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with an S-class constellation RAW novel - Chapter 115
115화. 새벽의 명성, 그 의미 (1)
하민아를 본 순간.
강유진은 주저 없이 움직였다.
전투 능력이 없는 특수 타입 계약자라는 사실은 신경 쓰지 않았다.
전력을 다해 움직여 제압하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강유진의 손은 허공을 갈랐다.
고개를 돌리니 하민아는 방금 전에 있었던 곳에서 5미터 정도 떨어진 곳으로 이동해 있었다.
“무의미한 일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강유진 님.”
“무슨 짓을 한 거지?”
“간단히 말씀드리지요. 지금 강유진 님이 보고 있는 제 모습은 환상입니다.”
“……진짜 네 몸은 지금 여기에 없다는 건가?”
“그렇게 받아들이셔도 될 것 같군요.”
강유진은 대꾸하지 않고, 인벤토리에서 뒤랑달을 꺼내 바로 휘둘렀다.
이번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하민아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멀쩡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났다.
‘성검인 뒤랑달로도 똑같다는 건…….”
강유진은 뒤랑달을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하민아를 노려봤다.
“뭣 때문에 나타난 거지?”
“약속을 하지 않았던가요.”
“약속?”
“네, 더 강해져서 페넥스 님을 꺾을 수 있는 수준이 되면, 당신을 납치해서 인체 실험을 한 이유를 알려 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하민아의 목소리는 지극히 차분했다.
“저는 약속을 지키러 왔을 뿐입니다. 오해 마시길 바랍니다.”
“……다른 용무가 있는 건 아니고?”
“딱히 없습니다, 강유진 님.”
“…….”
하민아의 본심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정말로 약속을 지키려고 나타난 걸까.
“좋아.”
강유진은 주위를 경계하면서 입을 열었다.
“그럼 얘기해 봐.”
“네.”
하민아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백윤호 주교를 기억하고 계신지요?”
“물론 기억하지. 날 가둬 놓고 온갖 실험을 했던 놈이니까.”
“사실 그는 계획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뭐라고?”
“물론 실질적인 작업을 진행한 건 백윤호 주교입니다. 과학적인, 실무적인 부분은 전부 백윤호 주교가 생각해서 진행한 것입니다.”
하민아는 자신의 얼굴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하지만 그 방향성은 전부 제 지시입니다. 물론 백윤호 주교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요.”
“…….”
그렇다면…… 역시 이 여자가 모든 것의 원흉인 건가.
“저는 딱히 판데모니움의 명령을 받아서 움직인 것도 아닙니다. 연락을 취하며 의견 교환을 하기는 했지만, 결국 제 의지대로 일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전부 당신 때문이라는 거지?”
“그렇습니다.”
“알겠어. 그래서, 결국 당신은 왜 그런 짓을 한 거지?”
강유진의 질문에, 하민아는 표정 변화 없이 대답했다.
“그 부분을 설명드리려면…… 일단 옛날 얘기부터 해야 할 것 같군요.”
“옛날 얘기?”
“지금으로부터 약 9년 전의 얘기입니다.”
담담한 목소리로, 하민아가 말했다.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폭도들에게 부모를 살해당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
“그리고 그 소녀는 폭도들에게 붙잡혀 으슥한 지하로 끌려갔습니다. 무슨 일을 당하게 될지 상상하면서 소녀는 공포에 떨며 울부짖었습니다. 그러자 폭도들은 울부짖는 소녀를 구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하민아는 천천히 자기 소매를 걷었다.
그곳에는…… 하민아로 변신한 달기를 안아 들고 도망칠 때 얼핏 봤었던, 끔찍한 흉터가 똑같이 새겨져 있었다.
“달기에게서 들었을지 모르겠지만, 제 건강이 줄곧 안 좋은 건 그때의 구타가 원인입니다.”
“…….”
“그렇게 심각한 표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강유진 님. 그 이후에 좋은 일이 벌어졌으니까요.”
“좋은 일…… 이라고?”
“네, 마지막으로 몹쓸 일을 당하기 직전, 지하에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던 것입니다.”
검은 그림자.
그게 대체 무엇일까.
“그는 저를 납치한 자들을 단죄하였습니다.”
“……죽여 버렸다는 건가?”
“네, 그리고 그분은 저를 내려다보면서 말했습니다. ‘네 영적인 자질이 매우 뛰어나서 나를 불러낼 수 있었다.’라고 말입니다.”
“영적인 자질…….”
“그분은 금방 제 앞에서 사라졌지만, 그 이후 저는 그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목소리는 저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지침이 되었습니다.”
지난번에 들은 적이 있다.
주민아나 하민하처럼 뭔가 신적인 존재의 계시를 받았다고 얘기하고 다니는 걸 ‘잔다르크 신드롬’이라고 부른다고.
대부분은 착각이나 사기였지만, 적어도 하민아는 진짜였다.
다만…… 계시를 내린 존재가 일반적인 관점에서 선량한 신이 아니었을 뿐이다.
“저는 그분이 이 세상에 새로운 질서를 가져다줄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면…….”
“네, 새벽의 명성 교단은 새로운 세상의 지도자로서 군림할 그분을 위해 조직한 단체였습니다.”
이제 머지않아 혼란이 끝나고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새벽의 명성 교단은 그런 얘기를 하면서 교세를 확장해 왔다.
단순히 신도를 모으려고 꾸며 낸 얘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하민아의 얘기를 들으니 딱히 꾸며 낸 얘기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하민아가 신봉하는 ‘그분’이란 대체 누구인가.
* * *
“벨리알.”
지난번에 만났던 바닷가 동굴에서, 나는 다시 벨리알을 만났다.
“강유진이 페넥스를 쓰러뜨렸어.”
“벌써 말입니까? 빠르군요.”
벨리알이 만족스러워하는 미소를 지었다.
“강유진 일행은 무사히 탈출했습니까?”
“지금 탈출 중일 거야. 별일 없으면 아침이 되기 전에 경계를 넘어갈 수 있겠지.”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벨리알은 진심으로 다행이라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한동안은 괜찮을 겁니다. 판데모니움의 마신총회에서는 극동 방면에서 재침공을 시작하는 것을 전제로 향후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페넥스가 쓰러졌으니 전면적인 재검토를 할 수밖에 없죠.”
“한동안은 판데모니움 측에서 군사 행동을 하지 않을 거라는 얘기인가?”
“네, 마신총회는 생각보다 의사 결정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기관이라, 한동안은 여유 있을 겁니다.”
“잘됐네.”
“네, 그렇지요.”
아군인 페넥스를 함정에 빠뜨려 죽여 놓고, 벨리알은 천연덕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벨리알.”
“뭔가요, 김무명.”
벨리알이 미소 띤 얼굴로 내 가명을 불렀다.
“너는 원래 전쟁을 싫어했지.”
“정확히는 어렵고 힘든 전쟁을 싫어하는 것이죠.”
“게다가 너는 인간들과의 교역으로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어. 그래서 전면 전쟁을 막으려 우리와 손을 잡은 거지.”
“네, 맞습니다.”
마태수가 강유진과 주민하, 49호 앞에서 얘기해 준 이유도 이것이었다.
벨리알은 그런 존재이기 때문에, 판데모니움의 다른 마신들을 배신하고 인간들 편에 붙을 수 있다고.
“너는 페넥스를 배신했을 뿐이지, 딱히 판데모니움 전체를 배신한 건 아니야. 그렇지?”
“네, 맞습니다.”
벨리알은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나름대로 애국자라서 말이죠. 판데모니움을 배신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
“다만 제가 생각하는 판데모니움과…… 다른 악마들이 생각하는 판데모니움 사이에 약간 차이가 있을 수는 있겠죠.”
“다른 악마들은 이번 일을 알면 네가 판데모니움을 배신했다고 비난할 거야.”
“그런 상황이 되면, 저는 당당히 나서서 제 정당성을 부르짖을 겁니다. 오해가 있으면 대화로 풀어 나가야죠.”
벨리알은 뛰어난 화술을 지닌 선동의 악마다.
자기 행동을 정당화시키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무명.”
벨리알이 웃으면서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번 일이 잘 마무리된 건 당신이 그 ‘무명의 왕’의 대리인으로서 중간에서 일을 잘 처리해 준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속해서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면 좋겠군요.”
“…….”
“김무명?”
내가 악수에 응하지 않자, 벨리알이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흠, 어떤 것일까요? 제가 대답해 드릴 수 있는 게 있다면 대답해 드리죠.”
“판데모니움에 궁금한 게 있어서 말이야.”
“……판데모니움 말입니까?”
“그래.”
고개를 끄덕인 뒤, 나는 벨리알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파도치는 바다를 쳐다보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얼마 전, 역사상의 전쟁에 대해 얘기할 일이 있었어.”
“역사상의 전쟁?”
“그래, 400여 년 전에 이 땅에서 발생한 전쟁이지. 바다 건너 일본에서 침략자들이 쳐들어오면서, 국토 전체가 불바다가 됐어.”
이 전쟁 얘기를 꺼내며 헥토르를 협박했던 걸 떠올리며, 나는 계속 말했다.
“길게 이어지던 그 전쟁은 어느 날 갑자기 끝나 버렸어. 그 이유가 뭔지 알아?”
“글쎄요, 화평 조약이라도 맺었던 건가요?”
“그 전쟁을 추진하던 일본의 수장이 사망했기 때문이지.”
“…….”
“일본군의 장수들은 바로 퇴각 준비를 했어. 전황도 불리했고, 계속 전쟁을 해 봤자 얻을 게 없다고 생각했겠지. 물 건너에서 승산 없는 싸움을 계속하는 것보다 앞으로 국내에서 벌어질 권력 싸움을 준비하는 게 더 우선이었으니까.”
내 얘기를 들으며, 벨리알은 말없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봐, 벨리알.”
“…….”
“이 세계를 철저히 유린하던 판데모니움은 왜 갑자기 전쟁을 중단해 버린 걸까?”
“그 부분은 판데모니움의 기밀이기 때문에, 아무리 당신이라도 얘기해 주기는 어렵군요.”
“혹시 400여 년 전의 전쟁하고 비슷한 일이 벌어진 게 아닐까 해서 말이야.”
우두머리의 죽음.
그 대사건을 계기로, 부하들은 더 이상 전쟁을 계속할 필요가 없다면서 싸움을 멈췄다.
“재미있는 추측이군요. 근거가 있는 얘기입니까?”
“사실 뚜렷한 근거는 없어.”
“뭡니까. 그냥 상상인 겁니까?”
“그래도 하민아와 강유진을 보니까 대충 감이 오더라고.”
물론 벨리알의 언동도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근거 중 하나지만…… 그건 지금 입 밖에 내지 않았다.
“…….”
벨리알은 입을 다문 채 나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사람을 현혹시키는 미소도 어느새 얼굴에서 사라져 있었다.
그런 벨리알을 보면서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정곡을 찌르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벨리알, 사실 힌트는 처음부터 제시되고 있었어. ‘새벽의 명성’이라는 이름부터가 수상하잖아.”
그렇다.
처음부터 답은 나와 있던 것이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나는 성경의 한 구절을 입에 담았다.
“계명성이란 새벽녘에 뜨는 밝은 샛별을 의미하는 말이지.”
“…….”
“사실 샛별, 명성은 신성한 존재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기 때문에 종교 단체 이름으로 쓰기에 이상하지는 않아.”
예를 들어 요한 묵시록에서는 그리스도에게 샛별이라는 표현이 사용된다.
“하지만 판데모니움과 관련이 있다고 하면 그 성격이 바뀌게 되지. 악마들의 세계에서 가장 이름 있는 자하고 관계가 있으니까.”
신과 가장 근접한 위치에 있는 성스러운 존재였으나, ‘자신의 자유 의지’로 신을 배신하고 천사들을 이끌고 반역을 저지른 타천사.
거대한 절대자에게 끊임없이 도전하는 반역자로서, 천국에서 노예로 사는 것보다 지옥에서 지배자로 살겠다고 일갈한 야심가.
신의 적대자 ‘사탄’이라는 호칭이 그 누구보다 어울리는 악마 중의 악마.
그 마왕의 이름은…….
“새벽의 명성이란 판데모니움의 우두머리…… 너를 비롯한 천사들을 이끌고 신에게 반역했다가 패배하여 지옥으로 떨어진 존재, 루시퍼를 의미하는 거야.”
“…….”
“내 말이 틀렸나? 타천사 벨리알.”
침묵하는 벨리알을 향해, 나는 담담히 말했다.
“루시퍼는 이미 사망한 상태야. 새벽의 명성 교단은 루시퍼를 부활시킬 새로운 육체로서 강유진 같은 개조 인간을 만들고 있던 거지.”
* * *
“얘기가 길어졌군요. 어쨌든 이제 강유진 님도 이해하셨겠죠.”
많은 얘기를 하느라 피곤했는지, 하민아의 목소리는 조금 지친 것 같았다.
“저희 교단에서 강유진 님을 이유 없이 개조한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새로운 육체가 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여 조정한 것이죠.”
“내가…… 악마들의 왕을 부활시키기 위한 부품이라고?”
“네, 영광스러운 일이지요.”
강유진 입장에서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얘기였다.
사이비 교단이니까 뭔가 이상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짐작은 했었다.
그런데 이미 죽어 버린 마왕을 되살리려는 목적이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
“강유진 님.”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잖아. 마왕 부활을 위해 내가 그 꼴을 당했던 거라니.”
강유진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알려 준 건 고맙네.”
“그러면…….”
“덕분에 앞으로 어떻게 할지 좀 더 뚜렷해졌어.”
“네?”
“뻔하지. 당신들 음모를 깨부수는 거야.”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왕 부활을 꿈꾸는 사이비 교단이라니, 뭔 판타지 소설도 아니고.”
“…….”
“그런 말도 안 되는 음모를 진행하게 내버려 두지 않아. 당신이 지금 어디 숨어 있는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찾아내겠어.”
뚜렷한 적의를 담아서, 하민아를 노려봤다.
“당신들한테 협조할 생각은 전혀 없으니까, 나를 소체로 쓰느니 어쩌니 하는 건 꿈도 꾸지 마.”
“…….”
하민아가 입을 다문 채 강유진을 쳐다봤다.
그리고 잠시 후,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입을 열었다.
“강유진 님, 착각하고 계신 것 같군요.”
“뭐?”
“당신은 아직 그분의 육체가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애초에…… 소체는 당신 하나만이 아닙니다.”
그 말을 듣고, 강유진은 허를 찔렸다.
“강유진 님, 저희는 세계 각지에서 계획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강유진 님 이상의 완성도를 획득한 소체도 있습니다.”
“나 말고도…… 있다고?”
“네.”
하민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유진 님, 제가 페넥스 님을 이길 수 있을 정도가 되면 진실을 알려 주겠다고 약속한 건, 그 정도는 되어야 겨우 경쟁 상대가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경쟁 상대?”
“네, 경쟁 상대입니다.”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이고, 하민아가 말했다.
“강유진 님, 그들은 강유진 님보다 강합니다.”
“……!”
“페넥스 님을 쓰러뜨린 이상, 강유진 님은 그들의 표적이 될 겁니다. 그들은 강유진 님을 쓰러뜨리고 더 높은 경지에 오르려 하겠죠.”
왜 그런 짓을 하려고 하는지, 하민아가 설명해 주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은 소체들 중에서 가장 우수한 존재가 되어…… 마왕 부활의 그릇으로 선택받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놈들은…… 마왕의 힘을 손에 넣는 게 목적인 건가?”
“글쎄요. 개개인의 심정까지는 제가 모르겠군요. 어쨌든…….”
하민아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앞으로 강유진 님은 다른 소체들과 싸우게 될 겁니다. 살아남기 원한다면 더욱 강해지세요. 더욱 강해져서 다른 소체들을 쓰러뜨리길 바랍니다.”
“하민아……!”
“강유진 님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강유진 님은 그분의 육체 역할을 수행하기에 더욱 알맞은 상태가 되는 겁니다.”
그 순간, 강유진은 깨달았다.
이 여자는…… 지금까지 만나 온 그 어떤 자보다 심각한 미치광이다.
“아아…… 그 모습을 빨리 보고 싶군요. 너무나도 기대됩니다.”
그렇게 말하는 하민아의 얼굴은, 형용할 수 없는 환희로 가득 차 있었다.
* * *
거친 파도 소리 속에서 벨리알이 입을 열었다.
“착각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군.”
“……벨리알?”
평소와 다른 말투를 듣고, 나도 모르게 그 이름을 불렀다.
“나를 그 광신자들하고 똑같이 생각하지 마라, 김무명.”
“…….”
항상 존댓말을 쓰던 벨리알이 반말을 쓰면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너는 내가 그 새벽의 명성 교단과 내통하고 있다고 생각한 건가? 그래서 강유진에게 접근한 거라 생각한 건가? 웃기는군!”
벨리알의 표정과 목소리에서, 평소 그를 완벽하게 포장하고 있던 허식이 모조리 떨어져 나간다.
지금 이 순간, 벨리알은 그동안 보여 준 적 없는 본심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내 목적은 단 하나다!”
“벨리알…….”
“경애하는 그분을 다시 부활시켜 전쟁의 도구로 삼으려 하는 판데모니움 내부의 반역도들과, 그분을 자기 마음대로 왜곡하여 그 이름을 더럽히는 하민아 같은 광신자들을 모조리 척살하여…… 그분의 명예로운 죽음을 지키는 것!”
지금 내 앞에 있는 건 온갖 거짓된 말로 세상 모두를 현혹시키는 허식의 악마 벨리알이 아니었다.
자신의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던 격정을 있는 그대로 폭발시키는…… 한 명의 남자였다.
“이렇게까지 까발렸으니 각오는 되어 있겠지, 김무명!”
불타는 눈동자로 나를 노려보며, 벨리알이 소리쳤다.
하지만 그 눈동자에 담겨 있는 감정은 결코 악의가 아니었다.
“나에게 힘을 빌려다오!”
예전에 내가 벨리알 곁을 떠날 때 나를 보던 것과 똑같은…… 믿음의 눈동자.
그 눈동자로 나를 노려보면서 벨리알이 소리쳤다.
“너와 내가 힘을 합쳐서 계략을 꾸민다면, 불가능한 일은 없을 것이다! 강유진을 움직여, 그분의 부활을 꿈꾸는 자들을 이 세상에서 모조리 척살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