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109)
109화 랭커 섭외. ‘시련의 탑을 오르다’ (2)
차에서 내린 첫 번째 인물이 보였다.
허리까지 오는 긴 금발에 푸른 눈동자.
마치, 신화 속에서 회자되는 여신이 강림하기라도 한 것 같은 외모다.
“허…….”
“꿀꺽.”
청순함과 아름다움을 간직한 소녀의 모습은 경외심마저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기자들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 암스테르담의 성녀다!”
“세상에나…….”
“유럽의 랭커가 기습 방한을 했다고?”
중화 길드에서 온 플레이어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인지도.
무려 ‘100인의 플레이어’ 중 하나로 손꼽히는 테레사가 한국에 왔다.
“이, 이곳엔 어쩐 일로 오신 겁니까?”
“한국에 아는 지인이라도 있는 건가요?”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테레사가 곤란한 듯 눈치를 보다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아…… 저. 강진혁 플레이어님을 뵈러 왔어요. 이곳에 계시다고 들었거든요.”
갑작스러운 방한만으로도 뉴스거리인데, 그 이유가 진혁을 만나기 위해서였다니.
이건 관심을 갖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
특종이다.
“그럼, 단지 그것 때문에 유럽에서 한국까지 오신 겁니까?”
“예. 맞아요.”
“긴 비행을 하시느라 많이 힘드셨을 텐데, 강진혁 플레이어님과는 어떤 관계인지 여쭤 봐도 될까요?”
기자의 민감한 질문에 테레사가 멈칫했다.
복잡한 심정이 담긴 표정으로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믿어야 할 친구……예요.”
이내 생긋 웃으며 대답했다.
이 말은 거짓말이 아니다. 가식이나 과장도 아니었고.
테레사는 그만큼 순수하게 진혁을 믿고 의지하고 있었다.
또 한 편에선 기자들이 건장한 체구의 노인을 둘러싼 상태였다.
결코 이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되는 인물.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상태가 묘연했던 무도가.
바로, 유천영이었다.
“불치병에 걸리셔서 병원에서 요양 중인 걸로 알고 있었는데, 몸은 다 회복하신 겁니까?”
“유천영 님께서도 강진혁 플레이어와 알고 계신 겁니까? 부탁입니다. 한 마디만 말씀해 주십시오!”
엄청난 관심이 몰렸다.
중화 길드 쪽에서 뭐 하나라도 건질 거리가 있나 기웃거리던 기자들까지 어느새 모두 이쪽으로 모여든 상황이었으니까.
홍덕표가 흙을 한 움큼 입속에 쑤셔 넣은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걸 신경 써 주는 사람은 없었다.
막말로 지금 홍덕표가 차에 치이든, 팬티를 내리든, 기자들은 눈길조차 주지 않을 것이다.
“강진혁 플레이어는 이 늙은이의 목숨을 구해 준 은인이네. 그에겐 평생을 갚아도 갚지 못하는 빚을 지었지.”
유천영도 입을 열었다.
한국 최강. 아니, 시련의 탑이 나타나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명성 높은 무도가 중 하나인 유천영의 입에서도 진혁의 이름이 나왔다.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는 ‘마력 폭주증’.
그런데 그 불치병을 낫게 해 준 사람이 진혁이었다니.
이번에도 또다시 거대한 동요가 일어났다.
“대, 대체…… 강진혁 플레이어는 정체가 뭐야?”
“전투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의학에까지 조예가 있다고?”
“이번 달 새롭게 집계되는 100인 랭킹에 바로 들어갈 거라고 하더니. 이제 보니 그러고도 남겠어.”
“100인이 문제냐? 지금 강진혁 플레이어보다 잘 나가는 사람이 없는데? 쌓은 업적만 봐도 아예 비교가 불가능하구만.”
같은 한국인이라서가 아닌 객관적인 사실.
공인이었기에 함부로 말을 하지 못했을 뿐이지 기자들의 마음속엔 이미 순위가 굳어진 상태였다.
마지막으로 또 다른 무리의 기자들이 차에서 내린 세 번째 인물을 향해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검은색 정장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그러나 얼음처럼 차가운 이미지를 간직한 남성.
검성. 천유성이었다.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분명, 한국에 있는 모든 길드의 권유를 걷어찼다고 들었는데, 강진혁 플레이어의 부름엔 어째서 응답하신 거죠?”
그렇다.
혼자서 탑을 오르는 천유성은 그동안 압도적인 실력으로 던전과 미궁을 클리어해 나갔다.
거침없는 그 행보에 수많은 길드들이 백지수표를 꺼내며 러브콜을 보냈으나…….
천유성은 그들 중 어느 누구에게도 답장 한 번 보내지 않았다.
계약조건을 들어보기는커녕 존재 자체를 무시해 버리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하지만, 그 철벽같던 인물이 진혁을 만나기 위해 왔다니.
“강진혁 플레이어와는 동료 관계인 겁니까?”
그것 외엔 설명할 길이 없었다.
허나 동료란 말에. 천유성의 눈썹이 역팔자로 휘었다.
쿠쿠쿠쿠쿠……!
몸에서 날카로운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움찔하고.
깜짝 놀란 기자들이 몇 걸음인가 뒷걸음질 쳤다.
“동료가 아니다.”
강한 부정.
이어진 건 상대의 대한 애증이었다.
“언젠간 쓰러뜨려야 할 목표지.”
탑을 오르는 이유이자. 이를 악 물고 수련하는 목적.
모든 경쟁에서 이기기만 했던 천유성으로선, 진혁은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도전의지를 불태우게 만드는 태산이었다.
그리고.
진혁은 그 모든 광경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는 중이었다.
‘으음.’
나쁘지 않다.
역시. 굵직한 주연 배우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만큼 장관은 없다니까?
마음 같아서는 엘리스까지 꺼내고 싶긴 한데.
그랬다간 한국에 있는 모든 공격대가 총출동하겠지.
도로와 건물들이 불바다로 변하는 장면은 글쎄……. 별로 유쾌한 일로 기억되긴 힘들 거다.
***
“어, 어떻게 이런…….”
덜덜덜.
홍덕표가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말을 더듬었다.
상대의 기를 꺾어 버리기 위해 준비한 무대.
그런데.
대체 어째서 모든 결과는 예상과는 정반대로 흘러간단 말이냐?
애써 부른 기자단은 오히려 강진혁이란 이름이 지닌 브랜드의 가치를 올리는 데 사용됐고.
중화 길드는 상대의 화려한 인맥들로 인해 웃음거리로 전락해 버렸다.
나올 수 있는 경우의 수에서 최악의 카드를 뽑아든 셈이다.
당황스러운 건 중화 길드에 소속된 나머지 플레이어들도 마찬가지였다.
“……생각보다 더 엄청난 놈이었군.”
“테레사에 유천영…… 거기다 천유성이라니. 섭외가 불가능하다고 알려진 인물들만 모였네요.”
“…….”
저 세 명 앞에서라면 ‘중화’라는 간판도 빛이 바랜다.
S급 수준으론 턱도 없다.
적어도.
판이 이렇게 커질 줄 알았다면, 훨씬 더 높은 랭크의 플레이를 데리고 왔어야 했다.
‘아니.’
리더 격인 남자가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남궁천 님이 직접 오시지 않는 한 이 분위기를 바꿀 순 없다.’
중화 길드의 이미지를 고취하고 덤으로 흑운 길드로부터 막대한 코인과 아이템까지 뜯어내려고 했는데.
모든 일이 물거품으로 변하고 말았다.
단 한 명 때문에.
“뭐, 나름 재밌는 이벤트였어.”
진혁이 네 사람을 향해 어깨를 으쓱했다.
학연, 지연, 혈연.
한국에서 이 세 가지 요소들이 중요하다는 걸 부정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인맥으로 자랑을 할 거면 글쎄……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거기에도 급이 있다는 건 알고 있어야지.
***
한차례 폭풍이 지나갔다.
완전히 넋을 잃어버린 홍덕표는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걸 포기했다.
같이 왔던 중화 길드의 플레이어들 역시 녀석과 함께 무대에서 퇴장했고.
하긴, 그편이 현명하겠지.
이대로 TV에 나온들 테이블 위에 있는 보습 티슈만도 못한 신세가 될 테니까.
‘나는 왜 이렇게 자신만만하던 놈의 콧대가 뭉개지는 걸 보는 게 재밌는 걸까?’
이래서 고인물은 안 되나 보다.
가학적인 자극만 찾는데 익숙해지다 보니, 어지간한 걸로는 흥미를 느끼지 못 하는 몸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뭐가 그렇게 좋아서 실실 웃는 거냐?”
옆에서 지켜보던 천유성이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응?”
“됐다. 대답하지 않아도 뻔하지. 보나마나 홍덕표인지 뭔지 하는 녀석이 좌절하는 걸 즐기고 있던 거 아니냐?”
하여간, 이 녀석의 혀엔 필터링이라는 게 없는 건가?
뇌에서 입까지 다이랙트로 연결돼 있네.
“여기까지 와 준 건 고마운데. 개인적인 취미 생활까지 건들진 말아 줬으면 좋겠어.”
“건드리지 말아 달라고? 네놈 덕분에 내가 살고 있는 오피스텔이 박살난 걸 생각하면, 얼마든지 더 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만?”
“오피스텔이라면, 니가 살고 있는 집 말하는 거 맞지?”
고개를 갸웃하던 진혁은 곧바로 그 이유를 깨달았다.
아…… 맞다.
그러고 보니 5층에서 언노운의 정체를 천유성이라고 했었지.
남의 일이라서 그만 깜빡 잊어먹고 있었다.
크흠—!
양심에 찔렸는지. 진혁이 다급히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만은 널 믿고 있었어. 마인 협회 따위, 위대하신 검성한테 한 주먹 거리도 안 되지. 암. 그렇고말고.”
“……다시 한번 드는 생각이지만, 네 녀석의 능청스러움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적응이 되질 않을 것 같다.”
“칭찬으로 들을게. 그보다. 어땠어?”
“뭐가 말이냐?”
“마인 협회에서 보낸 놈. 이번에는 아주 작정하고 보냈을 텐데. 상대하기 어땠는지 말 좀 해 줘 봐.”
진혁의 말에, 천유성이 멈칫했다.
당시의 기억이 떠오른 건지.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가웨인이라는 놈이었다.”
호오.
그 이명은 ‘원탁의 기사’ 중 하나를 지칭하는 말.
다시 말해. 마인 협회의 간부가 직접 찾아갔다는 말이다.
“꽤 상대하기 성가셨나 보네?”
“그랬지.”
상대는 강했다. 치가 떨릴 만큼.
하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천유성이 묘한 눈으로 진혁을 바라봤다.
오피스텔에 쳐들어왔던 침입자는 분명,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강한 적이 건 틀림없었으나…….
왜일까?
그토록 강했던 괴물조차도 이 녀석과 비교하면 그리 버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적어도 아무리 해도 노력해도 넘어서지 못할 거라는 절망감은 들지 않았으니까.
그렇기에 천유성은 확신했다.
‘역시…… 이 능글맞은 놈보다 강한 놈은 없다.’
아무리 길드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랭커라도.
혹은 탑에 존재하는 상식을 뛰어 넘는 보스 몬스터라 할지라도.
이 고이다 못해 썩어 버린 화석의 적수조차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언젠간 널 꺾고 정상의 자리를 빼앗아 주마.’
이미 138번의 패배를 맛봤으나, 마지막에 웃는 자가 진정한 승자가 되는 법.
천유성은 이번에도 이길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진 채 부푼 꿈을 키워 나갔다.
둘 사이의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이후. 진혁은 테레사와 유천영과도 소소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괜찮아요. 유적 공략 당시. 진혁 씨 방송에 같이 출연해 주겠다고 약속했었으니까요.”
“허허. 나도 테레사 양과 같은 생각일세. 마음 같아서는 휘하의 문하생들을 모조리 데려오고 싶었지만, 자네가 극구 말려서 그나마 참은 거지.”
모두 진혁의 말 한 마디에 군말 없이 이곳까지 와준 고마운 사람들이다.
역시.
이래서 소중한 사람들에겐 잘해 줘야 하는 법인가 보다.
꼭 이번 일이 아니라도 앞으로 언제든지 도움이 될 수 있는 존재들이었으니까.
바로 그때.
“이제 세트장으로 와 주시면 돼요.”
김다운의 말에, 진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갈 시간이다.
***
방송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 이게 뭐야 대체.’
‘빌어먹을 우린 망했다. 망했다고!’
이 프로그램의 책임자인 최희재와 김다운은 이마에서 흐르는 식은땀을 연신 훔쳐야만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쟁쟁한 랭커를 어렵게 섭외해 놨더니.
방송 내용이 완전히 삼천포로 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저…… 강진혁 플레이어님? 그럼, 미궁은 어떻게 클리어하신 건지 말씀 좀 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음. 그거 별거 없어요. 맛없는 이끼랑 버섯 많이 먹으면서 열심히 송아지를 놀아 주면 됩니다.”
“그, 그게 끝이에요?”
“예.”
진혁이 천진난만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 진행자는 어떻게든 대화를 이끌어 나가려고 했지만, 질문마다 되돌아오는 답은 똑같았다.
“3층 던전은…….”
“그냥 다 피하면 됩니다.”
“그, 그럼 4층은…….”
“그것도 다 피하면 돼요.”
“5, 5층은요?”
“거긴 좀 열심히 피하면 돼요.”
아니, 진심으로.
그게 팁인 걸 어떡하냐?
애초에 시련의 탑은 누가 더 미친 듯이 몰두하는 것 외엔 공략할 방법이 없다. 진혁은 그 하나뿐인 공략 방법을 알려줬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