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87
88. 여운, 그리고 일상으로의 복귀
한여름이라 오후 여섯 시가 훌쩍 지났어도 거의 대낮이나 다름없었다.
조은이가 쥔 목줄을 맨 나는 헥헥대며 길게 혀를 뺀 채 뒷산을 올랐다. 그 뒤로 조은이가 말없이 멍한 표정으로 뒤따랐다.
방송이 그렇게 황당하게 끝날 줄은 몰랐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폭스넷의 대회 담당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시상식은 다다음 주 월요일. 다행히 새롭게 알바를 가기로 한 처묵소의 휴일이 월요일인지라 마침 잘 맞았다.
시상 이후 상금도 계좌로 넣어진다고 했다. 3.3%의 소득세를 제외하면 4,835만 원이 주어진다는 말에 조은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 돈을 정말로 제게 주나요?’하고 몇 번이고 확인했다.
“하아, 하아, 덥다. 그치?”
“왈! 왈!”
“정신이 없어서 물도 못 사 왔는데, 조금만 더 가면 음수대가 있을 거야.”
“왈! 왈!”
나는 다시 힘을 내 조은이를 끌 듯 앞장서서 걸었다.
이윽고 음수대에 도착한 조은이가 먼저 물을 틀어 손을 씻은 후, 손바닥에 물을 괴어 내 앞에 쪼그렸다.
“목마르지? 시원해. 어서 마시자, 해피야.”
– 촵! 촵! 촵! 촵!
나는 신나게 물을 들이켰다. 그렇게 두세 번을 더 물을 떠서 내 목을 축인 후에야 조은이는 자신의 목을 적셨다.
“하아, 시원하다. 이제 마저 오르자.”
가만히 산길을 더 오르다 보니 초저녁 모기떼가 극성이었다. 팔을 휘저으며 전망대에 선 조은이가 날 들어 안았다.
“노을 빨갛다, 그치?”
“왈!”
“엄청 빨개. 그리고 그 아래의 도시 풍경도 진짜 멋지다.”
“왈!”
“엄청 멋져. 그리고, 오늘따라 더더욱 멋져. 정말로 멋져. 으흐흐흑!”
이제야 발표 이후 모든 긴장이 풀린 탓일까. 조은이는 다시 흐느끼기 시작했다.
몇 번을 울어도 좋은 날. 수없이 울어도 괜찮은 날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보건 말건 조은이는 그렇게 날 안은 채 한참을 더 울었다.
그리고 내려가는 길, 조은이가 한 전봇대에 붙어있는 광고를 봤다. 그 아래, 연락처를 떼어갈 수 있게 잘게 쪼갠 그 A4용지에는 방 사진과 함께 문구가 인쇄되어 있었다.
[역세권 5~7분. 신축 빌라 23평부터 38평 복층까지. 전세 및 매매 상담. 매매 1억 2천 600부터.]신축 빌라의 매매 가격과 넓이.
그 외에도 전봇대에는 다른 물건들을 인쇄해 놓은 전단지가 가득 붙어있었다. 전에는 딱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지금에 와서는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위에는 작은 현수막 걸개도 매달려 있었다.
“저, 저쪽으로 돌아서 가 볼까?”
조은이가 되돌아가는 길에서 벗어나 다른 쪽으로 이끌었다. 공원의 정문으로 내려가는 쪽, 아래로 내려가면 4차선의 큰 도로와 맞닿게 되고 상권이 잘 발달해 있었다.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가려는구나.’
나는 조은이의 의도를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현재 우리의 자산은…
[종료일 2026년 3월 8일 오후 10시 13분. 현재 순자산 7,766만 6,310원]노파가 10원도 안 썼는지, 아까와 변화가 없었다.
거기에 상금 실수령액인 4,835만 원을 더한다면?
‘1억 2,601만 6,310원.’
묘하게도 아까 25평 신축 빌라의 매매 가격과 딱 맞아떨어졌다.
물론 사야 할 것, 채워야 할 것도 많고 생활비 등도 생각해야 하므로 가진 모든 것을 털어서 저 집을 살 수는 없었다. 당장 부동산취득세부터 다른 세금에 중개료도 들어가는 법이다.
그래도, ‘새로운 집’이라는 것이 손에 잡히는 거리에 와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매매가 아니라 전세라면 충분히 더 자유로이 생각할 수 있었고 여유자금도 챙길 수 있었다.
“에헤헤헤, 해피야! 이것 봐.”
이미 퇴근한 부동산 앞에서 조은이와 나는 유리창에 붙여진 여러 매매, 전/월세 물건들을 쳐다보았다.
[용숭아트빌 4층 매매 1억 2,000만 원. 75m², 방 3, 화 1 2005년식] [도희APT 104동 9층 매매 3억 1,000만 원. 82.64m², 방 3, 화 1 2003년식]“매매는 이 정도 하는구나.”
조은이가 고개를 끄덕인 후 전/월세로 시선을 옮겼다.
9천만 원에서 1억 사이로 23~25평 빌라 전세가 가능한 물건들이 많았다. 5층은 조금 더 쌌다.
– 지이이잉! 지이이잉!
“아, 여보세요?”
[저녁 안 먹을겨? 어디여?]“먹어야지, 오늘 같은 날 먹어야지. 엄청 좋은 것 먹어야지.”
[그리여? 그게 뭔 소리래. 여하간 도성암으로 와, 같이 먹게.]그때 조은이의 눈이 한 치킨집으로 향했다.
“치킨 사갈까?”
[여기 점쟁이가 참치 넣고 김치찌개 끓여놨어. 나름 먹을 만혀. 그냥 와. 돈 쓰지 말고.]그 뒤로 ‘보살님, 내 김치가 보살님 것보다 나아. 정말이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얼굴에 웃음이 터진 조은이가 나를 들어 안았다. 그리곤 집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조은이도 나도, 정말로 얼마 만에 푹 잤는지 모를 정도로 늘어지게 잤다.
어제 밥을 먹으면서도 노파에겐 ‘그냥 괜찮은 결과를 얻었어’ 정도로 말을 아꼈다. 다행히 노파도 그 이상 묻지 않았다. 아마도 조은이가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뛰쳐나가 집에서 울고 있는 것을 보았었기에 ‘잘 안 됐나 보다’하고 착각하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조은이도, 나도 노파에게 사실을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어차피 내가 노파에게 말할 수 있는 방법은 없긴 했지만.
깜짝쇼. 그것으로 엄청난 그림을 그리고픈 것이 조은이의 바람일 것이었다.
“할머니는 침대 있으면 좋겠어?”
“치임대애?”
아침상을 두고, 갓 지은 밥에 노파가 김치를 찢어 얹다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조은이를 쳐다보았다.
“아이구, 난 싫어. 허리도 아프고, 공중에 떠서 자는 거 난 별루다.”
“그래? 진짜?”
“줘도 그런 데서는 안 자. 사람이 땅의 기운을 받아야 혀.”
“아왈왈왈왈! 아왈왈왈왈!”
‘그런 사람이 은나노 게르마늄 옥매트는 왜 속아서 샀소!’
내가 노파의 말도 안 되는 망언을 비판하며 맹렬히 짖어대자 그게 방귀생의 은나노 장판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는 걸 대번에 알아챈 노파가 재빨리 효자손을 휘둘렀다. 그러나 나는 잽싸게 피하곤 다시 짖어댔다.
“왈! 왈! 왈! 왈! 왈! 왈!”
‘방귀생! 방귀생!’
결국 뒤지게 엉덩이를 얻어맞은 나는 세상 억울한 표정으로 재빨리 조은이의 품으로 들어가 웅크렸다. 노파가 끄집어내 때리려는 것을 조은이가 황급히 막았다.
“정말, 해피 좀 그만 괴롭혀! 왜 자꾸 때려!”
“아니, 저 똥개가 분명 방귀생, 방귀생 하는 것 같아서.”
“워얼~”
‘귀신같네.’
웃으며 밥을 먹던 조은이가 거실을 둘러보았다.
“일단 냉장고, 그리고 세탁기, 에어컨, 찬장 같은 것도 하나 사야겠지? 밥통도 올려놓을 수 있는 것. 전자레인지도 사야 하나?”
“얘가 뭔 소리래?”
노파가 수저질을 멈추고 조은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이불이랑 옷 넣을 안방 옷장. TV는 요새 벽에다 걸어야 하나? 아니다, 그래도 할머니는 이것저것 넣을 게 많을 테니 수납도 할 수 있는 TV대가 필요하겠지? 그리고 작은 서랍장도 하나. 내 방에도 옷장이랑 침대.”
“뭔 꿈을 꾸는 겨. 복권이라도 당첨된 겨?”
“앞으로 될지도 모르지. 아하하하. 아 참, 해피!”
“왈! 왈!”
“해피도 꽃무늬로 된 집 같은 것 하나 사줘야겠다. 뭐, 어차피 집을 사 줘도 맨날 내 옆에 누워서 자기는 할 테지만.”
“왈! 왈!”
“책상도 빼먹었구나. 행거도 사고. 와아, 어쩌면 돈 다 까먹겠다. 세상에…”
점점 점입가경이 되는 조은이의 말에 노파의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너, 조은이, 너!”
“나중에 다아 말해줄게.”
“이미 다 말해놓고 뭘 나중에 말해, 요것아!”
“아하하하, 몰라.”
조은이는 신나게 나를 번쩍 안아 들었다.
“헥! 헥! 헥! 헥!”
나는 신나게 꼬리를 흔들었다. 그걸 못마땅하게 쳐다보던 노파가 깜박 잊었다는 듯 말했다.
“아 참, 오늘 이따가 전단지 돌리는데, 어떻게 할겨? 같이 갈겨?”
“전단지? 처묵소? 가야지! 다음 주 화요일부터 알바인데, 가서 많이 돌리고 잘 보여야지!”
“끼이이잉?”
나는 멍하니 조은이를 바라보았다. 어제 투자대회 1등을 해서 자산을 그렇게 불리고도, 어마어마한 상금을 예정 받아 놓고도 조은이는 3만 원을 주는 전단지 알바를 나가려 하고 있었다.
바보 같을 정도로 열심이었고, 또 적극적이었다.
삶에 대한 적극성, 이전의 내게 없는 하나를 고르라면 그것이었다.
나는 조은이의 그 적극성이 숭고해 보이기까지 했다.
“가는 김에 해피 귀 색깔도 원래대로 바꿔놔야겠다. 역시 무지개는 보다 보면 눈이 아파.”
“시커멓게 칠해버려라. 바둑이처럼.”
“왈! 왈!”
조은이가 ‘해피는 영원한 핑크야!’ 하고 날 다시 번쩍 들었다. 영원한 핑크, 하아…
벗어날 수 없구나.
***
조은이는 노파와 함께 나를 들고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세상에, 겨우 2주 만인데도 되게 오랜만에 가는 것 같다.”
“네가 그만큼 바깥을 안 나갔으니까 그렇지.”
“그래도. 그나저나, 너무 자주 염색하는 건 안 좋은데, 한 번 물어보고 해야겠다. 역시 이 색깔은 좀 그래.”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우리를 본 모두가 엄청난 환호성을 질렀다.
“해피야아아아아!”
“우리 견석봉, 똥석봉 해피야아아아아!”
직원들이 저마다 나를 보며 쓰다듬고 아는 체를 했다. 어느새 진료실에서 나온 의사도 싱글벙글하며 핸드폰으로 내 사진을 찍었다.
“에엥? 우리 해피가 왜요?”
“해피야! 너 똥으로 글씨 쓴 것 사실이야?”
“와, 왈?”
조은이는 그제야 어제 전화로 팀장이 ‘해피, 난리가 났다’라고 했던 것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하긴, 어차피 그게 퍼져나갈 것은 예상이야 했던 바요, 예전 공익광고 때도 이미 못생긴 형광 분홍 귀의 강아지로 여기저기 합성 당한 것도 충분히 겪었다.
이런 호들갑이 조은이와 나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하하하, 그게, 그저 우연인데.”
“우연에서 어떻게 ‘쏘리’라는 글자가 나와? 나, 진짜 깜짝 놀랐다니까? 그리고 그 여자 인플루언서에게 똥폭탄 터트린 거, 와… 나 그거 100번은 더 돌려봤어! 나중에 하도 보다 보니 이름도 외웠어. 남자는 로이, 여자는 로랑이.”
어찌 되었건 내가 찌끄린 실수가 그들의 이름과 채널을 알리는 데엔 도움이 되었구나 싶어 나는 한숨 놓였다.
“아니, 그래도 동네 다닐 때도 그렇고, 뒷산에 갈 때도 알아보는 사람들이 없었는데.”
“시간과 장소가 이런 거랑 거리 먼 분들이니까 그렇지. 정말 장난 아니야! 그거 맨 처음 올린 사람 50만 뷰 갔어.”
“네에?”
똥은 내가 싸고, 돈은 다른 이가 번다는 이 사실에 난 괜히 부아가 났다.
얼마간 더 대화 후, 내 귀를 살펴본 직원은 너무 자주 염색하는 것은 그렇다며 다음에 다시 오라고 했다. 난 어쩔 수 없이 조은이의 품에 안겨 밖으로 나가, 전단지를 나누어 주는 옆에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그리고 그날, 그다음 날인 일요일까지.
나는 나를 알아보고 찾아오는 이들과 사진을 수백 번은 찍어주게 되었다.
심지어 신문지나 흰 종이를 깔고 또 똥을 싸보라는 짓궂은 이도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손안에 든 전단지를 순식간에 다 나누어준 조은이가 나를 둘러싼 이들을 보며 입을 떠억 벌렸다.
대회라는 거대한 파도 뒤에, 또 다른 파도가 다가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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