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sorry I went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79
수도방위대 기사단 예비기사와 마법고문 (6)
‘이것까지도 텔마 여사가 편지에 적어놨던 건가? 기디온이 절반을 태워버려 전문을 못 본 게 이렇게 아쉬울 데가 없군.’
클레이오는 원래부터 답을 알았던 척 과감히 밀어붙였다.
“아다만티움 부품을 전지와 이어 쓸 수 있도록 가공한 뒤, 룬데인의 경계 전체를 감싸며 몇 미터 간격으로 설치할 겁니다. 마법과 물리 공격에 대응할 수 있는 광역 방어막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아다만티움이 얼마나 희귀한 광물인지는 마법사인 네가 나보다 더 잘 알 게다. 참으로 무시무시한 낭비로군.”
그랬다. 아다만티움은 역사의 세계에는 전설 속에나 존재하던 광석이었고, 이곳 서사의 세계에서도 채굴지가 몇 군데 없었다.
티플라움 다음으로 귀중한 이 광석은 에테르 감응자가 전지에 응집시킨 에테르를 손실 없이 보존할 수 있는 유일한 물질이라고 들었다.
광역 방어막을 만들기 위해서는 티플라움과 함께 엄청난 양의 아다만티움이 필요했다.
“그러나 할 가치가 있는 낭비로 판명될 겁니다.”
“그 역시 신이 알려준 것인가?”
“믿지 않으시겠지만, 그렇습니다. 여신의 말씀은 이루어집니다. 그건 종교적 은유가 아니라 현실적 차원에서 증명되는 겁니다.”
전쟁을 말하는 클레이오의 목소리는 덤덤하다 못해 거의 권태롭게 들리기까지 했다.
전쟁은 벌어진다.
신의 계시를 듣는 예지가 없어도 최근 데르니에 대륙 서쪽의 정세를 자세히 자들이라면 누구나 짐작할 만한 일이었다.
그리고 클레이오는 그 전쟁이 수도를 필사적으로 사수해야 할 만큼 격렬할 것이라 공언했다.
남들보다 앞서 수많은 정보를 접했을 기디온 아세르는 클레이오의 말을 터무니없다 일축하는 대신 그 가능성을 셈해 보고 있었다.
긍정적인 징후였다.
‘기디온이 저 터무니없는 제안을 바로 거절하지 않았다는 건 수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거지.’
미래에 대한 통찰, 혹은 예감을 가졌던 8교의 아서는 결국 룬데인 방어막을 만들 아다만티움 1차 분량을 민간에서 강제로 징발했다.
‘방어막 보강을 할 2차 부품 분량은 나올 데가 있지만, 바탕이 될 1차 부품은 지금부터 만들지 않으면 위험할 거란 말이지.’
아다만티움 강제 징발 사건 때문에 8교의 벤자민 비튼 의장이 아서의 지지자로 돌아서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아서의 처사는 티플라움 가공 산업 국유화와 더불어 재계에서 엄청난 반발을 사, 압살롬 2세 이후 어떤 알비온 왕도 쓴 적 없던 즉결체포권까지 발효시켜야 했다.
‘하지만 알비온 최고의 거부가 돕겠다면 그런 방법은 안 써도 돼.’
차남의 얼굴을 한없이 낯설게 들여다보던 기디온은 결국 그 제안을 수락했다.
어떤 의미에선 최고의 졸업 선물이었다.
***
첼은 이례적으로 수도방위대 비행단이라는 소속 아래에서 여타의 기사들과는 다른 훈련을 시작했다.
마법단의 타디우스 예츠켈이 마법사로서 흥미를 보여 지지해준 덕에 이쪽은 빠르게 일이 진행됐다.
새로운 얼굴들이 수도방위대 학교를 채우고 있는 3월이 왔다.
나머지 네 명의 아이들은 남들보다 늦게 예비기사 조 배치가 완료되었다.
역대 가장 뛰어난 예비 기사로 불렸던 아이들이라, 수도방위대 기사단 입단 후 소속 조 배치 과정에서 잡음이 많았기 때문이다.
예비 기사는 부사관 계급이지만 기사단은 특전사 비슷한 거라 기본적으로 일반 병사들과 섞일 일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학교를 졸업한 신입들은 약 5명 규모인 소조로 나누어 배치돼 선임들에게 놀림과 사랑과 갈굼을 듬뿍 받기 마련이었다.
솜털 풋풋한 예비 기사들의 검술 수준은 3레벨을 넘는 일이 거의 없었기에 가능한 배치였다.
하지만 997기 황금 기수 멤버들은 지나치게 레벨이 높았다. 가장 레벨이 낮은 쌍둥이들도 16세에 5레벨이었다.
그중에서도 아서는 그야말로 공전절후의 골칫거리였다.
왕족인데다 7레벨 검사인 그를 다른 예비 기사와 같은 계급으로 취급할지 어떨지를 두고 설왕설래했다는 후문을 들었다.
아서 스스로 특혜를 받지 않겠다고 나서서 논란을 종식시킨 것까지는 좋았다.
‘그렇지만 누가 왕족에 7레벨 검사인 부사관을 밑에 두고 싶어 해.’
클레이오는 학교 시계탑에서 울리는 네 시의 종소리를 들으며, 마석 난로에 주전자를 얹었다.
아이들 수만큼의 머그컵을 꺼내 놓으며 마법사는 속으로 웃음 지었다. 곧 아이들이, 자신의 연구실에서 티타임을 가지러 올 시간이었다.
다른 예비 기사들과 같은 계급이라 해도 977기 황금 멤버를 자신의 조에 데리고 가고 싶어 하는 조장은 하나도 없었다.
계륵이 된 아이들 네 명을 거둔 사람은 학교 내부 결계 방어 담당 기사, 스웨인 템플 경이었다.
마침 함께 짝을 이뤘던 노기사가 은퇴해 한 명의 자리가 빈 터, 기피받는 므네모시네 문 경비 직위를 임시로 아서가 물려받고 스웨인은 아이들 모두를 맡아 새로 조를 편성했다.
아슬란과 ‘전광의 밤’을 돌파한 후 갈등하던 그는 깨달은 바가 있었는지 아서에게 조력하기 시작했다.
어지간히 담대하지 않고선 못 앉을 자리였는데, 몇 년간 산전수전을 다 겪은 스웨인 템플은 담백하게 자신의 역할을 받아들였다.
첼로 말할 것 같으면 매일 훈련 보고는 타디우스 예츠켈에게 직접 전달해야 했기에 어차피 오후가 되면 비행단을 떠나 시내로 와야 했다.
그 결과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매일 오후 네 시, 아이들의 당일 업무인 스콜라 지구 낮 순찰이 끝난 후 클레이오의 연구실에서 갖는 티타임이었다.
먼저 테이블 앞자리를 차지한 리피는 첼이 가져온 고급스런 상자 뚜껑을 벗기며 조잘거렸다.
“결국 여기 다 모여서 차를 마시고 있으면 학교 다닐 때랑 뭐가 달라진 거지.”
뚜껑을 연 상자에 제일 먼저 손을 뻗어 과자를 집어 먹은 레티샤는 볼을 부풀린 채 말했다.
“옷이 바뀌었잖아. 잠도 수도방위대 기사단 숙소에서 자고.”
“그거 말고는 없지 않음? 점심도 학교에서 먹고.”
“샬럿 부인은 좋아하던데? 헉! 근데 이 과자 무지 맛있음. 도대체 뭐지?”
항공유 냄새가 나는 장갑을 벗으며 첼이 답해주었다.
“칼리송 덱스라고 해. 내 친구 소피아네 고향의 특산품인데, 요즘 알음알음 보따리상이 오가게 돼서.”
“소피아네 집 카롤링거에서도 엄청 산골이라지 않았어? 어케 보따리상이 감?”
카롤링거 공화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알비온과 소비재 교역을 하지 않고 있었다. 때로는 금 반출의 주범이라며 소비재 상인들을 단속하기도 했다.
“독재자도 늙으면 유해지나 보지 뭐.”
“빅토린지 빅토른지가 맘을 고쳐먹은 덕에 우린 귀한 과자를 먹어보네.”
납작한 나뭇잎 모양으로 빚은 칼리송 덱스는 아몬드 가루를 멜론 콩피와 함께 이겨 편 뒤 흰 퐁당을 소담하게 씌운 과자였다.
확실히 알비온에선 본 적 없는 독특한 당과였다.
테이블 위로 훌쩍 뛰쳐 올라가 날름 하나를 집어먹은 베헤못은 부스러기가 묻은 앞발을 핥으며 평했다.
“웨에으우우우웅.(본묘 역시 흡족하도다.)”
덜그럭. 달각.
오늘의 순찰 루트가 길었는지 쌍둥이들보다 늦게 들어온 아서는 어깨에 메었던 방패를 내려놓자마자 한 번에 과자 두 개를 집어 꿀떡 삼켰다.
“음음, 이게 그렇게 맛있어? 오, 진짜네. 멜론으로도 콩피를 만들기도 하는구나.”
그런 아서 양옆에서 리피와 레티샤가 야단을 피웠다.
“야 하나씩 먹어.”
“두 개 반칙.”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며 아서를 뒤따르던 이시엘이 미미하게 미소 지었다.
평소와 똑같은 오후였다.
리피는 졸업 전이나 후나 다를 바가 없다고 불평했지만, 클레이오는 아이들 모두 학교에 배치된 이 결과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수도를 둘러싼 영지들에는 큰 기사단이 없다 보니 수도방위대 기사단은 주변으로 자주 파견을 나갔다.
그로 인해 수도의 경비 공백이 커진 지금, 아서는 사실상 스콜라 지구 방위책임자 위치에서 마수와 싸웠다.
마수 출몰 이전에 수도 치안 유지는 경찰만으로도 충분했지만, 사람의 힘만으로 대처할 수 없는 놈들이 나타남으로서 에테르 감응자 한 명 한 명의 책임이 커졌다.
막내 기사가 되어 이리저리 험지를 쫓아다니는 다른 조 예비 기사들과 달리 아서는 항상 수도 시민들 눈에 띄었다.
수도 밖에서 백 번의 전공을 올리는 것보다 수도 한복판에서 한 번 활극을 벌이는 편이 홍보 측면에선 효과가 더 좋았다.
‘부조리하지만… 언론사가 수도에 편중돼 있으니까.’
스위프트 거리 부근의 펍에서 대담한 지식인 무리들이 하는 내기 도박이 있었다.
어느 왕자가 왕이 될 것인가 하는 내기에서 아서의 이름을 적어내는 사람이 점점 늘어, 3왕자의 배당률이 훅훅 낮아지고 있었다.
‘한때는 내기 용지에 아서 이름이 아예 적혀 있지도 않았는데.’
국왕 대리직을 맡은 이후 아서는 멜키오르와 아슬란을 제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재평가되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자주 보는 얼굴은 식상해지는 법. 슬슬 수도에서 발을 뺄 때였다.
‘마지막 던전만 들어갔다 오면 이제 아서는 수도에 묶여 있을 필요 없이 어디서나 활개 치고 다녀도 돼.’
헤스터가 기사를 만들어 훈련시키고 마인라트가 마도구 무기를 찍어내는 지금, 베스나 역시 알비온에 잠입해 있는 브룬넨의 블랙 요원을 잡아 족치며 정보 수집에 열을 올리는 중이었다.
전쟁이 벌어지면 수도방위대 기사단 소속의 아서가, 언제까지고 스콜라 지구의 친절한 왕자님일 수는 없을 것이다.
클레이오는 1894년 내내 므네모시네의 문이 열리길 기다리고 있었다.
‘스웨인 템플의 조 소속으로 수도방위대 학교를 지키고 있으면, 필연적으로 다음 던전엔 아서와 친구들이 우선해 입장하게 되겠지.’
던전 입장은 무슨 수를 써서든 먼저 문 앞에 도착하는 놈이 이기는 싸움이었다.
다음 던전은 중요한 아이템이 나오는 마지막 장소로, 8교에 표시된 이름은 ‘재와 강의 도시’였다.
‘또 큰 강이 도시를 가르고 있고, 마스터 클락은 르네상스 양식 풍의 시청 건물에 걸린 것. 얻어야 할 물품은 ‘제천의 거울’.’
이 세계의 과거를 적은 낡은 문서는 모두 폐기되지 않고 남아, 극히 미약한 양이지만 세상에 널리 퍼져 있었다.
아슬란은 그런 불완전한 고문서를 그러모아 던전에 대해 예상했고, 프란 역시 마도구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는 덴 게으르지 않아 8교에서 등장했던 ‘제천의 거울’에 대해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보는 문서가 고대의 것이라고만 여길 뿐, 반복된 역사의 기록이라곤 결코 생각하지 못하지.’
그 덕분에 일은 쉬워졌다.
룬데인 광역 방어막이 마법사의 서클을 한참 넘는 크기로 펼쳐질 수 있는 건, 핵심에 설치하는 마도구 ‘제천의 거울’ 덕분이었다.
오로지 재와 강의 도시에만 존재하는 마도구였다.
“클레이오.”
“…어?”
“차가 다 식었다.”
아이들의 수다를 들으며 삼촌의 표정으로 망중한을 즐기던 클레이오의 머그잔에 이시엘이 따듯한 물을 조금 더 부어주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깊게 하나. 쉴 때에는 조금 머리를 비워주는 것도 좋다.”
“맞아, 이 칼리송도 먹고.”
“레이, 네 몫 여기.”
“고, 고마워. 내일 에즈라 부단장을 봐야 된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아득해졌지 뭐냐.”
리피가 집어주는 과자를 맛도 모르고 삼키던 클레이오는 모두가 납득할 만한 변명을 했다.
간혹 합동 작전을 하게 될 때 에즈라와 실컷 부대낀 쌍둥이들은 질색을 하는 표정이 됐다.
그놈의 토끼 나오는 동화 어쩌고저쩌고에 질린 탓이었다.
그렇게 어린 나이의 수도방위대 단원은 최근엔 거의 볼 수 없었기에, 에즈라는 자신과 취미가 맞는 동료를 찾았다고 김칫국을 동이로 퍼마셨다.
물론 리피와 레티샤가 토끼를 좋아하긴 했다.
—사냥해서 먹는 걸. 쌍둥이와 에즈라는 정말로 안 맞는 상대였다.
“으, 레이 네 책상 꼭 부단장실에 같이 둬야 해?”
“기동 조사 분과에 가 있는 게 목적이면 꼭 책상을 동화책 더미 앞에 붙여놓을 필요 없이, 옆방 정도에 떨어뜨려 둬도 되잖아.”
“하하, 조금 괴팍하긴 하지만 에즈라가 나쁜 사람은 아니니까.”
“막 나쁜 놈이 아니니까 더 피곤함.”
주 1회, 수도방위대 마법단 객원 고문으로 강을 건너 출근하는 클레이오의 책상은 에즈라의 집무실 안에 있었다.
그를 고문으로 직접 추천해 초빙한 사람이 에즈라이니 낚아채 간 사람도 에즈라인 것이다.
모두가 클레이오의 처지에 동정을 표했다. 징집만 안 됐다 뿐이지 고생길은 열렸다는 반응이었다.
어른의 사정으로 일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하는 난처한 표정을 짓는 6레벨 마법사의 목적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일단 클레이오가 출근하는 날이면 에즈라가 세배로 부산하게 방방 뛰며 자신의 연구 주제를 속사포처럼 프레젠테이션했기 때문이다.
클레이오는 에즈라의 취미를 의외로 잘 맞춰 주었다. 때로는 마석을 제공하거나, 마법식 조합을 조언하기도 했다.
에즈라는, 살살 잘 구슬리면 새로운 마도구를 뚝딱 내놓는 훌륭한 마법사인 걸 다들 몰라 다행이었다.
수도를 지키는 일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에즈라의 직속 부하들인 아레미스와 다리아는 업무 효율이 높아진다며 대만족 중이었다.
이런 사정으로, 클레이오가 다리아와 헤스터에 대한 정보를 나누거나 아레미스를 통해 세르게프 후작의 의중을 전해받기가 아주 쉬워졌다.
‘에즈라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그 이상의 가림막도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