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103)
103화 메두사 레이드 (3)
그리스 신화 속 메두사에겐 두 명의 자매가 더 있다고 알려져 있다.
불사신인 ‘스테노’와 ‘에우리알레’가.
‘사실상 메두사보다 더욱 강한 존재들이지.’
그렇기에, 그녀들의 막강한 힘이 향후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올림포스의 신격들은 두 자매를 화산 깊숙한 곳에 파묻어 버렸다.
산 채로 타들어 가면서도 영원히 죽을 수 없는. 그녀들 스스로의 몸을 저주하게 하면서.
물론, 이 모든 것들은 신화 속에 없는 오직 [시련의 탑]에서만 존재하는 설정들이다.
하지만 이제는 원류가 오히려 거짓이 되었다고 해야 할까?
‘어찌 보면 아이러니지. 뭐, 원래 삶이란 게 다 그런 법이지만.’
허구가 각색되어 현실이 된다.
그리고 일그러진 현실에는 그에 걸맞은 공략법이 적용되어야 한다.
바로 지금처럼.
“감히…… 그 말을 입에 담다니!”
쿠쿠쿠쿠쿠쿠!
메두사의 몸에서 흉흉한 살기가 피어올랐다.
“크읍!”
“헉!”
“무, 무슨 마력이…….”
주위에 있던 싸울아비 길드의 플레이어들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전신을 옭죄어 오는 기운은 감히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 만큼 무거웠다.
마치, 호랑이 앞에 선 하룻강아지처럼.
단 한 번의 마력 발산으로도 싸움의 기세가 결정되어 버렸다.
덜덜덜!
플레이어들이 고개를 숙인 채 감히 검과 방패를 들어올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허나 단 한 명.
‘이렇게 무너질 순 없어.’
이영권만은 어금니를 부러져라 깨물었다.
시련의 탑이 도래하고 이제 겨우 2달째로 접어든 상황.
아무리 레벨을 올리고 던전을 돈다고 한들 그들은 이제 막 일반인 티를 벗어던진 햇병아리일 수밖에 없었다.
목숨을 걸고 싸우기엔 아직까지 각오과 경험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명문 길드라고 해서 모두가 용감할 수는 없었다.
‘알고 있다. 우리 또한 부족하다는 것쯤은.’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
터무니없는 상황이 주어지면, 그에 맞춰 성장한다.
언제까지나 약한 소리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단 말이다!
“전부 한꺼번에 덮쳐라! 절대 물러서선 안 된다!”
이영권이 고함을 질렀다.
고유 능력 ‘일괄통솔(一括統率)’이 발동되자, 이영권의 몸 주위로 황금색 운무가 펼쳐졌다.
[공격대의 사기가 30%만큼 상승합니다!] [모든 공격력과 방어력이 10%만큼 상승합니다!]눈부신 기운이 메두사의 살기를 걷어내며 공대원들을 독려했다.
모두가 무기를 붙잡은 건 바로 그때였다.
“빌어먹을. 어차피 이래 죽나 저래 죽나!”
“그래. 우리도 자존심이 있지. 강진혁 플레이어님한테만 모든 걸 맡길 순 없어.”
“이래봬도 10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입사한 거라고!”
각종 마법들이 일제히 메두사에게 향했다.
한 번에 승부를 낸다는 생각으로, 마력을 모조리 쏟아 부은 일격이었다.
눈부신 빛이 일제히 점멸했다.
콰아아앙!
퍼어엉!
대리석 바닥에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겼고, 천장과 벽에서 잔해들이 무너져 내렸다.
융단 폭격이 가해진 것 같은 자리에선 자욱한 먼지가 일어났다.
엄청난 마력이 집중되었다는 방증.
하지만.
단지 그뿐이다.
아무리 갖고 있는 최고의 스킬을 구사한들 신화 속 마수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정말이지 인간들이란…… 예의가 없는 종족이구나. 지금 내가 저 건방진 애송이와 대화를 하고 있는 게 보이지 않는 게냐.”
메두사가 짜증 섞인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어느새 손에 쥐어져 있는 채찍에선 붉은 화염이 타오르고 있었다.
쐐애애액!
순식간에 뻗은 채찍이 가장 앞에 서 있던 탱커에게 향했다.
“컥?”
탱커가 반사적으로 방패를 들어올렸다.
“막겠다고? 너희 눈엔 이 몸이 석화밖에 쓰지 못하는 얼간이로 보이더냐?”
맹수의 척추도 단숨에 으스러뜨릴 수 있는 뱀의 힘.
그것이 메두사가 갖고 있는 또 하나의 능력이었다.
채찍이 탱커의 몸을 완전히 휘감았다.
그걸로 끝이다.
콰드드득!
“으아아악!”
방패는 물론, 철로 만든 갑주가 일격에 우그러졌다.
당연히 그 안에 있던 사람 또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곤죽이 되어 버렸다.
짙은 피분수가 뿜어졌다.
전신이 붉게 물든 메두사가 플레이어들에게 경고했다.
먹잇감 주제에 감히 끼어들 자리를 착각하지 말라고.
“으으…….”
“태, 탱커가 공격 한 번을 견디지 못하다니…….”
‘일괄 통솔’로 인해 올랐던 사기가 눈 녹듯 사라졌다.
그야 그럴 수밖에.
이쪽은 모든 화력을 퍼부어도 소용없는데.
반대로 상대는 가벼운 손짓 한 번으로도 탱커를 압살해 버렸다.
승산이 없는 싸움이다.
계속 덤벼봤자 계란으로 바위 치는 꼴밖엔 되지 않는다.
“버러지들은 이만 퇴장하거라. 너희들은 내 신전의 장식품이 될 자격조차 없으니까.”
채찍이 다시 한번 쇄도했다.
완전히 전의를 상실한 패잔병들을 쓸어버리기 위해서.
‘아무리 발악해도 안 되는 건가.’
이영권이 입을 일자로 꾹 다물었다.
그런데.
콰아앙!
직선으로 뻗은 채찍이 무언가 튕겨 나갔다.
무식할 정도로 무거웠던 흉기가 너무나 가볍게 막혔다.
“거. 그리스 학교에선 선생님이 약한 애들 괴롭히지 말라는 것도 안 가르칩니까?”
방패를 든 진혁이 혀를 찼다.
시간벌이라도 좀 되면 이영권에게 맡긴 뒤, 메두사를 잡을 함정을 준비하려고 했는데.
수준 차이를 보니 시체만 한가득 쌓일 듯싶었다.
“구, 구해 주셔서 감합니다.”
“화가 난 지렁이는 제가 맡겠습니다. 공대장님은 공대원들 데리고 미궁 밖으로 나가세요. 지금 당장요.”
진혁이 다시 한번 선을 그었다.
레이드에 있어 도움이 되는 자와. 있어봤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자.
그 둘 중에 싸울아비가 어디에 속해 있는지 알려 준 것이다.
“…….”
이영권이 무기력함에 몸을 떨었지만, 아주 잠시뿐이었다.
여기서 오기를 부리는 건 용기가 아닌 만용이었다.
그 정도는 스스로도 구분할 줄 알았다.
“행운을 빌겠습니다. 강진혁 플레이어님.”
이영권이 짧게 고개를 숙였다.
***
공격대가 모두 퇴각할 때까지 메두사는 움직이지 않았다.
흥미 없는 먹잇감이야 아무래도 좋다는 눈빛이다.
대신.
그 모든 관심은 진혁에게 집중된 상태였다.
“화가 난 지렁이라는 것은 나를 두고 한 말이더냐?”
“하하. 제가 문과 출신이라서 파충류랑 절지류 구분하는 게 어렵더라구요. 대충 기어 다니니까 비슷한 거 아닌가요?”
“호오. 나를 화나게 하면 곱게 죽지 못할 텐데. 계속해서 주둥아리를 놀릴 모양이구나?”
“미안하지만, 여기서 죽을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거든요. 사실, 죽을 정도로 위험하지도 않을 것 같지만요.”
진혁이 이죽였다.
반면, 메두사의 얼굴은 처음보다 더더욱 험악하게 변했다.
일부러 도발하는 이유?
간단하다.
결계사로 전직하기 위한 마지막 조건.
바로 보스 몬스터를 결계 안에 생포하는 것이니까.
그리고 그걸 위해선…….
[메두사가 Lv19 ‘고르곤의 권역’을 발동합니다!]우우우웅!
신전을 전체를 아우를 정도로 넓게 퍼지는 마력.
그래. 메두사가 이 스킬을 발동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걸렸어.’
공격력을 극대화해 주는 대신 특유의 변칙적인 움직임이 둔화되는 스킬.
‘고르곤의 권역’은 양날의 검이다.
물론, 메두사 입장에서는 고작 인간 하나 따위의 움직임으론 자신에게 상처 하나 입힐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다.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이들을 석상으로 만들어 왔으니 자신감이 넘칠 수밖에.
‘그런데 그런 말이 있잖아?’
계속해서 이기기만 해 온 건.
그저 지금까지 상대를 잘 만나 온 것뿐이라고.
“고작 뉴비들을 상대로 양학해 온 것 가지고 우쭐대면 안 되지.”
“건방진! 네놈은 아예 산 채로 녹여서 먹어 주마!”
메두사가 보랏빛이 도는 액체를 뿜었다.
고르곤의 권역 버프가 중첩된 상태라 산성액은 닿는 게 무엇이든 순식간에 부식시켜 버릴 수 있는 위력을 지녔다.
‘역시, 다리 쪽을 노리는군.’
먹잇감을 신선하게 먹고 싶어 하는 성향 탓일까?
메두사는 언제나 대상의 다리를 노렸다.
진혁이 양다리에 마력을 집중했다.
탓!
‘검마제왕보’가 발현되자, 진혁의 신형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산성 액이 바닥에 닿는 속도보다 진혁이 메두사의 머리 위로 이동한 게 한 발 빨랐다.
완벽하게 뒤를 잡은 진혁이 손바닥을 뻗었다.
우우우웅!
허공에 고대 룬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결계 ‘봉인의 관’이 발동됩니다!]당연한 말이지만, 보스몬스터를 가둘 수 있는 결계를 만들기 위해선 꽤나 까다로운 술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여태껏 전투 시 결계를 즐겨 사용하지 않았다.
아무리 고이고 고인 진혁이라도 전직을 하기 전엔 룬어의 배치나 마력의 양을 조절하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푸른 막이 메두사의 주위를 감쌌다.
“이딴 유리벽 따위로 감히 나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메두사가 가소롭다는 듯이 채찍을 휘둘렀다.
콰콰콰콰쾅!
굉음과 함께 결계 한쪽이 박살났다.
‘흠.’
역시, 몇 초 정도 번 걸로는 보스를 가둘 결계를 만들기엔 무리다.
최소한 초가 아닌 분 단위의 시간이 필요할 터.
그렇다면.
진혁이 ‘검마제왕보’의 사용을 해체했다.
동시에 ‘거인의 손아귀’를 사용해 팔을 강화했다.
피식!
메두사의 입에서 가소롭다는 조소가 흘러나왔다.
단순히 힘을 증가시키는 강화계열은 메두사의 입장에서 상대하기 너무나 손쉬운 능력이었으니까.
“정면 승부를 하겠다라…….”
표정이 다소 누그러지고 말투가 부드러워졌다.
죽이겠다는 생각을 접어둔 게 아니다.
이전처럼 여유를 갖고 가지고 놀다가 먹어치우겠다는 뜻에 가깝겠지.
방패로 비친 모습 너머로도 그 의중이 진하게 전해졌다.
“날파리처럼 도망 다니는 건 이제 끝난 모양이구나?”
“그냥 하던 대로 말하세요. 가식적인 말투, 적응 안 되니까.”
“후후. 너무 차갑게 굴지 마렴. 네가 아픈 곳을 찌르니 발끈했던 거란다.”
메두사가 생긋 웃었다.
“헌데, 그 연약한 팔을 강화한들 무얼 어쩌려고 그러는 것이냐? 설마, 스킬 하나 사용했다고 해서 나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연약하다고요?”
진혁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글쎄.
이 스킬을 사용한 건 한 번뿐이긴 하지만, 연약하다는 것과는 거리가 좀 먼데.
무엇보다 간극 스탯과 적응형 스탯까지 활성화되어 있는 지금.
거인의 손아귀는 단순히 악력이나 올려 주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멀어도 너무 멀지.’
진혁이 천천히 손을 뻗었다.
손가락에 닿은 기둥.
바로 그 순간.
우두둑!
손가락이 돌 속으로 파고들며, 5m가 넘는 기둥이 통째로 뽑혔다.
“보아하니, 숙녀분도 힘 싸움에 꽤나 자신이 있는 모양인데. 마침 저도 어디 가서 밀리진 않거든요.”
그러니 한번 해 보자고.
어느 쪽이 더 화끈하게 놀 수 있는지.
“이, 이런 무식한……!”
메두사가 질린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
콰아앙!
퍼걱!
진혁이 기둥을 휘두르면, 메두사가 채찍으로 기둥을 박살냈다.
단순한 힘과 힘의 대결이다.
분명, 그렇다.
틀림없이 그럴진데…….
‘뭐지?’
메두사는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전신에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은 의문.
그 이유는 머지않아 밝혀졌다.
‘……공격에 살기가 없어?’
그렇다.
상대가 휘두르는 기둥은 그저 휘두른다는 목적에 충실할 뿐, 적을 죽여야겠다는 집념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설마?
메두사의 동공이 가늘어졌다.
“너, 이 능구렁이 같은……!”
날카로운 고함 소리와 함께.
방패 너머로 상대가 환하게 웃는 게 보였다.
“아예 멍청하진 않은데 아쉽네. 기왕이면 조금만 더 빨리 눈치 채지 그랬어?”
진혁이 준비해 둔 카드를 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