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sorry I went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401
실현된 예언과 관철된 복권(復權) (6)
9교의 ‘아서 리오그난’을 탄생시키기 위해 안배되었던 저 모든 사건이 없었다면, 에드워드가 성군으로서 알비온을 통치하고 로사 단장이 수도를 지키는 태평성대였다면, 미에츠는 명가의 후계자인 상급 기사로서 명예와 권위를 누렸을 것이다.
영웅을 낳는 시대는 해소의 실마리 없이 뒤틀렸다. 주인공이 태어나기 이전의 혼란은, 이후의 서사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처음으로 되돌아가 보자.
에드워드의 광증이 아니었다면 리오그난 왕실 가족의 비극은 배태되지 않는다.
고난 속에서도 곧은 뜻을 지켜낸, 강인하면서도 심지 굳은 아서는 그러한 안배 속에서 빚어진 존재이다.
‘맨 처음의 원고는 어쨌든 이런 방식으로 쓰이진 않았겠지. 8교의 아서가 지금의 아서와 달랐듯, 이전의 주인공들도 각각 달랐을 거고. 멜키오르와 아슬란의 원한도 이처럼 깊지 않았을 테지.’
클레이오는 그가 아는 아서 리오그난 이상의 존재가, 도저히 있을 수 없다고 여긴다.
신조차도 그 이상의 무언가를 해낼 순 없었다. 이게 끝이고, 여기가 다였다.
속절없이 뒤틀린 세계는 이대로 완결지어져야 했다.
마법사의 표정이 복잡하게 얼크러지는 걸 보던 미에츠는 피식 웃고는 털털하게 말했다.
“허허, 그 노인네 같은 표정은 좀 치우지 그러냐? 주군을 섬기는 기사는 뭐 마음먹으면 지금도 할 수 있거든? 자, 피어스가 정신을 차려서 새로 나타난 마수인지 뭔지도 이쪽에선 싹 걷어냈고 스텔라 방벽은 네 스승님이 잘 운용해 주실 테니, 우리는 따로 갈 데가 있지?”
“맞습니다. 안 그래도 지금 사령부로 합류하려고 했습니다.”
“더 미룰 때가 아니기는 하네. 네 주머니에서 뭐 번쩍번쩍한다. 사령부에서 보내는 신호 아니냐? 급한 소식 같은데.”
“헉, 네.”
이일저일이 한꺼번에 일어난 데다가, 직독까지 맞닥뜨려 어지럽던 클레이오는 뒤늦게야 신호를 판독했다.
안 봤으면 정말로 큰일이 날 뻔했다.
“소버닐 지구의 대피소 부근에 출몰한 아슬란의 이형이 한 기 있다고 합니다. 손이 모자랄 테니 빨리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클레이오는 이젠 다른 의미로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피어스가 확 조져놓은 덕에 부근의 그림자는 좀 잦아든다 싶었는데, 아슬란의 이형이 말썽이었다.
“아니다, 이놈아. 그게 끝 아닌 거 같은데? 신호 계속 온다, 봐라.”
미에츠의 말이 맞았다.
사령부에서는 연달아 놀라운 소식을 전해오고 있었다.
에드워드 왕 시대 군장을 차린 기사 여럿이 낡은 무기를 가지고 나타나 아군을 돕는다.
그들은 모두 상급 기사로써 노년의 나이에도 대단한 기량을 보여주었다.
아슬란의 이형을 파훼하고, 강화를 전도하여 대피소들을 지켜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했다.
그들의 정체는 불명이었으며 소속은 파악이 되지 않았다.
클레이오가 반색했다.
“선생님의 동료들입니까?”
“그렇지. 수도가 뒤집어지는데 구경만 하고 있을 순 없다면서 한 놈도 내 뒤에 붙어있질 않고 다들 난리통으로 뛰어들어버렸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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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와 결계는 스승들에게 맡겨 두고서 클레이오는 강을 건넜다.
안타리오 다리가 부서져 의회까지의 길이 없어져 버려, 부득이하게 미에츠에게 반 접혀 붙들린 채 운반되는 꼴이 됐다.
의회의 로비에 도달한 클레이오는 토하고 싶은 걸 참으며 스물스물 벽에 붙어 섰다.
로비는 병사들과, 막 사령부로 돌아온 기사들, 군무성의 실무자들이 섞여 번잡했다.
서둘러 아래층으로 내려오던 아서는 막 도착한 클레이오와 미에츠를 발견하고서 전구에 빛이 든 듯 환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체면도 잊고 ‘스승님!’이라고 말하려는 때, 미에츠가 먼저 선수를 쳤다.
“제가 왔습니다, 주군. 충의의 맹세를 이행키에 늦지 않았다 여깁니다.”
일행을 대표하여 가장 앞에 선 미에츠는, 그대로 아서가 선 계단 아래에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찢어진 로브가 바람을 받아 부풀었다가,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어느새 미에츠의 뒤를 따라, 함께 홀에 든 여섯 명의 노익장과 한 명의 젊은 기사가 모두 같은 자세를 취했다.
하나같이 심상치 않은 기세와 실력을 지닌 이들이었다.
중앙 계단의 중간 즈음에 멈춰 선 아서는 자세를 바로 했다. 곧 임기응변답지 않게 그럴듯한 반응이 나왔다.
“그대가 옳다, 용맹한 미치슬라프. 바른 때에 잘 와 주었다.”
미에츠의 주군이 아니라 제자인 아서라면 ‘늦었어요. 늦었는데요!’라고 말하고 싶어 할 거란 걸 977기 아이들과 미에츠 본인은 알았을 테지만, 그들 외에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미에츠는 평소의 껄렁껄렁한 태도와는 완전히 판이한 태도로 정중하게 처신했다.
“영예로우신 로사 페히테 경의 자녀로서, 그 이름이 부끄럽지 않도록 행동하겠나이다. 여기, 용력이 높은 기사들이 먼 길을 돌아 다시 이곳으로 왔으니, 부디 검으로 쓰소서.”
미에츠의 폭탄선언이 떨어지자 저 너덜너덜한 검사가 도대체 누구인가 싶어 태도를 정하지 못하던 자들이 크게 놀랐다.
‘저자가 로사 경의 독자란 말인가?’
‘어린 시절에 이미 검의 성취가 보통이 아니라 들었는데, 아서 왕자에게 포섭되었던 거였군.’
사령부에 속한 자들은 이 나라의 군사력, 경찰력을 지휘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효과적인 상황 전달을 하기 위해 아서는 화제를 적당히 몰아갔다.
“그대들은 모든 금제에서 풀려났는가?”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제 그 어떤 금제에도 엮이지 않은 영혼을 지녔습니다. 우리는 오로지 의지와 신의를 가지고 전하께 충성하겠습니다. 우리가 또다시 어두운 길로 접어든다면, 여로를 바로잡고 불을 다시 피워 올릴 의지와 위력을 가진 주군이시니.”
‘그러면 수도에서 모습을 감춘 것도 기사들을 모으기 위해서였구려.’
‘저기 저 외팔이 기사는 신묘한 창술을 쓴다 하여 이름 높았던 안드라키스 아니오! 에드워드 왕 대에 그리도 이름이 높았던!’
‘아니, 그러면 저자들이 모두 장미의 난 이후 사라졌던 자들이란 말인가? 언약의 금제를 다 풀고 나타났다고?’
그리고 관전자들의 술렁임조차, 곧 멎어버렸다.
저벅. 저벅저벅.
열린 문으로 피어스가 들어서고 있었다.
이시엘이 멜라미드의 검을 발검하는 것과 동시에, 피어스가 아서를 향하여 무릎을 굽히고 머리를 조아렸다.
의심스러운 얼굴을 한 이시엘은 여전히 검을 집어넣지 않은 채 피어스를 주시했다. 그녀는 학창 시절 아서에게 중상을 입힌 피어스의 행태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미천한 자 역시, 아서 전하의 아래에 부복하오니, 어떤 명령이든 충심을 다하여 따르겠습니다.”
피어스는 다른 기사들처럼 한쪽 무릎만을 꿇은 것이 아니라 죄인처럼 두 무릎을 모두 바닥에 대고서 몸을 낮춘 자세를 취했다.
아서는 입을 일자로 다물고서 진중한 태도로 피어스를 내려다보았다.
한때 아슬란의 충복이던 자가 결국 아서의 발치에 죄인처럼 무릎 꿇는다.
아서가 알비온의 전권을 쥐게 되었다는 상징이 될 만한 순간이었다.
지금도 제 몸에 남아 있는 자흔을 새긴 자가 피어스임에도 아서는 기껍게 그를 포용했다.
“그대는 언약의 금제로부터 벗어났군. 지나간 옛일은 따지지 않으려 하나, 그렇다 한들 그대는 내게서 무엇을 보아 충성을 바치려 하지?”
아서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던 갈색 눈의 사내는 몹시 순순하게 답했다.
“전하께서는, 로사 경이 즉위를 바라는 유일한 왕재이시기에. 이 목숨과 미약한 능력을 취해가실 자격이 있습니다.”
훗날 아서의 전기가 쓰인다면 인상 깊게 회자될 부분에서, 정작 아서 리오그난이 생각하던 건 ‘아, 역시 진짜 그랬던 거군. 이게 이렇게 되네.’였다.
“타당하다. 그대를 나의 기사로 받아들인다.”
그 선언에, 로비에 늘어선 모든 이들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아서는 절체절명의 전투에 임하는 군주의 위엄을 두르고 그 위의로 주변의 모든 인물을 압도하고 있었으나, 실체는 이랬다.
‘힐레이다는 피어스가 로사를 따랐던 걸 어떻게 알았지? 아니, 이럴 게 아니네. 덕분에 엄청난 전력을 얻긴 했어. 템푸스강 앞에 붙여두면 되겠군.’
실용적이고, 현실 인식이 투철하고, 적절한 순간 자신의 외형과 분위기를 도구로써 사용할 줄도 알았지만, 사실 본인이 거기에 도취되는 일은 없다.
어느 정도는 짐작하던 바이긴 한데 정말이지, 알려고 한 게 아니었다.
기둥에 기대선 클레이오는 창백한 얼굴로 이마를 짚었다.
‘젠장, 이게 무슨 일이야. 윽.’
클레이오의 날뛰는 ‘직독’ 능력이 제각기 고조된 사람들의 생각과 기억을 무작위적으로 읽어 들이고 있었다.
⁂⁂⁂
눈 쌓인 트리스테인 영지.
왕세자 근위군이 되지 않고 영지에 남았던 기사 라이사가, 연병장에 선 미에츠에게 소리쳤다.
‘근위군이고 씨발이고, 놈들은 다 내 덜떨어진 동생 같은 새끼들이야. 전사자 통지서라도 날아온 놈이 나은 게 정상이야? 아무와도 연락이 안 된다고?’
‘거 왕세자가 세뇌를 하면 벗어나질 못한다니깐. 걔들 탓이 아냐.’
‘빌어먹을. 멜키오르는 공작 각하께서 택한 왕이지, 내가 택한 왕이 아니다. 이게 공작 각하에 대한 배신으로 취급된다면, 미에츠 내게도 그 마도구를 써 줘.’
⁂⁂⁂
그 추운 크라테르의 가을, 강가에 서 회귀하는 연어에게 작살질을 하던 노인은 작살로 물고기가 아니라 상대를 꿰고 싶어 하는 태도를 보이며 우렁우렁 말했다.
‘이미 첫 언약은 나를 외팔이로 만들어버렸는데 그 짓거릴 한 번 더 하라는 게냐? 네 머릴 바숴버린 다음 오늘 작살질은 공쳤다 치고 집에 가는 게 이득이 아니겠느니?’
물에 푹 젖은 채 검을 쥔 미에츠가 으득거리는 잇새로 말을 흘렸다.
‘아니, 외팔이 된 이유까지 알면 거의 다 왔잖아! 그쯤 하면 금제 거의 다 깬 거고, 내가 완전히 없애 준다니까! 그리고 아서는 메이지 마스터랑도 언약은 안 했어! 으악, 사람 말 좀 들으라고, 안드라키스 이 미친 노친네야!’
⁂⁂⁂
낡은 여관방 문을 검집으로 괴어 막은 미에츠는 클레이오로부터 발송된 편지의 봉인을 뜯었다.
묘하게 능숙하지 않은 필체를 가진 클레이오는, 필체와는 어울리지 않는 내용을 잘도 써 보냈다. 8레벨 마법사의 마법 봉인을 믿고 하는 짓 같았다.
‘하여, 제왕의 손은 깨끗해야 합니다. 저는 아서가 그의 형제들처럼 되지 않도록 노력할 겁니다.’
미에츠는 그 구절을 오래도록 몇 번이고 되새긴다.
동료들은 이제와 자신들이 돌아가 무엇을 할 것이냐고 회의한다. 하지만 자신들에게는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지나간 옛 세대의, 살날이 산 날보다 적은 자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왕국의 영광과 미래는 너희의 것이다. 그러니 과거는 미래의 광영을 밝게 닦아 내리라.
“한데 클레이오 이놈은 아서랑 동갑이면서 왜 생각하는 꼬락서니는 그따위인 건지, 쯧.”
⁂⁂⁂
폭주하던 ‘직독’의 능력을 간신히 가라앉히자 울컥 피가 역류했다.
억지로 피를 되삼켜낸 클레이오는 식은땀을 흘리며 몸을 숙였다.
이변을 알려야 하는데 몸이 말을 안 들었다.
아직 기사들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지만, 알비온의 대기 전체가 적대적인 마법사의 서클 안처럼 낯설게 진득해졌다.
‘도대체 무슨‥!’
그 순간.
대앵— 대애앵—
온 도시의 종들이 각기 다른 시각을 알린다. 모든 시계는 에테르 신호에서 벗어나 헛돈다.
시간이 규칙에서 풀려나자 주야의 일기 역시 혼돈에 다다른다. 그 무질서의 한복판에서, 머리 위의 하늘에 검은 공동이 생겨난다.
알비온의 천공이 일식을 요구한다는 것의 의미는 단 하나.
하늘을 올려다보던 타디우스가 말했다. 냉담한 어조였다.
“필리프 왕이 서거했습니다. 저건 일식의 전조군요.”
스스스스슷― 스으읏―
스으으―
사위가 저물자 소탕되었던 그림자 군단이 세를 불려 솟아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축축하고 어두운 그림자들은 저기 템푸스강 아래에서 기어 나오고 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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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란은 낯선 정원에 서 있다.
그는 침착하게 주변을 둘러본다. 이것은 틈입된 꿈의 광경이다.
금빛 하늘은 금색 비를 흩뿌리고, 가장자리가 빛나는 관목의 이파리는 모두 제비꽃 색이다.
분수로부터 솟아나 정원을 가로지르는 실개천이 된 물결은, 모두 짙은 청보라색이다.
물가에 그늘을 드리우는 월계수 이파리는 비취로 만들어져 바람에 따라 청명한 소리를 낸다.
현실일 수 없는 현란한 색채의 향연은 가히 외설이라 할 만하다. 미치광이의 머릿속에서나 가능할 법한 풍경이 아닌가.
곧 아슬란은 자신의 생각이 크게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게 된다.
얕은 시내 너머, 아슬란의 반대편 물가에 그것이 도사리고 있었다.
백금빛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괴물은, 나직한 은색 바위에 팔을 괴고 누운 방만한 자세로 아슬란을 맞이했다.
“네 영혼 역시 마침내 여기, 신들의 정원에 다다랐구나. 이 모든 것이 반복의 공이고 과이다.”
멜키오르는 가만하게 웃는다.
그의 웃음에 따라 월계수 이파리들이 가지런히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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