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sorry I went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51
필드 트립 (3)
어두운 숲에서 마법을 써 움직일 순 없었다.
아까는 몰라서 그런 거지, 칼 든 거한이 기다리는 밤중의 숲 속에서 할 짓은 아니었다.
‘마법이란 게 참 편하고 좋은데, 빛을 못 숨기는 게 이렇게 큰 단점일 줄이야.’
지난 원고에서 마법은 오로지 치유나 연구용이었으니 빛이 나는 건 아무런 문제가 안 됐다.
‘지하조직의 중간관리자를 데리고 야밤에 칼 든 조직원들 만나러 가는 마법사도, 지난 버전엔 없었지. 내 팔자야.’
다행히 아까 한 번 가본 길이라 두 번째는 길 찾기가 어렵지 않았다.
두 소년은 발소리를 죽이며 자박자박 걸었다.
둘 다 몸이 가벼워 크게 기척이 두드러지지 않았다.
「지각」을 켠 채 움직이는 클레이오는 너도밤나무에 닿기도 전에, 두 남자의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한창 프란을 잡아 족칠 계획을 짜는 중이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프란은 클레이오를 바짝 뒤따랐다.
멈춰 선 클레이오는 소리를 낮춰 프란에게 속삭였다.
“거의 다 왔어. 날 데려가면 눈에 띌 테니, 너 혼자 나서는 게 좋겠지? 하지만 너도밤나무 그림자의 경계에서 움직이진 말아 줘. 내 서클의 범위를 벗어나면 지켜줄 수가 없어.”
“…나도 서클을 열 수 있는 마법사다. [방어] 마법 정돈 쓸 수 있어.”
자존심 강한 프란은 여기까지 와서도 호락호락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혹은 동료들이 자길 공격할 거란 걸 안 믿고 싶은 건지도 몰랐다.
‘게다가 2레벨의 [방어]마법은 미덥지가 않고.’
“제발 이번만은 내 말을 들어줘. 아무 일도 없으면 마법 쓸 일도 없을 테니까.”
“…….”
“네 동료들이 뭔가 선 넘는 짓을 한다면 말릴 사람이 있어야 하잖아. 너까지 다쳐버리면 누가 그걸 하겠어.”
그제야 수긍한 듯 프란은 클레이오를 지나쳐 앞으로 나아갔다.
‘휴, 진짜 맞춰주기 힘든 놈이다. 지켜준대도 싫어해.’
[편집자 권한]을 쓴 터라, 하룻밤이 실제로 너무나도 길어져버린 클레이오였다.천 년의 피곤이 몰려왔지만, 애써 스스로를 북돋우며 프란을 뒤쫓았다.
.
.
.
너도밤나무 아래, ‘인민의 깃발’ 야간 회동의 결과는 뻔했다.
클레이오의 방어마법이 아니었다면, 프란은 한 번 더 살해당했을 것이다.
프란은 성흔을 썼다.
그의 손등에서 나팔이 빛을 냈다. 멜키오르의 약속이 진의이겠냐는 날카로운 물음에 두 남자는 마구 동요했다.
그러나 오로지 살고자 하는 욕망에서 기인한 그들의 아집이 더 단단했다.
‘큰 발의 빌’이 도끼를 내리칠 때까지, 프란은 서클조차 펼치지 않고 눈만을 똑바로 뜬 채 그를 직시하고 있었다.
콰아앙―!
에테르의 빛이 번뜩이고, 방어 마법에 무기가 튕겨나왔다.
‘안 따라왔으면 어쩔 뻔 했어! 제길.’
“시발, 이거 왜이래!”
“머리 말고 다른 델 노려 봐!”
빌은 포기하지 않고 자세를 낮춰, 프란의 목 대신 오른팔을 공격했다.
프란의 빈약한 팔은, 도끼에 제대로 맞기만 했다면 일격에 떨어져나갔을 것이다.
클레이오는 에테르를 아끼지 않고 [방어] 마법식에 퍼부었다.
키이이이이잌―!
콰직!
불꽃이 튀었다!
방어막과 힘겨루기를 하던 도끼는 자루가 부서져버렸다.
저 혼자 맹렬히 날아간 도끼날이 너도밤나무의 둥치에 가 박혔다.
폴이 단도를 들고 다시금 달려들었지만 그의 공격 역시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허둥대던 두 남자는, 욕설을 내뱉더니 순식간에 도망가 버렸다.
‘새끼들. 고작 방어 마법에 놀라 내뺄 거면서, 아까는 그렇게 잔인하게 굴었단 말야?’
프란만이 너도밤나무아래 홀로 남았다.
소년의 뒷모습은 몹시도 쓸쓸해보였다.
코트도 안 입고 나와 추운 클레이오는 빨리 들어가고 싶었지만, 그에게도 눈치라는 것이 있다.
동료에게 배신을 당한 지하조직 활동가의 심정을 생각해… 그리고 이 귀중한 인재의 마음이 상할까봐… 한참을 기다려주었다.
너무 추워서 마법이라도 써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드디어 프란이 클레이오를 돌아보았다.
그의 표정은 차갑고 단단했다.
“들어가자.”
되돌아가는 길은 올 때보다 더 길게 느껴졌다.
방에 들어서자 프란은 창가의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클레이오 역시 맞은편에 가서 앉았다.
잠은 안 왔다.
뒤늦게야 심장이 쾅쾅 뛰었다.
살면서 시체를 처음 본 건 아니었지만, 여러 번 본다고 익숙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프란을 살릴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나는 적을 많이 만들었어. 감정기복이 크고 본심을 숨길 줄 몰라서. 그런 나를 로베르가 항상 감싸줬지. 죽을 때까지.”
‘고해 타임인가….’
아주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클레이오는 열심히 들었다. 경청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다.
‘백작가 장남으로 태어난 얘 인생이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좀 알아야겠다.’
“로베르는 카롤링거 공화국의 혁명에 투신했다가, 혁명정부 수립 후 대공포 시대에 축출당해 알비온으로 돌아왔는데… 원랜 알비온의 귀족이었지. 그는 지난 20년간 ‘깃발’의 리더였다. 나와는 가정교사 신분으로 만났고.”
클레이오는 속으로만 혀를, 혀를 찼다.
‘아니, 공화주의 이념은 좋아, 좋지… 근데 왜 하필 얘를 전업 활동가 지망으로 만들어가지고 과학을 그만 두게 한 거야! 활동가 해도 연구만 안 그만뒀음 상관없는데!’
얼굴도 모르는 로베르 선생의 성공적인 의식화 작업이 원망스러워지는 클레이오였다.
“알비온의 평민원 창설 이후 ‘깃발’은 거의 와해됐어. 온건파는 대부분 타협해 의회 세력으로 빠져나갔지. 이후에 온 로베르는 곧 조직의 중심이 됐어.”
22년 전 카롤링거 왕국에서 혁명이 일어나 왕후귀족이 처형당하고, 공화정이 수립됐다.
카롤링거 공화국과 국경을 맞댄 알비온 역시 왕정폐지론과 공화주의 세력이 산불처럼 기세를 높여댔다.
‘그래서 그 불만을 잠재우려 평민원을 만든 것 까진 알았는데….’
프란이 말하는 것은 클레이오가 읽었던 원고의 이면, 기록되지 않은 역사였다.
“‘깃발’은 노동조합 설립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조직을 유지했었다. 현재의 평민원은 부유한 사람들만 대변하니까, 참정권을 확대하는 게 주요 목표였고. 그런데 몇 년 전부터 과격파가 이상하게 득세하기 시작했지.”
‘이상하게…라.’
우연히 일어난 일 같지가 않았다. 멜키오르라면 충분히 꾸며낼 수 있는 음모였다.
‘과격파 몇을 심어 넣는 거 왕세자 능력이면 일도 아니었을 테니까.’
“‘깃발’의 과격파는 결국 룬데인에서 멜키오르를 암살하려 들었어. 당연히 실패했지. 로베르는 끝까지 테러에 반대했지만, 책임은 졌어. 동지들을 피신시키고서 비밀정보부를 유인해 안가에 남았지.”
더 말하기가 힘든지 프란은 마른 침을 삼켰다.
클레이오는 물을 떠와 프란에게 내밀었다.
힘없이 잔을 건네받은 프란은 끝끝내 뒷이야기를 이었다.
마치 누군가는 그 이야기를 들어주길 바랐던 것처럼.
“함께 체포당한 사람들은 모두 미쳐버린 채로 왕성의 수문 바깥에 버려졌는데, 로베르만이 아무런 상처 없이 왕세자의 배웅을 받으며 후문으로 걸어 나왔어.”
“!!!”
“누구라도, 로베르가 그들을 배신했다고 생각했을 거야.”
‘와… 멜키오르 새끼, 진짜 악랄하다.’
그런 짓을 하면 동료란 사람들은 로베르에 대해 의심을 안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조직은 완전히 끝났어. 나는 과학아카데미보다 외부인이 침입하기 힘든 수도방위대 학교로 적을 옮겼고. 내가 이 나이에 중책을 맡은 건… 책임을 지고 남아 있는 기록을 파기해 한 사람의 피해라도 줄이기 위해서였어.”
클레이오는 고개만 끄덕였다. 어떤 대답을 하더라도 프란을 위로하기는 어려울 터였다.
“그것마저 이런 식으로 이용당하는군.”
잔을 내려놓은 프란은 창밖을 응시했다. 그는 검은 숲이 아니라 기억 속의 어떤 광경을 본다.
“난 로베르가 왕성의 후문을 나설 때 골목길에 숨어 그를 지켜보고 있었어. 문 앞에서 미소 짓던 로베르는 왕세자에게 무릎을 꿇고 손등에 입을 맞추더군.”
“그런….”
“난 그가 배신했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는 그런 짓을 하느니 자기 무릎을 벨 인간이야. 실제로 왼팔은 이미 없었어. 카롤링거의 독재자인 빅투아르 모로를 동료로서 비판하는 공개서한을 썼다 잘렸거든. 로베르는 왼손잡이였고.”
너무나도 살벌한 실전 19세기 정치사였다.
역사책 혹은 소설에서나 볼 법한 이야기를, 눈앞의 열여덟 살 소년은 자신의 일로서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 역시 비겁했어. 로베르가 몇 남지 않은 동료들에게 비난당할 때 그를 변호하지 않았어. 사람들은 어떻게 맹세를 어길 수가 있냐고, 동지들을 팔아치울 수 있냐고 로베르에게 분노했지.
변명 한 마디 없이 비난을 듣던 로베르는 딱 한 가지를 묻더군. 자신이 멜키오르에게 무릎 꿇었느냐고, 남의 일처럼 말이야.
나는 거짓 증언을 할 수 없었어. 그렇다고 말했지. 내 대답을 들은 그는 선 채 짧은 메모를 써 건넸어. 그리고는 그대로 걸어 나가 템푸스 강물에 몸을 던졌다. 시체는 못 찾았어.”
“메모엔 뭐라고 쓰여 있었어?”
“‘결코 멜키오르 리오그난을 독대하지 말거라. 너조차 모르게 네 뜻을 꺾을 일을 겪지 않기를 바란다.’ 머리가 차가워지니 알겠더군. 멜키오르는 뭔가를 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지만.”
클레이오는 내심 놀랐다. 프란은 거의 사실에 가까운 추측을 해 냈다.
“그 후 열흘을 앓았다. 앓고 잃어나니 이 빌어먹을 것이 손등에 생겨 있더군.”
로베르를 구하지 못했다는 후회와 죄책감이 그에게 성흔을 새겼는지도 모른다.
클레이오는 무거운 마음으로 프란의 손등을 바라보았다.
‘저 스킬은 세뇌가 아니니까, 단호하게 거부하는 사람의 마음까진 바꿀 수 없구나. 오히려 역효과를 내기도 하고… 참 골 아프군.’
“그런데 너는 왜 나를 돕지? 오늘 죽지 않았더라도 나는 언젠가 죽거나 내 의지를 꺾게 될 거야. 멜키오르는 나에 대해서도 파악하고 있을 테니까. 그러면 너 역시 무사하지 못할 거다.”
“그건… 너는 분명 더 중요한 일을 해야 할 사람이니까. 그런 식으로 희생당하게 놔둘 순 없어.”
“도대체 뭐에 관해서. 내게 뭐가 남았단 말이야.”
“티플라움 가공의 최종 난제…?”
저도 모르게 진심이 튀어나와버렸다.
솔직히 여기서 뭐라고 거짓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안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조직 활동 도와줄 것도 아닌데 무슨 핑계를 댄단 말인가.
‘목숨을 살려줬는데 한 번 정돈 진지하게 생각해 달라고.’
“하, 티플라움엔 도대체 왜 그렇게 집착하는 거냐.”
“에테르 활성 상태만 유지할 수 있다면, 티플라움은 별별 곳에 다 쓰이게 될 테니까. 그건 엄청난 수익을 만들어낼 광물이야. 장사꾼에게 돈보다 중요한 게 있어?”
“너는 고결한 건지, 속물적인 건지 모를 인간이다.”
“아마 후자일걸. 내게 고결한 점은 전혀 없어. 난 장사꾼의 아들이거든.”
“그런 네가 왜 멜키오르를 적대하지?”
“나는 아서와 뜻을 함께하고 있으니까.”
상상도 못한 대답인 듯 프란의 얼굴에 동요가 일었다.
프란에게 말하면 멜키오르에게 전해질 위험이 있었지만, 언제까지고 아서 측에 선 걸 숨길 수는 없을 것이다.
그걸 말해서 프란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면 해볼 만한 모험이었다.
“…그래봐야 똑같이 역겨운 왕족들.”
“그렇게 생각해도 할 수 없지만… 아서는 강제로 남의 뜻을 꺾고, 다른 사람을 억지로 복종시키려 들지는 않을 테니까. 그건 걔가 제일 싫어하는 일이야. 본인도 엄청나게 당했거든.”
“어떻게 확신하지?”
“나는 미래를 봐. 아직도 안 믿겨?”
안 믿을 수 없을 것이다.
고작 몇 시간 전, 클레이오 덕분에 죽음의 도끼날을 한치 앞에서 비껴갔으니까.
“내 아버지는 오리엔스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평민이고, 나는 그의 아들이야.”
클레이오는 전에 디오네가 해주었던 말을 그대로 주워 섬겼다.
“아버지의 준남작 작위는 돈으로 산 거고, 다들 알잖아. 저 귀족원의 높은 어르신들은 아버지 같은 사람을 결코 상무장관으로 뽑아주지 않아. 그렇다고 당대에 벼락부자가 된 사업가가 의석을 얻는다? 지금의 평민원에선 불가능하지.”
‘가자, 백작가 출신 좌파 도련님은 출신 성분으로 공략하는 거다!’
“평민 출신인 내게 가장 좋은 세상을 만들어줄 인간은 아서니까. 적자도, 혼인에서 본 자식도 아닌 아서만이 이룩할 수 있는 미래가 있어. 나는 그걸 봤어.”
팔짱을 낀 프란은 그대로 오래도록 말이 없었다.
도대체 먹힌 건지 안 먹힌 건지 모를 판에, 클레이오를 놀리듯 창이 파르라니 밝아오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어찔한 피로가 산사태처럼 덮쳐왔다.
없는 체력으로 3층에서 뛰어내려, 산을 타, 몇 번을 왕복을 해, 마법을 쓰고, 맨 정신으로 듣기 힘든 지독한 이야기까지 들었다.
온몸이 쑤셔서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 순간, 드디어 프란이 입을 열었다.
“티플라움 에테르 활성화를 위해, 공식을 새기는 데 가장 효과적인 촉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