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99
100. 이사(3)
며칠 동안 문제의 ‘하트’ 사진으로 난리가 났다.
조은이는 대댓글을 달다가 포기했다. 실황으로 직접 보고 싶다거나, 글씨를 써달라는 요청까지 난무했다.
“온통 그 얘기뿐이야.”
“끼이이잉…”
그 와중에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글들도 있었다.
동물 학대 아니냐, 강아지가 똥 모양을 그렇게 싸도록 얼마나 훈련시키고 때리는지 궁금하다는 말부터 포토샵으로 조작한 것이라는 말까지 있었다.
“휴우, 말을 말아야지.”
조은이가 창을 내렸다.
“끼이이잉…”
괜한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어느덧 시간은 흘러 이사 갈 집의 세입자가 집을 비워주는 날이 되었다. 도배, 장판이 바로 이어지는지라 조은이는 아침부터 나와 노파를 데리고 수평4동으로 출발했다.
도착하니 이미 이삿짐센터의 차량이 나와 있었다. 3층의 베란다로부터 짐들이 아래로 내려왔다. 계단을 통해서도 직원들이 크고 작은 것을 내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 오셨어요? 바로 부동산으로 가시죠!”
젊은 부부와 인사를 마친 조은이가 나를 안고 인근의 부동산으로 갔다. 먼저 와 있던 집주인이 계약 내용을 확인했고 조은이는 부동산 수수료 외 기타 금액을 처리했다.
[종료일 2026년 3월 8일 오후 10시 13분. 현재 순자산 1억 3,760만 1,340원]‘돈이 훅훅 줄어드는구나…’
그러나 도배/장판 잔금 200만 원에 가구 잔금 360만 원, 설치비 포함해 가전제품 잔금 210만 원 등 아직 나갈 것이 770만 원, 당일 용달차를 부르고 자잘한 살림살이까지 산다면 돈 천만 원 가까이 더 나갈 것이었다.
거래를 마치고 도장을 찍은 조은이가 전세 계약서를 소중히 가방에 넣었다. 미리 환매했던 주식 계좌의 돈이 그대로 통장에 옮겨진 후 새로 이사할 곳의 집주인에게 이체되었다.
세입자의 짐이 모두 빠지고 난 후, 도착한 도배업자가 낡은 벽지와 장판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휑하니 비워진 집은 훨씬 더 넓어 보였다. 노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렇게 넓은 집일 줄이야. 세상에, 태어나서 이런 곳에도 살아보는구먼.”
벽지를 뜯던 도배업자가 노파의 말을 들으며 빙그레 웃었다.
“더 좋은 곳에서도 살아보셔야지요. 점점 더 좋은 곳으로 넓혀가셔야죠.”
“아무렴, 아무렴요…”
***
이틀 후. 도배와 장판이 완벽히 마무리되고 풀도 바짝 말라붙었다. 시큼한 풀 냄새와 새 장판 특유의 냄새가 어우러진 집에 미리 약속했던 시간에 맞춰 가구가 들어왔다. 노파와 조은이가 가구의 위치를 정해주는 동안 나는 깨끗한 화장실에서 시원하게 오줌을 쌌다.
확 넓어 보이던 집에 장롱이 안방의 벽면을 차지하고, 서랍장이 안방과 조은이 방에 놓였다. 침대도 들어오고, 훨씬 넓어진 거실에는 TV 장식장이 놓였다.
가장 작은 방에 책상과 옷걸이까지 들어오니 정말로 무엇인가 집이 꽉 찬 느낌이었다.
잔금을 치르고 가구업체를 보내자마자 중고센터 차량이 전에 계약한 가전제품을 싣고 도착했다. 가장 먼저 에어컨이 올라오고, 그것을 기사가 설치하는 동안 TV와 세탁기가 올라왔다.
마지막으로 냉장고의 문을 분리한 후 힘들게 올린 직원들이 거실 한구석에서 조립한 후 구석진 곳에 맞춰 세웠다.
거의 완벽하게 집의 모습이 완성되었다. 조은이가 땀을 흘리며 숨을 몰아쉬는 기사와 사장에게 재빨리 인근 슈퍼에서 사 온 시원한 음료수를 건넸다.
“이야, 제대로네. 전에 싱크대 설치했던 그 집에서 이렇게 좋은 집으로 이사하는 거예요?”
기사 한 명이 음료수를 들이켜며 감탄했다. 조은이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네, 어쩌다 보니까요. 너무 감사드려요, 날도 더운데.”
“날 더우니까 에어컨 한번 켜 보시죠. 설치 끝났고, 작동 설명해드릴게요!”
마침 설치를 끝낸 기사가 웃으며 음료수를 받아들곤 리모컨으로 전원을 켰다. 노파가 서둘러 베란다 문을 닫았다.
– 쾌적 냉방을 시작합니다.
“우와아아!”
별것 아닌 작동음에도 조은이의 눈이 놀라움으로 크게 떠졌다. 당연히 수없이 들어봤을 것이다. 이모 집에서도, 아르바이트를 하는 처묵소에서도, 학교에서도, 그 어디에서도.
하지만 자신의 집에 ‘에어컨’이 처음으로 생긴 것이고, 그 에어컨이 첫 작동을 한다는 것은 조은이에겐 이루 말할 수 없는 놀라움이었다. 그리고 그 놀라움은 노파도 마찬가지였다.
“아유, 세상에! 점쟁이 집에 있는 것보다 훨씬 시원하고 좋다!”
“헐, 할머니! 아주머니 집 것도 얼마나 시원한데!”
노파가 시원한 바람을 쐬며 함박웃음을 짓다가 곧이어 ‘이제 그만, 전기세 나온다’라며 서둘러 에어컨을 껐다.
설명을 듣던 조은이가 ‘아저씨들 더운데 왜 그래!’하며 다시 리모컨을 눌렀다.
– 쾌적 냉방을 시작합니다.
“우와아아!”
“아유, 이렇게 시원해! 점쟁이 집에 있는 것이랑 비교도 안 된다!”
방금 전과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직원과 사장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베란다 구석에 놓인 수도관과 세탁기를 연결한 후 작동 등을 설명하는 사장과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집중해서 보는 노파와 조은이, TV는 이사 당일에 인터넷을 옮겨야 하기에 아직은 설치만 되어있는 부분이었고 불이 들어오는 냉장고 안엔 미리 사 놓은 물과 음료수만이 들어갔다.
“자아, 이제 가 보겠습니다. 무슨 일 있으면 연락 주세요. 작동 안 되는 부분이나 모르는 것도 연락 주시고요.”
“수고하셨습니다!”
잔액이 이체되었다.
[종료일 2026년 3월 8일 오후 10시 13분. 현재 순자산 1억 2,917만 5,940원]‘휙휙 나가는구나. 그래도, 너무 좋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 속에 노파와 조은이, 나는 거실에 대자로 누워있었다.
“이대로, 이대로 한숨 자고 싶다. 정말로.”
조은이가 꿈속을 노니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당장 짐 옮겨도 상관없잖여.”
“어차피 3일 후면 이산데, 뭐. 거기서도 정리할 것들 많으니까. 신고할 것도 많고. 알바도 거기서 가기 편해서 그래.”
“그리여.”
“다음 주면 알바도 끝난다. 아하하하. 그리고 곧 2학기도 시작이고. 수강 신청 준비해야겠다.”
“뭘 또 신청하라고 해?”
“응, 2학기 공부할 것. 인터넷으로 하면 금방 해요.”
조은이가 옆에 누워서 세상 시원한 바람을 쐬고 있던 나를 끌어당겼다.
“우리 해피, 좋아?”
“왈! 왈!”
“누나도 좋아. 너무 좋아. 얼마나 좋은지, 그냥 내일부터는 여기서 잘까 생각 중이야.”
“해 먹을 것도 하나 없어. 밥 해 묵을라면 다 가져와야 혀. 어째, 가져다 놓아?”
“농담이야. 사흘만 참지, 뭐.”
노파의 말에 조은이가 눈을 감고 배시시 웃다가 핸드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나가야겠다. 바로 처묵소 가야겠네.”
좋은 시간은 언제나 짧게 느껴진다. 우리는 아쉬움 속에, 완벽히 우리 집이 되어버린 그 멋진 공간을 뒤로하고 내려왔다.
***
조은이가 처묵소로 간 사이, 우리는 저녁때 즈음에 한 번 더 집을 보러 오기로 한 예비 세입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방 보고 짐 놓을 곳들 재러 오나 보다.”
“끼이잉…”
나는 노파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그럴 것이었다.
그때,
– 둠칫! 둠칫! 둠칫! 둠칫!
‘엥?’
어디에선가 지축을 울리는 듯한 경박한 박자의 울림이 느껴졌다. 그리곤 저 멀리서부터 파란색, 빨간색, 노란색, 분홍색 빛이 번쩍이는 것이 느껴졌다.
“뭐, 뭐시여?”
노파가 나를 안고 골목으로 나갔다.
문을 열자마자 그 어마어마한 비트는 더욱 크게 느껴졌다. 비트 사이로 전자음이 울리는 가운데, 휘황찬란하게 개조를 한 하얀색 준중형차가 골목 사이에 백미러가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골목의 평화를 단번에 깨버리는 그 비트, 하얀 차량은 기가 막힌 채 멍하니 보고 있는 우리의 앞에서 천천히 멈춰 섰다.
– 지이이잉!
– 둠칫!!! 둠칫!!! 둠칫!!! 둠칫!!!
엄청나게 폭발적인 비트 속에 노파의 어깨와 내 몸도 박자에 맞춰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차 안에서 아직 덜 채워진 문신의 팔이 창틀에 올려졌다.
“집, 잠깐 보러왔는데. 사이즈 좀 재려고요.”
아, 범재…
우리가 이사하고 나서 이곳에 이어서 들어올 이가!
그때 범재의 눈이 노파의 품에 안겨있는 나에게 고정됐다.
“와, 이 강아지! 분명 어디서 봤는데? 진짜. 아, 그런데 귀랑 꼬리 색깔이 좀 다른데?”
한참 인상을 쓰며 나를 노려보던 범재가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렸다.
“우리 집, 여기 이사 오기로 한, 거시기유?”
“내 거시기는 알 것 없고요, 할머니. 잠깐 여기서 좀 기다릴게요. 여자친구가 금방 오기로 했는데.”
범재가 노파의 앞에서 담배를 꺼내 피워 물며 핸드폰을 들었다. 그때 골목 끝에서 머리를 샛노랗게 탈색한 지혜가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범재 오빠!”
“아아! 여기야, 여기!”
범재가 씨익 웃으며 지혜를 향해 윙크를 날렸다. 나는 지혜가 나를 알아볼까 서둘러 꼬리를 다리 사이로 감추곤 노파의 팔 사이로 얼굴을 집어넣었다.
“오빠, 이게 웬 차야?”
“아아, 이번에 이사하는 기념으로, 요새 차 없으면 어디 가서 모양 안 살잖아? 하나 장만했지.”
“오빠! 월세도 밀렸는데, 어떻게…!”
“어허! 오빠 능력자다? 차 할부금에 긴급생활자금대출 3,600만 원까지 확 땡겨 받았지. 오빠가 얼마나 통이 큰지, 이것 봐. 이렇게 거기 SNS에 사진도 올라왔어. 하트 봐봐.”
안 봐도 뻔했다.
‘쟤가 드디어 갈 데까지 가는구나…’
월세도 없어 원룸 보증금까지 까일 판에, 결국 그 ‘긴급생활자금대출’로 받은 돈으로 이 반지하 전세를 구한 것일 게 뻔했다. 한 달에 얼마를 갚아야 할지, 그리고 과연 갚을 수 있는지의 부분은 애초에 범재도, 지혜도 생각지 않고 있을 것이었다.
“아, 이 집이야?”
“들어가 보자. 방 두 개다.”
“으, 으응…”
지혜가 조금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범재의 뒤를 따라 계단을 내려갔다. 노파와 나는 한발 물러서서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윽고 ‘뭐, 괜찮네.’, ‘그치? 도배랑 장판도 이번 여름에 새로 했대. 완전 새거. 돈 굳고 개꿀!’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하아…’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가 나간 자리에 들어오는 것이 범재와 지혜라니, 무언가 거대한 운명의 수레바퀴가 굴러가는 것 같았다.
이윽고 둘이 TV는 거실에 못 놓네, 안방에 두네, 침대는 튼튼한 것으로 새로 사야 하네, 돈 없네 등등의 대화를 나누며 올라왔다.
“잘 보고 갑니다. 3일 후에 바로 이사 올 거예요.”
범재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차에 올라타 시동 버튼을 눌렀다.
– 둠칫! 둠칫! 둠칫! 둠칫! 둠칫! 둠칫! 삐리리 삡! 둠칫! 둠칫! 삐리리 삡!
“오빠, 차 개 쩔어!”
“뭐해? 내 여자. 얼른 옆에 타지 않고.”
“꺄아아아!”
“오늘, 수안역부터 수평역까지 밤새 돈다. 어두운 밤을 깨우는 비트에 취해버릴 거야.”
“나도 취해버릴거얏흥!”
– 둠칫! 둠칫! 둠칫! 둠칫!
소리가 점점 멀어져갔다. 골목의 끝에 세워진 음식물 쓰레기통을 치어 쓰러트리며, 그 하얀 승용차는 저녁 하늘을 울리며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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