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sorry I went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419
외전4. 외할머니의 세계사 (3)
『랑슬로는 피눈물을 흘리며 읍소했다.
‘이솔트시여, 나를 저주하고 미워하소서. 당신은 나를 위할 것이 전연 없지만, 나는 당신을 위해 살고 죽겠습니다. 앞으로 내 영혼이 육을 얻어 태어날 모든 생애 동안.’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네 죄는 결코 속죄될 수 없다!’
‘당신이 옳습니다. 모든 천명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오로지 이타심만을 가지고 인류를 삶의 길로 이끌었던 신의 환생자는, 영혼이 부스러지며 사람의 복수심과 이기심을 모두 알게 되었다.
신살자의 의지는 모두 이솔트에게로 흘러가서, 랑슬로에게는 남은 것이 없었다. 그에게 가능한 것은 복종뿐이었다.
숨이 끊어져 가던 이솔트는 여태껏 인류를 보우하고 지켰던 힘을 모다 끌어올려 절규했다.
‘이제 에테르는 물에서 너희를 지켜주진 않을 것이다! 신의 은총을 누리던 너희는 익사할 운명을 피하지 못할 터이다!’
첫 생애의 이솔트는 호수 바닥을 가른 세계의 틈새에서 에테르를 발견했었다. 물속에서 숨을 쉬는 건 에테르 감응자들에겐 당연한 혜택이었다.
그 축복을 이솔트가 철회했다.
이제 에테르 감응자는 물에서 목숨을 잃게 되리라.
‘당신의 말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당신이 옳습니다. 그저 당신이 다음 생애에 태어나 주기만 한다면, 그 어떤 명령이든 말이든 모두 수긍하겠습니다. 영세토록 반드시.’
이솔트는 자신이 또다시 생애를 반복하도록 만든 랑슬로와 레오니드를 결코 용서치 않는다.
사랑의 대상을 떠나가게 둘 수 없다는 바람 때문에, 두 사내는 신을 거역하는 죄마저 저지른 터.
공작은 네니브 호수의 여왕을 품에 안고서 거듭 새로이 맹세를 했다. 영원히, 다시는 당신의 뜻을 어기지 않겠노라고.
그 맹세의 말은 곧, 그들 사이의 두 번째 [언약]이 되었다. 기한을 영원으로 둔 언약 ‘영원성의 직유’가.
이윽고 이솔트는 일그러진 얼굴로, 눈을 뜬 채 절명한다. 육의 생명이 다한 것이다. 영혼은 저승의 강물로 떠나갔다. 흩어지지 못하고, 또다시.
랑슬로는 내내 울었으나 그의 맹세는 눈물보다도 단명하고 말았다. 덧없이 잊히고 만 것이다. 이솔트를 진정으로 소멸케 하겠다는 첫 번째 [언약]이 파훼되며 기억 역시 사라져갔다.
그는 신이 자매에게 내린 소멸의 자비를 거둬버리고, 계획을 어긋나게 했으므로.
호숫가에서 웃던 이솔트, 그녀의 미소와 흰 발. 모든 기억의 맥락이 탈락되고, 선명하던 회상 역시 흐트러져버렸다.
그럼에도 슬픔만은 남아서, 랑슬로는 심장이 찢기는 것 같은 아픔을 느낀다.
사흘 밤낮이 지나도록 공작은 울고 또 울었다.
랑슬로 트리스테인의 슬픔은 너무나도 깊었다. 그 눈물이 넘쳐 세 개의 호수는 마침내 바다가 되고 말았다.
정작 그 슬픔은, 먼 옛날 제사장으로 태어났던 그 자신이 초래한 것인 줄도 모르고.
허리춤에 매였던 보검은 비탄에 녹이 슬어 별의 빛이 사그라지게 되었다. 이솔트에게 평안을 주기 위하여 만들어진 도구가 수명을 다하였다.
석관에서 깨어난 레오니드는 북으로 와 이솔트의 유언인 저주와 그녀가 낳은 장자를 모두 인수해 갔다. 그는 평생 외롭게 알비온을 통치하다가 죽는다.
허다한 전승과 달리 이곳 모르타 호숫가에서 절명한 이솔트는 결코 살아선 니네베 성으로 돌아가지 않았단다.
하지만 전승은 부분적으로는 옳다. 갈레스가 레오니드 2세의 쌍생아였고, 랑슬로 공작이 이후의 65년을 더 살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기록이란 진실과 거짓이 서로의 광택을 돋우며 우미하게 직조된 직물과도 같다. 빛나지만, 순전한 진실은 아니다.
진실의 빛은 글줄의 직물이 아니라 노래 속에서 더 밝게 반사된다. 우리 지방의 여인들은 2대 공작 갈레스가 호수에서 온 아이라고 노래 부르길 좋아했지.
그리고 호수에서 온 아이를 기른 자의 후손은, 잃어버린 맹세의 상대를 영원히 기다린단다. 지금까지도.
그것이 세 개의 호수가 바다가 된 사연, 깊은 슬픔과 증오와 사랑의 이야기이다.』
인자 기억이 났냐?
아이고, 그 대갈빡으루다 공부는 어케 하나 몰라. 그래, 그렇디. 랑슬로 경이 무려 두 번이나 [언약]을 맺은 상대는 레오니드가 아니라 이솔트 왕비였던 게지!
왐마, 뭐라꼬? 니 이 소리 태서턴 소공자님께 하면 큰일 난다잉? 목이 달아난다. 이거 어데 가서 절대 떠들지 말라카던 소리 단디 기억하고.
니가 사내애답지가 않아 갖고 말은 해줬다만은, 여엉 미덥잖다잉?
봐라, 우리 마님만 혀도, 랑슬로의 태를 자른 칼로 탯줄을 끊고 태어난 아르모리크 남자들의 운명을 아는 분이시지만은 혀만 쫌 차시고 암말 않으시잖냐.
그분이야 다 아시지. 요람 속의 도련님 역시도 반드시 운명을 위해 살고 죽으리라는 걸. 그 상대를 만나든 만나지 못하든.
갈레스 이후로 태어나는 검푸른 머리카락 아르모리크 사내들은 다 그래 살았는데, 머.
태서턴 공자님은 그려, 아가 땐 마님을 많이 닮았었지? 마님 역시 테오 공작님과 사촌지간이시니께 별루 다르게도 안 생기셨지만서두, 마님의 집안도 역사가 깊은 기라. 랑슬로 공작님의 형제로부터 이어진 가문이라꼬 하그든.
그 머, 공자님은 어린아 때나 고왔지 금세 커갖고 지금은 마님 닮은 거 잘 모르겠기는 허다.
걸음 제대로 걸을 수 있게 된 후로부터는 눈 속에서도 목검을 왼종일 휘두르게 됐은께. 밥 묵다가도 밥숟갈 쥐고서 식탁서 조는 아가 공자님이었제.
그래두 마님은 말이여, 공자님을 참 애틋하게도 생각하셨다. 꼭 강해질끼라고 애를 쓰는 아기, 뭐 땀시 그러는지도 모름서 하여간 검에 전심을 다 쏟는 자기 애를 말여.
마님은 공자님헌티 유하게 구셨는데, 그거는 앞뒤좌우를 다 아셔서 그라지.
‘제가 무엇 때문에 그리도 검에 매진하는지, 그 애도 자라면 알 수 있겠지.’ 요래 말하시지 않간?
그리고는 참 세월이 쏜살같다야.
어느새인가 다 자라서 어, 공자님이 공작님이 되셨네그려.
근데 트루데 니는 참 아 때도 쪼매낳드니 지금도 짝다. 쯧쯧. 야야. 트루데야, 트루데 요놈아! 정신 좀 채려봐라, 이것아.
하여간 이 할매 속을 다 썩이는 자슥. 마지막 이야기를 해 줄낀께 일어나 보래두. 귓구멍 다 닫고 처 디비자지 말고.
니가 그릏게 오매불망 듣고 잡다 허던 얘기의 끝이 났는디, 일어나라고. 그래서 글케 백 년이고 천 년이고 기다리는 게 다예요? 잉, 이캄서 맨날 골을 냈던 그 얘기 결말 말여.
비록 이 지독헌 이야기에 미문을 갖다 붙일 수야 없지만, 해명을 해 줄 테니, 들어보아라.
『랑슬로 트리스테인은 여러 번 아르모리크 공작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러나 레오니드는 기억 없이 새로이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부서져 소멸하고 만다.
여신의 선물인 사자의 검을 죽음을 가장해 떼어냈던 대가로, 그는 그렇게 사랑하는 이솔트가 태어날 세상을 결코 살 수 없게 됐다.
랑슬로는 그와 달랐다.
그렇다 한들 홀로 얻은 생애가 기쁜 것이었냐면, 그럴 수는 없지.
7대, 13대, 22대… 생애는 오로지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그는 자신의 현손자가 되기도 하고 그보다 세대가 더 벌어지기도 했다.
그 사이에 그가 기다리던 이, 사연도 연유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그분은 한 번도 다시 태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천 년의 세월이 흘렀느니라.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이를 만났는가 하면, 그래, 마침내 새로운 천 년이 오기 전 공작은 연민을 잃은 채로 태어난 이솔트의 환생자를 만났다.
거듭한 환생 끝에 생의 유일한 목적을 마주한 랑슬로는, 천 년 전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분의 눈을 똑바로 직시했단다. 영문도 모르면서, 그저 영혼에 새겨진 대로.
그것은 불경한 짓이 아니고, 역심의 표현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을 알아볼 수 있도록 펼친 것이었다.
태서턴으로 태어난 랑슬로가 멜키오르로 태어난 이솔트에게 말했다.
‘제가 아는 것이든 모르는 것이든 모두 알도록 하십시오. 내 피에 새겨진 문자를 독해하십시오. 제 부덕함을 책하시고, 우둔함을 나무라십시오. 이것은 당신의 권리입니다.’
‘너는 불완전하고, 너는 기억조차 못 할 텐데 그 헛된 말은 무엇이냐.’
‘기억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저는 당신의 도구입니다.’
‘지겨운 소리다. 너는 그 말을, 내게 이미 여러 번 한 것임을 아느냐?’
‘모릅니다. 그러나 복종하겠습니다.’
멜키오르는 신경질적인 한숨을 뱉어냈다.
‘글쎄다. 두고 보지. 네가 나를 배신하지 않을 마지막 기회이니.’
그래서 태서턴은 멜키오르의 명령이라면 무엇이든 따르게 되었다.
신살자는 천 년 전 일어난 언약의 파훼로 모든 것을 잊었고, 잊은 채로 복종했다.
처음에 멜키오르는 그 복종조차도 넌덜머리가 나 결국 공작의 목을 베고 말았다.
그러나 같은 생애가 아홉 번이나 다시 반복되자, 손을 더럽히는 일에도 의욕이 없어졌다.
어차피 인간 종족은 궁극적으로 이솔트를 배신했다.
영혼의 손상으로 인해 기억은 불완전해졌고, 신이 해 주었으나 인간으로 인해 어긋나버린 약속 역시 잊혔다.
에라토의 영혼을 지닌 자에게는, 과거 수없는 생애 동안 가졌던 인간에 대한 사랑이 한 톨도 남지 않았느니라.
그것은 마지막 배신과 함께 모조리 타버렸으니.
남은 것은 분노뿐.
세계에 대한 증오, 탄생에 대한 혐오, 리오그난 왕가에 대한 원념.
첫 생애.
아슬란은 아서가 일으킨 난에 가담했던 수천의 평민들을 처형한다 고지하여, 키시온 영지에 몸을 숨긴 아서를 끌어냈다. 왕가의 적자에게 그 꾀를 불어넣은 이는 멜키오르 본인이었다.
아서는 저와 평민 수천의 목숨을 저울질하지 않고 요새에서 나와 결국엔 죽었다.
첫 형제살해 앞에선, 멜키오르도 아서의 무용한 희생이 어리석어 울었다.
어찌 그 애는 인간의 선의와 형제의 신의를 믿을 수 있단 말인가?
밤중에 성문을 열어 아서의 결정적 패배를 끌어낸 자는 역시나 그를 따랐던 평민이고, 아슬란은 아서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을 작정이었는데.
그러고 나서 멜키오르는 아서의 친위대를 부추겨 아슬란과 맞서게 할 작정이었는데, 놀랍게도 아서의 처형과 함께 세상 자체가 닫혀버렸다.
허망한 마지막이었으나 그것이 끝이라 여길 적에는 괜찮았다.
그러나 두 번째 생이 다시 시작되었음을 알게 되자, 멜키오르는 타오르는 증오와 분노를 억누를 방도가 없어졌다.
그래서 억누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무작위적으로 솟아나는 발상을 그대로 채용했다. 왜 자신의 머릿속에 그러한 과거의 기억이 있는지는 몰랐다. 그의 기억은 모든 참극의 뒤섞인 목록이나 마찬가지였다.
언젠가는 데르니에 휴전회담의 장에 태서턴을 보내어 그곳에 모인 각국의 여섯 통치자를 참수했다. 아서에게, 언젠가의 레오니드가 그랬던 것처럼 드넓은 영토를 쥐여주려던 뜻이었다. 그 애가 급조된 제국을 다스리다 자멸하기를 바랐다.
또 어떤 때에는 아서를 외국으로 내쫓고, 아슬란을 부추겨 극동을 폭격하게 했다. 세상 전체를 전란에 휩싸이도록 만들기는 세상 전체를 보존하기보다 쉬웠다.
왕가의 인물로는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다고 여겨, 깃발을 융성하게 하려던 생애도 있었다. 그때엔 내무보안원에 내분이 일도록 하여, 그 현장에 참살자이자 진압자로 태서턴을 보냈다.
하지만 인류와 세계는 멜키오르의 관여에 저항했다.
아서는 멜키오르가 안기려던 영토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저기 세리카의 재상은 사라질 나라를 지키려다 천자를 안고 분사했으며, 깃발의 수장이었던 로베르는 내무보안원을 척살한 멜키오르와 유화하려 들지를 않았다.
언제나 그에게는 이기적이고 잔인하게만 굴던 인류가, 이론적 윤리와 실천의 도덕을 말하는 이중성을 멜키오르는 이해할 수 없었다. 역사의 연인은 최악의 존재였다.
거듭됨은 그저 형벌이었다.
멜키오르는 이 증오스러운 인간들 사이에서 그들 중 하나로 다시 태어나고 다시 태어나는 사건의 의미를 전혀 찾지 못했다.
세계는 결코 멜키오르의 뜻을 따르지 않고 끝나버리거나, 제멋대로 지속되었다. 죽고 사는 것이 그의 뜻이 아닌 삶은 산 것이 아니다.
결국 그에게 남은 유일한 목표는 이 세상을 만든 신의 대적자이자 파괴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것만이 자신의 온당한 몫이라 여겼다.
마지막 몇 번의 생애 동안 멜키오르가 알비온의 왕위를 원했던 건,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의 추구에 불과했다.
태서턴은 한 번의 질문 없이 아홉 생애 동안 멜키오르의 모든 명령을 이행했다.
언약의 파훼로 인해 잃었던 기억이 환생자에게 주어진 때는 아홉 번째, 마지막 생애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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