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0)
프롤로그 & 탑의 정상
프롤로그
트라이 횟수 79회.
전멸한 각종 길드의 공격대 297팀.
사망자 315,850명.
이 모든 숫자가 가리키는 것이 ‘시련의 탑’ 48층에 등반하려다 실패한 결과물이다.
[제한시간: 0h : 58m : 33s]빛이 바란 상태창이 깜빡였다.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하울의 무빙 오지는 성: 하아……. 이젠 더 이상 도전자도 없네.
-아모른직다: 대형 길드들도 다 포기했으니까. 솔직히 너무 많이 죽긴 했어.
-나의 라임 개쩌는 오렌지나무: 이제 1시간 뒤면 세계 멸망임. 뉴스에서도 카운트다운 들어감. ㅅㄱㅇ.
-후후 느끼고 있군: 마지막 날 여기서 뭐하고 있냐? 지금 홍대에서 파티 열리는 중인데. 불금 안 보내?
-형궁서체다: ㅋㅋㅋ방구석 찐따가 신났누. 평생 여자하고 말도 못 붙여 봤으면서 불금은 개뿔.
[현재 접속 인원수: 87]한때 수백만이 접속해 있던 채팅창은 이제 100명도 채 남지 않았다.
당연한 이야기다.
수많은 실패 탓에 각종 길드들은 이미 무너졌고.
개별적으로 도전하던 이들조차 사라진 지 오래였으니까.
인류는 영원히 다음 층을 정복하지 못한 채 이대로 끝날 것이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우우우웅!
너무나 오랫동안 인적이 끊어졌던 이곳에 푸른빛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 현상이 일어나는 건 단 하나.
[48층 ‘레드 드래곤 데스티아’의 영역에 도전자가 등장했습니다.]새로운 도전자가 들어왔을 때뿐이다.
던전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안면 왜곡 마법을 쓴 터라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한 손에는 30cm 길이의 단검이 쥐여 있었다.
틀림없이 플레이어다.
-하울의 무빙 오지는 성: 오오오!
-클라이머123: 아직, 도전하는 사람이 있어!
-형궁서체다: 와. 실화냐? 이 시국에 도전자라고?
-앞비전뒷점멸: 이시국 씨 등판하셨네. 키보드 1시간 압수.
갑작스러운 이변에 채팅창이 활발해졌다.
대체 얼마 만에 나타난 새로운 도전자란 말인가?
끝끝내 희망을 버리지 못한 채 남아있던 시청자들이 환호성을 터뜨렸다.
[현재 접속 중인 시청자: 7,588]순식간에 커뮤니티와 SNS를 타고 소식이 퍼졌다.
죽을 때만을 기다리던 사람들이 혹시나 하며 들어왔고.
곧, 모든 관심이 도전자에게 쏠렸다.
-생갈치1호의 행방불명: 근데 누구지? 랭커는 아닌 것 같은데?
-나의 라임 개쩌는 오렌지나무: 정보 다 비공개로 해 놔서 상태창 안 보임.
-클라이머123: 설마, 마지막이라고 뉴비가 늅늅 하면서 들어간 거 아님?
-고인물감별소: ㅁㅊ. 다 닥치고 저 단검 봐.
-나의 라임 개쩌는 오렌지나무: 야자열매 따기 좋게 생겼네. 초보자 때나 쓰던 템을 뭘 보란 거임?
-고인물감별소: 색깔을 보라고! 색깔을!
한 시청자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단검으로 향했다.
흑요석처럼 까맣게 물든 검신.
그리고 손잡이 끝 부분이…….
‘보라색’이다.
빨주노초파남보. 7개의 색깔.
그중에서 가장 등급이 높으며, 여태껏 누구도 손에 넣지 못 했던 최상급 성유물.
두근!두근!두근!
지켜보던 이들의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왔다.
고이다 못해 썩어 버린 화석이!
***
“크르르르…….”
침입자의 등장에 둥지에 있던 레드 드래곤이 낮게 포효했다.
30m에 이르는 거대한 몸체.
마주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전신에 솜털이 쭈뼛쭈뼛 일어났다.
“너희 인간들은 포기란 걸 모르는구나. 그렇게 많은 수를 잃고도 또다시 온 것이냐?”
데스티아가 침입자를 내려다봤다.
오만한 눈빛이다.
모든 생명체가 자신의 아래에 있다는 것처럼.
물론, 그 오만함엔 압도적인 무력이라는 근거가 뒷받침되고 있었다.
하지만.
“도마뱀구이를 만들려면 준비해야 할 게 좀 있어서 말이야. 그래도 늦지 않게 왔어.”
남자는 태연하게 그 시선을 받아 냈다.
건방진 대답에, 데스티아의 미간이 구겨졌다.
“인간, 똑같이 죽더라도 훨씬 더 고통스럽게 죽는 수가 있다는 걸 모르는 것이냐?”
“글쎄. 어디 할 수 있으면 해 봐. 말로만 하지 말고.”
“좋다. 어차피 미물과의 대화 따위 의미가 없는 것을.”
데스티아가 발톱으로 허공을 그었다.
“……!”
그러자 남자의 몸이 움찔했다.
고위 속박 마법이 발동된 것이다.
“시시한 결말이구나.”
치켜든 앞발이 남자의 머리 위로 향했다.
몸이 그림자에 삼켜졌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앞발이 아래로 낙하했다.
콰아아앙!
지면에 금이 쩍 하고 갈라졌다.
바위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하며 튀어 올랐다.
그런데.
“흠?”
당연히 느껴져야 할 감각이 없었다.
뼈가 부러지고 살이 짓뭉개지는 그 느낌이.
“속박 이후에 육탄 공격이라……. 너무 뻔한 패턴 아니야?”
데스티아의 뒤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 건 바로 그때였다.
말도 안 되는.
“스킬이 발동하기 전에…… 파훼했다고?”
그 짧은 순간에?
“뭐, 손동작만 봐도 대충 뭘 하려는 건지 알고 있으니까.”
“개소리 하지 마라!”
데스티아가 완전히 몸을 일으켰다.
머리가 동굴 천장에 닿을 듯이 솟구쳤다.
“이제 우연 따위는 없을 것이다.”
쩍 벌어진 아가리에서 화염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쿠쿠쿠쿠쿠!
대기에 있는 모든 수분이 말라붙었다.
적을 잿더미로 만들기 위한 최강의 힘.
오직 드래곤만이 갖고 있는 권능.
“역시, 브레스인가.”
남자가 중얼거렸다.
지금까지 공격대가 실패한 이유도 바로 저 불줄기를 막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쿠쿠쿠쿠!
점점 더 거세게 타오르는 불꽃.
잠시 뒤, 극한까지 응축되는 마력이 방출된다면…….
인간의 육체는 시체조차 남기지 못 하리라.
“피할 곳 따윈 없다.”
이 던전 전체가 브레스의 영역 아래 있었으니까.
그리고 물론.
“피할 이유도 없어.”
도망가려고 이곳에 온 게 아니다.
죽으려고 온 건 더더욱 아니고.
이기기 위해 왔다.
살아남아 다음 층으로 가기 위해서.
그리고 이 세계의 끝을 보기 위해서.
[‘세계의 기억’을 읽습니다.]남자의 등 뒤로 찬란한 운무가 쏟아졌다.
모든 스킬들이 기록된 무한의 서고.
세상의 진리를 담은 대도서관.
이것이 바로 남자가 지닌 능력이다.
“‘헬파이어’와 ‘검은 눈물’을 불러오겠다.”
짧은 말과 함께.
화르륵!
왼손에 지름 1m가량의 불덩이가 나타났다.
또옥! 또옥!
오른손에 쥐고 있는 단검 끝에선 검은색 액체가 떨어졌다.
-하울의 무빙 오지는 성: 헬파이어잖아? 유럽 랭커, 마리아의 전매특허인!
-고인물감별소: 검에서 떨어지는 액체. 저건 15층 ‘통곡의 마녀’가 갖고 있던 스킬임.
-클라이머123: 세상에나……. 복사 스킬을 갖고 있는 플레이어가 있었다니.
-형궁서체다: 그럼 뭐 해? S급 스킬 백날 난사해 봐야 씨알도 안 먹히는데?
-앞비전뒷점멸: 혹시나 했는데. 역시는 역시 역시구만.
-군필여고생: 아오 내 아까운 시간.
채널에 접속해 있던 시청자들이 빠른 속도로 빠져나갔다.
그야 그럴 수밖에.
헬파이어든 마녀의 저주이든.
어떤 걸로도 드래곤의 브레스를 뛰어넘을 순 없다.
이미 수도 없는 도전과 실패 끝에 증명된 사실이었다.
“어리석은 인간이여. 고작 그 정도 스킬을 믿고서 큰소리를 쳤던 것이냐?”
데스티아가 혀를 찼다.
그래.
이 정도 수준으론 어림도 없겠지.
그러니.
만들어 주면 된다.
‘왼손에 발현한 스킬과.’
브레스를 파훼하고…….
‘오른손에 발현한 스킬을 융합해.’
드래곤 스케일마저 가를 수 있는 한 차원 더 높은 스킬을!
남자가 헬파이어 위로 검은 물방울을 떨어뜨렸다.
그 순간.
[스킬 ‘헬파이어(S)’와 스킬 ‘검은 눈물(S)’이 융합합니다.]이질적인 두 개의 스킬이 하나로 합쳐지며, 검붉은 스파크가 일어났다.
[융합에 성공했습니다!] [‘공허룡(空虛龍) 에테리온의 브레스(SSS)’를 획득하셨습니다!]콰콰콰콰콰콰!
레드 드래곤의 브레스와는 격이 다른 흑염이 타올랐다.
마력의 질도.
불꽃의 온도도 다르다.
“그, 그건!”
데스티아의 눈동자에 지진이 일어났다.
모를 리가 없겠지.
어찌 모를 수 있겠는가?
고대종(古代種) 중 하나인 에테리온.
그리고 그 고룡이 사용하던 최강의 브레스를.
“네…놈! 어떻게 인간 따위가 그 능력을……!”
데스티아가 말을 더듬거렸다.
호기심을 넘어선 두려움.
그렇기에 물을 수밖에 없었다.
“대체, 대체 누구냐! 네놈은!”
데스티아의 질문에, 남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강진혁.”
나는 고인물이다.
닳고 닳아 결국엔 마모되어 버린.
“그리고 내가 너를 죽이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야.”
동시에, 나는 이 탑의 정상을 올랐던 유일한 플레이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