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sorry I went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335
동남 전쟁 (3)
만일 운 좋게 마석을 구해 추가 제작을 한다 한들, 전투가 벌어지는 와중 자신의 생명을 지키면서 동시에 적의 독을 집단적으로 해독해낼 마법사는 없었다.
유일하게 클레이오를 대체할 수 있을 이는 노령의 마법감인 제베디 퓌시스뿐이었다.
그러나 마법감에겐 수도를 수호할 의무가 있기에 그를 전선에서 볼 일은 요원했다. 스승은 [언약]으로 묶인 이였고, 클레이오는 그 점을 차라리 다행스럽게 여겼다.
빛처럼 빠른 속도로, 수백 명의 적군에게 동시적인 광역 정화를 거듭하고자 한다면 막대한 에테르 소모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클레이오는 개의치 않았다.
클레이오의 마법은 가르칠 수 있는 것도 전수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로지 홀로 온전하며, 타인으로서는 재현이 불가능한 기적이었다.
전장에 나가 있던 기사들은 클레이오의 비인간적인 능력에 대해 맹세대로 침묵을 지켰다. 적병은 전멸하여 그 마법사의 징벌에 대해 증언할 이가 없었다. 그 놀라운 업적에 대한 소문은 그 자리에 있던 병사들 사이에서나 돌았다.
그렇게 클레이오는 바람대로 대중의 이목에서는 벗어나 짧은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그 어쩔 수 없는 헌신은 클레이오에게 이례적인 속도의 진급과, 두 개의 영예훈장을 더 안겼다. 물론 클레이오 본인의 의지에 따라 훈장 수여식은 생략되었고, 병과는 계속 군의관이었다.
병상에서 훈장을 받은 클레이오는 제 손안의 화려한 훈장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고통의 총량은 무엇으로 측정되는 것인가?
확실히 이 땅에서는 천만 명이 사망하고, 한 세대가 완전히 사라지는 전쟁이 벌어지지 않았다.
동남 전쟁 양국 사상자 전체의 수를 다 셈해도, 보불전쟁 중 벌어진 전투 하나의 사상자 수와 엇비슷할 것이다.
이곳에선 제국의 전쟁에 식민지의 인민이 동원되지 않았고, 세상의 모든 바다가 전쟁의 영향권에 들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도 아득한 신의 시선이다.
정강이까지 푹푹 빠지는 독의 진흙탕 속에서 자신의 팔을 붙들고 죽어가는 어린 병사도, 「지각」에 의해 인식되는 적병 장교의 심장 박동도 클레이오에게는 하나하나 개별적으로 생생했다. 그는 숫자가 아니라 얼굴들을 기억한다. 개인의 역사가 축적된 형상을.
그즈음 클레이오는 전쟁의 목적에 관해서 생각하는 걸 그만두었다.
한여름에도 살갗이 차고, 뺨에는 죽은 자의 것 같이 그늘이 진 마법사는 웃음을 상실했다. 친구들은 클레이오가 웃지 않는 데 점차 익숙해졌다.
그가 의식을 잃은 동안 병영에는 콜레라가 퍼졌다. 3월 공세 때 사망한 만큼의 병사가 콜레라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늘, 그런 식이었다.
3월 공세는 브룬넨의 기습적 승리로 시작되어 알비온의 성공적인 방어로 끝났다. 마지막에는 전선이 크뤼엘 공작령 중간까지 밀려나 브룬넨은 서쪽의 도시 몇 개를 포기해야 했다.
수도의 신문들은 알비온의 영토 수복을 대서특필했다.
하지만 진상은 어떠했는가?
이미 주민들은 소개(疏開)되고, 거리 곳곳이 히드라의 독으로 물든 폐허를 되찾은 건 그저 지도 위의 승리일 뿐이었다.
도시의 수복은, 실제 탈환 작전에 참여한 이들에게는 씁쓸한 감상만을 안겼다.
일선에 복귀한 마법사 클레이오 아세르는 결코 새 훈장의 약장을 다는 법이 없었다.
아서와 클레이오는 한 가지 합의를 공유했다. 소드마스터도 대마법사도 각자 혼자서 전쟁을 끝낼 수는 없다는 것.
단신으로 쾨네부르크의 황제궁으로 가 그곳을 룬데인의 궁성처럼 급습한다 한들 전쟁이 끝나겠는가? 정치의 논리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날이 추워지면 전방 경계를 서는 병사들은, 멀리로 희미하게 보이는 적병의 움직임을 살피면서 이런 잡담을 하곤 했다.
“쟤들은 춥지도 않나요, 잉. 만날 밖에 나와 있고.”
“저놈아 새끼들은 불에 태워도 안 죽구, 물에 빠뜨려도 안 죽는데 추운 걸 알간니? 아주 그냥 에테르로 죽이 되게 저며 놔야 죽지.”
“아니, 그럼 병도 안 걸릴라나?”
“쉬쉬들 하는데 그런가봐. 거, 뭐 지들 독 다 푼 물도 잘만 처먹고, 쥐가 썩는 우물물 마셔도 설사 안 하나보더라. 햐―, 부럽다 부러워.”
“그렇게 해도 안 죽는 게 산 사람은 맞나.”
“야! 저놈들 칼 한 번 맞아 봐, 그런 소리 쑥 들어간다. 뒤진 놈이 그런 힘을 어케 써.”
적병과 칼을 맞부딪치는 병사들이야말로 그 누구보다도 브룬넨 군대에 대해 잘 알았다.
붉은 에테르의 병사들은, 이제 막 에테르 감응력이 발현한 병사들이 맞서 싸우기엔 버거운 적이었다.
알비온에서 태어나는 자연적인 에테르 감응자 수는 한정되어 있었고, 숙련된 기사의 수는 더 적었다.
병력 보충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벌이는 전쟁인데, 알비온 측이 이만큼 버티고 있는 게 오히려 기적적이었다.
물론 알비온 측도 적의 공격을 망연히 용인하지만은 않았다.
안젤리움 제독은 해군력이 미약한 브룬넨의 해상 항로를 막아 히드라의 독의 주재료인 아글라오의 수입을 저지했다.
그러나 해상에서의 성과는 곧 무효화되고 말았다.
여름이 다 지날 즈음, 내내 국외 정보 수집에 집중하던 베스나가 니네베 연대 사령부에 확실한 첩보 내용을 공유했다.
“브룬넨은 아글라오의 온실 재배에 성공했어요. 이제 아글라오 공급선을 막는 것으로는 제재가 안 될 거고 마수야 지천으로 널렸으니, 다시 독 생산에 박차를 가할 거예요. 각오들을 하셔야겠다.
흐음, 소식은 하나 더 있어요. 3월 공세의 실패 이후 냉정한 전략가인 쿠르트 폰 뢰벤슈타인 대장으로 야전사령관이 교체됐어요. 이전처럼 무조건적인 속도전으로 달려들진 않겠지만, 브룬넨군의 움직임은 더 교묘해질 거예요.”
베스나의 예고대로 여름이 꺾일 무렵 브룬넨 측의 사병 수가 확연히 늘었다.
히드라의 독으로 늘 새로운 병사를 공급할 수 있는 브룬넨과의 전쟁은 맨손으로 늪을 막아내는 것과 비슷한 싸움이 됐다.
또한, 발전한 마도과학과 인명 경시 풍조가 결합할 때 그들의 공격은 파괴적이 된다.
그러한 증거는 곳곳에서 발견됐다.
공중타격대가 격추시킨 비행선의 잔해를 수습한 알비온의 공병들은 기계의 분석을 군용기 제작자인 클레비던스 부녀에게 맡겼다.
여름 초입, 마침내 알비온 측은 상대하기 까다로운 병기였던 비행선의 구조를 알게 됐다.
3월 공세 직후, 자국의 잔인한 취급을 견디지 못하고 수십 명에 달하는 브룬넨 마법사가 알비온으로 투항해와 비행선 구조 분석에 도움을 준 덕이었다.
비행선의 모습을 투명하게 숨기고, 위력 센 차폐 결계를 펼치도록 만들던 동력은 살아 있는 마법사의 심장으로부터 나왔다.
동력부의 밀폐실에 심장을 넣고 히드라의 피를 가득 담아 에테르 전원을 발생시키는 원리였다.
정황을 모두 파악한 항공기 제작자 클레어 클레비던스 주니어는 분노에 차 소리를 쳤더랬다.
“하, 개씨발 놈들. 우리는 마법사 심장 안 뽑고도 비행기 더 좋은 거 만들 수 있어요! 엔지니어로서 가오가 있지!”
여름 동안 심기일전한 클레비던스 부녀가 개발한 최신예 항공기가 바로, 알비온의 얼굴처럼 기억 될 목재 단엽기 CC-12였다.
20세기가 도래하기 전에 단엽기가 먼저 발명된 것이다. 클레이오가 보기에는 거의 전간기 프로펠러기의 성능에 근접한 전투기였다.
첼은 새 날개를 얻고선 온 하늘을 제 것처럼 누볐다.
‘중력의 구’를 쓰는 첼은 하늘 위에선 무적이었다. 그녀와 함께라면 절대로 죽지 않는다는 믿음이 공중타격대에는 있었다.
또한 새해에 합류한 릴리안과 기젤라는 첼 이상으로 격렬한 전투에 흥분하는 성미였다. 그 애들은 공중타격대의 양익으로 불리게 됐다.
3월 공세의 분쇄와 크뤼엘 공작령 일부의 수복 이후 짧은 휴지기가 왔다. 브룬넨 측도 상급 기사가 될 자질을 가진 이를 많이 잃어서 공격력이 둔화된 탓이었다.
그 즈음, 두 나라의 분쟁을 관전하던 데르니에 대륙의 이웃들은 이 전쟁에 대한 불개입을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모든 외교적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
대륙의 두 강국이 서로를 물어뜯고 자원을 소진하다 거꾸러지기를 바라는 심산이 절반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자국에 출몰하는 마수를 퇴치하기만도 버거워 타국의 전쟁에 쓸 여력이 없다는 사정이 절반이었다.
어쨌든 멜키오르의 명령 덕에 라에티카의 정예병 삼분의 일가량을 클레이오 아세르 혼자 해치웠다는 사실이 공식적으로 발표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전선의 기사들은 진실을 알았다.
마법사는 백이십 명의 부상병들이 겪는 고통을 단번에 [경감]시킬 수 있는 동시에, 하룻밤 동안 백이십만개의 불을 지상으로 내리꽂을 수 있는 존재였다.
클레이오의 비공식적인 이칭은, 그렇게 불로부터 탄생했다. 제후천사의 불을 다루는 이는, 역시나 신의 사자일 수밖에 없으니.
물론 본인은 질색을 하다못해 그딴 말을 입에 담은 하급자가 걸리기라도 하면 죽기 직전까지 갈궈댔기에, 친구들조차도 흔하게 언급하는 명칭은 아니었다.
‘지랄도 경우에 맞춰 해야지, 늘 똥덩어리에 빨랫감 뒤지며 병 안 도나 들여다보고 있는 군의관한테 그런 소리 하고 싶은지.’ 라고 응수할 게 불 보듯 뻔해서였다.
실제로 전염병이 기승을 부리는 혹서기와 혹한기에 이르면, 클레이오는 전장에 나가는 일이 거의 없었다.
아직 페니실린도 DDT도 발명되지 않은 세계에서 부상과 전염병에 맞서는 건, 제법 대단하다는 소릴 듣는 마법사에게도 지난한 일이었다.
알비온의 중급 이상 마법사는 망명자와 신규 등록자를 모두 포함해도 겨우 백여 명이었다.
외과 수술을 제외한 모든 의학적 치료와 예방에 마법사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 그저 인력을 갈아 넣는 걸로 어떻게든 버티는 사정이었다.
알비온의 상급 마법사는 제베디까지 포함해도 단 15명. 그중에는 소재불명인 자도 있었다.
또한 전장에 나서는 상급 마법사는 클레이오를 제외하면 에즈라 세르게프뿐인데, 그는 한 번에 치유할 수 있는 사람 수가 셋을 넘기질 못했다. 치유보다는 마도구 개발에 특화된 마법사인 탓이었다.
클레이오는 거의 홀로 분투했다.
전국에서 징집된 병사들은 각자 다른 억양을 쓰고, 위생 관념도 지역에 따라 달랐다.
인구가 밀집된 대도시 출신이 아닌 이상 아직까지 공중 보건의 개념이 부족했고, 말똥 사이에서도 아무렇게나 잠이 들었다.
[소독] 마법을 과용한 탓에 머리가 과각성되어 잠들 수 없는 밤이면, 클레이오는 힙 플라스크에 담긴 브랜디를 조금씩 넘기며 마법의 기원을 연 사람을 떠올리게 됐다.이솔트는 멸망하는 세계를 한 번 살아본 다음에 이 ‘소독’ 마법식을 만들었을 것이다.
시대를 앞선 마법이었고, 원리를 몰라도 사람을 살게 할 수 있는 기예였다.
‘정작 그 모든 걸 이 세상에 남긴 사람은, 서클조차 열 수 없는 존재로 다시 태어났지만.’
“아세르 소령님, 모두 끝났습니다.”
“됐나?”
“넵!”
상념에서 빠져나온 클레이오 아세르는 담배를 대강 밟아 끄고는 완드를 대충 끄집어내 서클을 펼쳤다.
마법사는 내내 눈 밑이 검고 안색이 푸르스름했다. 흩날리는 긴 머리는 끝이 전부 뜯겨나가 버석버석했고, 제대로 가위를 댄 지도 오래돼 지저분한 꼴이었다.
그렇듯 지친 표정에 건성인 손짓이건만, 클레이오의 손에 홀연히 나타나는 공작은 우아했고 마법의 빛은 성스럽도록 환했다.
마침내 소대원들을 모두 감싸고 일어난 것은, 엘리시안 필드 ─ [낙원의 들판]이라 불리는 정화의 마법이었다.
그 빛 속에서만은 겨울도, 악취도, 병증도 침범하지 못할 것 같은 안도감을 주었다.
여전히 이어지는 빛의 여운을 이정표로 삼은 듯, 피투성이의 기사가 스무 여남은 명의 병사를 이끌고서 다가왔다.
아서 리오그난이었다.
“여기 4, 5분대도 지금 귀환. 레이 소령님, 아직 다 안 끝났으면 서클 연 김에 얘들도 같이 소독 좀 해주십셔.”
“부상자는?”
“저기 막내 발목 접질린 거만 봐 주면 되고.”
아서는 클레이오를 상대로 애매하게 끊기는 반존대를 썼다. 클레이오는 아서가 존대를 쓰는 걸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지만, 군율을 생각해 적당히 타협한 결과였다.
아서가 더 진급하지 못한 건 제 막내 동생에게 괴로움을 안기려는 멜키오르의 소소한 어깃장이었는데, 클레이오는 그런 장단까지 맞춰줘야 하는 게 성가시게 여겨졌다.
“데려다 앞에 세워 놔.”
클레이오의 피로하고 퉁명스러운 어조에 익숙한 아서는 그저 씨익 웃으며 부하들을 독려했다.
“다들 들었지? 아세르 소령님 서클 안에 가서 5열 종대로 모여라. 마크는 맨 앞줄로 보내고. 빨리해.”
“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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