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sorry I went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312
외전3. 지극히 사랑받은 (1)
내 아이야.
네게는 말해 주어야 하겠구나.
이제껏 한 번도, 그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는 이야기를.
있잖니, 내가 텔마 ‘아세르’가 된 건 사실 두 번째 생의 일이었단다.
블라드와 너는 내 두 번째 인생에 찾아온 선물이었지.
내가 텔마 라스카로 처음 살았을 때, 서투르고 섣부르고 성미 짧은 외동아이일 적에, 나는 결국 기디온 아세르의 사랑을 얻지 못했거든.
혹은 그가 사랑을 인정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없었거나.
전후를 따지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겠지.
세상의 모든 사람들처럼 단 한 번 태어났을 때에 내 사랑은 단명했으니.
기디온 그이와는, 티타임 친구를 따라 몰래 참석했던 수도상인조합의 신년회에서 처음으로 만났지.
구 귀족이라는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던 라스카 자작의 자식인 내가 어쩌다 수도상인조합의 신년회에 다 가게 됐느냔 이야기부터 해야 되겠구나.
그 시절, 나는 여학교를 나왔단다.
귀족 아이라면 가정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던 시대에 부친이 날 퀸 이솔트 여학교로 보낸 건, 오로지 어머니 때문이었지.
어머니는 슬픔으로 인생을 적셔 녹아내리도록 하는 사람이었다.
아침 해가 떠오르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밤이 다시 번 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
그건 저주가 아니지만 저주 이상으로 확실하게 삶을 파괴하지.
우울과 발작에 시달리는 아내가 있는 집에 입 가벼운 가정교사를 들일 수 없던 부친은 내키지 않아 하며 나를 여학교에 보냈어.
학창 시절 내 단짝은 돈으로 작위를 샀다고 손가락질을 받던 카일루스 쏜튼 준남작의 딸, 항상 당당했던 포에베 쏜튼이었지.
분홍빛 머리에 물빛 눈이 어여쁘던 그 애와 나는 절친한 친구였고, 학교를 졸업해서도 내내 그랬단다.
네 외조부는 내게 그런 천한 장사꾼의 딸과는 어울리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말투가 분방하고 성미가 호방한 포에베가 좋았어.
그 애가 오래 살지 못했다는 걸 돌이켜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내 마음 내키는 대로 하기를 잘했지.
아무튼, 그 신년회에 갔을 때로 돌아가 보자.
내 나이 열여덟이었나? 내게도 그리 어리던 시절이 있던 게 놀랍지 않니?
그때 내 목적은 수염을 쓰다듬는 사업가들이 나눌 대화에 있지 않았단다.
가수였어.
당대 최고의 가수 갈리나 가르시아가 수도상인조합 무도회에서 촉망받는 작곡가 카발칸티의 신곡을 불러준다는 게 너무도 궁금해서 포에베의 사촌들 틈에 숨어 들어갔었지.
어떻게 알았겠니, 그날 내 인생이 영원히 바뀌게 될 줄은.
거기서 그를 처음 보았지.
품이 맞지 않는 정장을 입고 어색한 매너로 와인 잔을 든, 몹시 키가 크고 마른 청년을 말이야.
그이는 스무 살이었어.
주눅 든 오만함이, 야망과 경계심에 섞여 섬세한 눈꼬리를 채색하고 있었지. 깊은 슬픔과 그만큼 높은 자존의 방벽을 두르고서.
그러나 그의 슬픔은 그의 걸음을 붙들지 않고, 오히려 지면을 박차도록 만드는 동인이 됨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슬픔이 독이 되지 않는 사람을 처음 보았단다.
그에겐 가식적인 예절도 값비싼 커프스 버튼도 필요 없었는데, 그는 저가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 신경을 썼지.
부족한 예절과 더 부족한 여유를 명민한 머리로 감추려 들었지만 아직까지는 어설픈 데가 있던 기디온.
그이는 자신이 소유한 아름다움을 결코 자각하지 못했기에 그리 굴었지. 아마 평생 이해하지 못했을 거란다.
손수건을 떨어뜨리는 소녀들만큼이나 장갑을 던지는 사내들이 많았던 삶이 그는 늘 지난하다고 여겼지.
그는 말이야, 자신이 겪은 일이 모든 계급상승자가 마주하는 강력한 배척이라고 여겼고 나는 그 착각을 별로 수정해주고 싶지 않았어.
그이의 오묘한 녹갈색 눈동자에 눈물이나 웃음이 떠오르길 바라는 사람이 왜 그토록 무수했는지, 상반된 것을 동시에 욕망하는 이들이 왜 그토록 변덕스러웠는지, 하루는 친절했다 하루는 냉랭해지며 비이성적인 반응을 돌려주고 간절한 당신의 청에 일관적이지 못한 대응을 했는지.
그것을 모르는 그이의 순수까지도, 나는 좋았다.
그건 나도 순수했기 때문에.
늘상 침대에 누워 울거나 꽃병과 컵을 집어 던지는 어머니를 둔 걸 제외하면 내 인생엔 그리 격렬하거나 열렬한 요소가 없었어.
영예로운 구 귀족, 사치를 할 만큼 부유하진 않지만 물려받은 재산으로 명예를 지키기엔 충분했고, 외모도 제법 눈길을 끌었거든. 불그레한 금발에 옅은 회청색 눈이 생기 있는 데다, 영리하고 건강했지.
사교계의 사람들은 모두 내가 좋은 집안에 시집을 갈 거라고 여겼고 말이야.
그리고 그런 심심한 여자애의 인생에 들이닥친 기디온 아세르의 아름다움은 재난이었단다.
첫 생애, 첫 사랑, 첫 재난.
우리는 태풍에게 잔을 쥐는 법을 묻지 않는 법인데.
그는 그걸 모르고, 나는 심장이 타버렸다.
재난을 겪은 이들은 성스러운 체험을 한 이들처럼 내면에서 본질적인 변전을 겪는다. 당사자들에게 전자와 후자는 별로 차이가 없단다.
그렇듯 사랑은 번개와 홍수처럼 그냥 오는 것이다.
나는 평생 배웠던 귀족 영애로서의 체면이고 정숙한 처녀의 처세고 무엇이고 다 던져버리고는 바로 옆에 서 있던 청년에게 아무렇게나 물었다.
처녀가 샤프롱도 없이 미혼의 남성에게 말을 거는 법은 없다 해도, 생애의 지평선을 쓸어가 버리는 폭풍 앞에서 그런 게 생각이 났겠니?
“저 사람의 이름이 뭐죠?”
그의 이름은 기디온 아세르.
평민이면서 상인. 고아였고, 지금 일하는 모슬리 상사에서 먹고 자는 하급 사환으로 시작해 사무원이 되었고, 마침내는 상행 책임자가 된 이였다.
일하면서 콜포스 상업학교를 졸업했고, 머리 돌아가는 게 비할 데 없이 비상하다고. 그렇게 전하는 자의 목소리에 서린 감정은 결코 호의가 아니었는데, 그땐 그걸 몰랐지.
하지만 말이다, 이미 네 번의 반복, 세기 단위의 삶을 산 뒤에도 나는 여전히 확신할 수 있다.
그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남자였다.
내가 시를 쓸 수 있었다면 그는 내 유일한 시정(詩情)의 대상이 되었을 거야.
그러나 내겐 뮤즈의 속삭임이 없었고,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턱없이 속되기만 했다.
나는 그이가 잘못 쥔 잔을 바른 방식으로 고쳐주며 말했다.
“기디온. 난 당신과 결혼할 거예요.”
그이의 냉랭한 무표정은, 세상의 모든 모욕과 비난도 버틸 수 있게 하던 방벽은 그때에도 여전해서, 그의 표정엔 아무런 변화가 없었지.
하지만 가까이에 서 있던 나는 눈처럼 흰 목덜미가 조금 불그레해지는 걸 봤단다.
그는 나와 결혼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기디온은 조금 느리게 대꾸를 해 주었다.
“레이디 라스카, 초면에 농담이 지나치시군요. 그리고 부디 저를 아세르라고 불러주십시오.”
“그러지 말아요, 기디온. 또 왕조 귀환 전 사람처럼 제 성에다 직위를 붙여 부르지 않아도 좋아요. 아니, 레이디 그런 건 뭐 하러 붙여요? 그냥 텔마라고 하면 돼요. 난 당신과 결혼하지 않으면 그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을 테니, 당신은 나와 결혼해야 해요.”
열에 들뜬 열여덟 살 여자아이.
치맛자락이 넓은 비둘기색 시폰 드레스를 입고 아직 어린애 같은 얼굴을 가졌던 나의 말을, 그는 질 나쁜 내기나 표면을 벨벳으로 감싼 모욕으로 이해했다.
나는 별다를 게 없는 어린 여자애의 고백이 모욕으로 판단될 수 있으리라 상상할 능력이 없었다.
그건 일종의 헌정사였는데. 내 생애를 당신에게 주겠다는. 물론 본인에게는 그 뜻이 전혀 전해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우리의 언어는 치명적으로 어긋났고, 기디온은 지독하게도 자존심이 상했어.
잔을 쥐는 손가락을 바꾸게 하고, 혼인하지 않은 귀족 여인에겐 성이 아니라 이름에 경칭을 붙이도록 말을 건넨 것부터 잘못 꿰인 단추였지.
왕족 여인은 이름에 경칭을 붙이고 귀족가 여식은 부친의 성에 경칭을 붙이는 구분 방식은 왕조 귀환 이전의 경어 용법이지 않니.
왕조 귀환 이후로는 왕가의 권위도 약화되어, 왕가도 귀족가도 모두 여인의 이름에 경칭을 붙이는 식으로 관습이 변했거든.
기디온이 책으로 배웠을 낡은 경어 사용법을 지적한 건, 그에겐 홀 가운데에서 뺨을 맞는 것보다 더한 수치심을 안겼다는 걸 나는 몰랐단다.
무지의 결말은 파국이었다.
라스카 자작가의 외동딸이 어미아비도 누군지 모를 빈민가 출신 고아에게 반해 정숙함도 품위도 다 잃고서 쫓아다닌다는 소문은 수도와 콜포스의 사교계를 여러 시즌 동안 즐겁게 해줬지.
소문이야 항상 들고나는 법이지만, 나의 이야기는 헛된 추측이 아니라 완전한 사실이었단 게 문제였을 거란다.
공교롭게도 어머니의 상태가 너무나도 나빠져 아버지가 날 단속하기 어려웠던 게 일을 더 크게 키웠다.
마침내 내 행실을 알게 된 부친은, 생전 벗은 적 없던 귀족적 허위마저 내던지고 저잣거리의 취객들처럼 화를 냈다.
분노한 아버지를 나를 다락방에 가두었지.
수년간 죽음을 찾아 헤매던 부인은 마침내 자살에 성공했고, 얌전하던 딸아이는 출신도 모르는 빈민가 출신 고아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려 애원을 하는 상황을 라스카 자작은 결코 견딜 수 없었던 거야.
편지도 전보도 보낼 수 없게 되었고, 내겐 아침저녁의 빵과 물 그리고 예배를 하는 신녀의 노랫소리만 주어졌지.
독실한 아버지의 저택에는 성소가 있었고 지역 교회의 신녀가 와 성사를 주재해주곤 했거든.
절망의 끝에 다다르니 눈물조차 말라버리더구나.
나는 단 한 번이라도 그이를 다시 볼 수 있다면 하고, 오로지 그 생각만 했지.
하지만 밥을 굶고 창을 부수어도 부친은 완고해서 헛되이 시일만 지났다.
기디온이 날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그때엔 알 수가 없었단다.
철저하게 밀어내다가도 때론 희미한 연민을 보이고, 한없이 차갑다가도 추운 곳에서 기다리지 말라며 자신 역시 닫힌 문간에 서 함께 밤을 새버리고 마는 남자를 내가 어떻게 해야 했겠니?
아버지는 내가 그이와 결혼하는 걸 결코 허락하지 않았다.
여인의 지위가 높지 않던 시절이었다. 부친의 허락 없이 나 홀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지.
내가 다락방에 붙들려 있는 사이 기디온은 첸트룸 상행을 떠나버렸단다.
그해, 콜포스에서 지평선을 넘어간 배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파편 하나 남김없이 세상의 끝으로 쓸려가 버리고, 바다가 모두를 데려갔지.
상행은 실패였다.
나는 그때 미쳐버렸단다.
정말로 나는 모친의 아이였구나, 하고 그때 느꼈던 것 같아.
나의 외모는 부친을 그대로 빼다 박았고 성격은 친조모를 닮았다 들었는데, 내 핏줄 가장 깊은 곳엔 활화산 같은 광기가 흐르고 있었지. 내 어머니의 피.
내 꼴을 보다 못한 유모가 다락방 창문을 조금 헐겁게 닫아주었고, 맨몸으로 배수구를 타고 기어 내려와 저택을 탈출한 나는 단숨에 항구로 달려갔다.
기후가 온후하고 사람들에게 여유가 있는 땅에선 미친 여자애에게도 친절했던 모양이다. 굶어 죽거나 맞아 죽지 않고서 제법 긴 시일을 살아냈던 걸 보면 말이야.
그 시절은 사실 잘 기억나질 않는구나. 너무 오래되어서가 아니라 오로지 수평선만을 노려보고 있어서, 매일이 똑같이 느껴졌지.
머리를 풀어헤치고, 해진 옷을 입고서 하염없이 바닷가에 앉아 기다리던 나를 부친이 끌고 돌아오기를 수십 번.
그해 겨울, 나는 한 법복 귀족의 후처로 결혼했다.
그는 젊은 시절 상처하고 평생 홀로 살다가 자녀 없이 죽은 형제로부터 작위를 받은 점잖은 노인이었어.
대법관 출신의 그는, 흠이 많은 처녀라도 받아줄 만큼 나이가 많았지. 그와는 옳게 부부 생활을 하지 못했고, 자식 없이 사별했단다. 결혼 생활은 일 년 남짓이었든가 그랬던 것 같네.
나를 치운 부친은 무슨 의무라도 다한 듯 내 남편보다 먼저 죽었다. 부친과 남편을 보낸 뒤 상복을 입게 된 나는 자작가를 정리해 재산을 교회에 기부하고선 나 역시 수도원으로 가 신녀가 되었다.
그 뒤의 인생은, 한순간 같기도 하고 천 년 같기도 하고.
아득한 슬픔과 꿈의 착란 가운데 한 세월이 지나갔단다.
찬가를 부르고 여신을 찾다 보면 어느샌가 환시가 찾아왔어.
내가 일찍이 본 적 없던 세계와 문명이, 알지 못하면서도 이해할 수 있는 문자가 쓰인 세계가, 재난과 전쟁의 시대와 뒤섞여 물결처럼 세차게 쏟아지다 일거에 흩어지곤 했지.
생활을 돌보아주던 신녀들에게 나는 잃어버린 자매에 대해 늘 이야기하곤 했단다.
신녀들은 너무 많은 불행을 겪은 뒤 실성해버린 늙은 여인에게 늘 자비로웠단다. 하지만 내 말을 믿어주진 않았겠지. 나는 미쳐 죽은 아내를 둔 것으로 유명한 라스카 자작의 외동아이였으니.
그러나 단 한 가지는 분명해.
검은 머리에 검은 눈을 한 자매. 나와 하나도 닮지 않았지만 나와 같은 꿈을 꾸던 그녀는, 전쟁의 폐허 위 무성해진 숲속 강가에 선 채 날 바라보았단다.
우리는 함께 태어났다가 어느샌가 두 세계로 갈라져 떨어졌고, 별다른 삶을 살면서도 또 동일한 삶을 꿈속에서 살았지.
그렇게 꿈과 현실의 경계가 흐려진 채 수십 년이 흘렀다.
내가 세상을 등졌는데도 전쟁의 포화는 한갓진 벽지의 수도원까지 끼쳐왔다.
한 번은 브룬넨 군인들이 점령지의 수도원을 징발해, 우리 신녀들은 피난민들이 떠난 오두막에서 기거해야 했고.
세기가 지났다.
브룬넨인들이 왔던 것처럼 다시 물러나고 우리가 수도원을 되찾을 무렵, 나는 머리가 새하얗고 눈이 거의 먼 노파가 되어버렸지.
어느 봄날. 나는 수도의 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보내온 편지 꾸러미 받았다. 눈이 흐려, 예비 신녀 한 명에게 편지를 읽어 달라 부탁했단다.
그 마음씨 곱던 아이는 편지를 다 읽지 못하고 눈물지었지.
“텔마 자매님, 저는 더 못 읽겠어요. 지금 제일 밝은 온실로 안내해 드릴게요. 정오니까 글을 조금은 읽을 수 있지요?”
“그래 주면 고맙지요. 무슨 편지이기에 그래요.”
“공증소가 폐업하면서 보관하던 서류를 비상시 지정자에게 발송한 거라고 해요. 소인을 보니 도시 네 개를 돌아 겨우 여기까지 도착했네요. 원 발신인이 기디온 아세르라는 분이에요. 발신일은 1861년 5월 4일이구요.”
오십 년도 더 지난 그 날짜를 듣는 순간 과거가 현재처럼 되살아났다.
1861년 5월 5일 기디온은 첸트룸으로 상행을 떠났고,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자매님의 부축을 받아 온실에 가 앉았다. 따듯한 온실에 앉았는데도 한기에 몸이 벌벌 떨렸다.
오래되어 삭은 종이 위에 남은 글자는 코끝을 대듯 들여다봐야 간신히 식별이 되었다. 그러나 그 단정한 글씨의 주인은 결코 다른 사람일 수 없었다.
기디온은 평생, 글쓰기 교본처럼 똑바른 필기체를 쓰던 남자였다. 상사의 동료들은, 그가 정리한 장부는 멀리서 보아도 바로 알 수 있다고들 했다.
늘 숫자와 분석, 짧은 단답에만 할애되던 글자들이 그리 길게 늘어서 있던 것은 처음 보았지.
반세기 늦게 내게 당도한 것은, 순순한 인정이 불가능했던 사랑의 고백이었다.
《레이디 텔마, 이런 나라도 괜찮다면, 정말로 당신이 후회하지 않는다면, 첸트룸에서 돌아와 당신에게 다시 제대로 인사를 하겠습니다. 이번엔 올바른 방식으로 당신의 명예를 지킬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겠니?
비탄이 눈물로 녹아 나와 나의 눈은 그때 멀어버렸다. 맥박은 느려지고, 굳어진 관절은 다시는 펴지지 않았지.
나는 심장을 삭히는 후회 속에서 숨이 멎었다.
다시 한번.
부디 다시 한번만 생애를 살아낼 수 있다면.
어머니 여신이시여, 제 청원을 들어주세요.
정말로 다시 한번 생애를 살아낼 수 있다면, 나는 신께 무엇이든 바치겠노라고 맹세했단다.
그리하여 신께서는 내게 기적을 선물하셨지.
그 모든 것을 다시 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