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97
98. 이사(1)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이사를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조은이는 전에 수평4동에서 마음에 들어 했었던 빌라와 그리 다르지 않은 빌라를 찾아보곤 직접 방문한 뒤 전세 1억에 계약을 마쳤다.
순식간에 계약금 1천만 원이 사라졌지만, 어차피 전세금에 포함되기에 당연히 빛태창의 숫자는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회가 끝나고 1천만 원씩 넣어놓은 두 종목의 수익률이 괜찮아 꾸준히 늘고 있었다. 적어도 생활비와 공과금으로 빠져나가는 금액을 메꿔줄 만치는 되었다.
“집 보러오는 사람들 있으면 잘 보여줘. 정리도 잘하고!”
“정리할 게 뭐 있냐. 살림이 있어야 정리를 허지.”
“하긴…”
처묵소로 출근하기 전, 조은이가 휑한 주방 겸 거실과 안방을 둘러보며 미소 지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해피도 할머니랑 집 잘 지켜! 볼펜 끼워놓은 것 어지르지 말고.”
“왈! 왈!”
“오늘은 물건 없대. 나도 해피 데리고 놀러 나갈 겨!”
노파는 여전히 부업에 열심이었다. 그래도 하루에 2만 원 남짓 버는 이 일이 예전의 공병과 파지를 줍는 것보다 훨씬 낫긴 한 셈이었다. 문제는 언제나 끌려오는 죄 없는 도화선녀였지만.
그래도 오늘은 일이 없어 쉬는 날. 노파는 내 목에 줄을 채운 후 도화선녀의 도성암이 있는 신동아맨션 쪽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 띠리리리리, 띠리리리리!
“여보세요?”
[아, 부동산이에요. 지금 집 보러 가려는데.]“아, 내가 지금 개랑 나와 있는데. 집 문 열쇠, 계단에 놓인 화분 아래 있어요. 열고 보세요. 가져갈 것도 없으니까.”
[네에, 그럼 지금 가보겠습니다.]전화를 끊고 난 후, 노파는 날 앞세워 신동아맨션의 계단을 올랐다.
***
“아유, 잘 됐네. 1억이면 엄청 좋은 집이겠네.”
“여기 이 집보다 훨씬 좋아!”
“그럼! 좋아야지! 손녀가 어떻게 벌고 모은 돈인데!”
도화선녀는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 노파는 괜히 기분이 좋지 않은 척, 애써 포장을 하며 도화선녀가 썰어 온 수박을 시원하게 먹었다.
“수박이 맹탕이여!”
“무슨 소리야? 달기만 하구만. 그렇죠, 개령님?”
“왈! 왈!”
나는 도화선녀가 내 앞에 잘게 잘라 씨까지 잘 발라 놓은 수박을 찹찹대며 먹다가 짖었다. 언제나 여길 오면 ‘개령님은 입맛이 사람이야’라며 과일이건 밥이건 간식이건 손에 집히는 대로 차려주는 도화선녀가 너무나 고마웠다.
이윽고 대화의 주제는 일주일 전, 내가 구출된 건으로 옮겨져 갔다. 그 일주일 사이 이미 수차례 다시 들었던 이야기지만, 도화선녀는 내색하지 않고 노파의 무용담(?)을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말여, 가서 책상을 쾅! 치고는 지금 우리 해피 못 찾아오면 내가 이 파출소 다 부숴버릴 것이라고 혓어.”
“아이고, 보살님이 잘도 그러셨겠다.”
“산에 딱, 올라가니 그놈들이 손에 칼을 들고, 도끼를 들고 우리 해피 목에 겨누면서 내리치려 하는데, 거기서 내가 안돼애애애애애!”
“아유, 보살님이 퍽이나 그러셨겠다.”
“그때 경찰들이 총을 들고 탕탕탕탕!”
“아유, 전에는 주먹으로 때려눕히고 수갑 채웠다더니 이번엔 총이네.”
노파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도화선녀는 더 해보라는 듯 수박을 한 조각 내밀며 부추겼다.
“왜, 그 나쁜 놈들이 산속에서 탱크는 안 끌고 와요? 이제 경찰 말고 군대가 나설 때도 되었는데.”
“와하하하할! 와하하하할!”
나는 수박을 먹다가 도화선녀의 농담에 배를 잡고 웃었다. 얼굴이 새빨개진 노파가 신문지 말아놓은 것으로 내 허벅지를 내리치려 했다.
“깨애애앵!”
효자손 대신 신문지냐? 나는 얼른 도화선녀 뒤로 몸을 피했다.
“다 이 똥개가 가만히 있질 않아서 그려!”
“왜 개령님한테 이럴까? 죄도 없는 개령님을.”
도화선녀가 노파에게 눈을 흘기며 나를 재빨리 보호했다. 씩씩거리며 민망함을 엉뚱하게 나에게 풀려던 노파의 핸드폰이 때마침 울려댔다.
“여보세요?”
[아, 부동산인데요. 집 괜찮다고 하시네요. 이사 날짜는 언제라 하셨죠?]“다음 달 20일인데.”
[네, 좋다고 하시네요. 여긴 언제든 들어올 수 있다고. 그럼 그렇게 알고 집주인 분과 전화할게요.]“내가 뭐 쓸 것은 없지유?”
[네, 집주인 분과 다 할 겁니다. 알겠어요, 20일 날 여기도 이사 들어오는 것으로 하고, 그전에 한두 번 더 와서 볼 수 있다고 하시네요.]“네. 아무 때나 오셔유.”
전화가 끊겼다. 통화 내용을 들은 도화선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진짜로 가는 거네.”
“안 가면 어쩔 것이여. 잉?”
“서운해서 그러지, 보살님!”
“나 없어도, 볼펜 부업 그거 잊지 말고 받아다 계속해.”
“아니, 보살님 떠나면 절대 안 할 거야. 그거 하기 싫어서라도 보살님 이사 나가야 해, 이 동네에서.”
어떻게 보면 장난기 가득한 투정이고 놀림이었지만, 그 안에 묻어있는 아쉬움과 응원은 나뿐만 아니라 노파도 느낄 수 있었다.
갑자기 찾아온 침묵 속에서 노파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내가 거기 가면 친구가 있어, 뭐가 있어? 아무도 없지.”
“여기에도 딱히 친구는 없잖아, 안 그래요? 나는 다 알아, 보살님.”
“있어! 해자도 있고! 점쟁이도 있고!”
“둘이네.”
그 말에 노파가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그걸 본 도화선녀도 따라 웃었다.
“자주 놀러올 거여.”
“놀러는 와요. 그런데, 놀러올 때 볼펜 저거는 들고 오지 말고.”
***
그날 늦은 밤.
퇴근하고 들어온 조은이는 집이 빠졌다는 말을 듣고 뛸 듯이 기뻐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이사할 곳을 채워나갈 계획에 탄력이 붙기 시작한 것이었다.
“뭐, 들고 갈 것도 거의 없으니 이삿짐센터보다는 용달차 부르는 게 낫겠다. 그렇지, 할머니?”
“용달은커녕, 이런 살림이면 구루마(손수레의 일본식 발음, 옛말로 아직도 흔히 쓰인다; 작가 주)로도 한 번만 가도 되겠다.”
“그 동네까지 어떻게 가.”
“말이 그렇다는 거지.”
조은이는 씻고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컴퓨터를 켰다.
다행히도 금액은 충분해서 미리 이사 갈 집에 주고 세입자를 내보낼 수 있었다. 그렇다면 미리 도배와 장판도 알아봐야 했고 들여놓을 가구와 가전제품도 봐야 했다.
“저기… 비싼 가전제품은 중고로 사도 괜찮겠지, 할머니?”
“그리여. 잘만 알아보면 새것 못지않다더라.”
조은이도 돈이 크게 들어가는, 특히 소모품이나 다름없는 것에는 민감해질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조은이와 내 머릿속에 예전에 침수된 집을 치우고 나서 찾아갔던 중고센터가 생각났다.
“그럼 냉장고랑 에어컨, 텔레비전, 세탁기 이렇게 큰 거 네 개는 중고로 알아본다? 너무 구형은 안 살 거야. 가성비 따져서 정말로 좋은 걸로 잘 알아보고 살게.”
“마음대로 혀. 내가 봐서 뭘 알것냐, 니가 알것지.”
그다음엔 도배와 장판. 이사 갈 동네에 있는 몇 곳을 고른 후, 직접 날을 잡아 견적을 받아보기로 했다. 22평에 대한 가격은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지만, 그래도 밝아 보이는 색깔로, 장판의 질도 좋은 것을 고르고픈 욕심이 보였다.
“가구, 가구… 인터넷이 쌀까, 아니면 가구단지 쪽을 날을 잡고 돌아다녀 볼까?”
조은이가 몇 곳의 사이트를 열어봤다. 장롱과 TV 장식장, 서랍장 두 개에 침대, 책상 등을 하나하나 고르다 보니 순식간에 500만 원 가까이 되었다.
“으아아아아, 가전제품에 가구까지 하면 1천만 원은 그냥 휙 넘을 수도 있겠다.”
“끊임없이 더 들어갈 거여.”
“그야 그렇지…”
나는 내 머릿속의 빛태창을 확인했다.
[종료일 2026년 3월 8일 오후 10시 13분. 현재 순자산 1억 3,918만 6,880원]보증금 1,000만 원에 잔금 9,000만 원을 제외하면 약 3,900만 원. 주식에 들어 있는 원금과 평가액이 2,100만 원가량. 1,800만 원으로 모든 것을 다 해야 했다. 거기엔 당연히 부동산 수수료부터 이사비도 들어갈 것이고 도배, 장판 비용도 포함해야 했다. 그리고 앞으로의 생활비까지.
‘엄청 빠듯하겠는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총자산도 이것저것 다 떼면 1억 2,000만 원가량이 순자산으로 남는 셈이었다. 게다가 크게 늘어날 무언가도 보이지 않았다.
‘30억을 채우기는 무슨… 3년 후 3억만 채워도 인생 승리에 신분 상승인 셈이지.’
솔직히 그랬다. 이전의 실전투자대회처럼, 빅 이벤트들이 빵빵 터져줘야 했다.
“내일 같이 가 보자, 할머니.”
“어딜?”
“중고센터. 미리 사서 배달이랑 설치 부탁해야지.”
“그리여.”
그날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당장 해야 할 것들 목록을 잡고, 가용 가능한 금액을 생각해 놓는 것만으로도 큰일 하나를 마친 셈이었다.
“우리 해피, 이리 와! 이제 이사 갈 생각하니까 좋아?”
“왈! 왈!”
“헤헤헤, 해피 마음에 들어?”
“왈! 왈!”
들다마다. 여기가 아니라면 어디든 좋지. 게다가 지상에, 넓이도 거의 두 배 가까이 너른 곳이잖아. 나는 단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곳, 조은이도 살아보지 못한 곳.
전세 1억.
그런 집이 세상에 어디 있어? 아니, 있기야 있지, 너무나 많겠지. 하지만 내 세계관 속에, 조은이 너의 삶 속에 과연 그것이 잡을 수 있는 꿈으로 존재하기나 했었어?
“끼이이잉…”
‘고마워, 덕분에 그런 곳에 살아보게 되어서.’
솔직하게 말해주고 싶었다.
괜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시큰거리는 눈을 한 채 누워있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은이는 바닥에 누웠다.
“이사 가면, 공부도 열심히 하고, 동영상 채널 바로 만들어서 하루하루 투자일지도 올리고, 우리 해피와의 일상도 올리고. 아 참, 얼마 전에 우리 해피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이야기도 SNS에 올렸거든? 뉴스 링크도 올리고. 댓글이 200개나 달렸어.”
“와, 왈! 왈!”
모르고 있던 사실이었다. 아마 처묵소를 오가면서 쓴 모양이었다.
“게다가 이사한다는 사실도 알렸어. 엄청 관심이 많아, 나랑 해피가 어떻게 사는지. 게다가 해피 요즘 장건강 괜찮은지 물어보는 사람들도 많고.”
“끼잉…”
나는 민망해서 고개를 수그렸다. 그것이 귀여운지 조은이는 나를 끌어당겨 품에 꼭 껴안았다.
“해피는 말이야, 주위를 웃게 만들고 밝게 만들어. 그리고 희망도 줘. 이상하게 올봄부터 해피가 되게 뭔가 바뀐 느낌이야. 더 사랑스럽고, 더 적극적이고. 더 똑똑해진 것 같고.”
“끼이잉…”
“나중에 우리 해피 왕자님이 되어서 짠! 하고 나타나는 것 아닐까?”
“왈!”
“그럼 되게 재미있겠지?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해피는 어떤 표정으로 내 앞에 서 있을까?”
이런 상상을 얘기할 때의 조은이는 명문대 대학생이 아닌, 그보다 한참은 더 어린 소녀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 상상에 뺨이 발그레해질 시기를 완벽히 놓친 채, 남들이 생각지도 못할 상처와 외로움 속에서 자라왔을 것이었다. 그래서 그때 하지 못했던 또래의 소녀적 상상들이 만년설이 녹아 나타나듯 이럴 때 간혹 나타나는지도 몰랐다.
“코오오오, 코오오오…”
힘든 하루였을 것이다.
왕자님과 공주님을 중얼거리다 그대로 잠이 든 조은이 옆에서 나도 가만히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왕자님은…
될 수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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