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67
68. 촬영에 앞서
“언제까지 잘 거여! 오늘 할 것 많다면서.”
“아왈왈왈왈! 왈왈왈!”
‘할멈은 조은이를 깨우지 마시오! 5일간 잠도 제대로 못 잔 아이한테!’
“요 똥개가 어디서 짖어!”
– 팍! 팍!
“깨애앵, 깨애애앵!”
나는 근엄하게 노파를 꾸짖다가 본전도 못 찾고 효자손에 허벅지를 얻어맞은 채 비명을 질러댔다. 그 소리를 들은 조은이가 퉁퉁 부은 눈을 비비며 ‘으음?’하고 일어났다.
“해가 중천이여. 얼른 일어나서 밥 먹어! 난 우리 손녀 죽었나 했다.”
말을 해도 하여간. 나는 다시 노파 앞을 가로막으며 으르렁대다 빗나간 효자손에 고환을 얻어맞고는 하늘이 무너져라 비명을 지르며 구석으로 가 온몸을 데굴데굴 굴렀다.
“할머니, 해피 그만 때려! 해피, 내 왕자님이야.”
“왈?”
‘오잉?’
“얘가 무슨 소리여, 점쟁이 집에 있을 때 이상한 귀신이 붙어왔나.”
“아냐, 꿈에서 해피가 엄청 잘생긴 남자로 변해서 나 힘내라고 토닥토닥 꼭 안아줬단 말이야.”
아, 개꿈 맞았다. 적어도 난 잘생긴 것과는 한없이 거리가 멀었으니까. 좋다 말은 표정으로, 난 구석진 곳에서 구슬프게 낑낑대며 울었다.
“일어나, 어서. 벌써 10시가 다 되어간다.”
“진짜? 세상에, 나 어제 오후 4시쯤 잔 것 같은데? 가만, 그럼 몇 시간을 잔 거야? 열여덟 시간?”
“아주 대단혀. 어제 점쟁이 집에서 저녁 먹고 과일까지 깎아 먹고 들어왔더니 그리 자고 있더라. 나는 네가 저녁때부터 잠든 줄 알았어.”
“아,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네.”
조은이가 엉금엉금 기듯이 부엌으로 나가 노파가 차려놓은 김치 콩나물국에 밥을 말았다.
“크흐으, 시원하다.”
“말만으론 밤새 술 마신 줄 알겠다. 취한 사람 같이.”
“취한 사람? 취하긴 취했지. 으흐흐흐.”
조은이가 실없이 웃으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나 역시 옆으로 다가와 ‘헥헥헥’거리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둘이 행복하게 웃는 것을 본 노파가 어리둥절했다.
“조은이 너도 넌데 이 똥개는 또 왜 실실 웃어? 곧 초복인 것도 모르고.”
“왈! 아왈왈왈왈!”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세상 끔찍한 소리를!
“하하하, 그냥. 열심히 하니까 되게 기분이 좋아졌어.”
“그리여?”
“응. 그나저나 할머니는 이따가 오후에 또 처묵소 가?”
“그리여. 두 시부터 다섯 시까지. 왜, 너도 가게? 사장헌티 말해줘? 그러잖아도 자꾸 너 찾드라.”
“흐음… 밥 빨리 먹고 씻고 우리 해피 염색하러 가면 될 것 같다! 나도 머리 너무 지저분한데, 그래도 촬영 전에 좀 다듬는 게 좋겠지? 처묵소 알바 전에 시간이 되려나?”
여, 염색…
그러고 보니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미 염색물은 다 빠져 있었고 털도 지저분하게 자라있었다. 그 때문에 여간 더운 게 아니었다.
조은이도, 노파도, 나도 침수 피해와 대회, 남의 집 더부살이, 집 정리 등으로 완전히 자신들의 모습을 잊고 있었다.
게다가 내일은 촬영 날. 역시나 내 상징이랄 수 있는 염색을 많은 이들이 원하고 있을 것이었다.
‘어쩔 수 없지.’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식사를 마치고 씻고 나온 조은이가 날 안고서 룰루랄라 즐거운 걸음으로 늘 가는 동물병원 겸 애견샵으로 향했다.
– 띠리링!
“오래간만입니다! 해피요!”
“어머, 진짜 오래간만이다, 우리 해피. 조은이 학생도 오래간만이다!”
“아하하하, 그동안 할머니가 오셨죠!”
“이거 봐. 여기도 붙여놨다니까? 전에 해피 광고 나왔던 것. 조은이 학생도 같이 찍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따 찍어주라, 응?”
“네에! 알겠습니다. 해피 귀랑 꼬리 염색이요. 그리고 더우니까 털도 깎아야 할 듯한데.”
직원과 조은이가 나를 빤히 보았다. 나는 왠지 기가 팍 죽어 겁먹은 눈으로 슬금슬금 직원을 올려다보았다. 예전, 처음 환생했을 때 내게 간식도 주고 화도 냈던 그녀가 그대로 있었다.
“시원하게, 아주 홀랑 깎아주세요.”
“와, 왈!”
‘싫어!’
“역시 여름이니까, 그치? 그럼 시원하게 몸이랑 다 밀고 얼굴도 다듬고, 귀랑 꼬리는 늘 하던 대로 분홍색?”
“음, 뭐 또 새로운 것 있을까요?”
“요즘 레인보우 컬러도 유행인데.”
나는 정신이 멍해졌다. 레인보우? 뭐가 유행이라고 하는 거지? 나는 길거리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그러나 직원은 신이 나서 코팅해 놓은 사진 중 하나를 가져와 조은이에게 보여줬다. 나와 조은이는 눈앞에 놓인 사진을 보고 깜짝 놀라 눈을 질끈 감았다.
세상 우울한 표정의 개. ‘나는 하기 싫다’, 아니 ‘나는 살고 싶다’하는 표정을 한 채 눈물이 차오른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그 개의 귀는 정말로 아찔하기 그지없는 갖가지 색으로 염색이 되어 있었다.
“레인보우라 해서 일곱 가지 색을 전부 쓰지는 않아요. 빨강, 주황, 노랑, 초록, 보라. 이렇게 다섯 가지, 보라 대신 하늘색이나 파란색도 좋고.”
“끼이이잉, 낑!”
차라리 그냥 형광 분홍색이 낫다. 저 다섯 가지 형광색을 꼬리와 귀에 칠했다가는 정말로 온 세계의 지탄을 받기 충분할 것이었다.
당장 내일 방송을 생각해도 충분히 예상되었다.
그래, 이건 절대로 안 된다. 아무리 그래도 세상에 환란을 일으키면 안 되는 법이다. 모든 것엔 정해진 선이란 것이 있다. 그 선이 붕괴되면 우리의 상식도 결국엔…
“진짜 환상적이다아.”
‘엥?’
나는 얼이 빠진 눈으로 조은이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조은이는 정말로 폐허 속에서 보석이 박힌 면류관을 발견한 고고학자처럼 영롱한 눈으로 그 사진을 쳐다보았다.
“그치? 조은이 학생이 딱 좋아할 줄 알았어. 이게 금액도 그렇게 차이가 나지 않아요. 게다가 염색 잘 안 빠지고 엄청! 오래간다?”
“아왈왈왈왈! 아왈왈왈왈!”
나는 제발 이 참사를 막아달라며 울부짖었다. 그러나 조은이는 여전히 눈이 하트가 된 채 그 사진에 빠져 있었고 직원은 조용히 하라며 날 향해 눈을 부라렸다.
“오호호호, 해피가 얼른 해달라고, 얼른 예쁘게 꾸며달라고 애교 피우는 것 좀 봐.”
“그, 그렇죠? 그럼 이걸로 해 주세요. 털은 바짝!”
“그래, 바짝! 분홍 소세지처럼 바짝!”
“저는 그사이 빨리 머리 다듬고 올게요. 기다리는 동안에 해치워야겠다!”
“그래, 시간 좀 걸리니까 천천히 다녀와요~!”
조은이는 신이 나서 뛰어나갔다.
저렇게 예쁘고 귀여운 내 주인이 이렇게 미적 감각이 결여되어 있다니! 한강 대학교를 다니고, 하루에만 수십 번의 매매로 투자대회에서 고수들을 제치고 10등 안에 든 똑똑한 내 주인이 이렇게 미적 감각이 결여되어 있다니!
“이제 우리의 시간이네, 해피야? 누나 엄청 기다렸거든. 이번에 나온 이거 시험해 보려고.”
“와, 왈?”
“조용히 해!”
직원은 나를 번쩍 안아 들고는 먼저 온몸의 털을 밀어대기 시작했다.
이젠 절대 벗어날 수 없고 되돌릴 수 없었다.
나는 바닥에 떨어지는 내 지저분한 털을 바라보며 눈물을 삼켰다.
***
귀에 은박지를 만 채 나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포기하면 편해.]이보다 더 진리는 없는 듯했다. 온몸이 소세지가 되는 순간부터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리고 귀에 경계를 나누어 칠해지는 다섯 가지 염색약을 보며 해탈을 넘어 열반의 경지에 이르렀다.
삶의 의욕을 잃은 채 직원의 손길에 몸을 그대로 맡기고 있노라니, 그런 내가 기특했는지 직원이 육포를 꺼내 내 앞에 놓았다.
나는 영혼이 없는 눈으로 육포를 질겅질겅 씹으며 오가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환생한 뒤 처음 정신을 차리고 절규하던 그때, 문을 열고 들어왔던 노파. 그리고 공병이 든 비닐이 담겨있던 유모차.
‘겨우 3개월 반 정도가 지났는데, 진짜 뭐가 많이 변했네.’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변하기야 엄청 변했다.
그때 머리를 다 다듬은 조은이가 저 멀리서 팔짝팔짝 뛰어왔다.
‘내 주인님…’
“해피요!”
“응, 이제 시간 다 되었으니까 씻겨서 드라이한 다음 데리고 나올게요? 여기서 커피 마시면서 잠깐 기다려요.”
“와, 털 진짜 시원하게 깎았다. 얼룩덜룩한 반점까지 다 보여!”
“끼이잉…”
나는 만인 앞에서 홀딱 벗겨진 듯한, 아니! 진짜 홀딱 벗겨진 게 맞지. 여하간 그런 처참한 정신 상태로 안으로 들어갔다.
은박지를 벗기고 미온수에 귀와 꼬리를 씻노라니, 발아래로 모든 색이 다 섞인 괴상한 물이 흘러내려갔다. 그래. 저 물처럼 내 정신도 흘러가 버렸으면…
“어머, 어머!”
“왈?”
나는 슬픈 눈으로 직원을 올려다보았다. 직원은 웃음이 터질 듯한 얼굴로 입을 막고 있더니 갑자기 뒤로 휙 돌았다.
“나 몰라. 어떡해. 진짜! 이거, 이거… 크크크큭, 크크크큭!”
“와, 왈?”
나는 두려움에 떨며 직원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직원은 한참을 입을 틀어막고 끅끅대며 웃더니 결국엔 수건을 입에 물고 눈물을 질질 흘리며 내 머리와 꼬리를 드라이하기 시작했다.
“크크크큭, 크크크큭, 컥! 커헉! 캑! 캑!”
‘가지가지 하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숨이 넘어갈 정도로 웃음을 삼키던 직원이 나를 번쩍 들어 거울 위에 놓았다.
‘아… 엄마 보고 싶다.’
나는 눈물을 주루룩 흘렸다.
거울 앞에는 세상 못생긴, 아니 못생겼다는 말도 과대포장이라 할 수 있는 비쩍 마른 대머리 삐에로 같은 강아지가 눈 밑에 긴 눈물 자국을 그린 채 우울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하아, 하아! 어쩌지, 어쩌지!”
“끼이이잉…”
한참을 안절부절못하던 직원이 큰맘 먹고 날 안아 바깥으로 나갔다. 그리곤 일부러 씩씩하게 외쳤다.
“우리 레인보우 버전 해피 나왔어요.”
“끼이이잉…”
“와, 우리 해피! 우와하하하하! 지인짜 예쁘다!”
“예, 예쁘죠? 크크크크, 크크큭! 하하하하!”
조은이는 정말 내가 예뻐서 웃고, 저 악마 같은 직원은 웃겨서 웃고. 진료실 안에 있던 원장이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나왔다가 내 얼굴을 보곤 세상 못 볼 것을 보았다는 듯, 가슴에 성호를 그으며 허둥지둥 다시 들어갔다.
“얼마예요?”
“미용 다 해서 6만 5,000원인데 6만 원만, 아니 5만 원만 받을게요.”
“에에? 그렇게 많이 깎아주셔도 돼요?”
“자, 잠깐만! 여기 간식 좀 챙겨줄게!”
조은이는 사료와 간식 샘플로 가득한 비닐을 들고 한 손엔 날 안은 채 씩씩하게 나왔다.
그리곤 미리 노파와 만나기로 했는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아니 아주 엄청 다니고, 오늘따라 평상시보다 곱절이나 많이 다니는 듯한 느낌이 드는 역 앞 사거리, 옛 등골젠 빌딩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푸하하하, 아하하하!”
“크크큭, 크크크큭!”
“오빠, 너무 대놓고 웃지 마. 오호호호!”
“킬킬킬, 아흐, 아흐!”
“안뇽하세효! 호옥시 영어 성켱 콩부에 콴심, 푸하하하하! 오우 지쟈스!”
남녀노소에, 커플에, 말쑥한 정장 차림의 몰몬교 미국 청년까지 나를 보곤 배를 잡고 웃었다. 그러나 평상시에는 전혀 그렇지 않다가 꼭 이때만 되면 주변 시선의 이유를 전혀 알아채지 못하는 총천연색 조은이는 싱글벙글 미소를 지은 채 날 안고 꿋꿋하게 역으로 걸어갔다.
“난 우리 해피가 가장 예뻐. 우리 해피 사랑해!”
“….”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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