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86
87. 설레발
영문을 모른 채 조은이의 눈물을 닦아주던 도화선녀를 제치고 노파가 서둘러 아이스크림을 조은이 입에 물렸다.
“더워서 우나 보다. 여기, 돼지초코바. 조은아, 얼른!”
“보살님, 가장 싼 것 주는 거 봐라. 그거 400원이잖아요. 조은아, 이거 먹어. 이거 2,000원짜리야.”
도화선녀가 얼른 하쉬초콜릿콘을 뜯어 조은이에게 쥐여주었다. 이제 스무 살인 조은이가 운다고 저마다 아이스크림을 쥐여주는 모습이 너무나 정겨웠다.
“끼이이잉, 끼이이잉…”
나는 그 모습에 무언가 감동을 받아 따라 울었다. 그러다 노파의 매서운 손에 허벅지를 얻어맞고 재빨리 부엌으로 도망쳤다.
“깨애앵! 깨애앵!”
오줌이 흠뻑 묻은 배변패드 위에서 서러워 울고 있자니 눈물범벅이 된 조은이가 달려와 날 껴안았다.
“해피야, 해피야! 엉엉엉, 으허어어어엉!”
“끼잉, 끼이잉…”
‘잘했어. 정말 잘했어 조은아. 마지막 순간에 컴퓨터를 끄고 믿어보기로 한 것은 순전히 네 결정이야.’
나는 가만히 조은이의 품에 안겨 같이 목놓아 울었다. 그 뒤로 아이스크림을 든 노파와 도화선녀가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아직 마지막 결과가 나오지 않았기에, 일단 조은이는 대회가 끝나서 조금 울컥했다며 노파와 도화선녀를 안심시켰다.
“깜짝 놀랐구만. 난 아이스크림 마저 들고 점쟁이 집에 가서 에어컨 쐬고 TV 볼 건데, 조은이 너도 갈텨?”
“응? 아, 아니. 난 괜찮아.”
“그리여. 너무 어두운 곳에만 있지 말고.”
노파는 도화선녀와 함께 바깥으로 나갔다.
다시 컴퓨터 화면을 열고 수익률과 금액을 확인한 조은이는 아직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때, 동영상 알림이 왔다.
아래에 뜬 팝업 알림을 누르자 청담동 오리발의 채널 공지 페이지로 연결되었다.
[최종 승리의 날. 금일 오후 5시부터 상위권을 휩쓴 리딩방 회원님들을 모시고 축하 라이브 방송을 할 예정입니다.]간단한 한 문장.
“에엥? 바, 발표는 6시라고 했는데.”
일종의 전야제 같은 느낌일 것이다. 아마 승리를 확신한 이들끼리 모여 서로 덕담 나누고 하다가 카운트다운과 함께 공지를 확인하고 1등이 확실한 청담동 오리발을 축하하는 뭐 그런…
아직 한 시간 가까이 남아있었다.
조은이와 나는 멍하니 앉아 방송을 기다렸다. 어차피 오후 6시까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
[안녕하세요, 구독자님들. 그리고 찾아오신 시청자 및 폭스넷 주최 실전투자대회의 모든 관계자와 참가자님들. 청담동 오리발입니다.]평상시보다 굉장히 긴 인사말.
게다가 황금돼지와 황소가 놓여있던 탁자에도 변화가 있었다. 황금 돼지와 황소 옆으로 위스키와 코냑, 아이스버킷에 담긴 최고급 샴페인 등이 탁자 위를 채우고 있었다. 온 더 록 잔과 위스키 잔, 샴페인 잔도 벌써 세팅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청담동 오리발을 가운데로, 양쪽에 두 명씩, 총 네 명의 새로운 얼굴들이 있었다.
나이대는 20대 후반부터 50대 초반까지 다양했지만 다들 공통점이 있었다. 굉장히 비싸 보이는 옷들, 시계들. 그리고 득의양양한 표정들.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청담동 오리발도 입가에 미소가 씰룩였다.
[깜짝 놀라셨습니까? 저도 사람이죠. 매매하는 동안에는 완벽하게 기계가 되지만, 이렇게 매매가 끝난 후, 특히나 큰 대회가 끝난 후에는 좋은 일에 웃을 줄도 알고 축하해 줄 줄도 아는 사람입니다. 물론, 축하받을 줄도 알고요.]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양옆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그들을 진정시키려는 듯, 그가 과장되게 팔을 벌려 ‘워, 워’하고 소 모는 소리를 내었다.
[먼저 소개해드려야겠죠. 여러분이 보시는 왼쪽부터. 2등이 확실시되는 Euronymous 님. 이분은 국내 최고의 대학 한국대를 졸업하고 바로 전업에 뛰어든 분이죠. 수많은 제의를 거절하고 말입니다. 제 동생 같은 이랄까?]20대 후반의, 말끔하게 빗어넘긴 머리에 검은색 뿔테를 쓴, 세상 모든 신경질을 다 담은 듯한 얼굴의 비쩍 마른 청년이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나머지 인원들이 박수를 쳤다.
[그리고 그 옆은 저와 나이가 비슷한, 뭐 제 친구라면 친구이고 라이벌이라기엔 아직 갈 길이 멀죠. 3등이 유력시되는 이입니다. SpeedClick.]30대 초중반 정도 되는 남자가 일어나 인사를 했다. 그 팔목에 찬 시계가 빛나 보였다.
“헤에, 그렇게나 많이?”
나도, 조은이도 깜짝 놀랐다. 청담동 오리발의 소개를 받은 40대 중반 정도 되는 덩치가 큰 곰 같은 남자가 일어나 고개를 까딱했다. 개중 그나마 가장 얼굴이 푸근해 보이는 이였다.
[그리고 옆에는 박사님. 실제 박사는 아니지만, 우리 리딩방에서 가장 오래 주식을 해 온 분이시고, 또 리딩방의 신규 회원분들을 교육하시는 선생님이자 형님이시죠. 풍림야이원 님. 역시 4등이나 5등이 유력시되는 분입니다.]50대 초반의, Euronymous만큼이나 마른 남성이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모두의 소개를 마친 청담동 오리발이 앞에 놓인 고가의 위스키와 코냑, 샴페인, 와인 등을 가리켰다.
[뭐, 장도 끝났고, 대회도 끝났고. 결과는 대충 예상이 됩니다. 이렇게 편안한 날, 한잔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오늘은 제가 즐겨 하는 술 중에, 그래도 오늘의 분위기에 가장 잘 어울릴만한 것으로 골라보았습니다.]“와아, 저런 건 한 병에 얼마일까?”
조은이가 조명을 받아 빛나는 술병들을 쳐다보았다.
옆의 실시간 채팅창에서 정신없이 채팅이 올라가고 있는 와중에 누군가가 ‘조은위한선물도 순위권 아니었나?’하고 물었다.
그러자 몇몇이 ‘조은위한선물은?’, ‘맞아, 전에 4등이었음.’하고 채팅을 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청담동 오리발이 씨익 웃었다.
[많은 분들이 묻고 있는 그분. 대단하신 분입니다. 저는 처음 봤고, 이후에 신경이 쓰여서 혹여 내가 아는 이인가, 주변에 수소문도 해 봤습니다. 그런데 정체가 나오지 않더군요. 전에 아마 4등이었는데… 일일 수익률이 1.5%? 아마 2% 미만으로 나왔을 겁니다. 마지막 날을 앞두고 그렇게 나오면 못 올라갑니다.]채팅창에서 어떻게 그걸 아냐는 문의가 이어졌다.
[오늘, 여기 있는 분들. 그리고 저를 포함해서죠. 우리는 4주 내내 절대 흔들리지 않는 매매를 해 오면서 힘을 비축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 최대한 우리 스타일을 살림과 동시에 평상시보다 훨씬 많은 매매를 했습니다. 일종의 피날레를 위한 축포랄까.]채팅창에 감탄과 느낌표가 난무했다. 중간에 ‘다른 사람들에겐 늘 끝까지 평정심을 유지하라면서!’라는 글이 나타났으나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러나 청담동 오리발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평정심, 유지했습니다. 우리가 지켜온 스타일, 유지했어요. 다만 속도를 좀 빨리, 힘이 남아돌기보다는 마지막까지 다 소진해버리자는 마음으로. 그래서 여기 이 자리의 대다수는 스캘핑의 일일 수익률로 자신의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아!!!”
조은이의 낯빛이 변했다. 나 역시 심장이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이런 우리를 샅샅이 쳐다보듯, 청담동 오리발은 악마 같은 미소와 함께 말을 이었다.
[누적 수익률 30%, 40%는 상대도 안 될 높은 수익률을 보였어요. 조은위한선물, 아! 죄송합니다. 이름을 말해버렸군요. 여하간 그 재야의 고수님이 아마 따라오지 못할 거라 생각됩니다. 그분의 4주간의 수익률 평균과 최저, 최고를 감안한다 하더라도요.]채팅창에 ‘역시 청담동 오리발!’, ‘와, 진짜 대박… 이분들은 인간이 아니신 듯’, ‘그저 스캘핑의 GOAT’ 등이 난무했다.
조은이가 씁쓸하게 웃었다. 그들이 엄청나게 수익을 냈다고 저렇게 자랑스레 공표한 이상, 오늘의 기적이 쓴 결과를 장담할 수 없었다.
“제발, 3등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
“끼이이잉…”
조은이가 시계를 힐끔 쳐다보았다. 5시 반이 지나고 있었다. 청담동 오리발과 나머지 4인은 이번 대회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매매, 그리고 종목 등을 이야기하며 서로 축하하고 또 위로하고 있었다. 완벽하게 그들만의 세상이었다.
종종 채팅창에 올라오는 질문들에 답을 해주는 모습에는 여유가 넘쳐흘렀다.
“잠시, 화장실 좀 다녀와야겠다.”
조은이가 일어나 화장실로 간 사이, 나는 재빨리 컴퓨터 앞으로 다가가 마우스 커서를 채팅 입력창에 댔다.
‘눈꼴사나워서 못 봐주겠네. 아직 결과도 안 나왔으면서.’
나는 떨리는 앞발로 토닥토닥 한 자 한 자 정성껏 쳐 내려갔다.
[1등륹호은이다.]간신히 전송을 누르고 나서야 나는 내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오타를 냈는지를 자각했다. 그때 화장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끼잉, 끼잉!”
어느새 그 글도 다른 채팅들에 가려서 올라갔다. 하지만 청담동 오리발은 그 리플을 정확히 짚어내었다.
[호은이가 누구죠? 오타인가? 아마 앞의 받침에 쓰인 자음을 보니 1등은 조은이다, 라고 쓰신 것 같은데. 본인이신가?]“어머, 내 이름을 부르네?”
아무것도 모르는 조은이가 자리에 앉아 나를 안고 신기하다는 듯 모니터를 쳐다봤다. 그러나 모니터 안의 청담동 오리발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자꾸 신경 쓰이는 댓글 하나씩 있었는데, 아마 본인 같아요. 왜, 내 채널에 댓글 달 때 막 오금이 저리시나? 손이 덜덜 떨려서 주체가 안 돼? 황송해서?]약간은 거칠어진 그의 말에 양옆의 사람들이 살짝 당황한 눈으로 청담동 오리발을 쳐다보았다. 시선을 느낀 그가 재빨리 앞에 있는 물을 한 모금 들이켰다.
[뭐, 말했다시피 모든 것은 순위가 말해주는 법이니까요. 자아, 기대해 봅시다. 사실, 이미 확정적이라 큰 기대는 안 하지만 말이죠.]시간은 5시 50분이었다. 이제 10분도 안 남았다.
“10등 안에는 들었겠지? 그것만 해도 500만 원인데. 3등은 아무리 생각해도 못 했을 것 같아.”
그들의 웃음과 자신감 넘치는 이야기를 듣던 조은이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끼이잉…”
그래도 10등 안에 든 것만 해도 대단하다, 지금 이룬 것만으로도 지상으로의 레벨 업이 가능하다며 나는 조은이의 손을 핥았다. 그런 내 머리를 조은이가 천천히 쓰다듬었다.
“귀, 다시 분홍색으로 염색해줘야겠다.”
“끼이잉.”
[자아, 이제 카운트다운이 들어가게 되겠습니다. 아까 정확히 18시 정각에 올린다는 것을 폭스넷에 문의해서 확인받았거든요? 아마 관계자분들도 제 방송을 보고 계시겠죠. 8, 7, 6, 5…]“4, 3, 2, 1, 0.”
조은이도 그들과 함께 입을 맞추어 중얼거렸다.
청담동 오리발이 화면을 띄우고 새로고침을 했다.
노란색과 검은색으로 ‘New’ 아이콘이 박혔고 새로운 글이 올라왔다.
[제19회 폭스넷 실전투자대회 – 일반인 편 수상자 및 상위 20등 등수 안내]청담동 오리발이 일어나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양옆의 사내들이 샴페인 병을 쥐고 흔들기 시작했다. 곧 ‘펑!’하고 타이밍에 맞게 터트릴 예정이었다.
– 딸깍!
– 펑! 펑!
“축하드립니다! 모두 축하합니다!”
[1등 : 조은위한선물 459.24%2등 : 청담동 오리발 442.88%
3등 : Euronymous 397.91%
4등 : SpeedClick 385.24%
5등 : 봉우맨 356.66%
6등 : 풍림야이원 347.96%
7등 : CoinRolf 339.42%
8등 : DCCooker 320.75%
9등 : 모탈컴뱃 318.09%
10등 : Eagles 311.44%…]
순간 화면이 얼어붙었다. 다섯 명 모두 얼어붙어 있었고 채팅창에도 침묵이 가득했다. 그 4, 5초 동안 모두가 최상단을 뚫어지게 보고 다시 쳐다봤다.
타이밍을 못 맞추고 눈치 없이 양쪽에서 뿜어지는 샴페인 거품이 얼어붙은 청담동 오리발의 비싸기 그지없는 정장을 속절없이 물들였다.
– 탁!
Euronymous의 손에서 샴페인 병을 뺏어 든 청담동 오리발이 모니터를 향해 던져 산산조각을 내었다.
“이런 개*발! 빌어먹을!!!”
– 뚝!
황급히 방송이 종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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