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sorry I went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67
강령회 사기사건 (5)
파아앗―
이번엔 클레이오에게도 익숙한 금빛 에테르가 예언자 주변으로 원형의 [경감] 마법식을 그려냈다.
탈진해가던 사람들의 신음소리가 조금 잦아들었다.
예언자의 4D 스펙터클 이펙트 쇼는 강렬한 도입부, 무시무시한 중간, 위안을 주는 결말의 구조로 마무리 연출까지 훌륭했다.
그렇지만 그 지나친 훌륭함 때문에 기적의 이음매가 도드라져 보이는 것이다.
세상에 일어나는 일 중에서 앞뒤가 잘 맞고 설명이 딱딱 들어맞는 사건은 대체로 사기인 법이다.
‘약속’은 이 밤 처음으로 먹통 상태에서 벗어나 반가운 메시지를 띄웠다.
메시지는 예언자가 아니라, 그의 곁에 선 추종자의 머리 위로 떠올랐다.
[5레벨 마법사]클레이오는 「지각」을 최대치로 올렸다.
머리가 띵 울리며, 카메라를 줌 업 하듯 예언자와 그에게 닿는 한 여인의 손이 한 눈 가득 들어왔다.
몸집이 자그마한 여성은 추종자처럼 예언자 가까이 다가와 사람들 가운데서 그의 손에 입 맞췄다.
정확히는 그러는 척하며 마석을 쥐여주었다.
클레이오는 곧바로 마석의 종류를 조회했다.
[양귀비 석류석:위안과 망각의 마석.]
그러는 동안에도 여전히 [경감]의 은은한 빛은 정원을 밝히고 있었고, 그 마법은 분명 저 5레벨 마법사의 것이었다.
‘이거, 동료가 있었잖아.’
자연스레 몰려든 사람들의 키스를 받아 주던 예언자는 마침내 손안의 마석을 부스러뜨리며, 다시금 마법을 발동시켰다.
바람잡이가 쓰는 마법과는 달리 자칭 예언자가 쓰는 마법식은 구조를 전혀 알아볼 수 없었다. 다만 엄청난 광량의 보랏빛 에테르만이 홍수처럼 범람해 사방을 채웠다.
빛은 거의 몇십 초간 지속되었다.
간신히 눈부심을 이긴 클레이오는, 예언자의 뒤편에서 살짝 가면을 들어 올린 여자의 얼굴을 봤다.
아는 얼굴이었다.
양 갈래로 땋은 머리, 따스한 미소가 인으로 새겨진 다정한 표정,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인상의 마법사.
‘어라?!’
헤스터 워드는 에즈라의 특강에 보조로 따라왔던 수도방위대 마법단 소속의 대위였다.
‘…왕세자는 마법단에게 언질을 안 준 것처럼 말하더니 사실은 나랑 저쪽 둘 다한테 일을 맡긴 건가?’
일개 집회 참가자인 자신보다는 무려 예언자의 보조로 등장한 마법사 헤스터 쪽이 더 심층부까지 접근한 것 아닌가.
멜키오르가 거짓말을 한 것인지, 자신이 모르는 내막이 있는 것인지 혼란에 빠져있던 때,
클레이오는 헙, 하고 숨을 들이켰다.
좌중을 둘러보던 예언자와 눈이 딱 마주친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파앗!
동시에, 내내 주변에 둘러 있던 보랏빛 에테르의 반구와 빛이 모두 사그라져 삽시간에 밤이 되돌아왔다.
솨아아아아―
공간을 메웠던 마법의 공백을 채우며 공기가 일렁였다.
정원을 다 훑어 뒤집을 듯한 강풍이 휘몰아쳐, 정원을 떠나려는 예언자의 두건을 흐트러트렸다.
‘약속’의 「지각」에 힘입어 비정상적으로 향상된 시력 덕에 포착할 수 있었다.
가면 가장자리로 옅은 하늘색 머리카락이 조금 비어져 나왔다. 예언자는 손을 대 두건을 가다듬고는 소리도 없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게 끝이었다.
쓰러진 사람들은 가면을 쓴 하인들이 일으켜 안으로 옮겼고, 서 있던 사람들은 방금 일어난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듯 웅성거렸다.
“뭔가, 굉장한 걸 본 것 같았는데.”
“나는 마치 다시 태어난 것 같아….”
“엄청난 말씀을 듣지 않았나요?”
“온몸이 얻어맞은 것처럼 피로하고, 탈진했는데도… 이 충만한 기분은 도대체….”
사람들의 대화를 수집하던 클레이오는 절로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어떤 구조인지 모르겠지만, 처음 시작할 때의 빛과 끝날 때의 빛이 일종의 암시를 구성하는 것 같았다.
예언자 라이트닝 쇼 동안 일어났던 일의 상세는 뭉그러지고 그때의 엄청난 흥분과 도취감만 남는 것이다.
‘이러니 멜키오르 수하들은 내막을 캐내기 어려웠던 거군. 마무리는 양귀비 마석이라니… 이거 말 그대로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네.
일이 진행되는 동안 사라졌던 마담 라모르가 어느새 단 위로 올라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여러분, 이 밤의 경험은 다른 어떤 곳에서도 할 수 없는 것이었으리라 믿어요. 이 회합에 한 번 이상 오셨고, 다시 한번 깊이 있는 강령의 비의를 엿보길 바라는 분들은 부디 성의를 표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리겠습니다.”
또다시 돌아온 수금타임이었다.
사기극에 휘말린 참가자들은 앞다퉈 금전을 내밀기 시작했다. 걸고 온 장신구부터 허리끈에 찬 주머니까지 탈탈 털어 내주었다.
이렇게 된 이상 다음 무도회에 참가하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귀마개를 낀 하인들은 기계적으로 움직이며 사람들이 내민 보석과 금화를 챙겨 넣었다.
가짜 카롤링거어 억양을 쓰는 마담 라모르가 바람 잡는 걸 들어 보니 요구는 하나였다. 다음 무도회의 초대장을 얻고 싶으면 푼돈으론 안 된다는 거였다.
더 이상 바꿔 놓은 아우룸 금화도 없었다. 클레이오는 울상을 지으며 아공간 주머니에서 마석 은 한 조각을 꺼냈다.
그걸 받아 챙기고서야 하인은 초대장을 내어주었다. 이번엔 검은 종이 위에 청금색 잉크로 글이 쓰인 봉투였다.
***
새벽 네 시 반.
하늘 한 귀퉁이가 파르스름해진 시간, 아세르 가 응접실에 작은 불이 밝혀졌다.
두 쌍둥이는 자기들도 회의를 해야 한다고 우기다 소파에 머리를 맞댄 채 잠들었다.
에테르 레벨이 올라가도 애들은 애들이었다.
첼과 아서, 이시엘은 시간과 무관하게 쌩쌩했고, 카우치에 푹 파묻혀 비실비실 죽어가는 건 역시 클레이오뿐이었다.
아서는 주먹을 꽉 쥐고, 클레이오가 낸 의견을 반박했다.
“아니. 그건 절대로 잠입 임무가 아냐. 만에 하나 임무였대도, 역으로 포섭당한 게 분명해. 헤스터 워드는 진심으로 예언자 놈의 마법이 성공하길 바라.
확실히 느껴졌는데… 목소리에 담기는 감정을 그렇게 진실되게 꾸며낼 수 있다면 마법사를 하는 게 아니라 주연배우로 피터샴 레인 극장의 무대에 서야 할 거라고.”
“정말이야?”
“무도회 시작 전에 둘의 대화를 들었어. 예언자란 놈이 일단 본판을 진행하고, 에테르가 부족하면 틈을 봐서 보조해주기로 계획을 맞춰보고 있더라니까.”
그 강령회인지 부흥회인지가 진행되던 과정을 생각해 보면 아서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흙탕물에 젖었다 말라서 축축한 물비린내를 풍기는 꼬락서니로 하는 얘기니 더욱 말이다.
“마담 라모르가 안에서 분위기를 띄우는 동안, 저택 뒤편의 테라스에서 사기꾼과 조수가 대기하고 있는 걸 내가 딱 포착했단 말야. 거기다 그 대화를 안 들키고 엿듣느라 연못 속에 푹 엎드려 있었지. 나 들으라고 일부러 말한 얘긴 아닐 거라고 생각해.”
소파에 파묻혔던 클레이오가 뚜둑거리는 허리를 일으켰다. 절로 목소리가 커졌다.
“아니, 그런 위험한 짓을… 이시엘이 안 말렸어?”
“말리기는. 들키지 않도록 경계를 서 줬는걸.”
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찍히는 것도 정도가 있다.
따듯한 물이 담긴 잔을 쥐고 있던 클레이오가 ‘어떻게 그럴 수가’하는 얼굴로 쳐다보니, 이시엘은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답했다.
“아서 님의 예감을 믿어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아서 님이 느낀 바를 따르면 놀라운 결론에 이를 때가 있다.”
“고마워, 이시엘. 봐, 레이. 가끔은 날 믿어 달라고. 이렇게 결정적인 정보를 얻어 왔잖아.”
예상대로 예언자는 마법사였다.
그리고 그가 가짜 예언자 흉내를 내며 사람들의 돈을 뜯는 이유는 마석을 그러모아 더 큰 일을 치려는 것이었다.
“이대로라면 다음번에는 ‘대마법’이란 걸 실행시켜 볼 수 있을 거라고 신이 났더라니까.”
“헤스터는 거기 동조를 해?”
“동조 정도냐. 아주 사기꾼 본인보다 더 흥분했던데? ‘신의 축복과 은총과 선택을 하나로 하는 이 위대한 말씀을 나누기를 간청합니다. 신께서 내린 성수가 예언자님께 기적을 선사한 것입니다.’ 이러는데 보통 기뻐하는 게 아니더라고. 말투야 과장이라고 쳐도 말이지.”
클레이오는 아서가 그대로 옮기는 헤스터의 말 안에서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신성력, 마법, 성흔을 다 합한 힘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면, 그런 무시무시한 변수를 신이 방치할까?
‘설마 이번 일도 우연이 아닌 거야? 내가 수습해야 하는 거냐고.’
클레이오는 힘 빠진 어조로 웅얼웅얼 덧붙였다.
“그야 그 정도 마법을 따라 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면, 어지간한 마법사는 다 넘어갈 만한 쇼였어. 휘황찬란한 에테르 효과에다, 몇몇 사람들에겐 마법으로 만든 환시까지 보여준 것 같아.”
이번에는 아서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마법? 밖에선 아무것도 안 보였는데. 안에서 도대체 뭣들 한 거야?”
첼이 연극적으로 양팔을 뻗었다.
“엥, 안보였냐? 그렇게 요란뻑적지근하게 빛을 쏘는데?”
“전혀.”
이시엘이 더 상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건물과 중앙 정원을 감싼 반구형 장막 바깥에서는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기척 역시 차단되고 출입은 당연히 불가능했다.”
“어쩐지. 호위하나 안 세우고 눈이 멀 듯 요란뻑적지근한 마법 쇼를 보여주는데 이 어둔 외곽에서 용케 주의를 안 끈다 했더니… 그 반구 자체가 차폐 기능을 가지고 있었구나. 도대체 뭐 하는 마법이람. 레이, 넌 알겠어?”
클레이오는 피곤으로 갈라지는 목소리를 가다듬어 아서와 이시엘에게 안에서의 일을 설명했다.
에테르 감응력이 있는 사람에겐 통하지 않는 환시와, 그에 뒤따르는 마법 효과였다.
“…해서, 내가 기말고사 때 시연한 스노우쿼츠 흩트리는 마법의 열 배쯤 화려한 걸 내내 펼쳐 보여주더라. 정확히 무슨 구조의 마법을 쓴 건지는 나도 못 알아봤어.”
“레이 네가 못 알아볼 정도면 까마득히 수준 높은 마법이었단 건데. 흠. 그런 걸 쏴줬다니, 사람들이 미쳐 돌아가는 것도 이해가 가네.”
“하지만 클레이오 그토록 장엄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라면, 주변의 눈에 안 띄더라도 참가자들에 의해 목격담이 부풀려져야 옳다. 왜 더 크게 말이 퍼지지 않았지?”
이시엘의 의문은 타당했다.
“내 추측인데 일종의 암시 장치를 해 놓은 것 같아. 시작할 때 엄청나게 밝은 빛을 비추면 지난 무도회 때의 광란이 기억이 나고, 끝에서 그 빛을 한 번 더 비추면 무도회 동안 있었던 일을 까먹는 것 같아.”
“레이 말이 맞아. 그래도 뭔가 엄청나고 굉장한 걸 봤다는 느낌만 남아서 중독자처럼 다시 찾게 만드는 거지.”
“그러니 떨거지들은 그 신비 체험을 갈구하며 엄청난 돈을 뱉어내고.”
이시엘은 불쾌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수법이 악질적이군.”
“완전 악질이지.”
“이놈 정도면 사기꾼 중에서도 최상급인데.”
“돈만 목적이어도 충분히 수상한데 거기에 ‘대마법’이라.”
“마르키온이란 이름은 분명 가명일 텐데 정체를 어떻게 캐 보지.”
“일단 젊은 남자인 건 알겠어. 하지만 체격도 평범하고….”
세 사람의 대화를 듣던 첼이 뭔가를 떠올리듯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선 끼어들었다.
“그런데 레이, 그 자식 목소리 뭔가 익숙하지 않냐?”
마르키온의 목소리는 특별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평범한 음성이었다. 말투 역시 특징이 느껴지지 않는 룬데인 표준어였다.
“난 사교계에도 안 나가 있는데 어떻게 알아.”
“아냐, 사교계 말고 학교였던 것 같아. 우리 동급생은 아니고. 그치만 분명히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데… 아-, 뭔가 단서가 더 없나.”
클레이오는 문득 마지막 빛을 비출 때 목격한 단서를 떠올렸다.
“그 자칭 예언자, 머리카락 색이 좀 특이했어. 겨울 하늘 같은 흐릿한 푸른색.”
“하늘색 머리였다고? 어떻게 본 거야?”
“내가 제일 가까이 있었잖아. 바람 불 때 두건이 뒤집혔어.”
첼은 입술을 살짝 벌린 채 굳어졌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맹렬한 인명검색이 일어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마침내 검색결과를 출력해낸 듯 첼은 버럭 소리를 쳤다.
“이런 미친, 길라드 에클립시잖아!”
“길라드 에클립시? 그게 누구야?”
“아서 넌 처음엔 망나니짓 하느라, 나중엔 검만 잡고 있느라 학교 돌아가는 꼴을 모르는구만. 그 975기 퇴학생 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