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78
79. 대회 중반전(6)
저녁 식사를 마치고 목욕재계한 조은이와, 아까 뒤지게 두들겨 맞고 의기소침한 내가 가만히 모니터 앞에 앉았다.
“아직도 미국 장날이냐?”
“그런 것 아니야. 이거 내가 보는 그거, 있어.”
“그리여. 많이 봐라. 이 할매보다 그 똥개랑 더 오래 살아라.”
“또 그런다.”
“왈!”
노파는 투덜대며 새우쾅 과자를 들곤 안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 과자가 몹시 그리웠으나 꾹 참고 조은이와 함께 청담동 오리발을 기다렸다.
“아, 떴다!”
조은이가 알림과 동시에 바로 눌렀다.
[…안녕하십니까, 구독자 여러분. 오늘 장이 무려 세 개의 악재가 마치 융단폭격하듯 내려앉았습니다. 다들 별 탈 없으신지, 잘 버텨내셨는지 궁금합니다.]평소보다 약간의 텀을 둔 청담동 오리발은 이번 악재의 파급력이 금요일까지 계속될 것 같다는 말과 함께, 중장투를 하시는 분들이라면 이번 주 중으로 저점에 평상시 생각했던 주식들을 포트폴리오에 담아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는 말로 서두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오늘의 순위표입니다. 일단 보시는 것처럼 저는 여전히, 대회 시작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1등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뭐 딱히 더 이상은 순위에 대해서 말씀드릴 것은 없을 듯하군요.]“에엥?”
조은이와 나는 깜짝 놀랐다. 살랑살랑 흔들어대던 내 꼬리도 천천히 움직임을 멈추었다.
분명 원래대로라면 자기 자랑 실컷 한 후에 10위까지 자신의 리딩방 회원이 몇 명이네, 이제 더 따라올 수 없는 격차가 벌어지네, 굳히기네, 그래도 20위까지 다들 선전하시네… 하고 떠들 타이밍이었다.
워낙 레퍼토리가 정해져 있어 아주 외울 지경이었다. 그 와중에 폭삭 떨어진 닉네임은 귀신처럼 찾아서 불러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물론 폭등한 닉네임도.
그러나 어제에 이어 오늘도, 청담동 오리발은 조은이의 닉네임을 따로 입에 담지 않았다. 9등에서 무려 22등까지 밀려났다가 15등, 그리고 단번에 4등까지 따라잡았는데도 청담동 오리발은 조은이를 무시하고 있었다.
순간, 나는 바로 알 수 있었다.
‘경계하고 있다. 조은이를 경계하고 있어. 그 이름을 입 밖에 꺼내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예측이 빗나간 것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고 평정심이 흔들릴 수도 있어. 분명 일부러 무시하는 거야.’
조은이도 그것을 알아챈 듯했다. 처음엔 ‘뭐야! 왜 내 이름 안 불러!’하고 외치다가 청담동 오리발의 ‘억지 무시’를 깨닫곤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것입니다. 언제나 장은 유동적으로 흐릅니다. 따라서 우리는 장을 이기려 하기보다는 그 흐름을 이해하고, 타고 내리는 것을 완벽하게 기계처럼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럼, 내일 이 시간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방송이 끝났다.
조은이가 새로 고침을 하자 몇 개의 댓글이 올라와 있었다.
[청담동 오리발 님, 오늘은 순위 소개 안 하셨네요.] [조은위한선물 완전 쩐다. 22에서 15 다음에 4, 실화냐.] [조은위한선물, 요 이틀 수익률 보면 막판에 청담동 오리발과 붙을 듯]“하아…”
조은이가 그것을 보고 감탄인지 한숨인지 모를 것을 내뱉었다. 어쩔 수 없이 조은이도 신경이 쓰이게 된 것이었다.
“나, 그 점쟁이 집에 가서 텔레비전 볼 것인디, 니도 갈텨? 거기 가면 그래도 에어컨 틀더라.”
“어? 음, 그럴까? 나도 간만에 아주머니네 놀러가야겠다. 아이스크림 사 가자! 해피도 가자!”
“왈! 왈!”
조은이가 날 안고 신나게 나왔다. 편의점 옆에 있는 아이스크림 할인점에서 이것저것 고른 조은이와 난 노파를 따라 도성암으로 올라갔다.
“아유, 5층 오르는데 정말로 죽것어!”
문을 열던 도화선녀가 노파의 투정에 ‘그럼 세상 편한 반지하로 가시든가!’하고 문을 닫으려 했다. 장난스러운 그 모습에 조은이가 웃으며 문틈 사이로 아이스크림을 내밀었다.
“아이고! 조은이! 그리고 우리 개령님, 개령님! 잘 지내셨어요?”
“왈! 왈!”
도화선녀는 우리가 들어오자마자 에어컨을 켰다. 낡은 벽걸이 에어컨이지만 그래도 잠시 털털거리다가 곧이어 시원한 바람을 내뿜기 시작했다. 너무나 고마운 존재였다.
“아유, 진짜 살 것 같다.”
“얼마나 더 아끼시려 그래! 당장 에어컨이랑 냉장고부터 사요.”
도화선녀의 안타까움이 섞인 호들갑에 노파가 조은이를 쳐다보며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나야 사고 싶기는 허지, 그래도 우리 조은이가 딱 돈을 틀어잡고 있으니께. 대회 끝나면 산다고….”
“이사 가서 한 번에 사게요.”
“으, 응?”
노파가 깜짝 놀라 조은이를 쳐다보았다.
아니, 노파뿐이 아니었다. 도화선녀도, 나도 갑작스러운 조은이의 말에 놀라 빤히 바라보았다. 배배 꼬인 사과딸기맛 바를 빨아먹던 조은이가 배시시 웃었다.
“진짜로, 이사 가서 한 번에 살 거야. 여기에서 꼭 이사 가라고 아주머니가 그러셨잖아요?”
“그랬지. 빨리 갈수록 좋아.”
“갈 거예요. 대회 끝나면 반드시. 그게 내 가장 중요한 목표니까요, 지금은.”
노파가 어버버하며 조은이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나는 눈치 채고 있었다. 이번 대회 최종결과에 따라서 조은이는 정말로 이 반지하를 벗어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주머니, 여기 신동아맨션 5층 정도면 전세 얼마나 해요?”
“응? 아마 한 8천 하려나. 5층이니까 싸지. 방은 세 개. 지은 지 20년 되긴 했지만 이 정도면 좋지, 뭐. 23평이고.”
“그래요? 그럼…”
조은이가 가만히 생각했다. 나 역시 동시에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차피 조은이의 계산과 내 계산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었다.
전세금 3,000만 원. 그리고 2,200만 원가량의 평가액만 합쳐도 5,200만 원.
다음 주말의 결과에 따라서 1등은 5,000만 원, 2등은 3,000만 원, 3등은 1,000만 원, 수익률 10위까지는 500만 원의 상금을 받게 될 것이었다.
만약에, 정말로 만약에 1등을 한다면 아마 평가금액은 3,000만 원 가까이 될 것이니 바로 1억 1천만 원이 될 수 있었다. 2등만 된다고 해도 이런 곳으로 이사가 가능했다. 3등도 평수만 줄인다면 충분히 지상으로 올라설 수 있을 것이었다.
분명 용숭동에는 충분히 그런 곳이 많았다.
“조은이, 너 정말로 그럴 생각이니? 이번 대회로?”
“네,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조은이의 말에 도화선녀가 벌떡 일어섰다. 그리곤 조은이의 손을 잡고 전안 안으로 들어갔다.
“아니, 우리 손녀는 왜! 그 뭐시기냐, 신내림 하는 것이면 내가 다 불질러 버릴겨!”
“신은 아무나 받는 줄 아나! 보살님은 이 방에 잠깐 들어오지 마!”
문이 닫히기 전, 나도 전안 안으로 들어가려 몸을 밀어 넣었으나 도화선녀는 나도 바깥으로 내쫓았다.
“개령님도 안 돼요. 신끼리 티격날 수 있으니 들어오지 말아요. 나쁜 것 아니야, 개운 보려고 해.”
– 쾅!
곧이어 안에서 방울 흔드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 중얼중얼 묻고 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닫힌 문 사이로 향냄새도 풍겨오는 듯했다.
“저, 저 돌팔이가 뭘 하는겨?”
“끼이이잉…”
그러나 기다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잠시후 문이 열리더니 뺨이 발그레해진 조은이가 신기하다는 듯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왔다.
그 뒤로 뿌듯한 표정의 도화선녀가 호탕하게 웃으며 부채를 연신 흔들었다.
“그래, 점쟁이가 뭐래?”
“점쟁이 아니야! 나, 도화선녀야! 그리고 조은아, 그거 절대 말하면 안 돼. 천기누설이야. 아줌마 또 벼락 맞아 머리 볶아질라. 눈 돌아갈라!”
“말 안 해요. 가만히 알고만 있을게요.”
“자아, 다음엔 우리 개령님!”
“!!!”
나는 깜짝 놀랐다. 그러나 도화선녀의 눈이 무서워 도망칠 수 없었다. 내가 쭈뼛거리며 들어가자 도화선녀가 문을 쾅! 닫았다.
“우리 개령님 똥꼬 좀 봅시다!”
내가 도망칠 새도 없이 날 잡아든 도화선녀가 가만히 내 똥꼬를 쳐다본 후 ‘역시!’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날 바로 돌려 내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개령님, 똥꼬 활짝 열렸어. 앞으로 어떤 연락이 올 거야. 무조건 한다고 해. 창피해하지 마. 일이 되어가는 거야. 알았지요? 그래야 우리 개령님이 정말로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어.”
“끼이이잉…”
“숫자가 보여. 3이란 숫자랑 0이 여러 개.”
“!!!”
“알았지요? 알았으면 고개 가만히 끄덕여요.”
나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화선녀가 옳거니! 하곤 문을 열고 나와 함께 나왔다.
“나는 왜 안 봐줘!”
“돌팔이래매! 점쟁이래매! 그런 사람 건 볼 필요도 없어! 보살님은 그냥 개령님이 하고 싶어 하는 것 다 시켜주고, 조은이 발만 붙잡고 매달려. 그래야 해.”
“매달리기는 무슨…”
점사는 거기까지였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녀가 내린 공수가 나는 너무나 궁금했다. 나도 나지만 조은이에게 어떤 말을 했을지, 그것이 너무나 궁금했다.
***
다음 날.
된장국에 밥을 후딱 해치운 조은이와 사료를 열심히 씹어 먹고 똥으로 배변판에 하트를 그린 나는 가만히 컴퓨터 앞에 앉았다.
어제의 충격적인 여파로 오늘도 초약세가 예상되었다. 간밤의 미국과 유럽 장도 이틀째 하락 폭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하는 거야. 모두가 저어할 때 최대한 앞서가지 않으면 안 돼. 단번엔 안 되겠지만 먼저 3등을 목표로, 그리고 2등을 목표로. 최후엔 그 아저씨를 목표로.”
“왈!”
조은이가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종료일 2026년 3월 8일 오후 10시 13분. 현재 순자산 5,392만 1,100원]어제 아이스크림을 사서 5,800원이 줄어든 순자산.
그리고 현재 주식계좌에 들어가 있는 돈은 2,278만 4,350원.
“5, 4, 3, 2, 1, 시작!”
장이 시작되었다.
어제처럼 시작하자마자 마치 폭격과도 같은 하방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러나 세기말적 시작과는 조금은 달랐다. 어제 시작과 동시에 1시간 만에 거의 전 종목이 5~6%의 폭락을 보여주었지만, 지금은 2~4%대의 폭락이 펼쳐지고 있었다.
장이 분명 충격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이럴 땐, 어제처럼 가장 많이 떨어진 것들을 잡아 나가는 거야. 어제와 비슷하게 갈 거야.”
“왈!”
조은이의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방식은 어제와 비슷하게, 하지만 반응은 조금 더 빠르게. 회복할 것이라는 걸 염두에 둔 상태로, 고르고 고른 종목들에 돈이 분산되기 시작했다.
“믿어, 나는 날 믿을 거야. 해피도 누나 믿을 거지?”
“왈!”
“그래, 믿을 거야. 어제 아주머니가 한 말도 믿을 거야.”
조은이의 눈이 불타올랐다.
어둡고 습한, 그리고 끔찍하게 무더운 반지하. 아침에 땀을 뻘뻘 흘려 조리한 음식의 냄새와 주방의 열기가 그대로 고여있는 이 공간 속에서, 조은이는 그런 것들을 모두 말리고 태워버릴 정도로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열기가 6시간 동안 뿜어지고 나서야 조은이는 마우스에서 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머리까지 땀으로 젖어있었다. 등도 흠뻑 젖어 옷을 짜면 그대로 흘러내릴 정도였다.
나 역시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탈진할 지경이었다.
우리의 눈이 화면을 향했다.
투자금과 평가액을 합친 금액은 2,485만 2,500원. 어제의 2,278만 4,350원보다 2,068,150원이 늘었다. 일일 수익률 9.08%, 누적 수익률은 210.66%.
[종료일 2026년 3월 8일 오후 10시 13분. 현재 순자산 5,596만 6,280원]몇 만 원의 차이는 아마 지금 바깥에 장을 보러 나간 노파가 쓴 것이리라.
우리는 떨리는 마음으로 순위표를 확인했다.
[1등 : 청담동 오리발 228.12%2등 : 조은위한선물 210.66%
3등 : Euronymous 205.42%
4등 : 언터쳐블 199.34%
5등 : SpeedClick 195.67%…]
따라잡았다.
비록 청담동 오리발이 누적 수익률 23%를 올리며 견제를 시작하고 후반 스퍼트를 내려는 모습을 보이긴 했고, 다른 이들도 꾸준하게 수익을 기록했지만, 그 사이에서 조은이는 2등으로 올라섰다.
2등 상금이 3,000만 원이었던가.
이대로 장이 종료된다고 해도
이사를 갈 수 있을 금액.
조은이와 나는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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