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111)
111화 경계를 허무는 거울 (1)
“모기!”
마정석 먹방을 제대로 찍은 고구마가 만족한 듯 기지개를 켰다.
작고 앙증맞은 날개와 꼬리가 일자로 쭉 뻗었다.
진혁은 그런 고구마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진심으로…… 이 녀석이 마음껏 먹고 무럭무럭 자랐으면 좋겠다.
‘어차피 여기 있던 마정석은 내 것이 아니기도 했고.’
그래. 가장 중요한 게 이거다.
남의 소중한 재산으로 쑥쑥 성장하는 게 가장 짜릿한 법이지. 밥그릇을 송두리째 싹싹 긁어 먹어도 조금도 아깝지 않다.
‘그럼 어디, 우리 고구마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좀 볼까?’
진혁이 ‘탐식의 눈’을 사용해 고구마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레벨 차이로 인해 대상의 상태창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당연히 이런 메시지가 나왔지만.
상관없다.
고구마는 단순히 타인으로 취급되지 않았으니까.
[‘주인’과 ‘펫’의 관계성으로 인해 레벨 차이가 무시됩니다.] [고구마]종족: 고대종(古代種)
나이: 1
레벨: 98
힘 105 민첩 98 체력 90 마력 192
Lv1 ‘ 산성침’, Lv1 ‘만찬의 시간’, Lv1 ‘애시드 브레스’, Lv1 ‘비행’, Lv1 ‘피어’
특징: 고대종이 전투를 할 경우 주인의 마력 또한 소모됩니다. 일반적인 전투의 경우엔 분당 5의 마력이 필요하며, 격렬한 전투의 경우엔 분당 15의 마력이 요구됩니다.
[경험치 분배는 이중으로 지원됩니다. 다시 말해 동일한 몬스터에 대해 주인과 펫은 각각 경험치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태어났을 때부터 강하긴 했으나. 35,000개의 마정석을 폭풍 섭취한 고구마는 그야말로 터무니 없는 마력을 자랑했다.
이건 뭐, 레벨 1부터 헤츨링에 육박하는 능력치다.
‘강하긴 한데. 대신, 전투를 하려면 마력 소모가 만만치 않겠어.’
현재 진혁이 보유하고 있는 마력은 80.
고구마를 전투에 동원할 경우 5분 남짓한 시간밖에 버틸 수 없었다.
‘이마저도 내가 함께 싸울 경우엔 그 시간이 훨씬 더 단축되겠지.’
정말로 필요할 경우에만 꺼낼 수 있는 히든카드라고 생각하는 게 좋을 거다. 어차피 그 정도로 아슬아슬한 위기가 올 것 같지는 않았지만…….
사람일이라는 게 만에 하나라는 게 있는 법이었으니까.
바로 그때.
덜컹!
문이 열리며, 익숙한 중년 남성이 들어왔다.
강병찬었다.
“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싱글벙글하던 얼굴이 완전히 우거지상이 된 걸 보니.
흠. 뭐랄까?
약간 불쌍한 것 같기도……는 개뿔.
식도를 따라 꿀떡꿀떡 넘어가는 사이다에 목이 따가울 정도랄까?
BJ 생활을 하며 쌓인 울분이 한 순간에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마, 마정석을. 전부 다 사용했다고? 거짓말이야. 하하. 이게 현실일 리가 없지. 하하하. 그래. 아직 나는 침대에 누워 있고 이건 꿈인 게 틀림없어.”
사람이 너무 큰 충격을 받으면 현실을 부정한다고 했던가?
강병찬은 실성한 사람처럼 연신 실소를 흘렸다.
허나 그는 알고 있을까?
이 악몽은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진혁이 강병찬에게 다가갔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것 같아서 좀 그렇긴 한데……. 슬슬 이종수와 했던 불공정 계약에 대한 피해 보상을 좀 받아야겠습니다.”
“뭐……? 피, 피해 보상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무슨 소리긴.
“이건 엄연히 출연료를 받은 것뿐. 과거에 당신이 했던 짓에 대한 피해 보상은 별개의 문제죠.”
죄를 2개 지었으면. 보상도 2가지 종류로 해야지.
어디서 하나로 퉁치려고?
별건사건이라는 말 들어본 적 없나?
“설마…… 이렇게 모든 걸 송두리째 가져가 놓고도 부족하다는 거냐? 이 악마 같은 놈! 네가 그러고도 인간이야? 엉? 인간이냐고!”
“당한 대로 그대로 갚아 주겠다는 게 욕먹을 일이라면야 뭐. 그 욕. 얼마든지 먹겠는데. 지금 그쪽이 큰소리를 칠 입장은 아니지 않나요?”
진혁의 눈썹이 역팔자로 휘었다.
동시에 차가운 마력이 스멀스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무려 S급 플레이어가 지닌 마력이다.
일반인 따위.
잠시도 버티지 못하는 게 당연할 수밖에.
“커헉…….”
그때서야 강병찬이 자신이 한 말이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깨달았다.
워낙 패닉에 빠져 있어서 물불 안 가리고 막 질렀었는데.
그 대상이 국가도 함부로 건들지 못 하는 괴물이라는 걸을 인지한 것이다.
“밑에 것들한테 아부나 듣고 지내느라 뇌가 말랑말랑해져 있는 것 같은데……. 잊지 마시죠. 지금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게 누구인지.”
말을 마친 진혁이 ‘방송 시스템’을 활성화 시켰다.
그곳엔 어젯밤 두 사람이 했던 대화가 저장된 영상이 그대로 실려 있었다.
힘으로 찍어 누르는 건 물론.
증거로 옭아매기까지 한다.
강병찬 입장에선 완전히 외통수에 몰린 꼴이 됐다.
“혹여라도 허튼 생각했다간. 9시 뉴스에서 보게 될 겁니다. 힘없는 개인 방송인을 착취하는 언론인의 횡포…… 이야. 이거 선거철이랑 맞물리면 여론을 의식한 국회의원 후보자들이 벌떼처럼 몰려들 것 같지 않습니까?”
정계까지 언급되자, 강병찬의 얼굴이 아예 사색이 되었다.
설마,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탓이다.
“제, 제발…… 그것만은! 그건 절대 안 됩니다. 저, 절대로요.”
“아. 걱정 마세요. 비밀은 안전할 겁니다. 만약, 그쪽이 고분고분하게만 군다면 말이죠.”
순한 리트리버가 된다면야 좋은 관계를 지속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지랄견인 비글이나 슈나우저가 될 경우엔 잃어버린 마정석은 애들 장난처럼 보이게 만들어 주지.
“…….”
흠칫하고. 강변찬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지금 진혁이 한 말이 단순한 협박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탓이리라.
“알……겠습니다.”
강병찬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걸로 또 하나의 쓸 만한 장기 말을 손에 넣었다.
***
시련의 탑 6층.
진혁은 아공간 인벤토리에서 ‘경계를 허무는 거울’을 꺼냈다.
실비아를 만나 엘프의 축제에 참가하기 전,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강해질 수 있는 수련법을 알려주겠다더니. 그게 이거였나?”
천유성이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진혁과 거울을 번갈아 바라봤다.
이번 레이드에서 여러 가지 잡일(?)을 처리하기 위해 부른 조력자.
검성이라면 그럭저럭 걸리적거리는 않는 패로 쓸 수 있다.
물론, 녀석의 성격을 고려해 적당히 말을 포장했다.
따라오면 단기간에 속성으로 강해질 수 있는 법을 알려 주겠다는 식으로 말이다.
“왜? 저기 윗공기 좀 마시고 하면 단번에 확 성장할 수 있어. 이 거울을 사용하면…….”
“나도 이게 뭔지 대충은 알고 있다. 정말 터무니없는 아이템을 잘도 손에 넣는군.”
“운도 좀 따랐고 그랬어.”
“운이라…… 뭐 그건 그런 걸로 넘어가 두지. 그보다, 탑의 위층을 공략하는 데 왜 내 도움이 필요한 거냐? 너라면 혼자서도 충분할 텐데?”
“응?”
정곡을 찌르는 말에 진혁이 움찔했다.
사실, 이런 식의 편법을 써서 보스에게 갈 경우. 추가적인 네임드 몬스터들이 나오는데.
그 녀석들은 영양가는 하나도 없는 주제에 상대하기는 더럽게 까다로웠다.
그래서 천유성을 시켜 적당히 몸빵이나 시키려고 했건만.
이 녀석. 의외로 경계심이 투철하다.
아무래도. 100번을 넘게 싸우다 보니 덩달아 눈치까지 빨라진 모양이다.
“크흠. 그 뭐냐. 내가 다 널 아끼고 생각해서 배려해 주는 거야. 당시에 탑을 함께 오른 플레이어들이 워낙 적었잖아? 당시 인연도 있는데, 다 같이 잘해 보자. 그런 의미지.”
진혁이 장황하게 변명을 했다.
적당히 추켜 세워주고 달래기도 하며, 상대의 마음을 흔들었다.
“…….”
그러나, 천유성은 여전히 믿지 않는 얼굴이었다.
젠장. 하여간 눈치 빠른 꼬맹이는 이래서 싫은데.
진혁이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아. 가기 전에 한 가지 말해 둘 게 있는데, 내가 정체를 살짝 숨기고 활동했거든. 시작하기 전에 먼저 말해 둬야 할 것 같아서. 사실…….”
“언노운이 너라는 것도 이미 알고 있다.”
천유성이 말을 끊고 끼어들었다.
단정적인 어투에서 느껴지는 확신.
천유성은 진혁과 언노운을 아예 동일선상에 못 박은 상태였다.
“편집을 해 봤자 네놈 특유의 움직임까지 속일 순 없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적어도 나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랬어?”
“너랑 비슷하게 경쟁할 수 있는 플레이어가 있다는 게 말이 안 됐으니까. 게다가 중2병 넘치는 모습만 봐도 너 외에 다른 누군가를 떠올릴 순 없었고.”
으음.
마지막 대사가 좀 걸리긴 하지만, 의외다.
이 찰거머리 같은 놈이 다른 사람을 다 인정할 줄도 아는구나.
“살다 보니 너한테 그런 말을 다 들어볼 때가 오네.”
“착각하지 마라. 네가 대단하다는 건 인정하지만, 결국 마지막에 넘어서는 건 바로 나다.”
이 전투광에게 대체 무얼 기대한 걸까?
결국엔 칼과 칼이 부딪치는 엔딩이 전부인 것을.
“그래…… 잠시 감동했던 내가 바보다. 바보야.”
진혁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몸을 돌렸다.
잡담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
이제는 새로운 층으로 넘어갈 시간이다.
‘드디어 이걸 쓰게 되는군.’
진혁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6층에선 결코 보일 리 없는 탑의 저 높은 곳.
오버랭크 등급의 판정을 받은 ‘경계를 허무는 거울’이라면 단숨에 10층까지 갈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아직 성장이 덜 된 지금. 10층을 가는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다.
아직 성장이 덜 된 지금. 난이도가 높은 곳을 갈 수 있다는 사실에 진한 흥분이 몰려왔기 때문이지.
‘간만에 재밌겠어.’
상층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단, 30분.
하지만, 그 정도면 충분하다.
충분하고말고.
고인물에게 있어 30분이란, 평범한 플레이어들의 30일과도 같았으니까.
진혁이 손바닥만 한 거울에 마력을 주입했다.
그러자 바로 그 순간.
우우웅!
[경계를 허무는 거울이 발동됩니다!] [대상은 플레이어 강진혁 외 1명(플레이어 천유성)입니다.]거울의 표면이 급속도로 팽창하더니, 이내 하나의 거대한 게이트로 변모했다.
마치…… 릭이 열었던 게이트와 유사한 느낌이다.
‘하긴, 이 정도면 인과율에 간섭할 수 있는 수준의 아이템일 테니까.’
40층대를 갈 수 있는 게이트나 지금 눈앞에 있는 게이트나 터무니없긴 마찬가지일 수밖에.
“호오. 이런 식인가. 이 정도로 강한 마력이라면 확실히 탑의 층을 뛰어넘는 것도 가능하겠군.”
천유성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래서 우리가 가려는 층이 몇 층이지?”
당연한 걸 왜 묻나?
진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10층을 열어 줘.”
6~10층 중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을 선택했다.
바로, [무적] 능력을 갖고 있는 보스 몬스터가 있는 곳을.
[게이트가 활성화 됩니다.] [10층 ‘전사들의 안식처’로 가는 길이 열립니다.]게이트의 표면이 일렁이는가 싶더니. 이내 진정되었다.
“과연, 너다운 선택이군.”
천유성이 피식 웃었다.
그리고 게이트를 향해 발을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