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74
75. 대회 중반전(2)
[안녕하세요, 구독자님들. 이제 후반전의 시작, 남은 2주간의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은 꽤 장이 괜찮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좋은 수익을 올리신 것 같군요.]“…”
청담동 오리발의 말에 조은이가 고개를 푹 숙였다.
다들 치고 나가는 사이, 홀로 당일 손실 -7%를 기록했고 누적 수익률로 따진다면 -16.11%를 까먹었다. 청담동 오리발의 저 말이 마치 오늘의 매매 실패를 따끔하게 지적질하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었다.
“끼잉…”
[오늘 다들 치고 나가는 분위기인지라 상위권에서도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는 정도가 그리 크지는 않았습니다. 어제의 5등이 오늘의 4등이 되는 그 정도죠. 10위권까지 늘 보이는 이름들이 항상 비슷하니 지루하시진 않을지 걱정이네요.]청담동 오리발이 순위 리스트를 확대하며 2위부터 10위까지의 닉네임을 부르며 박수를 치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음? 잠시만. 한 분이 보이지 않으시는 듯한데.]다시 리스트를 줄여 20위까지 확인했으나 찾는 이름이 보이지 않자 그가 더 아래로 스크롤을 내렸다.
우리는 알 수 있었다. 계속 치고 올라오고 10위권 안에 들었던 조은이의 닉네임 ‘조은위한선물’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22등에서 그 이름을 발견했다. 그의 얼굴에서 당혹스러운 표정이 살짝 스쳐지나갔다.
[특정 닉네임, 그것도 제가 알지 못하는 닉네임을 언급하는 것이 조금은 부담스럽습니다. 다만, 꽤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10위권 안에도 들 정도로 안정적인 수익을 보여 내심 제 목표인 1위~10위 독식이 깨질까 염려하게 만들던 이 분이…]당혹 다음에는 비웃음이었다.
[왜 이러셨을까요? 이렇게 장이 좋은데. 지난주 수익이 어디보자… 누적 수익률이 131.02%에 9등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114.91%라.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오늘은 아무데나 돈을 나눠서 넣고 가만히만 있었어도 1, 2%는 거저 먹고 한, 두 번 매매했어도 3, 4%는 그냥 먹었을텐데. 아무리 바보라도 말이죠.]조은이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물론 저 닉네임이 한강 대학교 1학년 안조은, 용숭동 반지하에 사는 20살 안조은을 가리키는 것이야 아무도 모를 테지만, 여하간 딱 집어서 자신의 닉네임을 부르며 실패를 이야기하는 것은 달가울 리 없었다.
게다가 그의 말은 늘 팩트였고 늘 진지하고 조용했다. 그래서 더더욱이 창피할 따름이었다.
[무언가 주말에, 혹은 당장 아침에라도 큰일이 있었을까요? 컨디션 관리에 실패를 했을까요? 그렇다면 그것 자체로 이미 아웃이라 봐도 좋겠지요. 컨디션 관리에 성공하지 못하면 여태 쌓아놓은 것은 모두 허장성세나 다름없습니다. 요행이라고도 볼 수 있겠군요.]“내, 내가 올렸던 것이 허장성세라고? 요행이라고?”
조은이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마치 조은이의 면전 앞에서 놀리는 것처럼, 한참을 말없이 정면을 노려보던 청담동 오리발이 입술을 일그러트렸다.
[구독자 여러분은 야구선수 이치로를 아십니까? 일본출신으로 미국 MLB 최고의 타자로 군림했죠.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한 시즌 최다 안타를 기록했고 3000안타-500도루를 한데다 골드 글러브를 10회 연속으로 차지했습니다. 이 기록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그만이 가지고 있어요.]갑자기 야구선수의 이야기를 꺼내는 그의 모습에 조은이와 나는 놀랐다. 그러나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이치로는 미국을 진출하고 나서 어느 정도 안정이 되자 경기 시작 직전에는 무조건 페퍼로니 피자를 먹었습니다. 아침에는 카레를 먹었지요.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왜 그랬을까요?]“지, 징크스 같은 건가?”
조은이는 청담동 오리발의 말이 마치 자신에게 하는 질문인 것처럼 자신없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것이 오답인 것은 바로 밝혀졌다.
[변수를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뱃속에 늘 같은 것이 들어있어야 몸도 패턴이 익숙해져가는 것이죠. 꾸준함을 위해서는 먼저 그런 것부터 일정하게 유지해서 변수를 줄여야 하는 것이죠. 그럼 다들 물을 겁니다. 청담동 오리발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말을 멈춘 그가 테이블 한 쪽으로 가 견과류가 들어있는 유리병과 물을 가지고 왔다. 그리곤 유리병을 열어 한 줌의 견과류를 테이블에 놓은 후 컵에 물을 따랐다.
[이 한 주먹의 견과류, 그리고 미지근한 물 한 잔. 제가 아침 6시에 일어나서 하는 식사입니다. 그리고 매매중에는 오전 11시에 아메리카노를 한 잔 마십니다. 1시에는 에너지바 한 개. 저는 이 식사를 6주 전, 1달의 연습기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지켜왔습니다.]무시무시한 집중력이었다.
물론 전업 투자자이고 이미 큰 성공을 한 이였다. 하지만 그런 그조차도 대회를 앞두고는 일정한 몸의 패턴을 만들기 위해 저렇게 자신을 관리하고 있었다.
[뉴스를 보는 시간, 잠을 자는 시간, 장을 파악하는 시간. 모든 것은 완벽하게 정해져 있습니다. 심지어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장의 시작 시간에 맞춰서 매매 프로그램을 보고 코인 장에서 단타 연습을 합니다. 손과 두뇌의 긴장을 주말에도 유지시키는 겁니다.]그의 손가락이 자신을 찍는 카메라를 향했다. 즉, 나와 조은이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런 사람들이 모든 것을 걸고, 또 모든 것을 차단한 채 매달리는 대회에 끼고 싶다면 그만큼의 준비를 해야 하는 법이죠. 수준이 낮지만 운으로 따라왔다면 그건 금방 사라집니다. 그 결과가 저런 등수겠죠. 더 내려갈 겁니다.]– 뚝, 뚝, 뚝.
고개를 숙인 조은이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분해서일까, 창피해서일까. 혹은 자기 자신에게 실망해서일까.
나는 차마 조은이를 위로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원흉도 나였고 여기에서 왈! 왈! 짖어봤자 되는 것도 없었다. 그런 나와 조은이의 머리 위로 그의 일갈은 이어졌다.
[혹시 주말에 신나게 놀았거나, 아니면 쉬었거나. 혹은 다른 돈을 버는 일을 했다거나. 상관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하루동안 번 돈이 여기의 상금보다, 수익률보다 높았다면 정말로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면.]여기에서 그의 말은 잠시 멈췄다.
분명 불특정 다수를 향해 하는 말이고 조은이는 그저 예시로 든 것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어진 말은 이보다 더 잔인할 수 없었다.
[당신은 그 짧은 시간으로 한 달의 대회를 날린 것이고 엄청난 기회비용을 날린 겁니다. 시간과 돈, 그리고 마인드까지 모든 것이 날아간 것입니다. 그런 이들이 설 자리는 없습니다. 절대로. 그러니 여기에서 작별을 고하죠. 20위권 밖의 분들은 더 스트레스 받지 마시고 편히 돌아가셔도 됩니다.]그리고 어두워지는 화면.
동영상이 끝이 났다.
조은이가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고 핸드폰과 지갑을 들고 현관 앞에 섰다.
나는 재빨리 꼬리를 흔들며 조은이 앞에 섰다. 이 저녁에 어디를 갈 것인지, 간다면 나도 데리고 가라고 말하고 싶었다. 혼자 있지 말라고, 같이 하자고 조르고 싶었다.
하지만 조은이는 슬픈 눈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문을 천천히 닫았다.
문이 닫히는 소리에 안방에서 연신 덥다, TV부터 빨리 사고 싶다며 짜증을 남발하던 노파가 헐레벌떡 나왔다. 그러나 노파의 부름에도 조은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조은이의 발자국 소리가 골목을 따라 멀어져갔다.
“왈! 왈! 왈!”
***
걱정이 되기 그지없었다.
중간에 2,300원이 결제되었는지 그만큼의 금액이 빛태창에서 빠져나갔다.
‘어디에서 커피라도 사 마시는 건가? 아니면 캔맥주라도?’
나는 텅 빈 조은이의 방에 꿇어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 너무나 날 힘들게 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일 아침부터 컴퓨터를 켜고 조은이 대신 매매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나마 조은이니까 저 정도지, 나라면 당장 마이너스의 손이 되어 모든 것을 파랗게 질리게 할 것이 뻔했다.
노파는 늦게까지 들어오지 않는 손녀가 걱정이 되지도 않는지 몇 번을 ‘TV가 없으니 할 것이 없다’고 궁시렁거리다가 코를 골기 시작했다.
‘하아…’
휑한 안방과 작은 방. 휑한 거실겸 주방. 휑한 화장실.
그 안에서 노파의 코 고는 소리만 듣고 있노라니 나 역시도 답답함이 밀려왔다.
– 와그작, 와그작.
배는 고팠기에 어쩔 수 없이 말표 사료를 씹어 먹은 나는 그릇에 따라놓은 물까지 마신 후 길게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곧이어 밀려오는 배설욕을 느끼자마자 패드로 달려갔다.
‘심심한데 그때 했던 것이나 한 번 해볼까?’
나는 괄약근의 힘을 조절하고 ‘그것’이 최대한 가늘고 길게 나올 수 있도록 온 신경을 집중했다. 다리를 벌려 어기적어기적 뒤뚱대면서 항문을 열고 엉덩이를 천천히 돌려대었다. 마치 엉덩이로 이름쓰기처럼.
그렇게 게걸음으로 옆으로 이동하며 똥을 뿌렸다.
[조은]‘휴우, 아슬아슬하게 끊겼다.’
나는 뒤로 물러나 내가 싼 글씨를 쳐다보았다. 뭐, 영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나름 확실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조금만 더 안의 내용물이 차 있었다면 ‘화이팅’은 좀 길더라도 하다못해 ‘힘!’ 정도라도 더 써보련만, 불행히도 가진 장의 크기가 그리 크지 못했다.
– 덜컹!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서둘러 오줌이 말라비틀어진 패드의 끝을 물고 방금 싼 글씨를 덮었다. 그와 동시에 손에 커피를 든 조은이가 들어왔다.
“왈! 왈!”
아무리 그래도 조은이에게는 내가 있었다. 귀를 펄럭이며 무지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내 천연덕스러운 모습을 보자 잔뜩 굳어있던 조은이의 얼굴에 흐릿하지만 미소가 조금씩 피어올랐다.
“내가 뭐 얼마나 대단한 누나라고 이렇게 기다리고 있었어, 우리 해피?”
“왈! 왈!”
나는 그제야 조은이의 눈 주위로 눈물 자국이 번져있는 것을 봤다. 아직 두 눈의 물기는 마르지 않았고 빨갛게 충혈되어 있기도 했다.
‘어디에선가 울었나보다. 자신이 한심해서, 그리고 어제 일이 너무나 힘들어서.’
나는 얼른 들어오라며 조은이의 신발을 물었다. 조은이가 ‘신발 지지야!’ 하고 나를 말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해피! 또 똥 쌌지!”
내가 방금 ‘조은’이라 썼다가 덮어버린 패드를 접어 쓰레기봉투 안에 넣은 조은이가 물티슈로 배변판을 닦은 후 새로운 패드를 꺼내 깔았다. 나는 뽀송뽀송해진 그 위에서 신나게 뛰어 놀았다.
“누나는 이제 공부할거야. 해피도 같이 지켜볼거지?”
“왈! 왈!”
조은이의 뒤를 따라 작은 방에 들어온 나는 여느 때처럼 옆에서 스핑크스 자세로 앉았다.
밥상 위의 컴퓨터가 켜진 후 조은이가 가장 먼저 한 것은 SNS에 공지를 올리는 일이었다.
지금 중요한 대회를 진행 중이다, 다음 주 금요일에 끝나니 그때까지 잠수를 타겠다, 혹여 급한 건은 메일로 부탁드린다는 내용이었다.
그 다음엔 핸드폰이었다. 공지의 내용을 문자로 걸덕이와 팀장을 포함한 몇몇에게 보낸 후 조은이는 핸드폰의 한 버튼을 오랫동안 눌렀다. 핸드폰의 전원이 꺼졌다.
“이걸 켜는 건 다음 주 금요일이야. 그때까지 나는 모든 연락을 받지 않을 거야. 무엇이 어떻게 돌아간다 하더라도 절대 흔들리지 않을 거야. 아까 그 말, 완전히 내게 하는 말 같았어.”
“끼이잉…”
“그래서, 꼭 그렇게 아웃되는 경우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보여주자. 해피야, 알았지?”
“왈! 왈!”
방황은 하루면 족했다.
역시 조은이는 강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