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113)
113화 경계를 허무는 거울 (3)
“어, 어떻게……?”
바위 거인이 말을 더듬었다.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석파참은 일격에 적을 분쇄시키는 참격.
때문에 미물에 불과한 인간 따위, 가볍게 토막내 버려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대체 어째서……!
저 인간은 이토록 여유롭게 자신의 일격을 받아냈단 말인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하나뿐이다.
“저 칼잡이 녀석이 가장 강한 인간이 아니었어. 그래. 바로 네놈이었구나.”
그렇게 가정해야 앞뒤가 맞았다.
믿기 힘들었지만, 탑 밖에서 온 인간들의 실력은 바위 거인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위였다.
“뭐, 저 거머리보다는 내가 좀 더 강하긴 해.”
진혁이 어깨를 으쓱였다.
“…….”
천유성은 똥 씹은 얼굴을 했으나, 뭐라 항변하진 못했다.
이렇게 꼴사납게 목숨을 빚진 이상,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바위 거인이 질문을 바꿨다.
“인간이 이 정도로 강하다니. 설마…… 네 녀석. ‘무림’에서 온 건가? 그것도 아니면 ‘제국’쪽이더냐?”
무림이나 제국이라…….
하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인간 중에서 10층에 혼자 도전할 수 있는 건 녀석들 외엔 없을 것이다.
실제로 정파니 사파니 마교니 하는 것들 중엔 제법 강한 실력자들이 있었으니까.
마찬가지로 제국 역시 탑 내부에서 꽤나 탄탄한 세력을 구축해둔 상태였다.
“머리가 돌덩어리인 것치곤 나름 예리했는데, 아니야. 애초에 예의범절 따지는 선비들이랑 나랑은 느낌부터 좀 다르지 않아?”
“머, 머리가 돌덩이라고?”
“응? 전신이 암석이니 머릿속도 화강암이나 현무암 같은 걸로 돼 있는 거 아니었어?”
바위 거인이라길래 당연히 그런 건줄 알았지.
뭐, 아니면 말고.
“감히 누구에게 그런 망발을 지껄이는 것이냐!”
바위 거인이 기함했다.
동시에 지면을 따라 체스판 형태의 선이 그어지기 시작했다.
보스 몬스터 중 일부만 사용할 수 있는 장판형 스킬.
[생츄어리]다.‘드디어 첫 번째 페이즈의 시작이군.’
진혁이 팔과 다리를 가볍게 풀었다.
10층의 보스는 크게 두 가지 페이즈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 첫 번째 페이즈가 바로 저 장판 위에서 싸우는 방식이었다.
‘장판의 색상에 따라 공격이 달라지기 때문에. 사실상 생츄어리에 대응할 수 있느냐 마냐가 승부를 가르는 열쇠지.’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세 번째도 바닥을 조심해라.
이 페이즈에서 해 줄 수 있는 조언을 꼽으라면 단연코 이거였다.
‘일단 차근차근 접근해 봐야겠어.’
이미 ‘탐식의 눈’을 통해 가장 중요한 정보 또한 뽑아 둔 상태였다.
[복사 조건: 바위 거인은 절대 판정 능력 중 하나인 ‘무적’을 지니고 있습니다. 동급의 절대 판정 스킬이 아닌 한, 그 철벽을 파훼할 수 없을 터. 만약 그 벽을 넘어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면, 상대의 고유 능력을 복사할 수 있게 됩니다.] [단, 무적 능력의 발동 시간은 극단적으로 단축됩니다.]레벨 격차 때문에 세세한 상태창까지 확인할 순 없었으나. 복사 조건만큼은 확실히 확인해 뒀다.
지금까지 중에 가장 쉬운 조건.
워낙에 강한 적이라. 다른 추가 조건 없이 그저 쓰러뜨리기만 하면 된다.
그걸로 상대의 ‘무적’ 능력을 일부나마 가져올 수 있었다.
우우우웅!
장판이 어느새 완벽하게 일대를 집어삼켰다.
완전히 뒤바뀐 공기.
눅눅한 바람을 타고 이질적인 마력이 다가왔다.
이제 이곳에 보이는 모든 게 [생츄어리]의 영역이다.
“죽어라.”
바위 거인이 차갑게 내뱉었다.
진혁이 있는 정사각형 지역에 노란 빛이 점멸했다.
정확히 0.3초 뒤.
파츠츠츠!
하늘에서 한 줄기 번개가 낙하했다.
대응할 시간조차 없을 만큼 빠르고 정확한 뇌격이다.
하지만.
잿더미가 되어 있어야 할 진혁은 상처 하나 없었다.
어느새 머리 위해 타나난 얼음 모양의 결정이 번개를 막은 것이다.
“그걸…… 반응했다고?”
그 짧은 찰나에?
그런 말도 안 되는.
당황하는 바위 거인과 대조적으로 진혁은 뭘 당연한 걸 놀라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게 하나 있는데…….”
장판 스킬은 결국 어디에 뭐가 올지 미리 알려 준다.
그리고 10초든 1초든 0.3초든 간에 어디에서 무엇이 올지 알고 있다면…….
“피하거나 막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지.”
패턴을 통째로 씹어 먹는 것도 가뿐하다. 하물며 미리 예고까지 해 준다?
이건 맞아 주고 싶어도 맞아 줄 수가 없다.
“쓸데없는 데 힘 빼지 말고 바로 두 번째 페이즈로 넘어가면 안 될까? 오기 전에 샤워하고 와서 또다시 땀 흘리는 건 피하고 싶거든.”
딸기향이 나는 비누로 뽀독뽀독 씻고 왔다.
오이비누랑은 차원이 다르더라.
“고작 한 번 피했다고 으스대지 말거라. 장판 종류는 그것 하나뿐이 아니니.”
“그렇게 생각해서 마음이 편해질 것 같으면, 더 해 보든가.”
진혁이 이죽였다.
물론, 그런 도발을 가만히 넘겨 줄 바위 거인이 아니었다.
[성역 ‘생츄어리’에 추가적인 마력이 주입됩니다!]보스 몬스터의 마력으로 인해 완전히 개화한 장판.
가로와 세로로 나뉜 구역이 일제히 점멸했다.
형형색색의 빛들이 번쩍이는가 싶더니. 무수한 스킬들이 지면에 작렬했다.
쿠쿠쿠쿠쿠!
콰콰쾅!
콰아아앙!
불꽃이 터지고 얼음으로 만든 칼날이 쏟아졌다.
마치, 연쇄 작용처럼.
하나가 발동하면, 그것이 도화선이 되어 또 다른 함정을 발동시키는 방식이었다.
당연히 여기에 패턴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변칙과 변주로 점철된 공격은 오롯이 먹잇감의 허를 찌르겠다는 일념만이 가득 차 있을 뿐이었다.
[Lv6 ‘검마제왕보(劍魔帝王步)’가 발현됩니다!]진혁이 몰아치는 폭풍 속에서 다람쥐마냥 움직였다.
불규칙성 속에서 규칙을 찾는 것이야말로 고인물의 미덕.
이미, 몸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활로를 찾아 움직였다.
사각을 노리고 엇박자를 유도하는 공격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으나, 상관없다.
상대가 두 수 앞을 읽으면, 세 수 앞에서 움직이고.
세 수 앞을 읽으면, 다섯 수 앞에서 지켜보면 된다.
툭.
콰아앙!
피하고 나서야 폭발하는 지역.
탓!
치이이익!
거의 짜고 치는 게 아닐까 하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진혁의 움직임은 신이 들린 수준이었다.
물론, 지켜보는 당사자들 입장에선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다.
이건…… 아예 상식을 초월하는 일이었으니까.
마침내 모든 장판을 유유히 빠져나온 진혁이 바위 거인의 지척까지 도달했다.
상처 따위는 없다.
심지어 호흡까지 평온했다.
“더 해 봤자 너만 손해야. 이쯤이면 슬슬 알 때도 되지 않았어?”
장판 스킬은 광역기에 위력도 강하지만, 유지하는 데 막대한 마력이 드는 단점이 있다.
무턱대고 남용하다간 제 아무리 보스 몬스터라고 해도 마나통이 바닥난다는 뜻이다.
“……그래. 아무래도 이런 걸로는 귀찮은 날파리를 잡을 수 없을 것 같군.”
버위 거인이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성역 ‘생츄어리’가 가동을 중지합니다.]바닥에 그어진 선들이 빛을 잃었다.
이걸로 첫 번째 페이즈가 종료되었다.
처음과는 달리 바위 거인에게서 느껴지던 여유가 사라졌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상대가 결코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사이에 대체 얼마나 더 성장한 거냐?”
그 모든 걸 지켜보던 천유성은 어금니가 부러져라 깨물었다.
분명, 하루는 24시간이다.
그래, 모두에게 주어진 시간은 똑같았다.
하지만.
같은 시간을 보냈음에도.
같은 시간동안 죽어라 노력했음에도.
대체 무어란 말인가?
이제는 손끝조차 닿지 않을 정도로 멀어져 버린 이 격차는 말이다.
***
[두 번째 페이즈 ‘난투극’이 시작됩니다.] [1:1 대결에서 살아남은 한 명만이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두 번째 페이즈가 시작되자, 진혁이 아공간 인벤토리에서 또 하나의 아이템을 꺼냈다.
복잡한 룬어가 새겨진 결계 안에 들어 있는 붉은 액체.
‘메두사의 피’다.
원래라면 신전 밖을 벗어난 메두사는 그 힘을 잃지만.
결계로 그 일부를 봉인할 경우는 예외다.
‘결계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플레이어가 워낙 소수인 데다, 나처럼 3개 이상의 결계를 복합적으로 연계할 수 있는 플레이어는 아예 없으니.’
이 방법이 알려지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리라.
물론, 절대 판정을 지닌 석화 능력을 갖고 있더라도 저 녀석에게 접근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바위 거인의 공격 패턴은 3천 종류가 넘는 데다, 매번 그 패턴이 바뀌기 때문이다.
‘최악은 매 패턴마다 단 한 번만 틈을 보인다는 점이지.’
다시 말해 허점을 찌를 수 있는 기회는 한 번뿐.
실수는 곧 실패로 귀결된다.
결국, 모든 상황을 완벽하게 설계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메두사의 피를 놈에게 바르는 건 물론, 그 이후에 살아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후우…….”
진혁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심장 박동 소리에 맞춰, 지겹도록 외워 뒀던 리듬감을 점검했다.
한 단 계. 다시 한 단계 더.
가능하면 가볍고 빠르게 움직여야 녀석의 품속으로 파고들 수 있다.
그렇게 호흡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순간.
저벅.
진혁이 녀석의 사정거리 안으로 진입했다.
“호오. 먼저 내 거리에 들어오다니. 도전 정신이 뛰어난 것만큼은 인정해 줘야겠구나.”
바위 거인과 눈빛이 부딪쳤다.
단순히 시선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피부가 따갑다.
[정신 방벽]으로 인해 마력을 상쇄시키지 않았다면 견디기 힘들었겠지.그 정도로 10층의 보스 몬스터가 뿜어내는 위압감은 무거웠다.
하지만.
“도전은 뭔가 어려운 걸 할 때 쓰는 말이고. 이 정도는 적당히 스릴 있게 즐길 수 있는 수준이지.”
진혁의 얼굴에선 여전히 긴장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당연한 이야기다.
아무리 수많은 플레이어들을 좌절시킨 보스라 할지라도 겨우 10층에 있는 장애물일 뿐.
이미 탑의 끝을 본 진혁에게 있어 녀석은 그저 수없이 통과해야 할 과제 중 하나에 불과하다.
“……결정했다. 지금부터 전력을 다해 그 주둥아리를 찢어 주마.”
바위 거인이 등에 차고 있는 새로운 검을 꺼냈다.
검신에 박혀 있는 3종류의 각기 다른 보석.
[바위 거인이 Lv18 ‘암석의 의지’를 발동합니다!] [10분간 공격력과 공격 속도가 각각 15%씩 증가합니다!] [대상이 보유하고 있는 모든 스킬들이 1Lv씩 상승합니다!]쏟아지는 상태창과 함께.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온다.
5m에 이르는 덩치를 갖고 있지만, 움직임은 마치 물 찬 제비와 같았다.
순식간에 좁혀진 거리.
바위 거인의 손에 쥐어진 대검이 횡으로 가로질렀다.
부우우웅!
무시무시한 파공성이 고막을 찔렀다.
진혁은 종이 한 장 차이로 그 공격을 피했다.
하지만.
콰콰콰콰콰콰콰!
엄청난 충격파가 뒤를 이었다.
그러자 지면이 거북이 등껍질처럼 메마르기 시작했다.
[붉은 보석 ‘열사(熱沙)의 저주’가 발동됩니다!]천유성 때와는 달리 보석으로 인해 검의 공격력이 비교도 안 되게 올라간 상황.
‘피했는데도 이 정도인가.’
한 방이라도 스치기라도 하면 그걸로 끝.
정말이지 무지막지한 위력이다.
아슬아슬하게 타이밍을 맞춘 터라, 바위 거인의 공격과 공격 사이엔 작게나마 공백이 생겼다. 하지만, 이건 함정이다.
이 틈을 기회로 여겼다간 곧바로 녀석의 방패에 전신이 으스러질 게 틀림없었다.
그렇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