
도화선녀도 조은이를 믿었다.
– 지이이잉, 지이이잉.
“아, 여보세요? 이모!”
이모라는 말에 노파가 멈칫했다.
“아하하하, 여긴 아무 일 없어요. 그래도 산기슭, 고지대라 비는 엄청 왔는데 다행스럽게도 침수되거나 한 것은 없어요.”
“그게 무슨 소리…”
도화선녀가 중얼거리자 조은이가 황급히 조용히 하라는 듯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대었다.
“응,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이모. 진짜 별일 없으니 염려 마세요. 다음에 해피랑 놀러 갈게요!”
“왈왈왈!”
나는 조은이 이모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뒤에서 있는 힘껏 짖었다.
“잘했어, 우리 해피!”
“왜, 뭐라는데?”
“그냥, 뉴스 보고서 우리 동 피해 심하고 인명사고도 나왔다고 하니 걱정돼서 전화했대.”
“응, 그래? 그런데 지금 우리 상황이…”
“우린 괜찮으니까. 알았지? 할머니, 더 말하지 마.”
조은이가 노파의 입을 막은 후, 날 번쩍 안아 들고 바깥으로 나갔다. 뒤이어 나온 노파와 도화선녀가 기지개를 켰다.
“아유, 공기가 다르네! 보살님이야말로 저런 곳에서 어찌 지냈어?”
“5층까지 생수통 들고 안 올라가도 되니 지낼 만헙디다!”
둘의 티격태격이 이어지는 가운데, 녹초가 된 우리는 도성암, 신동아맨션 5층으로 향했다.
***
일요일 아침.
어제, 피곤한 가운데도 늦게까지 동영상을 보며 공부를 하고 자신의 매매 수익을 SNS에 올린 조은이였다.
김치에 행정복지센터에서 받아온 통조림 햄을 썰어 넣어 볶은 김치볶음밥을 배불리 먹은 노파와 조은이는 다시 일어나 목장갑을 주섬주섬 챙겼다.
“점쟁이! 오늘도 도와줘야쥬?”
“아유! 보살님, 오늘도? 나, 오늘은 기도해야 해. 몸살 났어, 아주! 온몸이 저린데 일찍 일어나서 밥까지 볶았구만.”
“거기 신명님헌티 물어봐, 힘든 사람 도와야 하나, 안 하나.”
“진짜, 못 살아! 전에 사주도 공짜로 봐주고 먹여주고 재워줬더니 이젠 부려먹기까지 해!”
그러나 도화선녀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기 몫의 목장갑을 챙기고 미리 냉장고 냉동실에 넣어놓은 보리차까지 챙겼다.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정말 고마운 이였다.
다시 반지하로 향한 우리는 먼저 가벼운 것부터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그릇들에 쌓인 물을 붓고 하나하나 나른 후 욕실에 있는 것들도 다 바깥으로 들어냈다.
그다음엔 옷이었다.
“빨면 충분히 입을 수 있는 것들은 빼놓고. 응?”
“그냥은 안 돼. 우리 화장실에서 엄청 흔들어 헹궈서 흙탕물 다 빼고 흙이랑 모래도 다 빼내야 해요. 말리는 건 옥상에 건조대 있으니까.”
버릴 것(대부분이었다.)은 김장 비닐에, 그나마 살릴 것은 1층 마당 한쪽에.
부지런히 옷들을 정리하고 나니 이불들이 남았다. 두꺼운 솜이불부터 장미 무늬가 화려한 담요, 조은이의 방에 있는 토끼 무늬 얇은 이불과 전기장판까지.
“조은아, 이건 다 버려야겠지?”
“응. 인터넷으로 알아볼 테니까, 이참에 새로 사자. 다행히도 여름이니까 얇은 이불부터 하나씩 사면 될 거야.”
문제는 무게였다. 그 옛날 ‘농촌일기’ 같은 드라마에서나 보던 겨울 솜이불은 물을 잔뜩 먹으니 조은이와 노파가 달라붙어도 끌기조차 어려웠다.
“헉, 헉…”
“어쩌지, 할머니? 나중에 뺄까?”
“뺄 때 다 빼야 허는디…”
그때 바깥에서 어수선한 목소리가 들렸다. 도화선녀가 골목에 나와 구경하는 주민들과 2층의 남자까지 모두 데리고 왔다.
“벌전 안 받으려면 다들 좀 도와줘요. 오늘 도와준 사람, 도성암 오면 사주 공짜로 봐줍니다. 한 사람당 20분. 시간 넘어가면 10분당 1만 원씩 받습니다. 짤랑짤랑!”
도화선녀의 신들린 듯한 말빨과 애원에 넘어간 주민들이 어두컴컴한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노파와 함께 파지를 주울 때 스쳐지나갔던 이들, 딱히 아는 체도 하지 않고 그저 데면데면했던 이들,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귀찮은 듯 고개만 까딱하는 게 전부였던 이들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혀를 차며 걱정만 하던 이들에게 도화선녀의 애원은 일종의 방아쇠가 된 셈이었다.
“참말로, 이게 무슨 일이래! 조은이 할매!”
어느샌가 나타난 해자 할매의 목소리에 노파가 ‘어허허헝!’하고 울었다. 그 울음을 뒤로하고 물에 젖은 이불과 가전제품, 장롱이 하나하나 바깥으로 끄집어내어졌다.
***
“이제 다 붙였다. 이번 침수 피해는 이 종이를 붙이면 무료로 수거한대.”
조은이가 비상상황으로 계속 열려있는 행정복지센터에서 종이를 받아와 바깥에 내어놓은 가전제품과 가구, 그 외 쓰레기들에 붙였다.
하루 종일 작업을 하고 나니 모두 녹초가 되었다. 일을 도와준 누군가가 내민 탄산음료를 받아든 조은이가 감사하다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모든 것이 텅 빈, 정말로 아무것도 남지 않은 반지하. 흙탕물로 갈색이 된 벽지, 언제고 다시 긁어내고 닦아야 할 바닥.
꽉 찬 100리터 대용량 쓰레기봉투 안에 예전에 내가 집에서 물고 왔던 핸드폰이 보였다. 잔뜩 흙탕물을 뒤집어쓴 저것은 다시 켠다고 해도 켜지지 않을 것이었다.
묘하게도 그것이 일종의 ‘이별’과도 같은 느낌이라 신기했다.
그리고 그것은 조은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아까 작은 방의 책상들을 꺼낼 때, 그 안의 서랍을 열려는 노파의 손을 막은 조은이는 화사하게 웃던 놀이공원 사진 단 한 장만 꺼내 몇 번이고 옷에 문질러 닦아 그늘에 말렸다.
이미 색이 번지고 빠져버린 사진이었지만 얼추 마른 그것을 주머니에 넣으며 ‘이것 하나면 된다’라고 한 조은이였다.
지금까지의 것에 이별을 고한 이는 나와 조은이, 그리고 아직도 이별을 제대로 고하지 못한 이는 못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계속해서 뒤돌아보는 노파였다.
“살릴 것이 없다니까, 보살님.”
“후우…”
“그러지 말고, 어제랑 오늘 이렇게나 힘을 썼는데 우리 삼겹살 사다가 구워 먹읍시다. 내가 사 올게.”
도화선녀가 선심 쓰듯 말했다.
“제가 사 올게요, 아주머니!”
“아줌마 아니라니까! 그래? 그럴래? 그럼 우리 셋에 개령님까지 해서 한 근 반이면 되려나?”
“살라면 두 근 사. 나 많이 먹을 거여. 조은아, 가서 좀 사 와라.”
“충남 정육점 다녀올게요.”
조은이가 나를 안고 길을 내려갔다. 혹여나 충남 정육점이 열었으면 무엇이라도 팔아주고 싶은 마음일 것이었다.
모두가 피해를 입었고, 모두가 남을 생각하고 도우려 했다.
“끼이이잉…”
나의 슬픈 울음을 들은 조은이가 가만히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
“으어어어어! 긴장된다앗!”
간만에 고기를 구워 먹은 조은이가 컴퓨터를 켜고 바닥에 앉았다. 책상도 없으니 귀퉁이가 떨어져 나간 옻칠 된 상 하나가 앉은뱅이책상 역할을 했다.
드디어 내일, 아무래도 떨리지 않을 수 없었다.
피곤함에 눈꺼풀이 축축 처지는 것을 간신히 부릅뜬 채, 조은이는 뉴스들을 살펴보다가 동영상 플랫폼에서 내일 시작되는 투자대회의 대회명을 쳤다.
몇 개가 뜨는 가운데, 그중 한 채널이 눈에 들어왔다.
[스켈퍼 초고수 청담동 오리발]조은이가 대회를 앞두고 계속 봤던 책의 저자. 물론 밤마다 보는 영상 중에 그 채널의 영상도 있었다. 하지만 바로 다섯 시간 전 올라온 그 영상의 제목은…
[청담동 오리발, 내일 폭스넷 일반인 투자 경진대회 나갑니다. 놀라셨죠?]“아아, 이 사람도?”
조은이가 황급히 동영상을 눌렀다.
고급스러운 책상과 책장. 그리고 커다란 와이드형 모니터 네 대와 그 앞의 노트북, 옆에 쌓인 수많은 책과 자신의 저서. 그리고 순금 돼지와 황소상.
그 앞에 앉은…. 평생 웃어본 일은 한 번도 없을 것처럼 냉철하게 생긴, 마치 A.I. 같은 남자가 정면을 보며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구독자님들. 깜짝 놀랄만한 소식이죠? 이미 접수를 했습니다, 폭스넷 대회. 제가 나간다고 미리 공지하면 많은 참가자들이 포기할까 봐 이제야 밝힙니다.]“헐…”
[그리고, 이번에 저와 함께 제 후배들, 제 매매기법을 배운 제자들도 대거 참여합니다. 이미 지난달부터 4주간 내부 경진대회로 저는 580%, 2등이 470%, 10등이 396%의 수익률을 보였습니다.]그리고 보이는 캡처 화면들.
조은이의 눈이 떠억하니 벌어졌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목표는 청담동 오리발의 리딩방 회원님들과 제가 1위부터 20위까지 모두 차지하는 것입니다. 상금은 10위까지지만, 그 아래에도 전부 우리 회원님들이 차지할 겁니다. 그럼, 응원해주십시오. 건투를 빕니다.]영상은 그걸로 끝이었다.
1주일간 50,000원을 52,700원으로, 최종적으로 57,500원으로 만든 조은이, 하지만 저 수익률에는 감히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이미 허공으로 날아간, 회수 불가능한 참가비 100만 원. 그리고 대회가 종료되면 얼마나 불어나 있을지 혹은 까여 있을지 누구도 모르는,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800만 원.
– 꿀꺽.
침 삼키는 소리가 났다.
“흥! 잘 보세요, 아저씨! 그 사이에 내가 들어갈 거란 말이야!”
조은이의 호기 있는 한마디.
매우 떨리는 목소리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