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sorry I went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80
마법사들 (2)
한발 늦게 강의동에서 누군가 달려 나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벌건 대낮에 수도 한복판의 학교를 습격한 놈들의 모습은….
“헉헉, 에즈라 이 개자식아! 내가 [가속]식까지 더하면 안 될 거라고 했잖아!”
“진짜네~ 실험 결과를 제대로 얻었네~ 경사잖아~ 화내지 마, 달리아~.”
“아아아악! 제베디 교수가 돌아오면 우릴 죽이려고 들 거야! 외부 결계를 다시 치라고 했지, 부수라고 했냐고!”
“에이, 부수긴 뭘 부숴. 마석 마노에 흠집 살짝 난 걸~. 달리아 너는 졸업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교수가 무섭냐?”
뛰었는지 화려한 머리와 코트가 다 흐트러진 여자가, 새하얀 머리카락의 남자와 옥신각신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왕실마법감이 항의할 시, 시말서를 백 장은 써야 되겠죠. 부단장님 이번엔 안 도와드립니다.”
멀리서, 학교 가장자리를 돌아 슬렁슬렁 걸어오는 남자가 흰머리에게 대꾸했다. 미묘하게 얄미운 한 마디였다.
“아레미스~, 내 부관이면서 차갑게 굴지 말고~.”
그들은 클레이오의 존재를 눈치도 못 챈 것 같았다. 대화를 들어보니 외부 결계를 보강하러 온 마법사들이었다.
‘…습격자가 아니었나?’
“나도 다 했어!”
멀리서 [증폭] 마법으로 소리치는 앳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학교의 외부결계가 재시동됐다.
우우우웅―
직전의 대폭발에도 불구하고, 외부 결계는 어느 때보다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마법과의 조교들이 재시동을 걸었을 때와는 확실히 결계의 강도가 달랐다.
‘저래 봬도 실력은 있는 마법사들인가 보네.’
클레이오의 머릿속에서 「기억」의 두루마리가 파르르 돌아갔다.
에즈라와 달리아라는 이름은 금세 찾았다. 후반부에 여러 번 언급되는 조연들이었다.
‘전쟁이 났을 때 영웅적인 활약을 보여주었던 마법사들로 아는데….’
눈앞의 꼬락서니는 영웅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뭐, 이게 실제와 역사 간의 괴리인 거지.’
타타타타타탓!
그때 로사 교수의 조교인 칼빈이 엄청난 속도로 정문까지 달려왔다. 미간을 잔뜩 구긴 표정이었다.
“아니! 에즈라 너는 학생도 아니면서 여기 와서 또 사고를 쳐?!”
“어이, 칼빈 오랜만~! 사고라니? 이번에 수도에 올라오자마자 학교 가가지고 외부 결계를 재시동하란 명령을 받아서, 옷도 못 갈아입고 온 참이라고~.”
“하필이면 그 명령을 받은 게 너라니 행정과에서 뭔가를 잘못 처리한 게 분명해. 알아보겠다.”
“야, 내가 중퇴를 했어도 입학 동기인데 그렇게 냉하게 굴면 너무 슬프잖아. 날씨가 너무 추워서 시동 시간을 줄여 보려다 과부하가 걸린 거라고~. 문젠 없어!”
“문제인지 아닌진 학장님이 돌아온 뒤 판단하도록 하지. 들어가서 기다리도록.”
그즈음, 한 손엔 양산을 한 손엔 클레이오의 코트를 든 디오네가 뒤늦게 정문에 도달했다.
칼빈은 휙 돌아서서 학교로 향했다.
흰머리의 일행들은 이미 앞서, 방문객용 응접실로 쌩 내빼고 있었다. 춥긴 추운 날씨였다.
그녀는 부드러운 손길로 클레이오에게 코트를 걸쳐주었다.
“도련님, 이 날씨에 외투도 없이 뛰쳐나가면 어떡해요. 보아하니 큰일은 아닌 듯한데 얼른 들어가세요.”
클레이오의 식은 몸을 걱정하느라 정문 앞에서 벌어진 소란은 안중에도 없는 레이디였다.
“그러게 말입니다. 저는 무슨 습격이라도 일어난 줄 알았지 뭡니까.”
“아니, 습격이면 더더욱 피해야지 제일 먼저 달려오면 써요? 내참! 아서 왕자와 어울리더니 이상한 물이 들었어.”
“그게….”
디오네와 클레이오가 돌아서려던 순간, 흰머리의 마법사가 엄청난 성량으로 소리를 질렀다.
“어라, 어라라~ 거기 분홍머리 언니! 디오네 그레이어 아냐?!”
평소 남들 앞에선 조신하게 움직이던 디오네가 경기라도 일으킨 듯 팔짝 뛰며, 무시무시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앜!”
‘서로 구면인가?’
“도련님, 웬 말하는 벌레가 학교에 있죠? 방역을 해야겠어요. 자, 얼른 들어가시죠.”
구면인 정도가 아닌 모양이었다.
디오네에게 팔을 잡혀 끌려들어가던 클레이오는 흰머리 놈을 향해 흘낏 뒤돌아보았다.
물론, 곧 돌아볼 필요도 없어졌다.
다다다다다닷!
마법사라곤 믿을 수 없는 엄청난 속도로 몇 십 미터를 달려온 놈이 금세 디오네와 클레이오 앞을 막아섰다.
쌍두늑대 마수 앞에서도 의연히 클레이오 앞을 막아서던 디오네가 치를 떨며 팔에 바짝 달라붙었다.
각이 딱 섰다.
‘이거 진짜 이상한 놈인가 본데.’
“디오네~! 내가 옛날에 네 머리카락 좀 태워먹었다고 아직도 꽁해 있냐고~. 머린 벌써 예쁘게 다 자랐잖아! 동기끼리 너무 나쁜 맘 갖지 말자~.”
“글쎄요. 저는 불법 마법 실험이나 행하는 자, 신사가 아닌 자와는 교분을 트지 않습니다.”
“엑, 그럼 그 꼬맹이는 신사고?”
“훌륭하신 신사이자, 기사이시죠.”
수도방위대의 춘추용 제복을 입은 흰머리는 무례할 정도로 빤하게 클레이오를 뜯어보았다.
저쪽이 보기에 클레이오도 사양 않고 상대를 살폈다. 그는 머리가 흴 뿐 아니라 눈썹도 눈도 아주 연한 상아색이었다.
‘이 마법사는 백색증을 앓나…?’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애구만~, 기사는 무슨.”
“클레이오 아세르 경에게 모욕적인 발언을 자제해 주시죠, 수도방위대 마법단 부단장님.”
에즈라의 목소리가 대번에 심술궂어졌다. 특유의 질질 끄는 듯한 어미의 발음도 똑 떨어지게 짧아졌다.
“클레이오 아세르? 야, 네가 그 소문의 제베디 연구 제자야?”
“제안은 받았으나 아직은 연구 제자가 된다고 수락하지 않았습니다.”
“튕기기까지 하고 있어? 실력이 제법 되나 봐? 엉?”
“소문이 과장되었을 뿐입니다….”
파아아앗―
에즈라는 엄청난 속도로 서클을 전개했다. 주변 200m 반경이 백금빛 에테르에 휘감겼다.
미친놈과 부딪치는 대신 적당히 상대하며 내빼려던 클레이오의 계획은 어그러졌다.
[6레벨 마법사칭호: 백은의 선도자]
‘레벨이 높잖아!’
클레이오도 대항하여 서클을 펼치려 했지만 에즈라의 서클 안에서는 엄청난 저항에 부딪혔다.
그 순간 『마법전서』 3권의 내용이 클레이오의 「기억」속에 떠올랐다.
‘레벨 차가 나는 상대의 서클 안에선 서클을 못 펼친다더니, 정말이었군. 제길.’
애를 써 봤지만, 에테르 순환이 꽉 막혀 좀처럼 몸 바깥으로 에테르를 뽑아낼 수 없었다.
“뭐야~ 시시하게. 이 몸에게 눌려서 서클도 못 펴는 거 보니 아직 4레벨 정도? 흐응~, 소문 과장 맞나봐~.”
서클을 펼치려 노력하는 클레이오 주변을 빙글빙글 돌던 에즈라는, 분투하는 꼴을 잘 구경하려는 듯 몇 걸음 물러섰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짐승의 앞발 모양 조각을 꺼내 이쪽을 향해 던졌다.
“자! 가서 건방진 꼬맹이 뒤통수나 꽉 물어 줘~!”
조그마한 발은 화르르 에테르에 감싸이더니 금빛으로 빛나는, 토끼와 쥐 사이의 동물로 변했다.
[변환][재생][가속] 등 6개의 마법식이 복잡하게 얽힌 방식이었다.‘저게 뭐야!’
「지각」을 켠 클레이오는 디오네를 감싸고서 달려드는 토끼를 피했다.
키이이잇!
에테르 짐승은 조그맣고 귀여운 외양과 달리 날카로운 이를 드러냈다.
‘만렙토끼도 아니고!’
어느새 양산에서 검을 뽑아 든 디오네가 능숙한 자세로 왼발을 내딛더니, 달려드는 토끼를 하단으로 내리 찔렀다.
깡!
칼과 짐승이 부딪치며 금속성의 소음을 냈다.
디오네의 솜씨는 훌륭했지만, 검기를 못 뽑아내는 그녀는 괴이한 짐승을 꿰뚫지 못했다.
“으윽!”
디오네는 간신히 검을 놓치지 않았을 뿐 더 공격하긴 어려워 보였다.
캬아아아앗!
성이 난 짐승은 이제 디오네를 노리고 튀어 올랐다. 어찌나 빠른지 움직임이 번개 같았다.
“디오네!”
파아아아앗―
그 순간 클레이오의 그릇 안을 맹렬하게 휘돌던 에테르가 터져 나오며 서클을 구성했다.
클레이오는 가장 강력한 [방어]의 진언을 외쳤다.
“[이는 나의 암벽이요, 나의 방패요, 내 구원의 뿔, 내 높은 탑, 나의 피난처이니!]5)”
반석처럼 단단하고, 탑처럼 높은 [방어] 마법진이 디오네와 클레이오를 감쌌다.
카캉!
팅!
카카캉!
토끼인지 쥐인지는 클레이오가 펼친 방어막에 몇 번이고 부닥쳐 튕겨 나온 뒤, 바닥에 처박혀 소멸하고 말았다.
‘마법도 시전자랑 꼭 닮았네. 성질 급한 게.’
슈우우우―
이윽고 에즈라와 클레이오 두 사람 모두의 서클이 꺼졌다.
방금까지 사람을 무섭게 공격한 주제에 에즈라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4레벨 치곤 제법~! 너 에테르 감응력이 무시무시하구나! 수도방위대에 들어온 보고서 그대로네!”
“그걸 시험하자고 이런 위험한 일을 벌인 겁니까? 여기 레이디 디오네까지 휘말리지 않았습니까. 제대로 사과하십시오.”
“에이, 안 다쳤잖아. 디오네는 972기 중 제일 다재다능한 마법사였는 걸~. 방금도 봐~.”
디오네는 북해에서 부는 바람보다 차가운 목소리로 에즈라를 무시했다.
“됐습니다. 사람이 아니라 벌레가 한 짓인데 책임을 물을 이유도 없죠. 도련님 이제 들어가도록 해요.”
‘너 같은 놈은 인간 취급도 안 하겠다.’는 뜻이었다.
“자~암시, 잠시, 잠시잠시잠시만.”
클레이오와 디오네의 앞을 팽그르르 막아서며 에즈라는 긴 몸을 쭉 구부렸다.
“내기 하나만 하자. 응? 이기면 내가 사과해 줄게!”
“내기는 됐습니다. 조건부인 사과도 필요 없고요.”
“야아, 참. 후배님, 빼지 말고. 내가 무서워서 그래~?”
기력이 부족해서 어지간하면 화를 안 내는 클레이오조차도 신경이 긁히는 소릴 잘도 해 대는 에즈라였다.
물론 클레이오는 특유의 아니꼬워 죽겠다는 얼굴을 하고서 밋밋한 말투로 대응했다.
“불필요하고 불쾌한 대화를 더 이어가고 싶지는 않군요. 비켜주시죠.”
“곧 기말고사잖아. 사람들 앞에서 재주 부리는 거~ 클레이오 후배님이, 4레벨일 적 내가 했던 거랑 똑같은 걸 해내 보이면 사과할게! 아니 무슨 명령이든 다 들어주지!”
“대신 제가 지면 원하시는 게 있겠죠.”
“내 실험체 해 줘라. 난 태어나서 너처럼 에테르 감응력이 넘치는 중급 마법사는 처음 봤거든? 어떻게 레벨 차를 뚫고서 서클을 펼 수가 있지? 봤는데도 안 믿겨~!”
추위인지 흥분인지 창백한 뺨을 붉히며 에즈라는 경망스레 동동거렸다.
잘생긴 편이긴 했지만, 태도와 말투가 저따위여서야 그저 돌은 자로밖에 안 보일 뿐이었다.
“댁이 삼 학년 때 했던 그 바보 같은 이중 발진을 클레이오 경에게 따라 하라고요?”
“오, 레이디께서 상찬하는 천재면 그 정도는 쉽지 않겠어~?”
“일고의 가치도 없는 멍청한 제안이네요. 클레이오 경이 아무리 뛰어나단들, 당장 어떻게 이중발진을….”
“마법식 이중발진 좋잖아, 왜! 구경거리 보러 몰려 온 사람들에게 보석 눈꽃을 잔뜩 뿌려주면 딱이지~ 연말이고~ 빛의 축제 시즌이잖아!”
클레이오 역시 디오네의 의견에 동감했다.
정말로 멍청한 제안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다른 계산도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런 마이웨이 인간은, 자기 멋대로 사는 만큼 원하는 것만 충족시켜주면 의외로 뒤끝이 없지.’
젊어서 뛰어난 성취를 본 사람 중에 종종 있던 타입이었다.
면전에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살기 때문에 주변 사람이 혈압 돋긴 하지만, 뒤에서 일을 꾸미지는 않았다.
‘수도방위대 마법단과 라인을 어떻게 트나 고민했는데, 제 발로 굴러들어와 주다니. 성격이야 어떻든, 부단장이면 지위는 상당히 높고….’
마수의 피는 분명 수도방위대 마법단으로부터 아슬란 측으로 넘어갔다.
누가 마수의 피를 빼돌린 것인지 캐내려면 마법단에 연결고리를 만들 필요가 있었다.
판단을 마친 클레이오는 에즈라가 흥미를 보일만 한 소리를 슬슬 흘리기 시작했다.
이런 인간들 성미를 돋우는 키워드는 빤했다.
안 된다, 못 한다, 무리다.
“이중발진은 1학년 과정에서 배우지 않으니 참관객들 머리를 희게 물들일 순 없겠습니다. 물론, 이중발진을 할 만한 마석 매개체를 일개 학생인 제가 구할 수 없음도 당연하고요.”
디오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올려다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옆은 돌아보지 않았다.
아서는 클레이오의 마법에 관해선, 이시엘에게조차 전모를 말하지 않았다.
그가 마법식 이중발진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건 프란과 아서 뿐이었다.
“에이, 왜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고 그래! 아직 일주일 넘게 남았잖아. 그거야 연습하면 그만인데~ 마석이 없다고~? 흐으음!”
한 3초 정도 고민했을까.
자신의 왼쪽 새끼손가락에 끼인 반지를 빼낸 에즈라가 그걸 클레이오에게 내밀었다.
“자, 마석 스노우쿼츠 반지다. 성공하면 값을 안 물을 거고, 실패하면 그대로 돌려받을게~. 대신에 내 실험체 해줘야 해. 내가 이 학교 결계를 담당하는 동안 계속!”
결국 못 참고 디오네가 개입했다.
“에즈라 세르게프! 이게 무슨 짓입니까, 어른스럽지 못하게! 가문의 반지는 집어넣으시죠.”
“왜에! 만약 클레이오 후배가 해 내면 반대로 내가 사과해준다잖아~.”
“그리고 제 말이라면 뭐든 들어주시는 거고요?”
“흥! 강아지 흉내라도 내지~! 멍멍, 왈왈~.”
엉덩이 뒤에 한 손을 붙이고선 꼬리를 파닥이는 흉내를 내는 에즈라는 한 대 치고 싶을 정도로 얄미웠다.
클레이오는 에즈라가 내민 스노우쿼츠 반지를 집어 들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역부족일지 모르지만, 다음 주 금요일에 이중발진을 선보일 수 있도록 지금부터 노력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세르게프 가문의 반지도 먼지로 없애게 되겠고.’
“하하하하~ 자알~ 생각했어~ 클레이오 후배~. 내가 실험은 살살 해 줄 테니깐, 안 무서워해도 돼~.”
“에즈라!”
그 이후 오 분간 클레이오는 다시 칼을 뽑아드려는 디오네를 말리느라 남은 힘을 다 짜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