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112)
112화 경계를 허무는 거울 (2)
[경계를 허무는 거울이 유지되는 시간: 0h:29m:59s]짧은 상태 메시지와 함께.
눈앞에 보이는 시야가 완전히 바뀌었다.
눈부신 별빛이 쏟아져 내리는 초원.
그 한가운데에는 철갑옷으로 무장한 22기의 흑기사들이 도열해 있었다.
아직 잠들어 있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녀석들의 몸에서 나오는 마력은 심상치 않았다.
피부가 따갑다.
무의식적으로 내뿜는 기운마저도 어지간한 놈들보다 위라는 뜻.
‘전부 네임드급이겠지.’
진혁이 냉정하게 평가를 내렸다.
“…….”
천유성도 입을 꾹 다문 채 기사들을 가늠했다.
적의 역량과 자신의 역량을 저울질하는 거겠지.
“강하군.”
짧은 감상평.
하지만, 천유성이 이렇게 말할 정도라면 그건 결코 과대포장이 아니다.
대형 길드의 공격대가 5개 이상 연합으로 왔더라도 승부를 장담하기 힘들었을 테니까.
“꽤 강한 편이지. 그래서 어때? 해 볼 만하겠어?”
“다섯 정도까지는 동시에 상대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이상은 위험 부담이 늘어나겠지만. 물론……. 이 모든 가정은 저 끝에 있는 괴물이 깨어나지 않을 거라는 전제가 따라 줘야 할 테고.”
두 사람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그래.
역시 이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흑기사들의 끝에 있는 거대한 석상이었다.
“오랜만에 보네. 저 녀석도.”
진혁이 감회에 젖은 눈으로 석상을 바라봤다.
[시련의 탑]에서 수많은 플레이어들을 좌절시키고 포기하게 만든 원흉.죽지 않는 10층의 보스이자 가디언은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압도적인 위압감을 뿜어냈다.
나머지 흑기사들을 모두 합쳐도 저 태산의 발끝조차 따라가지 못하리라.
‘일단, 준비 정도는 해 둘까?’
이번엔 언노운으로 클리어한다.
[아공간 인벤토리가 활성화됩니다.]진혁이 아공간 인벤토리에서 기하학 문양이 새겨진 가면을 꺼냈다.
앞으로 정해 둔 언노운의 아이덴티티는 ‘결계사’.
스킬들을 사용하는 장면은 편집하고 결계를 사용하는 장면 위주로 영상을 재구성할 생각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언노운을 찾는 시청자들의 많으니 슬슬 등장시켜 줘야 할 때긴 하지.’
무엇보다 랭킹 1위와 2위를 동시에 진입하기 위해서라도 보스전의 적절한 분배는 필수적이었다.
‘흑기사들까지 전부 상대하려면 쓸데없이 소모되는 마력이 많아질 테니…….’
그건 피해야 한다.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여 주려면 힘을 아껴 둬야 할 테니까.
게다가 연출을 위해선 깔끔한 빌드업까지 뒷받침되어야 했다.
결국 그 둘을 모두 충족하기 위해선…….
“가라! 검성몬! 너로 정했다!”
진혁이 옆에 있는 천유성의 어깨를 툭 하고 건드렸다.
“빌어먹을! 넌 대체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어허. 수련이야. 수련.”
강해지고 싶다며?
그럼, 토 달지 말고 무조건 따라.
원래 무협지에서도 검 한 번 쥐려면 청소하는 데 1년, 밥 짓는 데 1년, 빨래하는 데 1년씩 뜸을 들이더만.
그걸 대폭 삭감해서 단기간에 속성으로 가르쳐 주는 거니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
“개소리하지 마라. 함께 싸우는 거라면 몰라도 혼자서 저 녀석들을 모두 상대할 순 없다. 아무리 나라도 무리란 말이다!”
흠. 역시 이렇게 나오나?
“그럼, 이렇게 하자. 네가 만약 저 기사들을 모조리 처리하고 보스한테 1분만 버티면 네가 원하는 거 뭐든지 들어줄게.”
그 말에, 천유성의 동공이 급속도로 팽창했다.
진혁을 쓰러뜨리는 것이야 말로 탑을 오르는 이유이자 숙원.
그렇기에, 지금 이 제안은 천유성에게 있어 절대적인 구속력을 지녔다.
“정말이냐?”
“그래. 어차피 나랑 1:1 대결을 원하는 거잖아?”
“만약 나중에 가선 말을 바꾸거나 모른 척 했다간…….”
“걱정하지 마. 성공만 한다면, 잠실 운동장이든 명동 한복판이든 원하는 데서 원하는 시간에 싸워줄 테니.”
“약속…… 반드시 지켜라.”
스릉!
천유성이 검을 뽑았다.
룬어가 각인된 검이 눈부심 검광을 흩뿌렸다.
[천유성이 고유 능력 ‘검의 노래’를 발동합니다!]그러자 바로 그 순간.
쿠구구구구!
침입자의 마력에 반응한 흑기사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2m가 훌쩍 넘는 신장과 1.5m에 이르는 양손 검.
검게 물든 철갑주에선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지만, 대조적으로 발걸음은 가벼웠다.
“이곳은 전사들의 안식처.”
“자격이 있는 자만이 올 수 있는 곳이다.”
“생전에 전사로서의 위업을 쌓지 못 한 자는 출입을 불허한다.”
“허나, 너는 자격이 없지.”
쇠를 긁는 듯한 음성이 쏟아졌다.
하여간, 기사도니 뭐니 하는 것들을 강조하는 놈들은 말만 들어도 피곤하다.
게다가 그것이 경험치 하나 주지 않는 놈들이라면 더욱더 맛대가리가 없다.
하지만.
꽉 막힌 외골수라는 부분에선 천유성도 어딜 가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수준이었다.
“저 녀석과의 대결을 방해한다면 모조리 베어 버리겠다!”
살벌한 말을 내뱉은 천유성이 단숨에 거리를 좁혔다.
콰아아앙!
‘추혼검’에 실린 강기가 흑기사의 검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흑기사의 몸이 지면으로 파고들었다.
힘 싸움에서 밀렸다는 증거.
“……인간!”
지금 한 번의 공방전으로 어느 쪽이 더 우위인지 결판났다.
허나, 문제는…….
이건 일대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쳐라!”
“건방진!”
흑기사 둘이 천유성의 측면으로 다가왔다.
자로 잰 듯 자연스러운 합격이 각기 목과 심장을 노렸다.
카카카캉!
튀어 오르는 불꽃 사이로 붉은 핏방울이 섞였다.
피부 한 꺼풀.
만약 그 정도만 더 허용했다면, 천유성의 심장에 바람구멍이 났을 것이다.
‘거의 막상막하군.’
지켜보던 진혁이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손에 땀을 쥔다는 게 이런 걸까?
강한 놈들끼리 붙여 놓으니 이것만큼 재밌는 볼거리가 없다.
완전히 뉴비끼리 싸우는 것도 다른 의미에서 재밌긴 하지만, 역시 어느 정도 수준이 있어야 더 흥미진진하지.
‘아직 허점이 많이 보이긴 한데, 그래도 나름대로 노력은 많이 했나 보네.’
검성이라는 칭호를 거저 얻은 게 아니다.
흑기사 하나하나가 마력 수치 8천에 근접한 수준인 걸 고려했을 때. 천유성은 22명의 랭커를 혼자서 상대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추혼검 역시 이제는 물이 오를 대로 오른 지경.
때문에 대결은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한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몇 분 안에 끝나겠어.’
관중들이 있었다면, 바로 지금 환호성을 질러야 할 타이밍이다.
사자가 수십 마리의 하이에나를 상대로 압도하는 건 그리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었으니까.
***
퍼퍼퍽!
흑갑의 중앙에 세 개의 검상이 새겨졌다.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본신을 지탱하는 세 개의 생명석이 동시에 파괴된 이상 어쩔 도리가 없다.
“업을 쌓……지도 못한 인간 따위가 어떻게…….”
“……믿을 수가 없구나.”
“전사의 긍지가 이토록 허무하게 무너질 줄이야.”
하나 둘.
흑기사들이 쓰러졌다.
당연히 숫자가 줄어드는 만큼, 전력 차는 더욱 벌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쿠웅!
마지막 흑기사마저 상반신과 하반신이 반으로 나뉘었다.
바로 그때였다.
“죽……어라!”
숨을 거두는 그 찰나에도 흑기사는 검을 휘두르며 천유성의 다리를 노렸다.
사각에서의 기습이다.
카캉!
다행히, 천유성은 아슬아슬하게 그 일격을 받아냈다.
“더럽게 끈질기군.”
등을 따라 한 줄기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잠시라도 방심했다간 그대로 당했을 거다.
군데군데 상처를 입긴 했지만, 호흡이 흐트러지진 않았다. 남아 있는 마력 또한 마찬가지.
마지막 보스와의 1분을 위해, 어떻게든 힘을 보존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 저 빌어먹을 고인물과의 재대결까지 한 걸음 남았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버틴다면.
그토록 바라던 목적을 이룰 수 있었다.
“일어나라.”
천유성의 검끝이 유일하게 남아 있는 적에게 향했다.
그러자.
[10층의 보스 몬스터 ‘바위 거인’이 깨어납니다!]지금까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던 거인이 눈을 떴다.
쿠쿠쿠쿠쿠쿠!
천지가 격렬하게 진동했다.
피부를 찌르는 흉흉한 살기는 이제껏 느껴 왔던 그 어떤 것과도 달랐다.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천유성이 침음성을 흘렸다.
단숨에 층을 건너뛴 터라 성장이 덜 된 지금, 상대를 이기는 건 불가능했다.
그건 알고 있었다.
허나, 고작 1분 따위를 버티지 못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강해졌으니까.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으로 성장했으니까.
그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리라 확신했다.
그러나.
보스와 마주한 순간, 천유성은 깨달았다.
어째서 진혁이 1분이란 시간만 버티면 된다는 조건을 내걸었는지.
그리고 자신이 지금껏 얼마나 크게 착각을 하고 있었는지를.
‘빌어먹을.’
심해와 같이 무거운 마력.
잠든 것과 깨어난 것 사이에 마력 상승폭이 이렇게 터무니없다니.
……완전히 괴물이다.
‘이런 녀석을 상대로 1분이라고……?’
불가능하다.
가능할 리가 없다.
아직 한 번의 공격도 주고받지 않았지만, 천유성은 자신과 상대와의 실력 차를 절감했다.
이건.
아예 차원이 다르다.
“이 층계에 와서 흑기사들을 제압하고 날 깨우다니…….”
바위 거인이 천유성을 바라봤다.
꽤나 흥미롭다는 얼굴이다.
그야 그럴 수밖에.
지금껏 10층에 도전하는 수많은 인외종들이 있었지만, 그 누구도 홀로 흑기사들을 전부 제압하진 못했다.
“그런가. 인간 중에서 가장 강한 놈이 바로 너로구나.”
단정을 지은 바위 거인이 완전히 몸을 일으켰다.
5m에 이르는 신장.
거대한 암석을 연상시키는 방패와 대검은 그 어느 쪽도 무시하기 힘든 흉기였다.
게다가 전신을 완전히 감싼 갑주 탓에 파고들 틈 또한 보이지 않았다.
공수가 완벽하다.
이 정도로 거대한 태산은 진혁 이후로 처음 만나 봤다.
하지만, 이제 와서 물러설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저 뒤에서 능글맞게 웃고 있는 녀석이 좋아하는 꼴은 죽어도 볼 수 없었으니까.
파츠츠츠!
검신을 따라 푸른빛이 일렁였다.
모든 마력을 쏟아 부어 끌어올린 검기.
추혼검의 제3식이 일부나마 구현되었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다.’
정신이 없이 몰아치다 보면 시간은 흐를 터.
지금 당장은 어떻게든 버티는 거에 집중해야 한다.
탓!
천유성의 신형이 사라졌다.
나타난 곳은 바위 거인의 후방.
뒤를 잡은 천유성이 검을 횡으로 그었다.
콰아아앙!
하지만.
바위 거인의 표면엔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무적].말 그대로 물리 공격과 마법 공격으로부터 면역이 된 절대 판정 고유 능력.
이것이야말로 검기는 물론, 검강조차 뚫지 못하는 최강의 방패다.
“검기라…… 하찮은 것들이나 부리는 잔재주지. 허면, 이번엔 내가 한 수 가르쳐 주마.”
[바위 거인이 Lv15 ‘석파참(石破斬)’을 발동합니다!]바위 거인의 대검이 대기를 갈랐다.
콰콰콰콰콰콰콰!
엄청난 굉음과 함께.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게 분쇄되기 시작했다.
지면이 갈라지고 풀들이 모조리 갈아엎어졌다.
직격이 아닌, 충격파가 이 정도다.
“이런 무식한……!”
천유성이 비명을 지르며, 검막을 펼쳤다.
검이 바람개비처럼 회전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소용없다.
어찌 보면 그저 한 번의 휘두르기에 불과했으나, 그 한 방은 검성의 방어 스킬을 가볍게 웃돌았다.
콰아앙!
“커억!”
천유성의 무게 중심이 일격에 무너졌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충격이다.
허나, 숨을 고를 새도 없다.
곧바로 2번째 공격이 이어졌으니까.
이번엔 찌르기다.
2m가 넘는 대검이 하나의 점을 노린 채 번개처럼 폭사됐다.
위험하다.
이건 도저히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다.
천유성이 작게 숨을 들이마셨다.
죽음을 직감하자, 검을 쥔 손에 힘이 빠졌다.
그런데.
우우우웅!
무언가 앞을 가로막았다.
붉은빛 단검 주위로 새하얀 얼음 가루들이 흩날렸다.
보면서도 믿기 힘들었지만, 대검이 저 작은 단검에 막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1분.”
여유가 느껴지는 말투.
“아쉽지만, 실패야.”
진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