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sorry I went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441
그는 잠을 살해했다 (2)
“알겠습니다. 내가 해결해 볼 테니, 당신들 역시 가진 마석을 다 내려놓도록 하십시오. 살고자 한다면 모두를 위해서 그렇게 하고, 여기까지 와서도 보화를 숨기고 편의를 위한 거짓만 말할 거라면 돌아가십시오.”
“방법이 있나요?”
“어디로? 어디에서?”
“…플라이드 평원으로 갑니다. 마석을 다 모은 뒤, 조금의 감응력이라도 가진 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새로이 스텔라 방벽을 쌓아야 할 겁니다. 먼저 할 일을 다 하고서 기다리십시오. 나도 그 전에 할 일이 있으니.”
며칠 후로 날짜를 잡고 사람들을 돌려보낸 프란은, 책상에 앉아 가만히 심호흡을 했다.
이것은 비겁한 타협일까? 제대로 된 선택일까?
자문해 보았지만 명확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숙고할 때가 아니라, 행동해야 할 때였다.
그 순간에도 창밖으로는 스텔라 방벽의 빛이 찬연히 번뜩였다. 멀리서 또 한 차례 균열을 막아낸 사람들의 환호성이 공기를 울렸다. 저것은 경이로운 영광이나, 결국 모든 사람의 영광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억압을 겪었던 저 순진한 사람들은 법보다도 강력한 사적 처벌을 원했다. 프란은 그들을 이해한다.
너희들이 좋은 시절 호의호식하였으니 이제는 죽어야 마땅하다 여기는 연좌제의 감정도 납득은 했다. 그러나 정말로 그렇게 하도록 두어서는 안 되었다. 양측 모두를 위해서.
프란은 마침내 잉크병을 열고 펜촉을 적셨다.
일필휘지로 몇 장의 편지를 쓴 프란은 초저녁에 미리 조금 자두고서, 새벽을 틈타 아세르 상사 사무실로 스며들었다.
졸린 눈의 야간 당직자는 갑작스런 방문객에 놀랐다가, 곧 설득되어 상사 연락망으로 두 통의 편지를 부쳤다.
상사의 우편망은 왕립 우편국을 벗어나 움직이는 가장 빠른 전달 수단이었다.
편지의 수신인 한 명은 기디온 아세르, 한 명은 아델라인 이디 린디허스트 하이드-와이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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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오 아세르는, 구금실 바깥에서 계기판의 레버를 오른쪽으로 젖힌 채 에테르를 차근차근 밀어 넣고 있는 친구를 향해 말했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서 그들은 등을 맞대고 있었다.
“방법은 없어. 내가 돌아가야 해. 아서.”
클레이오의 목소리는 눅눅하게 쉬어 있었다. 「이격」에 기대지 않아도 감정은 잠잠했다.
수차례의 탈출 시도 끝에, 아서와 클레이오는 결국 서로의 에테르를 부닥치고야 말았다.
클레이오가 차마 완드를 아서에게 겨누지 못하고 아서도 검을 꺼내지 못하는 망설임이 아니었다면, 두 사람의 대결은 그 역시 또 하나의 재난이 되었을 것이다.
필사의 탈출을 벌이는 클레이오를 첼과 이시엘이 막은 적도 있었다. 그들의 표정 또한 지독하게 침통해졌다.
그 대립의 경험 속에서 감정을 느낄 만한 여력은 서서히 사라졌다.
아서마저 더 이상은 말이 없었다.
977기 친구들의 설득, 캔튼 부인과 디오네의 눈물, 베헤못의 만류까지. 그 어느 것도 클레이오에겐 소용이 없었다.
그들의 걱정과 눈물과 애원, 애정의 증거는 오히려 클레이오의 결심만 더 견고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클레이오는 더 이상 그 누구도 만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중지된 의식을 실행하고 싶어 할 뿐이었다.
이건 이제 추상적인 당위나 신의 강제가 아니었다.
클레이오에게는 그 누구에게보다 선명하게 느껴지는, 급속하고 직접적인, 당면한 멸망에 대한 문제였다.
곧. 여기가. 세상이 끝나버린다.
알비온이 흰 모래가 되어 사라지면, 그곳으로부터 균열이 퍼져나가 세상 전체를 삼켜버릴 것이다.
“보내 줘. 레지나 대주교가 있는 한 의식은 다시 한번 치를 수 있어.”
“레이, 제발 다시 생각해 봐. 스텔라 방벽을 각 영지의 주도로 새로 조성하고 있어. 자원은 충분하고 시간만 있으면 모든 사람들이 여기 수도의 스텔라 방벽에 전적으로 의지할 필요가 없어져. 그러면 위험한 룬데인에 인구가 밀집될 필요도 없고.”
“그건 전부 미봉책이야. 네 생애 안에서, 언젠가는 저 땅과 산이 모두 모래가 되어버릴 테니.”
“왜 그렇게 확신해? 세상을 쓴 책조차도 그런 마지막을 예정해놓지 않았는데.”
클레이오는 괴롭게 얼굴을 손에 묻었다. 설득은 상호 모두 불가능했다. 일방적인 강제 역시.
편집자 권한은 에테르를 밀어 넣어도 잠시간 번뜩이기만 할 뿐, 발동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세상을 쓴 책을 읽지 못하고 여기가 어느 장에 속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사아아앗— 사아아아—
아서의 금빛 에테르만 클레이오 자신이 설계한 두꺼운 벽체를 감돌았다.
두 사람의 레벨은 같았다. 에테르 유량은 클레이오가 더 많았지만, 잘 만들어진 도구의 힘을 소드마스터가 빌리면서 마법사의 발을 묶었다.
서로의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대결을 벌인다면 탈출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클레이오는 도무지 그렇게는 할 수가 없었다.
클레이오가 이곳 구금실에 닿은 순간부터 아서는 잠들지 않았다.
지난 한 달간도 침실에서 제대로 수면을 취하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구금실을 가동한 이후에는 정말 한순간도 눈을 감을 수 없게 되었다.
그의 잃은 잠은, 어쩌면 평생이 될지도 몰랐다.
클레이오는 그런 미래를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간신히 목소리를 냈다.
“아서. 과거 세계와의 연결이 저렇듯 뒤엉키지 않더라도, 여덟 번째 세상이 고사해 여기 아홉 번째 세상이 역사 없는 세계가 되어버리면 세상은 결국 끝이 나게 되어있어. 여신들조차 막지 못한 파국을 우리들만의 힘으로 어떻게 막는단 말이야.”
“다 읽고서도 나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 너무 많아. 우리가 왜 역사 있는 존재가 되어야만 하는 거지? 우리에게 주어진 건 지금 여기이고, 미래는 우리로부터 도래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삶을 살아냄으로써?”
“세상의 구조가… 그렇게 생겨 먹었다는 걸 알잖아. 세상은 그야말로 과거의 기억을 재료로 지어진 것이고, 바로 그 때문에 부스러져버리는 중인데. 네가 그랬지. 선택이란 결말과 여파를 감수하는 거라고. 나 역시 그러려는 거야. 내 마법의 여파가 세상을 무너뜨리는데, 그걸 어떻게 방기하겠냐고!”
“그 마법을 네가 시작했어? 이렇게 될 걸 알았다면 넌 그런 방식으론 마법을 쓰지 않았을 거야.
우리가 처음 만났을 무렵에, 너는 사실 그 어느 것에도 연루되기 싫어하는 모습이었지. 신의 명령과 강제가 없었더라도 넌 저 모든 일을 했을까?”
“가정은 소용이 없어. 결과가 이미 나와 있는데.”
클레이오는 이 세상을 사랑했고 세상이 지속되기를 바랐다.
아서는 이 세상을 살아가고자 했고 세상이 달라지기를 바랐다.
“왜 해보지도 않고 그렇게 말해. 클레이오, 네 마법의 능력과 내 검을 활용하면, 또 나의 성흔과 네 성흔을 쓰면 우리는 정말로 많은 일을 할 수 있어. 그리고 우리의 친구들도 있지. 이제껏 모두가 힘을 합쳐서 쭉 버텨왔잖아.”
클레이오의 목소리가 떨리며 나왔다.
아서 역시도 클레이오가 아는 것 중 모르는 것이 없는데, 그래서 더더욱 말하기 괴로웠다.
“지금 내 성흔은 움직이지 않아. 실패하더라도 돌이킬 수 없어. 이대로 세상이 끝난다면, 너는 멸망한 세상에서 홀로 남게 돼. 기약 없이. 끝도 없이.”
“그러니까 그렇게 되지 않도록 나와서 날 도와주면 안 될까?”
그건 정말이지, 너무나도 저항하기가 어려운 회유였다.
우리들이 역사의 끝에 온 존재가 아니라면, 기억으로 빚어진 세계를 살아야 하는 것만 아니라면 클레이오는 아서의 말을 들어 주고 싶었다.
실패하더라도 극복하려는 시도는 정말이지 아름다운 것이다.
다시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만 한다면.
그러나 세상은, 이미 주어진 모든 기회를 다 소진한 재 속에 놓인 한 줌의 잉걸불에 불과했다.
“레지나의 힘이 다하기 전에 나는 돌아가야 해. 시도든 뭐든 그다음에 해. 안정된 세상에서.”
“아무런 위험도 극복도 없이 그저 여신이 안배하신 대로만 살아야 한다면 애초에 우린 왜 태어나야 했지?
멸망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문명이라면, 왜 반복되어야 했던 거지?
끝을 막지 못하는 여신들의 마지막 명령이 효력이 있으리라고 믿을 근거는? 없잖아, 없는 걸 너도 알잖아.
레이. 우리의 뜻으로, 우리의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클레이오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아서는 결국 아서였다.
어쩌면 더 먼 옛날부터, 처음 이 땅에 태어나 살았을 때부터 계속해서 아서였을 것이다.
신이든 악마든 개입할 수 없다는 선언. 나는 오로지 나의 의지에서만 행동하리라는 천명.
그 뜻은 같은데도,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 체에 거르고 고른 말들.
일견 흥분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서 더욱 진실되게 느껴지는 문장.
‘내가 너를 다르게 살게 하려 했는데.’
결국 그러지 못했다는 결과를, 그는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런데도 클레이오는 도무지 세상의 구조에 저항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경로를 완전히 벗어나려는 시도는, 무시무시한 형벌을 불러일으킨다.
그걸 알면서도 아서처럼 행동하는 건, 클레이오에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레이. 돌아가면, 이전 세상으로 가면 너야말로 어떻게 될지 여신이 말해줬어? 너는 기약 없는 시간 동안 세계를 지탱하는 기둥이 되는 거야. 여신들은 계속해서 누군가를 희생시켜가며 이 세계를 유지하려 하니까.”
“그녀들 역시도 세상의 존속을 위해 희생하고 있잖아. 나 역시 그들의 하나이고, 그러니 의무는 당연한 거야.”
“제발, 우린 신학논쟁을 하는 게 아냐. 중요한 건 네 뜻이지. 그게 정말로, 진짜 너의 선택이야? 온전한 네 선택?”
클레이오는 도저히 그렇다고 말할 수가 없어서, 그저 에테르를 풀어냈다.
이제껏 한 번도 전력으로 펼쳐낸 적 없는 수위의 에테르를. 모조리.
—————!
무음의 대결이었다.
구금실을 휘감고 있던 아서의 에테르가 클레이오의 것과 대립하며 소리와 공기마저 그 충돌에 휘말렸다.
구금실 벽에 등을 대고 있던 아서는 무시무시한 타격에 피를 토했다.
솨아아아아―
왕의 몸을 빠져나와 구금실로 전도되어 있던 에테르가 모조리 되돌아가며 아서의 에테르 그릇을 쾅쾅 두드려댔다.
몸 안의 에테르 흐름이 뒤엉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부하가 극치에 이른 때, 순간적으로 의식이 끊기며, 에테르 전도 역시 그쳤다.
끼이이이익.
클레이오는 한 손으로 구금실 문을 열었다.
몇 모금 피를 토한 채 모로 쓰러진 아서를 바라보는 동안 「이격」이 올라왔다. 그러지 않았다면 그는 아서를 붙들고서 그 자릴 떠나지 못했을 것이다.
마법사의 정교한 눈으로 살핀바, 아서의 부상은 깊지 않았다. 확장된 에테르가 일거에 몸으로 되돌아오며 부하를 일으킨 것뿐이었다.
다만.
‘레벨이… 오르려고 해.’
‘약속’의 고지가 없어도, 아서의 주변을 수호하듯 휘감기며, 서서히 청록빛 광택을 띠기 시작한 에테르의 징조를 알아볼 수 있었다.
오로지 알고자 하는 의지 때문에 대관 일식마저 파훼해버린 아서였다. 제 뜻을 이루기 위하여 에테르 레벨을 한층 더 올리는 일이 불가능하리라곤 여겨지지 않았다.
세계는 숨죽인 채 고요히 아서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세계 전체와 생명이 연계된 왕이 새로운 차원의 힘을 얻기를.
클레이오는 도저히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뗐다.
이제 9레벨에 오르려는 아서가 완전히 성장을 끝내면 자신에게는 이곳을 벗어날 방도가 없었다.
은폐의 마법을 걸고 지하를 빠져나온 클레이오는 므네모시네의 문으로 향하려던 걸음을 뚝 멈추었다.
민감하게 확장된 감각은 므네모시네의 문 주변에 결계를 펼친 제베디의 마법을 식별해냈다.
아서가 잠든 지금밖에는 기회가 없는데, 자신의 스승,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던 메이지 마스터와 또다시 대결을 벌여야 한다는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제베디는 절대로 자신의 결계를 풀지 않을 터였다. 자신이 죽더라도 제자가 희생하기를 원치 않을 사람이었다.
그 뒤로는 수도방위대의 기사들과, 무수한 병사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그들 모두를 물리치려면 무력이 아닌 다른 방안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클레이오에게는 오직 마법뿐, 세력도 동료도 없었다.
그렇다면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그런 클레이오의 앞에, 자그마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아세르.”
지금 이곳에는 있을 이유가 없는 사람이었다. 대관식이 그렇게 끝난 후로 소식조차 들을 길 없던, 프란이었다.
“일단은 수도를 빠져나가라. 네가 뭘 하려 해도 여기 있는 한 국왕과 친위대의 수색을 피해 숨는 건 불가능하다. 너희는 서로의 기척을 너무나 잘 안다. 때문에 그들의 기감을 벗어날 수 없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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