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110)
110화 랭커 섭외. ‘시련의 탑을 오르다’ (3)
[‘시련의 탑을 오르다’ 8회 차는 방송사의 사정으로 인해 한 주 휴방합니다.]휴방의 최종 승인을 요청하는 서류와 방송 분량을 담은 파일이 테이블 위에 놓였다.
“후우.”
강병찬 국장은 검지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여기에 사인을 하면, 그 즉시 방송국의 희망인 프로그램은 한 주 쉬게 되고 매출이나 인지도에 뼈아픈 타격을 입게 되리라.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번 영상을 그대로 내보냈다간 어떤 대참사가 날지 모른다.
무조건 피하라고만 외치는 고인물과.
울 것 같은 표정의 여성 진행자.
그리고 실제로 울고 있는 PD들까지.
그야말로 한여름 밤의 악몽을 영상 하나에 쑤셔 넣은 것만 같았다.
‘그래. 이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어.’
욕이 목구멍까지 나오긴 했지만, 한 번의 실수 정도는 이후에 만회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 지옥도를 연출한 장본인이 당당하게 자신의 몫을 요구하러 나타났다는 점이다.
‘양심에 시멘트를 두르고 다이아몬드로 코팅까지 한 건가.’
이 정도면 사탄도 고개를 가로저을 수준이다.
“진심으로 출연료를 달라. 이 말씀입니까?”
강병찬이 입을 열었다.
“당연하죠. 계약에 적혀 있는 내용이니까요.”
“저희는…… 하아.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이번 휴방으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보게 될 겁니다. 오히려 강진혁 플레이어님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란 말입니다!”
강병찬이 으름장을 놓았으나, 진혁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글쎄요. 저는 계약서에 나와 있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만?”
초청을 받았고.
그에 따른 팁을 풀었으며.
이제 그 대가를 받을 시간이다.
문제 될 건 없었다.
“그런 억지가 통할 거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예. 통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진혁이 한 호흡을 쉬었다.
그리고 이어진 말은 상대의 폐부를 깊숙이 찔렀다.
“이종수라는 BJ엔터테이먼트의 대표와 짜고 BJ들을 착취한 뒤, ‘계약서에 적힌 내용이니 억울하면 법대로 해라.’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그 사건을 뒤에서 움직인 게 강병찬 국장님인 걸로 알고 있는데 말이죠.”
알 만한 사람들은 전부 다 아는 사실.
강병찬 국장은 방송국의 적자를 메우기 위해 암암리에 거물급 BJ들과 접촉했었다.
큰돈이 된다는 이야기에, 몇몇 양심 없는 BJ들은 그와 손을 잡았는데.
그중 하나가 진혁이 소속되어 있던 엔터테이먼트의 대표인 이종수였다.
그리고 진혁은 바로 그때의 일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이곳에 왔다.
‘이종수야 맹그로브 나무에 죽었으니 죗값은 치를 셈이지만. 너는 아니지.’
방송을 접어야 했던 동료 BJ들의 복수를 대신해 주겠다는 거창한 명분까진 아니었지만, 그 당사자가 뒷돈으로 배를 두둑이 불리고 있는 꼴은 못 봐주겠거든.
겸사겸사 마정석도 얻어낼 생각이었으니 충분히 시간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아! 괜히 부정하거나 하지 마세요. 다 알고 온 거니까. 이건 어디서 건너들은 게 아닌 제 자신이 그 계약의 당사자 중 하나였습니다.”
“……!”
꿀꺽.
강병찬의 목을 따라 마른침이 넘어갔다.
정말로 상대가 노예계약을 체결했던 BJ 중 하나라면 그 어떤 말로도 속아 넘길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상대는 밑바닥 BJ가 아닌 S급.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화두가 되고 있는 플레이어 아닌가?
어설픈 거짓말을 했다간…….
‘빌어먹을 내 목이 날아나게 생겼군.’
강병찬은 빈혈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머리가 핑하고 도는 걸 느꼈다.
넥타이를 풀어헤치고 손으로 부채질을 했다.
열심히 머리를 굴려 봤으나 지금 이 상황을 모면할 만한 뾰족한 수는 떠오르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마정석. 바로 지급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그 전에 전화 한 통화만 하고 와도 되겠습니까?”
전화라…….
보아하니 어딘가에 조언을 구하거나 SOS를 치려는 생각인가 본데.
글쎄.
무슨 짓을 하든. 무슨 계획을 세우든.
그 모든 것들이 스스로의 목을 더 죄어 오는 결과만 초래할 것이다.
진혁은 이미 저 높은 곳에서 강병찬의 수를 모조리 읽고 있었다.
“그렇게 하세요.”
생긋 웃으며 대답하는 걸로 충분하다.
***
30분 뒤.
강병찬은 진혁과 함께 방송국 지하에 위치한 대형 창고로 향했다.
이곳은 한때 지하주차장 용도로 사용했으나, 시련의 탑이 도래한 후 각종 아이템들과, 특히 마정석을 대량 보관하는 창고로 그 쓰임새가 바뀌었다.
‘정확히는 탈세나 로비 등을 위한 것들을 보관하는 용도겠지.’
진혁이 신기하다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최첨단 시설로 지어진 시설답게, 문 하나를 통과하려고 해도 홍채나 지문 따위가 필요했다. 군사시설 뺨치는 철통보안이다.
그렇게 몇 번인가 보안용 문을 통과하자.
마침내 창고의 문이 열리며,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마정석이 나타났다.
“호오.”
진혁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과장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10m가 넘는 천장에 닿을 정도로. 이곳에 있는 마정석의 양은 상상을 초월했다.
눈이 시릴 정도였으니 더 이상 묘사해 봤자 입만 아프다.
바로 그때.
굳은 얼굴로 서 있던 강병찬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최 PD에게 들으니, 강진혁 플레이어님께선 마정석에 있는 마력을 흡수하려고 한다고 하더군요. 제가 들은 게 맞습니까?”
“예. 그런 용도로 쓸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제안 한 가지해도 될까요?”
강병찬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이 말을 꺼내기 위해서 30분 동안 얼마나 끙끙 앓았는지 느껴질 정도랄까?
귀엽네.
뭐 마려운 강아지마냥 눈치를 보는 게.
피식 웃은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들어보죠.”
“대충 아실 테지만, 저희가 보유하고 있는 마정석의 양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입니다. 최하급 마정석으로 약 35,000개를 보유하고 있으니까요. 저희는 그걸 강진혁 플레이어님에게 무제한으로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내일 아침 7시까지. 흡수하실 수 있을 만큼 전부 제공해 드리겠다는 뜻입니다.”
강병찬이 큰 인심을 쓰듯 말했다.
하지만, 진혁의 눈엔 그 의도가 훤히 보였다.
‘마정석의 흡수율은 극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
아무리 흡수율이 좋은 플레이어라도 최하급 마정석 1개를 흡수하는 데 5분이 넘게 걸릴 터.
아침 7시까지라는 시간제한이 걸려 있는 한 그 어떤 플레이어도 5억 원 어치의 마정석을 흡수할 순 없었다.
다시 말해 산더미처럼 쌓인 마정석은 먹임직스러운 미끼였고.
실제는 밤새도록 죽을 똥을 싸 봤자 1억 원치 흡수하는 것도 간당간당할 거란 소리다.
강병찬이 초조한 얼굴로 진혁의 대답을 기다렸다.
무려 손실액을 5분의1로 줄일 수 있는 기회.
호구가 전 재산을 올인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기꾼의 얼굴이…… 아마 저 중년 남성이랑 비슷할 것 같다.
좋아.
그렇게 원한다면 낚여 주도록 하지. 뭐 그게 어려운 거라고.
“알겠습니다. 내일 아침 7시까지. 제가 흡수할 수 있을 만큼만 마정석을 사용하겠습니다.”
“허, 헉! 저, 정말입니까?”
“뭘 그렇게 깜짝 놀라세요? 호구 하나 낚은 것처럼?”
“하하…… 그, 그럴 리가요. 저는 단지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합의를 하게 되어서 좋다는 뜻으로…….”
“예. 예. 어련하시겠어요.”
개소리를 들어주는 건 여기까지다.
진혁이 귀찮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강병찬은 진혁의 마음이 바뀔까 봐 걱정됐는지. 재빨리 문 쪽으로 달려갔다.
물론, 한 마디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자면, 마정석엔 도난 방지 스펠이 걸려 있어서. 아공간 인벤토리에 넣거나 하는 행위는 불가능하실 겁니다.”
“걱정 마세요. 그럼, 아침에 뵙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쿵!
문이 닫혔다.
[남은 시간: 11h:59m:59s]아침까지 남은 시간은 단 12시간.
스크린에 표시된 타이머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허겁지겁 마정석을 흡수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진혁은 서두르지 않았다.
대신 느긋하게 아공간 인벤토리를 열었다.
‘분명, 마정석을 안에 집어넣어선 안 된다고 했지. 인벤토리 안에 있는 걸 꺼내지 말란 말은 없었잖아?’
그렇기에, 조건을 위반한 건 아니다.
“우리 고구마. 어서 나와.”
진혁이 아공간 인벤토리 너머를 향해 손바닥을 뻗었다.
그러자.
뒤뚱뒤뚱!
검은색 피부에 노란 눈을 갖고 있는 파충류가 걸어 나왔다.
고대종. 고구마였다.
“모기!”
“그래그래. 저 안에 있느라 많이 외로웠지?”
진혁이 고구마를 끌어안고 격하게 예뻐해 줬다.
고구마도 혓바닥으로 진혁의 볼을 핥짝였다. 이건 반갑다는 뜻이겠지.
서늘한 촉감과 고개를 갸우뚱 거리는 모습이 미친 듯이 사랑스러웠다.
“다른 게 아니고. 배가 고플 것 같아서 불렀어.”
마정석 35,000개.
확실히 일반적인 플레이어는 흡수하다가 지쳐 나가떨어질 정도로 많은 양이긴 하다.
그러나, 이제 막 알에서 부화해 막대한 식욕을 뿜어내고 있는 고대종이라면…….
여기 있는 마정석은 결코 많은 양이 아니다.
오히려 부족할 정도지.
“모기?”
고구마가 귀엽게 고개를 좌우로 움직였다. 먹이라는 말에 작은 꼬리가 살랑였다.
“그래. 저 앞에 있는 게 전부 니 모기야.”
그러니.
“싹 다 먹어치워 버려.”
진혁이 차갑게 내뱉었다.
거기엔 일말의 동정심이나 망설임 따윈 섞여 있지 않았다.
‘내가 흡수율도 모르는 머저리로 보였다 이건데…….’
머리를 박고 사과를 해도 모자랄 판에 이런 개수작을 부리다니.
그게 얼마나 멍청한 짓이었는지 방송국 기둥뿌리를 뽑는 정도로 깨닫게 해 주지.
***
다음 날.
출근을 하는 강병찬 국장은 연신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흥이 날 수밖에 없었다.
최 PD의 조언 덕분에, 그냥 넘기기 힘든 손실을 대폭 만회할 수 있었으니까.
게다가 태연한 얼굴로 자신들에게 한 방 먹인 건방진 애송이에게 한 방 먹일 수 있단 사실에, 입 꼬리 또한 연신 위로 향했다.
‘돈도 돈이지만, 이게 더 통쾌하지.’
어차피 상대와는 친해질 수 없게 된 이상. 속이라도 시원해야 밤에 잠을 편히 잘 수 있을 것 아닌가?
휴방이 결정된 8회 차도 이후에 흑운 길드와 중화 길드 쪽에서 거물급 랭커를 보내 준다고 하니.
앞으로도 프로그램은 탄탄대로를 걷게 될 게 틀림없었다.
“오, 오셨습니까? 국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직원 한 명이 90도로 인사했다.
“어. 그래. 박 대리도 좋은 아침. 이른 시간부터 너무 땀 빼지 말고 커피라도 한 잔씩 마시면서 해. 허허.”
호랑이로 소문난 강병찬이었지만.
오늘만큼은 인자한 얼굴로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가벼운 발걸음이 이어졌다.
강병찬은 집무실에 서류가방을 내려놓은 뒤, 비서로부터 오늘 해야 할 스케줄을 보고받았다. 그리고 곧바로 방송국 지하에 있는 마정석 보관 창고로 향했다.
두근! 두근! 두근!
기대와 흥분으로 인해 심장이 빠르게 고동쳤다.
‘자 그럼, 우리 유명인께서는 과연 마정석을 몇 개나 흡수하셨을까?’
강병찬이 손바닥을 비비적대며 문을 개방했다.
그런데.
“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내부의 모습을 확인한 강병찬은 헛바람을 크게 들이마셔야만 했다.
보면서도 도저히 믿기 힘든 내부의 처참한 광경.
“마, 말도 안 돼. 그 많던 게 다 어디로 간 거야 대체!”
텅 비어 있다.
35,000개나 있던 마정석이 모조리 사라져 버린 것이다.
바닥에 있는 거라곤 마정석이었던 걸로 보이는 부스러기 파편들과.
“모기!”
짧은 다리로 빵빵하게 부른 배를 움켜쥔 채 뒹굴거리고 있는 파충류 한 마리.
그리고.
“아. 국장님 오셨어요? 죄송한데 혹시, 남는 마정석 있으면 좀 더 구할 수 있을까요? 저희 애가 아직 살짝 부족한 것 같아 보여서요.”
세상에서 가장 환하게 웃고 있는 진혁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