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9
9. 투자금 선물하기(3)
– 컹! 컹! 컹! 컹!
– 크르르르! 컹!
내 뒤를 바짝 따라오는 들개들의 움직임.
내가 뛰는 속도보다 몇 배는 빠른 그 움직임. 다리 길이가 내 두 배가 넘고 덩치가 내 네 배는 된다고 해서 둔할 거라 생각한 것은 완벽한 오산이었다. 정말로 엄청난 속도로 뛰어온 그것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나와의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다.
“헥! 헥! 헥! 헥!”
이대로는 결국 죽을 수밖에 없다는 절망감 속에서 나는 심장이 터지도록 앞만 보고 달렸다. 어느새 내 뒤까지 바짝 따라붙은 들개들이 으르렁대고 짖어댈 때마다 그 공기의 파동과 입김까지 내 핑크색 꼬리에 닿는 것 같았다.
온몸이 오그라드는 것만 같았다. 죽음이 바로 뒤에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말라붙은 손을 뻗어 내 꼬리를 잡으려 했다.
순간, 시야가 트이면서 내 앞에는 지하 주차장을 지으려는 듯 깊고 거대하게 파놓은 엄청난 구덩이가 나타났다. 땅에 바짝 붙어 뛰는 내게는 마치 세상을 다 집어삼킬 정도, 지구의 한가운데를 잠식한 무저갱의 싱크홀과도 같았다.
밤중이라 짙은 그림자와 어둠에 싸인 그 바닥은 눈에 아예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다. 만약에 떨어져 버린다면, 절대로 혼자의 힘으로 올라올 수 없을 것이었다. 그저, 그대로 잊혀지고 말 것이 뻔했다.
그리고 그때, 그 지옥의 무저갱을 가로지르는 H빔이 마치 오작교처럼 나타났다.
– 컹! 컹! 컹!
– 탁! 탁!
맹렬히 짖는 소리와 함께 내 꼬리나 뒷다리를 물어 넘어트리려는 아가리의 거센 움직임.
나는 완전히 패닉이 된 상태로 그대로 구덩이를 향해 돌진했다. 그리곤 H빔 위로 단숨에 올라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헥! 헥! 헥! 헥!”
약 중간 정도 다다랐을 때, 나는 더 이상 뒤에서 살기와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아슬아슬하게 H빔에 선 채 뒤를 돌아보니 입 주변에 새하얗게 거품을 문 채 아쉬움 속에서 짖어대는 개들의 눈이 보였다.
‘이, 일단 살기는 살았는데…’
번뜩이는, 불꽃같은 그 세 쌍의 눈을 뒤로한 채, 나는 여전히 내가 죽음의 경계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그 심연의 위. 폭은 겨우 30cm가 채 되지 않을 것 같은 너비의 H빔.
나는 그 위에서 얼어붙은 듯 덜덜 떨며 가만히 서 있었다. 그제야 아직 쌀쌀하기 그지없는 밤바람이 허공에 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나를 할퀴고 밀어붙이는 것이 느껴졌다. 게다가 밑에서 올라오는 난기류와도 같은 바람은 마치 내가 다리를 헛짚어 미끄러지기를 기다리는 듯, 아래로 잡고 끌어당길 듯 날 위협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그대로 몸이 굳어버리고 만다. 잔뜩 긴장한 다리에 피가 굳으며 저리기 시작할 것이고, 그대로 한 발을 내디디면 휘청이며 떨어져 버릴 것이 뻔했다.
“끼잉, 낑! 낑!”
나는 불안에 떨며 신음을 흘렸다.
애당초 해피 몸에 들어가기 전부터 운동신경은커녕 기본적 균형감각조차 없던 나였다. 그런 나에게 이 좁디좁은 외길과 그 외길을 제외한 모든 공간이 주는 죽음에의 압박은 눈을 가려 시선조차 가물거리게 만들고 목을 쥐어 호흡도 가쁘게 만들었다.
‘움직이지 않으면 죽어. 반드시 죽어. 몸이 굳기 전에 움직여야 해!’
그러나 뇌 속에서 비명을 아무리 지른들, 공포에 얼어붙어 굳어버린 다리는 쉽사리 움직여지지 않았다.
‘생각해 봐. 여기서 죽으면 진짜 개죽음이야. 내가 스스로 선택한 환생의 기회. 이 몰골, 이 모습도 참고 여기까지 왔는데 이렇게 죽을 순 없어. 무언가 시작도 하기 전에 죽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정신 차려라, 계별욱!’
“끼잉, 낑! 낑!”
나는 낑낑대며 온 힘을 다해 겨우 한 발자국을 앞으로 내디뎠다.
그 짧은 시간에도 온몸이 굳고 혈액순환이 막혔을까, 발을 딛자마자 전류에 감전된 듯한 찌릿함이 온몸을 파고들었다. 순간, 그대로 휘청이며 아래로 떨어질 뻔했다.
‘이제 다음 발, 다음 발! 천천히, 호흡 가다듬고. 못할 것 없어. 여기까지 미친 듯 달려왔는데 왜 이걸 걸어서 못 건너겠어?’
– 턱!
– 턱! 턱!
‘계별욱! 그냥 땅에 금이 그어져 있다고 생각하자! 그 금만 밟고 가는 놀이. 할 수 있어. 해야 해!’
나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 채, 그대로 발 앞만 바라보고 집중에 집중을 더했다. 그렇게 겨우 한 발, 또 한 발을 내디디며 영겁의 시간이 걸리더라도 좋으니 아주 조금씩이라도 전진만 하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한참을 기듯이 앞으로만 나아가던 그때, 드디어 H빔의 바닥만 내려보던 내 시야에 흙벽이 보였다.
‘단번에 뛰자, 여기까지 진짜 해냈다!’
나는 그대로 앞만 본 채, 남은 얼마 안 되는 거리를 온 힘을 다해 뛰었다. 그리고 땅에 간신히 발이 닿기가 무섭게,
– 크르릉! 컹!
도착지점에 숨어있다 뛰쳐나와 내 허벅지를 물어뜯는 들개 한 마리와 마주쳤다.
“캐애애앵! 캥! 캥!”
– 크르릉! 크르르르릉! 컹! 컹!
미친 듯이 내 뒷발을 잡고 물어뜯는 그 공격.
세상이 노래질 정도로 고통스러운 가운데, 나는 온몸을 차가운 바닥에 구르며 놈의 이빨에서 어떻게든 벗어나고자 발버둥쳤다.
다른 개들과는 다르게, 가장 악랄하고 끈질긴 이놈은 이 H빔이 끝나는 곳까지 찾아돌아가 나를 몰래 기다리고 있었다.
얼어붙은 내가 느릿느릿 움직이는 동안 이놈은 이미 도착지에서 자리를 잡았고, 긴장에 긴장을 더한 나는 발밑만 신경 쓰느라 이놈의 냄새와 숨소리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커다란 실수이자 너무나 치명적인 실수였다.
“캥!”
내 엉덩이에 깊이 이빨이 박히는 것이 느껴졌다. 그 어마어마한 고통 속에서 나는 죽기 살기로 앞발을 허우적대었다. 그리고 순간! 내 발톱이 이 악마 같은 들개의 눈을 스쳤다는 것을 깨달았다.
– 컹! 캐앵!
안구에 발톱이 스치자, 고통스러움에 깜짝 놀란 들개는 나를 물던 아가리를 뗀 채 비명을 지르며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그때, 개의 움직임과 무게를 못 이긴 채 바로 뒤의 흙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
나는 깜짝 놀랐다. 균형을 잃은 채 무너져 내리는 흙벽을 타고 올라오려는 그놈의 앞발이 보였다. 미친 듯이 땅을 파듯 헤치면서 지상으로 올라오려 안간힘을 쓰던 그놈은 곧이어 절망이 가득 찬 눈빛과 함께 깊은 어둠 속으로 떨어져 내렸다.
뒤에서 들려오는 단말마의 비명을 들으며, 나는 절뚝이며 서둘러 이 공사 현장을 벗어났다.
죽음의 냄새가 옅어지고 있었다.
***
“끼잉, 낑! 낑!”
나는 고통 속에 절뚝이며 계속해 집을 찾아 어둠 속을 걸어갔다. 엉덩이와 허벅지를 물린 상처가 크게 부풀어 오른 가운데, 힘을 줄 때마다 참을 수 없는 통증이 밀려왔다. 피도 흐르고 있었다.
결국, 집을 약 1km 정도 앞둔 상황에서 나는 더 걷지 못한 채 주저앉고 말았다.
목도 마르고 배도 고팠다. 하지만 그것을 찾아 돌아다닐 엄두도 나지 않았다. 내 시선이 닿지 않는 어둠 속 어딘가에서 들개가 다시 쫓아올 것만 같은 공포감이 날 사로잡았다.
“낑, 끼잉…”
‘그 80만 원이 뭐라고. 그것을 가져와 본들 30억은커녕 빚 3,700만 원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텐데. 왜 이렇게 멍청한 생각을 했지?’
후회가 가득했다. 내 스스로도 내가 똑똑한 편이 아니라는 것은 인지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앞뒤도 안 재고 나오다니, 정말로 멍청하기 그지없었다.
그렇다고 이 상황에서 다시 돌아가기도 난감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 결국 난 언제나 선택에서 실패만 거듭하는 패배자였다.
“낑, 끼잉, 낑!”
한참을 목놓아 울고 있을 때, 저 앞에서 두 명의 사람이 나를 쳐다보는 것을 발견했다. 이제 막 데이트가 끝나 바래다주는 도중인 듯, 듬직한 체구의 한 남자와 키가 작고 아담한 긴 머리의 여자가 날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세원 씨, 저 개 누가 버린 걸까요?”
“글쎄요, 귀랑 꼬리가 요란하게 염색된 것을 봐선 키우는 이가 있는 것 같은데. 아마 바보처럼 집에서 뛰쳐나온 것 아닐까요?”
“불쌍해라. 어떡해요?”
마음씨 고운 여자였다. 그러나 남자는 날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떻게 하긴요, 잡을 수도 없을걸요? 날쌔서. 도와주고야 싶지만.”
적어도 심성이 나쁜 이들은 아닌 것을 확인한 나는 힘겹게 그쪽으로 다가갔다. 깜짝 놀라 나를 쳐다보던 둘은 이윽고 쪼그려 앉아 천천히 손짓을 하며 날 불렀다.
“어머! 이 강아지, 뒤에 피!”
“아, 다쳤나 보네. 잠시만요, 차에 물티슈랑 구급약 박스 있거든요? 이 강아지 잘 안심시키고 있어 봐요.”
남자는 내가 놀라지 않도록 천천히 일어서더니 뒤를 돌아 골목에 대 놓은 차를 향해 뛰어갔다.
낑낑대는 날 어쩔 줄 모르는 눈으로 쳐다보던 여자. 옆에 놓인 핸드백 안의 물병을 보곤 나는 앞발을 들어 그 물병을 긁었다.
“낑, 낑!”
“아, 물 마시고 싶어? 물 달라는 것 맞아?”
“왈!”
여자가 신기한 듯 나를 쳐다보곤 물병을 꺼내 손바닥을 오므린 후 부었다. 나는 게 눈 감추듯 물을 핥아 마셨다. 마치 사막 속에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그 물은 달고 시원했다.
– 촵! 촵! 촵! 촵!
“어머, 목이 엄청 말랐나 보구나!”
놀란 여자의 뒤로 다가온 남자가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 손에 든 물티슈로 내 허벅지와 엉덩이를 닦았다.
“캥! 깨앵! 깽!”
“아, 미안! 아프구나. 아프지 마라, 아이고. 착하다. 해피야.”
남자의 말에 여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해피라뇨?”
“대충 이렇게 털 깎이고 귀에 염색한 애들 보면 해피란 말이 튀어나와서. 아하하하. 우리 동네 미용실에도 비슷하게 생긴 애들이 엄청 있거든요? 다 해피예요.”
‘이놈, 보기보단 촉이 좋군.’
나는 따끔거리는 상처도 잊은 채 이 두 커플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윽고 내 상처를 닦아낸 남자는 소독과 새살이 돋는 연고를 꺼내 손가락 끝에 짜기 시작했다.
“괜찮을까요? 이런 연고를 써도.”
“제가 어디서 주워들었는데, 보통 약을 만들 때 가장 먼저 동물에게 임상 실험을 한다고 해요. 살균과 상처 치료 정도니 괜찮지 않을까요? 안 바르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기도 하고.”
“세원 씨, 멋지다.”
“뭐, 그냥 놔두는 것보다는. 이거 바르고 어디 24시간 동물병원을 알아보거나 경찰서에라도 데려다줘야겠네.”
“그러게요.”
그 말을 들은 나는 깜짝 놀랐다. 이제 1km 정도만 가면 되는데, 여기서 이럴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마음을 먹어야 했다.
남자의 손이 내 상처에 약을 바르자마자, 나는 눈을 딱 감고 쪼그려 앉은 둘 사이를 뛰어나갔다.
“어, 어? 야! 야!”
“해피야, 해피야!”
내 이름을 부르는 커플을 뒤로하고 나는 ‘고맙습니다’를 연신 중얼거리며 익숙한 골목을 헤쳐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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