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102)
102화 메두사 레이드 (2)
신격(神格).
탑에 존재하는 절대적인 존재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들은 저 위에서 인간들을 관조하며, 쓸 만한 인재를 찾곤 했다.
바로 탑 상층에 있는 자신들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서.
그런데.
바로 그 신격의 간택을 받을 수 있다니!
타케시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희열을 주체하지 못한 듯 입가 또한 연신 꿈틀거렸다.
‘이건 일생일대의 기회다.’
줄을 잘 서야 한다는 건 세계 어디에서나 통용되는 말일 터.
기연이 온다면 잡아야 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과연, 비정상적으로 강했던 게 그런 이유였어.’
대형 길드의 랭커들도 실패하는 걸 너무나 쉽게 통과하는 게 말이 안 되긴 했다.
그것도 다른 플레이어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서 해쳐나가는 건 아예 상식을 깨 버리는 수준이었고.
하지만.
그 모든 위화감은 상대가 신격 중 하나였다고 밝히는 순간 씻은 듯이 해소되었다.
일종의 유희를 즐기는 거겠지.
‘신들이란 인간의 잣대로 판단할 수 없는 존재니까.’
콰콰콰콰콰!
지금 이 순간에도 얼음 방벽을 세우며 브레스를 막아서는 모습은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더군다나 다른 쪽에선 또 다른 결계를 펼쳐 싸울아비 길드의 플레이어들까지 보호하고 있지 않은가?
고민은 길지 않았다.
어느 편에 서야 이 미쳐버린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지 확신이 섰다.
“부탁이라면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너희 길드 쪽에서 얼마 전에 재밌는 장난감을 주웠다고 하던데.”
그 왜.
있잖아.
“일본에서 3종 신기 중 하나로 애지중지하는 거.”
“서, 설마……!”
“맞아. 그 설마. 내가 원하는 게 바로 그거야.”
사무라이 길드에서 유적을 공략하고 얻은 성유물.
쿠나시기의 검. 다른 말로 천총운검(天叢雲劍).
그거 가져와라. 몹시 탐이 나니까.
“하, 하지만, 그건 길드 깊숙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길드 마스터가 아니면 접근하기조차 어려운…….”
타케시가 곤란한 듯 말끝을 흐렸다.
성유물은 각 길드의 보물1호. 절대 양보할 수 없는 힘의 상징이다.
당연히 보안 역시 철저하게 되어 있을 수밖에.
“쉽지 않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 하지만, 내가 선택하는 인간이라면 ‘쉽지 않은 걸’ 해내야 하지 않을까?”
여기서 중요한 건 상대의 배를 살살 긁어주는 거다.
너는 특별한 인간이고, 따라서 그 정도는 해내야 한다며.
고고한 신격이 까르륵 소리가 절로 나오게 칭찬을 해 주는데, 허파에 바람이 들어가지 않을 놈은 없다.
“좋게 봐주시는 건 감사합니다만…….”
살짝 넘어왔다.
이제 마무리로 상대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이야기로 흔들어주면 된다.
흔히 물건을 팔거나 계약을 할 때 전문 용어 잔뜩 써서 상대의 혼을 쏙 빼먹을 때 쓰는 방법이지만.
이럴 때도 꽤나 효과적이다.
“지금 위에서 북유럽 망치쟁이가 늑대새끼 한 마리 데리고 라그나로크인지 나발인지 한다고 깽판을 치는 중이거든. 근데 의외로 우리 쪽이 밀리고 있어.”
북유럽 신화의 주신 토르.
멸망을 고하는 최후의 전쟁 라그나로크.
북유럽의 신격들이 들으면 뒷목을 잡을만한 이야기였지만, 어차피 알 바 아니다.
열 받으면 이곳까지 직접 내려오든가.
“세계수의 영향력이 있는 곳에선 아무리 나라도 제 힘을 발휘하기 힘들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가능하면 많은 성유물이 필요해.”
“허…….”
너무나 엄청난 내용에 타케시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그러나 잠시뿐이었다.
“알겠습니다. 검은…… 어떻게든 구해 오겠습니다. 믿고 맡겨 주십시오.”
“그래. 그리고 가기 전에 내가 특별히 성흔을 하나 새겨 줄게.”
정확히는 염혼의 낙인이라고.
“일종의 계약인데, 별로 위험한 건 아니야. 배신하면 그냥 산 채로 불탈 뿐이지. 하지만 넌 배신은 하지 않을 거니 상관없잖아?”
“무, 물론입니다.”
타케시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와서 배신을 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누가 황금 동아줄을 스스로 잘라 버린단 말인가?
“보기와 다르게 아프지 않으니까 겁먹지 말고.”
진혁이 붉게 물든 검지를 타케시의 가슴에 갖다 댔다.
[Lv5 ‘염혼의 낙인’이 발동됩니다.]선명하게 새겨진 붉은 낙인.
좋아.
이걸로 일본 쪽에도 고인물 컴퍼니의 충실한 인턴 한 명이 탄생했다.
영혼에 노예 계약을 해 뒀으니 이제는 자신이 속았다는 걸 깨달아도 소용없으리라.
“그럼 이만 가 봐. 나는 이 뱀 녀석 좀 처리할 테니까.”
진혁이 몸을 돌렸다.
그곳엔 벌써 4번째 브레스를 뿜어낸 뱀이 온몸을 들썩이고 있었다.
연거푸 막대한 마력을 쏟아 부은 탓에 불꽃의 온도가 많이 미지근해지긴 했다.
“키에에에!”
잔뜩 약이 올랐는지. 불을 먹는 뱀이 날카로운 비명을 내뱉었다.
‘그래도 명색의 신이라고 했으니 고전하는 모습을 보여줄 순 없지.’
가뜩이나 중2병 섞인 말투를 흉내 내느라고 신경 많이 썼는데. 정작 싸움에서 압도하지 못하면 그게 무슨 개쪽이냐?
스릉!
챙!
진혁이 천천히 쌍룡검을 꺼냈다.
칼날을 타고 눈부신 예기가 빛을 발했다.
‘한 방에 끝낼 만한 거라…….’
하나 있긴 하다.
3층의 네임드를 일거에 가둬버렸던 스킬이.
마력소모가 엄청나기 때문에, 함부로 사용할 순 없었지만.
존재감을 과시하기에 이것만한 게 없다.
진혁이 마력을 끌어 모았다.
파츠츠…!
검신 전체를 뒤덮은 푸른 마력.
형언할 수 없는 빛이 통로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키에에에!”
뱀도 무언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는지 자세를 잔뜩 낮췄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빙하조형(氷河造形) ‘하늘의 검’이 발동합니다!]하늘에서 내려오는 얼음 줄기와.
[빙하조형(氷河造形) ‘땅의 검’이 발동합니다!]땅에서 솟구치는 얼음 줄기가 하나로 맞닿았다.
***
넘실거리는 불꽃은 더 이상 없다.
모두의 눈앞엔 뱀의 형체를 간직한 거대한 얼음 기둥이 있을 뿐이었다.
“여, 역시 굉장하십니다.”
타케시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압도적인 위력.
이제는 탑의 저층에 있는 네임드 몬스터 정도론 진혁의 식후 운동거리조차 되질 못했다.
그만큼 강해진 것이다.
가장 좋은 기연과 최적의 루트를 통해 성장한 덕분에.
‘나쁘진 않네.’
진혁이 감흥 없는 얼굴로 얼음 동상을 바라봤다.
지켜보는 타케시의 눈은 경악으로 일그러져 있었으나, 정작 당사자인 진혁에겐 그다지 놀라울 바 없는 결과였다.
‘2회 차를 하는 건데 당연히 이 정도 위력은 나와야지.’
이 정도도 안 되면 고인물이라 말할 자격이 없다.
“넌 왜 안 가고 있어?”
“아, 아닙니다. 저는 단지…… 저 사람들을 어떻게 하실지 염려돼서…….”
타케시의 시선이 결계 너머에 있는 싸울아비 플레이어들에게 향했다.
이 대화를 엿듣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간택을 받는 건 오롯이 자신 한 명이어야만 했으니까.
하여간 욕심이 목구멍까지 차 있는 놈이다.
그래서 다루기 더욱 쉬웠지만.
“싸울아비 쪽은 결계를 조작해 시야랑 소리를 막아 두긴 했는데, 그래도 너랑 내가 대화하고 있는 걸 본다면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할 거야. 우리가 담소나 나눌 정도로 친한 사이는 아니잖아?”
진혁이 짧게 설명을 덧붙였다.
다시 말해.
누가 보기 전에 이만 꺼지라는 뜻이다.
어차피 일본 쪽 플레이어들은 전멸했으니, 타케시가 도망친다고 해서 이상하게 여길 사람은 없었으니까.
“아……그런 깊은 뜻이! 알겠습니다. 바로 떠나도록 하죠.”
타케시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리고 왔던 길을 따라 모습을 감췄다.
동시에.
우우우웅!
얼음조형을 덧씌웠던 결계가 사라졌다. 단절되었던 시야가 돌아오며, 싸울아비 길드의 플레이어들이 결계 밖으로 걸어 나왔다.
“모두 전투 준비!”
“젠장! 다들 공격 스킬 위주로…… 어어?”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헉!”
“이럴 수가. 뱀, 뱀이……?”
모두의 동공이 터질 듯이 팽창했다.
브레스가 펼쳐진 후 갑자기 새하얀 문자들이 나타난 것까진 봤는데, 그 이후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마치 밀폐된 상자 안에 갇힌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잠시 뒤, 마침내 상자가 부서지며 모두가 결계에서 밖으로 나왔을 땐 너무나 많은 게 달라져 있었다.
“강진혁 플레이어님이…… 해치우신 겁니까?”
이영권이 진혁에게 물었다.
사실, 대답을 알면서도 묻는 거였다.
“예. 이 녀석을 상대로 여럿이 덤비는 것보단 혼자 처리하는 게 더 편해서요.”
“그……러셨군요.”
대형 길드의 정예 공격대를 순식간에 쓸어버린 괴물.
그걸 혼자서 쓰러뜨렸다고?
그것도 상처 하나 없이?
‘대체 얼마나 강한 거냐 이 남자는?’
놀라움에 탄성을 내지르던 이영권은 이내 분한 듯 입술을 꽉 깨물었다.
‘우리는…… 병풍조차 되질 못하는 건가.’
그저 미궁에 합법적으로 오기 위한 티켓.
상대에게 있어 싸울아비의 공격대가 갖고 있는 의미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버스는 태워 줄 테니 대신 얌전히 뒤에서 구경이나 하라는, 간접적인 권유이기도 했고.
뿌드득!
스스로에 대한 분함과 수치심에 주먹이 가늘게 떨렸다.
하지만, 아무리 화를 내 봤자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이번 레이드에서 자신들이 나서 봤자 오히려 방해만 될 거라는 건 그 누구보다 이영권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우. 일단은 공격대 정비를 좀 하겠습니다. 이후에 일에 대해선 다시 말씀을 드리도록…….”
그런데 이영권이 말을 하려던 바로 그때였다.
스스스!
무언가 지면을 빠르게 스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가벼우면서도 소름 끼치는 움직임이다.
‘역시 온 건가.’
진혁이 재빨리 감각을 끌어올렸다. 얇게 갈무리된 마력이 몸을 중심으로 넓게 퍼졌다.
“흐응.”
그러자 기둥 사이로.
“내 애완동물의 공격이 통하지 않은 인간이라니. 게다가 내 위치까지 찾아낼 줄이야. 재밌네. 이렇게 흥분되는 건 진짜 오랜만이야.”
간드러지는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바로, 이 미궁의 주인이자 신화 속 영웅담으로 회자되는 마수.
메두사였다.
“보, 보스다!”
“젠장. 눈 마주치 마라! 바닥! 바닥으로 봐!”
메두사의 눈을 마주치면 돌이 되어버린다는 일화는 너무나 유명했다.
그럼에도 이 미궁이 쉽게 공략되지 않는 이유는 상대의 능력을 알고 있어도 대처가 어렵다는 점 때문이었다.
눈을 마주치지 않고 보스를 죽이라고?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가장 중요한 감각이 봉인당한 상태로 싸워야 하는데?
방패에 비친 모습으로 보면 돌이 되지 않을 수 있다곤 하나, 핸디캡을 안고 싸워야 하는 건 마찬가지다.
결국, 이번 레이드의 핵심은 다수의 공격대가 아닌 한 명의 개인.
진혁에게 달려 있었다.
“너구나. 그 인간이?”
메두사가 진혁을 보고 배시시 웃었다.
페르세우스의 방패에 비친 모습이 꽤나 살벌했다.
“후후후. 그런 차가운 쇳덩이 너머로 보지 말고 직접 보렴. 레이디의 눈을 피하는 건 예의가 아니란다.”
레이디 같은 소리하고 있네.
메두사가 요조숙녀처럼 생겼어도 외모에 속아 친근하게 생각해선 안 된다.
뱀의 특성을 고스란히 갖고 있기에, 먹잇감을 포식할 경우 저 입이 가로로 길게 찢어졌으니까.
“사람을 통째로 집어삼키는 게걸스런 숙녀는 사양하겠습니다. 1인 1닭까진 이해하겠는데 1뱀 1인은 무섭거든요.”
“어머나.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는가 보구나.”
잘 알고 있지.
“자매들을 모두 잃은 비운의 공주를 모를 리가 있나.”
그 말에,
“네놈.”
싸아아아…….
공기가 급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