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72
73. 수습의 기회(2)
왜 ‘쏘리’였을까.
아무래도 정말로 사죄는 하고 싶지만 ‘죄송합니다’나 ‘미안합니다’, ‘내 잘못입니다’를 쓰기에는 내 잔변량이 부족하기도 했고 그렇게 길게 쓸 재주도 없었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건대, 나는 진심을 다해서 이 상황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싶었다.
점례는 차치하고서라도, 샤넬이와 라방을 보는 이들, 찾아온 팬들과 걸덕이에 스태프들까지.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포화를 뒤집어쓰고 있는 나의 조은이에게 사죄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잔변을 통해 가장 확실하게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게 ‘쏘리’였다.
하지만 이런 내 진심은 모든 이들의 경악 속에서 완벽하게 가라앉고 말았다.
[지금 제가 본 것이 실화인가요?] [방금 A4지에 똥으로 글씨 쓴 것 맞음?] [쏘리 아님? 맞지 않나?]채팅창이 정신없이 올라가고 있었다.
“왈!”
나는 내 진심을 알아달라는 듯, 흰 도화지 위에 구불구불 쓰인 뜨끈한 글씨를 주둥이로 가리키며 짖었다. 그리고 무지개 꼬리를 흔들었다.
하지만 모두의 눈은 놀라움으로 번쩍 떠져 있었다. 심지어 조은이마저도.
그제야 나는 내가 너무 죄책감에 시달린 나머지 무언가 보여주지 않아도 될 선을 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야, 방금 해피 한글 쓴 거야?”
“엉덩이로 막 조준한 것 맞지? 이거 영상 찍었죠?”
“나, 분명 봤어요. 마치 글을 알고 있는 것처럼, 사람 손이 움직이는 것처럼 똥꼬를 움직여서…”
‘꿀꺽…’
나는 침을 삼키고 주변을 쳐다보았다. 조은이와 걸덕이도 모든 것을 멈춘 채 날 쳐다보고 있었다. 놀라움 뒤에 숨어있는, 그리고 곧 피어오를 당혹감과 공포감을 나는 미리 읽을 수 있었다.
‘아, 괜히 했다. 어떡하지? 어떻게 해야 다시 이걸 수습할 수 있을까? 너무 뒷생각을 안 했네!’
나는 눈을 뒤룩거리며 얼어붙은 분위기를 파악하다 순간 저것부터 지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 파앗! 뒹굴뒹굴!
재빨리 A4지 위로 뛰어든 나는 내가 휘갈겨 쓴, 아니 휘갈겨 싼 글씨를 온몸으로 문질렀다. 뒹굴며 으깨고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꺄아아악! 해피가, 해피가 미쳤나 봐요!”
“어머! 이게 뭐야! 갑자기 왜 이래!”
“해피야, 해피야! 아잇, 드러!”
모두가 비명을 지르는 가운데 나는 완벽하게 내 몸으로 내가 넘은 선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
조은이가 기겁한 얼굴로 나를 번쩍 들고 펜션 안의 욕실로 뛰어갔다. 그 뒤로 사람들의 웅성임이 들려왔다. 채팅창도 난리가 났으나 거의 대부분이 웃음이었다.
‘어, 어떻게든 되겠지!’
***
“으아아아, 안해피! 이게 뭐야!”
따뜻한 물이 쏟아지는 가운데 고약하기 그지없는 냄새가 피어올랐다. 그러나 이것으로 겨우 분위기를 돌리는 데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해피가 글씨를 쓰는 줄 알고 깜짝 놀랐잖아! 진짜 누나는 이게 무슨 상황인가 어안이 벙벙했어!”
“왈! 왈!”
“가만히 있어! 아후, 냄새. 너, 할머니 방에 들어갈 때마다 고약한 냄새 나더니, 네가 똥 싸고 묻히고 노는 것 아냐?”
“끼이이잉…”
그래, 차라리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나을 듯했다.
한참을 씻기다가 내 몸에 코를 대어보고는 ‘으으으’하며 다시 씻기는 조은이. 나는 미안한 표정으로 눈을 뒤룩거리며 조은이가 시키는 대로 몸을 돌리고 다리를 들었다.
결국 비치된 비누와 샴푸를 약간 쓴 후 깨끗이 몇 번이고 헹궈내고 나서야 내 몸이 뽀송뽀송해졌다.
“후아, 이제 된 듯하다. 나가볼까?”
“끼이이잉…”
조은이가 이마의 땀을 훔치며 날 안고 다시 바깥으로 나갔다. 그사이 확실히 내 발광으로 인해 분위기가 풀어졌는지 모두 걸덕이 주변에서 웃고 떠들며 고기를 먹고 있었다.
“오! 해피 뽀송뽀송해졌네!”
“와아!!!”
많은 이들의 환대에 나는 신나게 꼬리를 흔들었다. 채팅창으로도 내 걱정을 묻는 글들과 함께 ‘오늘 해피 똥꼬에 무슨 귀신 들린 듯’ 같은 글이 올라왔다.
“죄송해요. 오늘 해피가 갑자기 많은 분들이 계시고 해서 긴장한 것 같아요.”
조은이의 사과에 걸덕이가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아니에요, 많이 당황하긴 했는데 우리 팸 여러분들도 해피를 씻기러 간 후 엄청 웃었어요. 처음엔 웬 글씨를 쓰나, 했는데 정말 기가 막히게도 그 똥, 아니 변… 그냥 똥이라 하죠. 똥이 글씨처럼 보였으니까. 우연치곤 진짜 장난 아니다.”
다행스럽게도 그렇게 잘 넘어가는 듯했다.
이후 이어진 토크쇼에서도 조은이는 점례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고, 선물추첨 등의 이벤트도 잘 소화해 내었다. 다행스럽게 두 번째 방송도 많은 도네이션을 이끌어 내며 그렇게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저기, 두 분 잠시만요.”
사람들과 사진을 찍어주는 조은이와 걸덕이를 향해 팀장이 조용히 손짓을 했다. 나와 두찌를 각각 안은 둘이 팬들에게 양해를 구한 후 팀장을 따라 펜션 뒤로 향했다.
“벌써 올라왔어. 이게, 되게 로랑 님에게는 미안한 말인데 장난 아닐 것 같아.”
“뭐가요?”
“아까 해피가 로랑 님에게 똥 싼 것 있잖아? 거의 분무기, 아니 변무기 뿜듯.”
“아…”
조은이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나 역시 고개를 푹 숙였다.
“라방 중에 녹화하신 분이나 여기 팬 분들 중에 그 장면만 벌써 편집해서 동영상 사이트에 올리신 분도 있고, 그 파일이 벌써 엄청 퍼지고 있나 봐. 지금 라방에 들어온 이들 중 절반은 새롭게 온 시청자들이야.”
결국 모든 것은 이슈, 조회수였다. 그게 진리이자 법이었다.
“여기 봐. 로랑 님이 한 실언이 선을 넘는다며 ‘주인을 무시한 것에 대한 반려견의 통쾌한 복수’라는 제목으로 누군가 급히 올린 영상이 벌써 조회수가 800을 넘어가고 있어.”
“세상에, 벌써요? 팀장님, 그나저나 이거 이대로 두면 안 될 듯한데요.”
“엄밀히 저작권, 초상권, 복제전송에 대해서 위반이지. 이건 신고를 해서 내리게 하긴 할 건데, 적어도 오늘, 내일은 그냥 두려고. 그게 어쩌면 양쪽 채널에 대해서 다시 광고하는 효과를 낼 수도 있으니까.”
팀장의 눈이 번뜩였다.
“끼잉…”
의미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리고 분명 로랑이가 공개된 자리에서 조은이의 가난을 끄집어내긴 했지만 나는 조금은 그녀가 불쌍해졌다. 그리고 죄 없는 샤넬이도.
그건 조은이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어쩔 줄 모른 채 고개를 숙이는 조은이를 보며 팀장이 ‘어떻게든 이슈가 되는 것이 이 바닥에선 최고’라며 다독였다. 걸덕이도 라방에서 로랑이를 다시 언급해서 분위기를 제대로 돌리겠다 약속했다.
우리는 돌아와 다시 행사를 이어갔다. 나는 요란하게 짖으며 여기저기에서 애교를 피우고, 조은이와 걸덕이는 열심히 채팅을 읽으며 대답을 했다. 그 와중에 틈틈이 로랑이와 샤넬이의 채널에 대한 홍보와 걱정도 잊지 않았다.
“로랑 님은 지금 편히 쉬고 계시겠죠. 아무래도 엄청 당황하셨을 듯해요. 여기 와서 팬 분들 만나게 된다고 얼마나 예쁘게 꾸미셨는데. 그러니 여러분들, 꼭 로랑 님 채널 구독하시고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 Motel캘리포니아 님이 3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조은 님은 따로 채널이나 SNS 운영은 안 하시나요? 궁금합니다.
채팅을 읽은 조은이가 미소를 지었다.
“채널은 아마 곧, 해피와 조은이의 투자일지 같은 것으로 만들까 생각 중이에요. SNS도 벌써 만들어는 놓았는데, 아직 뭘 올리지는 않았어요.”
“오! 궁금해요. 친구 추가 받아주시나요?”
걸덕이의 짓궂은 질문에 조은이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네’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뒤가 ‘joeunhappy’로 끝나는 SNS 계정을 공개했다.
이윽고 공식 행사가 마무리되었다. 아쉬워하는 모두와 사진을 찍고 선물을 주고받으며 그렇게 우여곡절의 두 번째 방향은 마무리되었다.
***
돌아오는 길.
다행히 스태프가 지하철역까지 태워다 준 덕에 우리는 조금은 더 편하게 집으로 올 수 있었다.
점점 더 퍼지고 있는 아까의 대참사 동영상, 그리고 거의 새로고침 할 때마다 조은이의 SNS를 구독하는 이들도 늘어갔다.
‘조은 님이 더 수습할 것은 없어요. 로랑이는 내가 따로 만날 테니까, 염려 마시고요.’
‘혹여 그 옷이 아주 비싸고 그렇다면, 제 방송 수익은 안 주셔도 돼요. 점례 언니에게 전달해주세요. 정말, 전 괜찮아요.’
‘그건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고요. 일단은 계약한 대로의 배분은 될 테니까, 모든 정산 끝나고 나면 연락 드릴게요.’
마침 자리가 비어있어 조은이는 내가 들어 있는 가방을 내려놓은 채 의자에 앉을 수 있었다. 조금씩 흔들거리는 전철의 진동 속에서 조은이는 무언가 가득 수심에 찬 얼굴로 멍하니 바깥을 바라보았다.
아직 투자 대회 중이었다. 물론 방송을 하기로 한 것이 투자 대회보다 훨씬 더 먼저 정해진 것이었다. 그리고 너무나 스트레스를 받아왔기에 조금은 기분 전환을 할 겸 이렇게 방송을 나간 것인데, 오히려 더 생각할 것,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아진 셈이었다.
물론 약속을 지켜야 했고, 조은이는 최선을 다한 것은 맞았다.
모든 것은 참지 못하고 남이 먹다 버린 것을 주워먹은 내 잘못이다. 아무리 점례가 무례하게 입을 털었어도 조은이는 그것을 비껴갈 수 있는 강단이 있었고 걸덕이 역시 노련한 진행으로 그것을 가만두고 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 모든 잘못은 내가 저지른 것이다.
내 똥꼬가 저지른 것이다.
***
“밥은?”
“응, 먹고 왔어요. 아까 방송하면서 고기 구운 것 좀 먹었어.”
“남자친구가 잘 구워주디? 비싼 것 사주디? 여자친구헌티 소갈비 정도는 사 줘야 성공한 남자여.”
“그런 것 아니야. 그냥, 오늘은 더 말하고 싶지 않아. 피곤해.”
조은이는 비틀거리며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나도 조은이가 내려놓은 가방에서 나와 그 뒤를 졸졸 따라갔다.
컴퓨터를 켠 조은이가 몇 개의 키워드를 검색해보더니 얼굴을 가렸다. 자연스레 내 눈이 모니터로 향했다.
‘아아…’
집까지 오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오늘 사건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내 물풍선 터지는 장면이 편집되어 이미 엄청 많은 곳에 올라가 있었다.
이 개가 그때 똥 싼 그 개라는 둥, 저 똥꼬에 마개라도 씌워야 한다는 둥, 주인을 지키는 오수의 개를 빗대 오물의 개라는 둥 수많은 댓글들이 날 어지럽혔다.
아울러 그사이 사이버 렉카도 달려왔다.
[긴급! 주인을 위해 스컹크가 된 강아지! 피해자 로랑은 누구? 한강대 광고녀는?] [바로 오늘 생방 중 일어난 일! 개똥투성이가 된 인플루언서! 로랑!]그리고 무수한 태그들.
덜덜거리며 그것들을 보고 있던 와중에 노파가 비지밀을 들고 들어왔다.
“이것이라도 먹어. 사람이 단백질을 먹어야 혀. 아침에 그 한의사가 또 이야기허드라.”
“으, 응.”
그때 노인의 눈이 화면으로 향했다.
“이게 뭐여? 이거 너랑 해피 아녀? 해피는 얼굴을 가려도 귀 색깔 때문에 바로 알것네. 좀 봐봐.”
“아냐, 할머니가 봐서 좋을 게 아니야.”
“아 좀 보자니께. 응? 어여 틀어봐.”
어쩔 수 없이 조은이가 마우스로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먼저 로랑이에 대한 설명, 인플루언서라는 것과 구독자가 몇이고 주요 주제가 뭐라는 설명이 나온 후, 예전의 광고영상과 조은이의 사진, 내 사진 등이 나왔다.
그리고…
대망의…
– 푸와아아아아악!!! 퍽! 퍽! 푸드더어어어억!
– 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아악!
조은이가 고개를 푹 숙였다.
나는 세상을 다 잃은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얼어붙어 있었고 다시 터져 나오는 물풍선이 로랑이와 샤넬이의 얼굴을 뒤덮었다.
조은이의 방 안이 그때의 펜션 앞뜰처럼 침묵으로 뒤덮였다.
“시방, 이게 오늘 방송한 것이여?”
“응…”
“방송에서 요 똥개가 저런 거여? 저 이쁘장한 탈렌트한테?”
“어…”
“해피 요놈의 자식, 오늘 뒤지게 좀 맞아야겠다.”
노파가 나를 번쩍 들고 안방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리곤 두리번거리며 효자손을 찾았다.
“끼이이잉!”
“왜 나가서 망신살을 떨고 오는 겨! 우리 조은이 어떻게 얼굴 들고 살라고!”
“깨애앵!”
‘아니, 그거 나름 현장에서는 잘 풀었는데!’
그러나 노파가 그것을 알 리 없었다. 비명을 지르며 노파의 분노의 효자손을 받아내려는 순간, 재빨리 조은이가 달려와 막아주지 않았다면 정말로 난 크게 얻어맞았을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