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105)
105화. 고인물이 펫을 조련하는 방법 (1)
거래가 성사되었다.
물론, 거래를 하는 장소는 미궁 내부가 아니다.
“제가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도서관에서 마셨던 커피 한 잔이 그리웠거든요. 역시 좋은 커피는 아늑한 곳에서 마셔야 그 풍미를 더할 수 있는 법이죠.”
진혁이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그런데.
[흐음. 그렇다면 일단, 이쪽으로 오는 게이트를 열어드리겠습니다만…….]릭이 말꼬리를 흐렸다.
뭐랄까?
무언가를 고민하고 있는 듯한 말투랄까?
목소리에서 망설임이 묻어나왔다.
하지만, 아주 잠시뿐이었다.
[후후. 아닙니다. 의외로 일이 재밌게 돌아갈 수도 있겠군요.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강진혁 플레이어님이라면 이곳에 올 자격이 있습니다.]릭이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었다.
뭐지?
대도서관을 새로 인테리어 하기라도 한 건가?
진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바로 그때.
우우우웅!
눈앞에 거대한 게이트가 나타났다.
‘이건……?’
진혁의 미간이 가늘게 좁혀졌다.
지금까지 봤던 그 어떤 게이트들과도 다른 모양.
새하얀 상아로 만든 토대와 그 한가운데서 일렁이는 황금색 운무는 한 눈에 봐도 범상치 않아 보였다.
‘그런 거였나.’
이제야 릭이 하려던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이해가 됐다.
엘프들의 마을에 가기 전에 적당히 아래층에 있는 던전이나 돌면서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는데.
‘재밌네.’
아무래도 단순히 거래만 하는 수준에서 끝날 것 같지는 않았다.
진혁이 걸음을 옮겼다.
일렁이는 게이트의 표면을 넘어서자 즉시 시야가 까맣게 물들었다.
우우우우웅!
암전되었던 시야가 밝아졌을 땐. 보이는 경치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
이글거리는 태양 아랜 찬란했던 고대 문명을 간직한 도시가 펼쳐졌다.
“이야….”
진혁이 마른 숨을 내쉬었다.
벌써부터 입술이 바짝 타들어갈 것만 같다.
바로 그 때.
“어서 오시죠. 강진혁 플레이어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검은색 정장을 입은 릭이 진혁을 반겼다.
하여간. 이 땡볕에서도 정장은 포기하지 못 하는 건가?
보는 것만으로도 이쪽이 다 더울 지경이다.
“대도서관으로 갈 줄 알았는데, 게이트가 이런 곳으로 이어질 줄은 몰랐네요. 어디 휴가라도 즐기고 계신 겁니까?”
진혁이 모른 척 너스레를 떨었다.
“하하하. 저도 휴가였으면 좋겠습니다만, 업무 차 이곳에 온 겁니다. 그 왜…… 있잖습니까? 진혁 님도 잘 아시는 이집트 신격들. 그분들이 있는 장소가 바로 이곳입니다. 마침 그분들도 진혁님을 만나고 싶어 했으니 꽤나 잘됐다고 해야 할까요?”
그렇다.
시련의 탑 42층.
플레이어들이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 하는 탑의 상층부가 바로 이곳이다.
그리고 이곳으로 초대했다는 건. 과거에 이집트 신격들의 비호를 받는다고 거짓말 쳤던 것도 들통 났다는 뜻이겠지.
‘내가 신격들 사이에서 쩔쩔 매는 걸 보고 싶다 이건가?’
‘그것도 아니면 그 과정을 어떻게 대처하는지 보고 싶다는 건가?’
둘 중에 어느 게 목적인지는 모르겠지만…….
글쎄.
무얼 상상하든 결과는 예상과 다르게 흘러갈 거다.
***
릭의 안내를 따라 도시 안으로 들어가자. 수많은 시선들이 집중됐다.
인간은 아니다.
몸은 사람의 것을 하고 있었으나, 머리는 독수리나 뱀 고양이 쟈칼 등이었으니까.
‘42층의 거주민들을 벌써 보게 되는군.’
진혁이 과거의 일을 추억하며, 감상에 빠졌다.
정상적이라면 한참을 뒤에 와야 할 층계였으나, 릭 덕분에 꽤나 흥미로운 경험을 하게 생겼다.
레벨100을 찍기도 전에 신격들을 직접 만나게 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기도 했고.
그렇게 진혁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동안. 거주자들도 신기하다는 듯 진혁을 바라봤다.
“야!야! 저것 봐. 인간이야.”
“호오. 탑에 인간들이 들어왔다는 건 들었지만, 벌써 여기까지 왔을 줄이야.”
“릭 씨랑 같이 온 걸 보면, 게이트를 통해 넘어온 모양인데?”
“굉장하네. 관리자의 인정을 받다니. 인간 중에서도 특별하다는 거잖아?”
“어쩌면 ‘선택’을 받으러 온 걸 지도 몰라.”
“벌써?”
웅성이는 소리가 커졌다.
‘이거 완전히 동물원 코끼리가 된 기분이네.’
진혁이 쓴웃음을 머금자, 옆에서 걷던 릭이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이곳엔 처음 오실 테니 구경을 좀 시켜드리고 싶었는데, 오히려 과도한 관심을 받게 해드린 것 같군요.”
“아뇨. 나름 신선하고 좋네요.”
42층 구경이야 뭐… 굳이 할 필요도 없다.
워낙에 익숙한 곳이었으니까.
아누비스의 침실에 있는 13번째 화분이 짝퉁이라는 것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순진한 뉴비 행세를 해야겠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능구렁이 같은 릭의 의심을 받는 건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으니.
“그나저나. 이집트 신격들이 절 만나고 싶어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예. 맞습니다.”
“영감님께서 짓궂게 웃는 걸 보면, 그리 좋은 이유는 아닌 듯싶습니다만.”
“진혁님께서 자신들의 비호를 받는다고 사기를 치신 걸 안 뒤로……. 흠. 이렇게 말씀드리죠.”
릭이 저 멀리 보이는 사막의 한켠을 가리켰다.
평지에 움푹 파인 크레이터가 꽤나 인상적이었다.
“그 당시. 스핑크스와 피라미드가 있던 자리였습니다.”
짤막한 과거형의 문장.
그러니까.
화가 날 대로 나서 자기 집 안방을 죄다 부쉈다는 뜻이다.
말을 끝마친 릭이 물끄러미 진혁의 반응을 살폈다.
압도적인 신격의 힘 앞에 겁을 먹거나. 자신이 한 짓을 후회하길 예상하면서.
하지만.
“아깝네요. 보물도 꽤 많이 있었을 텐데 그걸 왜 다 부시고 난린지. 하여간 있는 놈들이 더하다니까.”
진혁은 혀를 찰 뿐. 조금도 겁을 먹은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진혁님은… 두렵지 않으십니까?”
상대는 고고한 신격.
탑의 상층을 지배하는 절대자다.
반면, 진혁은 이제 막 탑에 들어와 저층을 등반하는 한낱 플레이어였다.
두 대상을 비교하는 것부터가 모순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글쎄요. 50층도 아닌 42층을 두려워해야 하나요?”
진혁은 빙그레 웃었다.
대체 무어란 말인가 이 자신감은.
마치, 신조차도 감당할 수 있다는 것 마냥. 그 오만함은 하늘을 찔렀다.
배짱이 두둑한 것도 이쯤 되면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하지만 왜일까?
릭은 그 자신감이 마냥 터무니없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저.
수없이 많은 존재들을 겪으며 다져진 본능이 그렇게 말할 뿐이었다.
“푸하하하! 과연! 역시 진혁님은 실망 시키는 법이 없군요. 재밌습니다. 정말로 흥미로워요. 오랜 세월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삶이 지겨워지려 했었는데, 오래 사는 게 마냥 나쁜 것도 아닌 듯싶습니다.”
릭이 진심으로 만족한 듯 광소를 터뜨렸다.
처음 본 순간부터 한 가지 만큼은 확신했다.
강진혁이란 플레이어가 갖고 있는 매력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거라고.
이번에도 곤란한 상황을 만들어 상대를 떠보려고 했는데…….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느낌이 듭니다. 진혁님이라면 언젠간 이곳까지 올 수 있을 거라는 묘한 느낌이 말이죠.”
“이상하네요.”
“이상하다니. 어떤 게 말입니까?”
“저도 멀지 않은 미래에 이곳에 올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과연….
여전히 그 다운 말이다.
릭의 입 꼬리가 더더욱 위로 올라갔다.
“껄껄! 저 또한 그 날을 고대하고 있겠습니다. 물론, 그때는 메두사 보다는 더 큰 거래물품을 갖고 오셨으면 좋겠군요.”
그 뒤로 둘은 시답잖은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하얀색 대리석으로 지은 궁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곳이 바로 이집트 신격들이 기거하는 장소.
[하얀 오아시스]다.“저는 잠시 안에 들어갔다 오겠습니다. 저희가 도착한 사실을 경비들에게 알려야 하거든요.”
“예. 그렇게 하세요.”
짧게 대답한 진혁이 혀로 아랫입술을 적셨다.
‘지체 높은 분들을 만나기 전에 간단히 준비를 좀 해야겠군.’
어떤 이벤트가 있을지 예상이 갔기에, 거기에 따른 대비가 필요했다.
‘아무리 내가 고인물이라도 신격들을 만나는데, 그 녀석들을 만나는데 맨몸으로 부딪칠 순 없지.’
진혁이 개인 상태창을 활성화 했다.
현재 보유한 코인은 2,153.188.
5층의 ‘선택의 통로’ 동영상이나 기존에 올려뒀던 동영상들이 꾸준하게 수익을 가져다 준 결과물이었다.
대형 길드 전체가 갖고 있는 코인과 비교해야 할 양이었지만. 신격에 대항할 수 있는 아이템들을 사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상관없다.
‘언제부터 내가 코인 따위에 연연한 것도 아니고.’
부족하면 그 나름대로 해결책을 찾으면 그 뿐.
고인물에겐 고인물만이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진혁이 빠르게 ‘코인 거래소’에 있는 아이템들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참….”
“푸하하! 왜 그래? 나는 재밌기만 하구만.”
“멍청한 소리 지껄이지 마라! 저 녀석 때문에 내가 얼마나 당했는지 벌써 잊었단 말이냐?”
궁전 내부에서는 여러 개의 목소리가 오갔다.
하나 같이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이다.
그야 그럴 수밖에.
지금 진혁의 눈앞에 있는 이들은 ‘신’이라는 이름으로 추앙받는 존재들이었으니까.
손짓만으로도 산을 무너뜨리고 언령으로 탑 전체에 영향력을 미치는 절대자.
감히 정면으로 쳐다보기 힘든 격을 갖고 있는 이들이 바로 이들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여유를 잃지 않던 신격들은 지금 당황하고 있었다.
어이가 없어 하는 호루스와.
흥미로워하는 오시리스.
물론, 아누비스야 당한 게 많으니 분노가 머리 꼭대기까지 차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중심엔 진혁이 있었다.
“메두사를 넘기는 대가로 이곳에 보관 중인 ‘알’을 하나 받고 싶은 게 그리 무리한 요구인가요? 호루스 님의 컬렉션을 생각하면 그리 손해 보는 거래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어디서 알의 존재에 대해 주워들었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호루스가 선을 그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예 고려하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글쎄요. 이래봬도 제가 야생동물 길들이는데 제법 일가견이 있거든요.”
세상에 나쁜 동물은 없다고.
펫을 길들이는 덴 그에 적합한 방법이 있다.
“환수를 일반 동물로 취급해버리다니. 아무리 뭘 모른다고 해도 너무나 무지하구나.”
호루스가 기가 막히는지 짧게 한숨을 내뱉었다.
반면, 오시리스는 턱을 쓰다듬으며 두 눈을 반짝였다.
자신들을 상대로도 당당하게 요구하는 모습이 꽤나 흥미롭게 다가왔던 것이다.
“왜? 한 번 줘 봐. 재밌을 것 같은데?”
“오시리스!”
“아니, 저 녀석 길들이기는커녕 부화시키는 것도 하지 못 할 거 아니야? 그러니까 그냥 넘기자고. 그것도 싫으면 아예 그냥 메두사를 빼앗아 버리든가.”
쿠쿠쿠쿠쿠쿠!
오시리스가 살며시 힘을 드러냈다.
순식간에 공기가 얼어붙기 시작했다.
과연, 신격은 가볍게 감정을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재앙을 불러일으키는 수준이다.
상황이 험악해지려하자, 진혁의 옆에 있던 릭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허허. 설마, 이 늙은이 앞에서 탑의 법칙을 어기겠다는 말씀은 아니겠지요? 강진혁 플레이어님은 제 손님의 자격으로 이곳에 왔습니다. 인간을 갖고 노시는 거야 얼마든지 좋습니다만, 정해진 범위 내에서만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아. 농담 한 번 해본 거야. 나도 알지. 그 빌어먹을 법칙 정도는.”
법칙이라는 말에, 오시리스가 모았던 마력을 단번에 흩어버렸다.
바로 그때.
“다 필요 없다.”
처음부터 이를 갈고 있던 아누비스가 나섰다.
쿠웅!
허공에서 2m가 넘는 미라가 나타났다.
전신을 칭칭 감은 붕대는 전형적인 미라의 것이었지만, 녀석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은 여느 던전의 보스에 밀리지 않았다.
“5초. 내 대전자를 상대로 단, 5초만 버티면 네놈이 원하는 대로 메두사와 환수의 알을 교환해주지. 이거라면 법칙에도 어긋나지 않을 터. 어떻게. 조건을 받아들이겠나?”
아누비스가 손가락을 폈다.
“5초만 버티면 된다 이 말씀입니까?”
“그렇다. 하지만 대전이라는 게 언제든지 상대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
아누비스의 말은 끝을 맺지 못 했다.
대화와 대화의 공백이 생긴 찰나. 번개처럼 가로지른 검격이 미라의 몸을 훑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키에에에….”
거대한 미라의 몸이 반으로 갈라졌다.
휘청하고.
접합점을 잃어버린 상체가 등 뒤로 넘어갔다.
궁전 내부가 침묵에 잠겼다.
“그럼, 죽여도 상관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진혁이 생긋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