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sorry I went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343
테르게스티 전투 (4)
1896. 1. 1.
03시.
그러나 그의 분노는 때와 시를 가리고, 성날 때와 고요할 때를 나눌 줄 알았다.
벼락이 먼저 떨어지고, 천둥은 그 뒤를 따르듯 아서는 벼락의 시기와 천둥의 시기를 구분했다.
그는 첼이 입혀준 ‘중력의 구’ 스킬에 힘입어 테르게스티 시장의 사저 지붕에 소리 없이 내려섰다.
단신으로 적진 한복판에 강하했음에도 긴장이라고는 없었다.
그는 알비온에 단 넷, 데르니에 대륙 전체에서도 여덟 명밖에 되지 않는 소드마스터 중 한 명이었다.
그가 없는 전장에선 패배가 있으나, 그가 있는 전장에서 패배란 없다.
그것은 아서 자신의 위명을 위한 표어가 아니었다. 아군으로 하여금 이 잔인한 현실을 견디게 해주는 유일한 희망의 말이었다.
저 멀리, 항구에 가까운 곳에서는 여전히 희미한 빛이 하늘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해안방어진지의 빛일 것이다.
지이잉―
아서가 가진 포옹의 반구에 빛이 들어왔다. 굴뚝 뒤로 몸을 숨긴 그는 연이어 반짝였다 끊어지는 부호를 수신했다.
톡. 톡톡- 토옥….
[키시온 정위치 대기] [안젤리움 1 정위치 대기] [안젤리움 2 정위치 대기] [공병대 진입로 도착, 굴착 작업 개시, 아세르 합류 50분 내외 소요 예정] [템플, 노나 기병대 정시 돌입 예정]모두가 좋은 소식이었다.
아서는 자신 몫의 포옹의 반구 꼭지를 꾹 눌러 부호를 발신했다.
[리오그난 정위치 강하 완료]꼭지에서 손을 떼자 [수신]이라는 뜻의 부호들이 연이어 들어온 후 수정 반구 안의 빛이 꺼졌다.
아서는 반구를 허리끈의 주머니 안에 잘 밀어 넣고서 허리를 폈다.
그의 눈앞에 평탄한 해안선까지의 시가지가 넓게 펼쳐졌다.
몇 년 전 단 한 번 와 보았던 도시의 풍광은 아서에게도 낯설지 않았다. 명예시민증 수여가 민망하다며 급히 떠났던 도시에, 그는 이렇게 되돌아왔다.
클레이오는 기회가 되면 테르게스티에 체류하자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런 기회 따윈 오지 않았고, 재방문은 이렇듯 피비린내 나는 전화의 한가운데에서 일어났다.
아서는 과거가 불러일으킨 감상을 가볍게 털어냈다.
‘먼저 할 일부터 하자.’
아서는 감각을 확장하여 시장 사저에 머무르는 자들의 면면을 살폈다.
이제는 굳이 에테르를 피워 올리지 않아도 상대의 레벨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게, 또 소드마스터의 장점이었다.
‘상급 기사 15명. 중급 기사 21명.’
히드라의 독에 힘입은 덕이었다. 알비온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인적 자원이 포진해 있는 라에티카 기사단이었다.
그러나 압도적인 기사의 수를 믿고 해안방어기지 공격을 하급 지휘관들에게만 맡겨놓은 것은 여러 가지를 시사했다.
브룬넨과 카롤링거 사이는 천연의 산세가 가로막고 있었다.
혁명 이후 수십 년간 교류가 끊겼던 터라, 카롤링거가 길을 내주었다 하더라도 행군 과정이 수월치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돌파가 녹록치 않은 해안방어기지를 놓아두고 한숨을 돌려야 했던 거다. 테르게스티 점령을 막으려는 아군에게는 천운이나 다름없었다.
아서는 지붕 아래 발코니로 훌쩍 뛰어내렸다.
첼이 말한 3층 안쪽 침실은 찾기 쉬웠다.
아서는 밤에 맺히는 이슬처럼 아무런 소리 없이, 중정의 창을 통해 점령군 사령관의 침실로 스며들었다.
아서의 안력으로는 손쉽게 어두운 방 안을 훑을 수 있었다.
체격이 떡 벌어진 장년의 사내가 거기 있었다.
라에티카 기사단장 테겔만은 히드라의 독을 복용하기 전에도 창술의 대가인 상급 기사였다. 그 용맹함이 라에티카 바깥까지 알려진 인물이었다.
아서도 첼도 그의 얼굴을 브룬넨 귀족 인명록에서 본 적이 있어서 쉽게 알아본 거였다.
침실까지 밀고 들어온 주제에 예의를 따지는 것도 우습지만, 아서가 해야 하는 건 암살이 아니다.
그는 상대가 깨어나기를 기다리며 부러 기척을 냈다.
마침내 테겔만의 숨소리가 달라졌다.
상대가 깨어나는 걸 본 3왕자는 자신이 할 줄 아는 유일한 브룬넨어 문장을 말했다.
한동안 열심히 외워서, 또 쓸 일도 워낙 많아서, 호칭을 바꿔 넣는 응용까지는 됐다.
“〖나는 알비온의 아서 리오그난 대위입니다. 항복하십시오, 기사 테겔만.〗”
이 멍청한 권유에 대고 ‘웬 놈이냐!’라든지, ‘무슨 소리냐!’ 같은 응수는 돌아오지 않았다.
돌아온 것은 검신이 검집을 스치는 날카로운 소음뿐이었다.
스스스슷―
첫 합은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서로를 스쳤다.
휙 물러선 아서는 상대의 기량을 가늠해 보듯 검을 물렸다.
그리고는 시계를 확인했다. 3시 20분.
‘어떻게든 싸움을 4시까진 끌어줘야 한단 말이지?’
테겔만의 주무기는 창이었다.
방 안에서 이럴 게 아니라 싸움터를 밖으로 옮겨야 했다.
도시의 이편에서 저편까지 보일 거대한 불꽃을 피워 올릴 필요는 없었지만, 주변의 이목을 이쪽으로 끌어올 겨룸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아서는 부러 이형을 만들어 테겔만의 곁에 세우고는, 몇 번이고 검을 내리긋게 했다.
군복을 입은 채 휴식을 취하고 있던 라에티카 기사단장은 금세 전투태세를 갖췄다.
콧수염을 빳빳이 다듬은 사내가 노성을 지르며 아서의 이형을 반으로 갈라냈다. 이형이 스러져 사라지고 창가에 선 아서의 본신만이 달빛에 실루엣을 드러냈다.
검을 집어넣고 창을 꺼낸 기사단장이 무어라 연신 소리를 치는데 아서는 브룬넨어를 전혀 할 줄 몰라서 하나도 알아듣진 못했다.
알아듣지 못해도 뜻은 대충 통했다.
‘뭐, 아무튼 간에 욕이겠지.’
아래층으로부터 여기, 3층 침실을 향해 발소리들이 모여들었다.
아서는 기감을 예리하게 세웠다. 숫자가 맞았다. 모두가 이곳을 향해 모여들었다. 한 명도 빠지지 않고.
‘해안으로 달려가는 사람은 없는 것 같군. 잘됐어.’
아서의 임무는 해안과 먼 이곳에 점령군 장교들을 묶어놓는 것이었다.
첼이 바랐다는 화려한 불꽃놀이는 의미도, 장소도 어긋난 채로 테르게스티 시장 사저에서 벌어질 예정이다.
콰아아아아앙!
아서는 일단 [진격의 원]부터 대뜸 날려 봤다.
쿠우우우웅!
쿠궁!
그에 화답하듯 테겔만 역시 묵직한 [진격의 원]을 두 겹으로 흩뿌렸다. 제법 대단한 실력자라는 평은 올바른 모양이었다.
아서는 살짝 미소 지었다.
‘저 정도 기량이면 한참 겨뤄도 시간 끄는 티는 안 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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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시 25분
새하얀 구름이 남빛 하늘을 가린 밤.
저 높은 구름 가운데 감싸인 채 첼레스테스의 기체가 멈추었다. 알려진 물리 법칙을 모조리 무시하며 기체는 허공에 거했다.
살을 엘 듯한 추위도 상공의 찬바람도 첼을 건드리지 못하는 것만 같았다.
‘중력의 구’를 이용하여 하늘의 뚜껑에 올라선 첼레스테스는, 안력을 최대치로 돋워 구름을 꿰뚫어 보았다.
몇 시간 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해안방어진지는 건재했다.
항구로부터 테르게스티 만의 안쪽까지, 도시의 풍요로운 재정을 자랑하듯 빽빽이 박힌 마석 마노와 마석 칼세도니 결계석들이 흠 없이 반짝이고 있었다.
천만다행이도 이번 침공에는 브룬넨의 소드마스터가 참전하지 않은 모양이고, 그 덕에 테르게스티는 시간을 벌었다.
선박들이 가득 들어선 방어진지 안은 조용했다.
피신한 이들이 불안으로 아우성칠 만도 하건만, 저들을 이끄는 지도자가 있는 모양인지 내부의 질서는 무너지지 않았다.
‘흠.’
첼은 팔짱을 꼈다. 거대한 선박 사이 허름한 단거리 운항용 여객선 한곳에, 최신식 전신기가 놓여 있었다. 티플라움 부품을 썼기에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물론, 높은 창공에 멈춰 서 아래를 샅샅이 살피지 않으면 잡아내지 못할 기척이었다.
단번에 감이 잡혔다.
‘저기에 정보원이 있나?’
그렇다면 고립된 이들의 정숙도 이해가 갔다.
알비온군이 올 것을 알지 못하면서도 안에서 성문을 여는 배신자 없이 굳건히 버틴다는 건 항복한다 한들 브룬넨군이 자비를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을 독려하는 이가 존재하기 때문인 것이다.
‘적어도 그 정보원은 알비온군이 올 걸 알고 있는 거야. 그렇지 않고서는 브룬넨측의 협박에 묵묵부답일 리 없어.’
저 무시무시한 붉은 에테르 기사들이 방어진지를 때려대는데도 그리 굴 수 있다니. 누구인지 담력이 대단한 인물이었다.
첼은 가볍게 팔다리를 펴고서는 기체를 벗어나 허공을 찬찬히 걸었다.
둥근 원에 감싸여 있지만 희박한 빛만 띠어, 어둠에 감싸인 그녀는 공중을 걷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신처럼 첼레스테스는 지상을 굽어본다. 그녀의 시선은 이제 항구를 벗어나 육지에 가 닿는다.
육지에서 해안방어진지를 밀어붙이던 브룬넨 병사들은 한숨 돌리며 에테르를 순환시키는 모습이었다.
제아무리 지치지 않는 병사라 하나 카롤링거를 우회해 온 장거리 행군은 쉽지 않았을 터. 그러니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하고 에테르 고갈에 다다른 것이다.
상황을 파악한 첼은 다시 항공기에 올라타 엔진에 시동을 걸었다. 이제는 클레이오를 모시러 갈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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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시 38분.
외곽으로부터 달려서 시내에 다다른 이시엘 키시온은 테르게스티 시장 사저의 후문 앞, 수풀 속에 몸을 낮추고 저 안에서 거대한 빛이 터져 나오길 기다렸다.
이미 안쪽에서 소란스러운 기색이 만연했다.
발소리, 고함 소리, 병장기가 부닥치는 소리가 밤을 갈랐다.
이시엘은 조급하게 굴지 않았다.
몇 명의 기사가 모인들 무관할 것이다.
지켜야 할 동료들이 없을 때 아서는 더더욱 압도적인 힘을 발휘했다.
그의 등 뒤가 가볍고, 그의 양팔이 자유로울 때, 이시엘의 주군은 대적할 자가 없을 전사였다.
전투가 벌어질 적 이시엘이 아서의 뒤를 지키는 것은 그를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가 지켜야 할 대상을 하나라도 덜기 위해서였다.
진지나 사령부, 기차역과 수원지를 지켜내는 일은 아서의 압도적인 무력만으로는 어려운 일이었다.
병사들은 제 나름의 열심을 다 해서 적군의 틈입을 막고, 플랫폼을 무너트리려는 상대와 칼을 맞대고, 진격의 원을 날리는 상급 기사를 방패 진으로 막아냈다.
기사단장과의 1:1 결투가 아닌 이상 전쟁은 혼자 치러낼 수 없는 것이고, 바로 그래서 아서의 어깨는 항상 무거웠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고, 이시엘의 마음은 결코 무겁지 않았다.
아직 해안방어진지가 빛을 발하는 동안에는, 아서는 자유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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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시 45분.
멀리 테르게스티의 해안방어진지 불빛이 흐리게 보이는 위치에서 릴리안은 창공을 둥글게 돌고 있었다. 이착륙을 거듭하는 것보다는 허공에 머무는 편이 연료 소모가 적었다.
기젤라와 레티샤 역시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하며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는 기척이었다.
마지막으로 자동 소총을 점검한 리피가 바짝 굳은 릴리안의 등을 툭툭 두드렸다.
나이는 리피가 어리지만 학교는 훨씬 빨리 졸업했고, 계급도 높았다.
리피는 제법 어른스럽게 굴었다.
“릴리안. 긴장 마.”
“긴장 안 해요, 선배.”
“조종간도 살살 잡고. 지금 긴장하면 놈들을 쓸어버릴 수 없잖아.”
릴리안은 휙 하고 몸을 돌려 뒷좌석의 리피와 눈을 마주쳤다.
“선배, 있죠, 지금 제가 이러는 건 그냥 흥분이 주체가 안 되어서예요. 말 그대로 놈들을 쓸어버리기 직전이라서.”
라임색 눈동자를 반짝이는 릴리안의 말은 과연 거짓으로는 들리지 않았다.
하여간 아서 아래 있는 사람 중에서 신경줄이 제대로 된 놈은 한 명도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 판단엔 자신 역시 예외가 아니라고, 리피 안젤리움은 생각한다.
릴리안과 리피 두 사람 모두 체격이 크지 않은 덕에, 빠진 무게만큼 채워 실을 수 있었던 티플라움 총탄은 어둠 속에서도 요요한 빛을 뽐냈다.
니네베 연대에 보급된 티플라움 총탄 중 3분의 1 분량이었다.
그간은 꽤나 아껴왔지만 오늘만은 무제한으로 발사를 해도 된다는 허가가 떨어졌다.
공중에서 내리꽂는 티플라움 총탄은 위협적인 공격 무기다.
그뿐만인가? 상급 검사가 조준하여 쏘는 총탄은 결코 빗나가는 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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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시 50분.
“움직여!”
“한 번에 기합을 넣어서, 하나, 둘!”
“이야압!”
구르르릉. 쿠궁.
클레이오가 펼쳐놓은 서클 안에서 공병대의 작업이 한창이었다. 클레이오를 중심에 둔 채 바닥에 맺혀 있는 마법식은 세 겹이었다.
[방음] [차폐] [감소]앞의 두 식은 소음과 진동을 가리고 마지막 식은 마법식의 빛을 가린다.
적절성 판단을 쓴 지 고작 몇 시간 지났을 뿐이지만, 테르게스티로 이동하는 동안 에테르 순환을 한 덕에 적용하는 데 별달리 고생스럽지는 않은 식들이었다.
이제 클레이오의 에테르 그릇에 에테르가 고이는 속도는 거의 경이로운 수준이었다.
우르르르— 구구궁—
“다시, 밀어붙여!”
공병대장은 민간인 시절엔 건축 현장에서 책임자를 맡았다던 다부진 사내였다.
늦은 나이에 에테르 감응력이 발견되어 레벨은 낮았지만, 삽과 자신의 몸에 [강화]를 걸 순 있어서 제 몫의 일은 충분히 해냈다.
“됐다!”
“길이 뚫렸어!”
“기병들이 지나갈 수 있게 바닥 한 번 더 밀어!”
“넵!”
클레이오는 포옹의 반구 꼭지를 꾹 눌렀다.
[진입로 확보, 기병대 돌입]파아아아아앗—
콰아아아앙!
포옹의 반구에서 금빛이 꺼지기도 전에, 도시를 뒤덮을 듯한 황금색 에테르의 번개가 테르게스티 시장의 사저로부터 빗발쳤다.
아서가 내리긋는 [해굽성의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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