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sorry I went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75
하인, 마부, 심부름꾼의 왕자님 (2)
“존경하는 위원님들께서는 아무도 보통 사람들이 한 주에 필요로 하는 최소 생활비를 알지 못하시는군요.
간단하게 설명하겠습니다. 아까 마부와 심부름꾼, 요리사들의 이야기는 했으니 이제 하인의 예를 들면 적절하겠네요.
낮은 직위의 사용인들은 보통 분기당 1000디나르를 받습니다. 월급으로는 330디나르가량이고, 주급으로 나누면 82디나르인 셈입니다. 대신 고용인은 식사와 숙식을 제공합니다.
그러나 지금 저택은 무너졌고, 흔적 하나 없이 수몰됐습니다.
하녀와 하인들은 이번 분기의 급료조차 받지 못했는데, 가진 거라곤 입은 옷 한 벌 뿐. 소지품도 갈 곳도 없습니다.
3층 침대를 늘어놓은 숙소에서 짚 넣은 매트리스에 등만 눕히려 해도 주당 92디나르가 듭니다. 2디나르는 공용 공간 청소비입니다.
빵이 6디나르 8코루나, 찻잎은 3디나르 5코루나, 버터는 5디나르 3코루나, 혹은 버터 대신 설탕을 고를 수도 있고요. 둘 다 택하는건 사치지요.
그런 저렴한 방에선 세탁을 스스로 할 수 없으니 세탁비가 또 11디나르, 세면 비누는 무게로 끊어 쓰는 가장 하등품도 한 뼘에 3디나르입니다.
비누는 필수품입니다. 누구도 머리에서 냄새가 나고 손톱 아래가 검은 사용인을 쓰지 않으려 드니까요.
이렇게 한 주에 드는 최소한의 생활비가 121디나르 6코루나입니다.
자, 그러면 종전의 계획대로, 사용인들의 치료는 무료 진료소로 돌려 기다리도록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단순한 계산으로도 고작 한 주를 버티기가 어렵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직업소개소에 들를 만한 말끔한 모습을 유지하기 어려우면, 또 상처를 곧바로 처치하지 못해 후유증이 생기면, 성실하고 일할 의지가 있는 근로자가 구빈원 앞에 줄을 선 빈민이 되는 겁니다.
이 고리를 끊지 않고서 어떻게 재산피해가 적다 말할 수 있습니까? 그 금액이 국가를 운영하는 위원님들에겐 적어 보일지언정, 그 피해의 범위는 개개인의 인생 전부입니다.
부유한 상속자가 소유한 여러 채의 저택 중 한 채, 철없는 자녀가 가문의 금고에서 반출해간 마석 두어 개의 무게와는 다른 것입니다.
무엇이 더 시급합니까?
존경하는 위원장님, ‘이상 에테르 반응으로 인한 저택 붕괴 사건’ 피해자의 금전손실 보상과 의료지원의 우선순위를 재고해 주십시오.”
상무장관 로알드 베르메는 부푼 배를 뒤척였다. 조끼의 단추가 터질 듯 씰룩였다.
저 3왕자는 베르메에게 매수된 위원들의 공격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서 그들을 도발하여, 증언 시간을 늘려가고 있었다.
누가 봐도 오늘의 주인공은 아서 리오그난이었다.
방청석에 들러붙은 기자 나부랭이가 여럿으로 늘어났고, 하원의 저 눈꼴신 게스톤 팔라흐 의원까지 자리하고 있었다.
아무도 큰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재산 피해 보상에 관한 소위원회가 어느새 관심의 한복판에 놓였다.
그건 베르메에게 썩 나쁜 소식이었다.
일이 이렇게 꼬이다니.
‘그저 검만 안다는 3왕자가 언제 이런 수작을 꾸몄단 말인가!’
이번 건은 베르메에게 쉽게 삼킬 수 있는 빵조각이었다.
마수의 습격은 극히 최근에 생긴 이변으로, 보험사에서 보상해주지 않는 항목이었다.
최근 티플라움 광산의 독점으로 어마어마한 자원을 손에 넣은 국왕 대리는 상원의 예산 집행에 관해 전처럼 깐깐하게 굴지 않았다.
그가 그의 것을 가졌으니, 귀족들에겐 귀족들의 권한을 보전케 주겠다는 무언의 협의라고 베르메는 판단했다.
노두스 지구의 저택을 상속받은 고프먼 남작은 스페쿨룸 공국 최대의 아다만티움 광산 소유자였다.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는 자가 직접 전화를 걸어, 이번 일의 보상을 후하게 받으면 섭섭잖게 보답하겠다는 기별을 넣어 왔다.
가난한 귀족 가문 여식과 결혼해 작위를 산 고프먼 남작에게, 고프먼 남작가의 저택은 가볍게 처분할 수 없는 근거지였다.
허울뿐인 작위에 남은 유일한 정통성의 근거가 날아가 버렸으니, 정부의 보상 금액은 곧 고프먼 남작의 지위를 나타내는 단위가 된 셈이다.
이건 단순한 금전 문제가 아니었다.
‘잘만 처리하면 정말 크게 재미 볼 거리였는데, 저 천둥벌거숭이 때문에…!’
재작년 봄, 베르메는 오레일스 지구의 개발 계획을 알았음에도 어떤 귀신같은 작자와의 경쟁에 져 어마어마한 이득을 볼 수 있는 토지 매수에 실패했다.
그다음으로 온 천금 같은 기회건만, 이마저 허무하게 날릴 순 없었다.
베르메 후작은 그야말로 척박한 대장원만을 물려받은 후계자로, 사업을 일구고 정계에 진출한 뒤로도 돈 욕심이 영 옅어지지 않는 자였다.
일껏 왕자까지 불러다 세운 건 저택의 피해가 무시무시했다는 증언을 보강해, 저택의 보상액을 늘리려던 베르메 본인의 아이디어였다.
도끼로 제 발을 찍은 격이었다.
그는 일단 아서에게 퇴장 명령을 내렸다.
“위원회가 다루고 있는 사안과 거리가 먼 서설로 신성한 회의장을 어지럽히는 대신 교회에 구빈을 요청하십시오. 이상, 증인은 퇴장하도록 요청한다.”
서기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퇴장 명령을 듣고도 증언석에서 움직이지 않는 아서를 향해 의회 경비들이 다가서려는 차,
패스코 자작이 경비들을 손으로 물렸다.
“잠시, 잠시만. 로드 베르메, 저는 아서 님께 정정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전하, 실업자 보조금이 존재하는데 그리 말씀하시면 하인들의 사정을 호도하는 것 아닙니까? 마치 본 위원회 위원들이 사욕에 눈이 멀어 치료와 보상 순서를 바꾼 것처럼….”
‘이 멍청이가!’
아서의 도발에 한껏 약이 오른 패스코 자작이 다시금 저 맹랑한 왕자에게 발언 기회를 돌리고야 말았다.
베르메는 패스코 자작을 아서와 같이 퇴장시키지 않은 걸 후회했다.
메모 한 장 없이 그 길디긴 숫자를 기억해 온 반쪽자리 왕자였다.
금발 얼간이는 재수 없을 정도로 매끈하게 웃은 후 마치 준비된 것처럼 답했다.
자연스럽고도 매력적인 태도였다.
“패스코 경, 이미 아시겠지만 실업자 보조금은 가정이 있는 가장에게만 지급됩니다. 저택의 하녀와 시종들은 대부분 미혼입니다.
그들에게는 산별 상호조합이 없고, 개개의 집주인은 대공장의 소유주보다 설득하기 어렵습니다. 누가 그들의 실업자 보조금을 조성해 준단 말입니까?”
베르메는 비뚤어진 외알 안경을 고쳐 쓰지도 못하고 입을 헤벌렸다.
분노와 경악으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그러나 아서가 여전히 짓고 있는 표정은 공손한 미소였다. 방금 그가 내뱉은 말과 어울리지 않게도.
아서는 눈앞의 위원들, 늙고 탐욕과 관습에 젖은 이들을 보고 있지 않았다.
등 뒤에 놓인 두 줄의 나무 벤치, 등받이조차 부실해 방청객이 드문드문 앉은 방향으로 그의 온 주의가 쏠렸다.
6레벨 검사의 예리한 기감이 방청객의 면면을 훑는다.
방청석 앞줄에 앉은 의 수습기자가 연필로 노트를 긁는다. 아주 다급한 속기다. 그의 부탁을 받고 나간 사환 소년은 다른 신문사의 기자들도 몇 명이나 더 데리고 들어온다.
회의가 시작된 후 조금 늦게 입장한, 허름한 차림새의 하원 의원은 방청석의 등받이를 짚은 채 기립했다. 연설을 더 똑똑히 들으려는 자세였다.
이시엘은 여전히 똑바르게, 그녀의 머리색처럼 불타는 시선으로 자신의 등을 바라보고 있다.
아서의 말은 이들을 위한 것이다.
짝.
짝짝짝.
짝짝.
커다란 박수 소리가 팽팽히 대치 중인 위원들과 아서 사이로 끼어들었다.
시작은 한 사람의 것이었으나, 마침내 방청석에 빽빽이 모여 선 모든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기립박수를 쳐 우레와 같은 소리가 되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방청석으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베르메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빽 소리쳤다.
“정숙! 위원회실에서는 정숙을 유지하시오. 방청 규정 위반 시 퇴실이오.”
이윽고 불려온 한 무리의 의회 경비가 방청석에서 끝까지 기립해 있던 게스톤 팔라흐 의원을 끌어냈다.
그가 소리쳤다.
‘뭐가 문젠가, 왕자는 맞는 말을 했소만! 하인들을 먼저 치료받게 해 주시게!’
팔라흐 의원은 학창 시절 가두투쟁으로 단련된 목청을 가졌다.
위원회실이 위치한 2층에서부터 로비까지 쩌렁쩌렁 소리가 울렸다. 그의 목소리엔 웃음이 서려 있었다.
웃음이 날 만도 했다.
의회와 위원회의 방청석 설치는, 게스톤 팔라흐가 헌정사상 최초의 노동계급 출신 초선의원이던 시절 발안한 조례였다. 그는 노조의 지원금으로 재산등록을 해 출마하고, 당선 직후 기금 전체를 반환했다.
그 덕에 아서의 연설이 이토록 많은 청자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휴회가 조급히 선언되었다.
본래는 1회로 끝날 예정이었던 보상금 산정 회의가 2회로 연장되었다.
베르메는 속이 탔다.
자신의 선에서 덮자니 일이 커졌고, 이런 작은 일 하나 해결을 못 해 국왕 대리에게 보고하자니 아쉬운 소리를 하기가 죽기보다 싫었다.
진퇴양난이었다. 그는 일단 위원들을 끌고 흡연실로 향했다.
속기록을 모두 챙긴 막내 기자나 수습들은 평민원 건물로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각자의 신문사 사무실이 위치한 동은 평민원의 외곽이었기 때문이다.
아서를 죽일 듯이 노려본 위원들이 제각기 자리를 뜨고 나서야 이시엘이 다가왔다.
“아서 님, 잘하셨습니다.”
“너무 연극적인 어조는 아니었을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시엘은 키시온 자작령이 습격당한 밤 이래, 처음으로 티 없는 웃음을 짓는다. 초여름의 여린 빗속에서 피어난 여름 장미처럼 생생한 표정이었다.
이시엘 키시온은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한다.
1892년에는 두 번의 지독한 밤이 있었다.
첫 밤.
키시온 자작령의 습격.
나고 자란 고향의 터전이 허물어지고, 가족처럼 여겼던 노병들이 시신조차 수습할 수 없는 모습으로 숨을 거두었다.
아버지는 고초를 겪었다. 부당한 모욕을 감내한 뒤엔 침묵을 강요당했다. 오로지 국경을 바르게 수호하고 싶다는 의지로 행한 일로 인해서.
두 번째 밤.
클레이오가 왕세자의 명령으로 명예 없는 구렁텅이에 파묻혀, 에테르를 다 뜯긴 채 먼지가 될 운명에 처할 뻔한 그 날.
제베디 학장의 치료를 받고서 간이침대에서 깨어난 때, 의무실의 협탁을 사이에 두고 두 주종의 눈이 마주쳤다.
에테르 고갈로 새하얀 얼굴을 한 아서는 이시엘에게, 이번엔 검이 아니라 펜을 휘둘러야겠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팔라흐 의원과 언론사의 말단 기자들을 이용할 계획을 설명한 아서가 덧붙였다.
“결코 이타심에 의해 하는 일이 아님을 너는 알겠지.”
“오로지 이기심에 의한 행위가 아님도 압니다, 주군.”
이시엘도 인간사의 양면을 알았다.
아서가, 피해 입은 사용인들의 권익만을 위해 상무장관과 대립하려는 건 아니었다. 이제 더 이상 엎드려 있을 시기가 아님을 깨달았을 뿐.
그래서 그가, 그녀의 주군인 것이다.
어둠 속에서 어둡게 빛나는 초록빛 눈과 고저 없는 목소리는, 이시엘로 하여금 지나간 과거의 나날을 떠올리게 했다.
‘아서 님은 저 먼 시절에도 그랬지.’
여름 궁전의 폐왕자, 버림받은 신녀의 아이를 처음 대면했을 때 그의 실체는 소문과 아주 달랐다.
이시엘만큼 작았던 소년은, 아이의 몸으로 한 마을의 수몰을 막아내고도 치하를 원치 않았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흙투성이 양손이 동상으로 터져나가고 돌더미에 뼈가 어긋나도 개의치 않던 소년의 초연함을 이시엘은 결코 잊지 못한다.
그 소년은 변성기에도 못 다다른 목소리로 왕홀을 쥔 자처럼 말했다. 마치 자신의 영토를 돌보는 것이 당연하다는 태도였다.
그랬던 아서가 미에츠에게 거두어져 사람들 사이로 왔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오로지 강경함을 담고 있던 청록빛 눈, 자신이 구해낸 마을을 내려다보면서도 여느 다른 마을을 보듯 아무런 구분을 두지 않던 경질의 눈동자에 해빙의 온기가 어리던 때 역시도 기억한다.
그 시간들이 이 사람을 만들어냈다.
이제 아서 리오그난은, 참으로 충성과 언약을 바치기에 합당한 존재로 거듭났다.
더 뛰어난 이들도 더 고귀한 핏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왕위의 계승을 주장할 수 있는 인물 중 연민을 아는 이는 그뿐이다.
나의 주군.
이 사람이 나의 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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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톤 팔라흐 의원이 상원 위원회의 방청석에서 기립박수를 치다 의회 경비에 의해 끌려나갔다는 소식은 소버린 지구의 펍과 커피하우스로 일제히 퍼져나갔다.
평론가와 기자, 호사가와 대학생들은 모두 그 이야기를 안주로 잔을 비우기 바빴다.
채 세 시간도 지나기 전에 의회 속기록의 카피가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졌다.
속칭 ‘왕자님의 연설문’은 타이피스트의 퇴근과 함께 먹지에 묻혀 나와, 손에서 손으로 옮겨졌다.
타이피스트들 역시 대귀족보다는 하녀의 처지에 더 공감하는 계층이었으니 유포에 협조적이었다.
이브닝 스타는 ‘하인, 마부, 심부름꾼의 왕자님’이란 제목을 단 1면 기사를 실었다.
일견 헐뜯는 듯한 논조였지만, 그 헤드라인은 오히려 투표권 없는 평민들 사이에서까지 대단한 화제가 되었다.
아서 리오그난.
키가 크고 늠름한 청년, 어린 나이에 놀라운 무위를 이룩한 기사예비생, 전설 같은 금빛 후광을 머리에 두르고서 평민들의 억양을 쓰는 왕자.
붉은 예복과 푸른 띠를 두르는 대신 수수한 검은 재킷을 입는 3왕자는, 그들이 이제껏 감히 상상해본 적조차 없는 종류의 왕족이었다.
그는 단숨에 룬데인 정계의 주목을 끌어모았다.
단 한 번의 연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