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114)
114화. 경계를 허무는 거울 (4)
결계와 스킬을 조합해 고차원의 덫을 만든다.
간단해 보이지만 무려 세 가지 콤비네이션이 들어간 기술이다.
[‘빙하조형(氷河造形)’, ‘만년빙옥(萬年氷獄)이 발동됩니다!] [결계 ‘속성 보호’가 발동됩니다!] [결계 ‘냉기 강화’가 발동됩니다!]바닥에서 솟구친 얼음줄기가 바위 거인의 전신을 집어삼켰다.
‘속성 보호’ 결계까지 사용한다면 냉기 속성을 극대화시킬 수 있을 터.
단단한 바위의 표면을 따라 살얼음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러나.
콰콰콰콰콰콰!
“가소롭구나!”
얼음 감옥은 바위 거인을 3초도 잡아 두지 못했다.
‘죽지 않는다’라는 특성 외에도 바위 거인의 물리 저항력과 마법 저항력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았기 때문이다.
산산이 무너져 내리는 얼음 파편 속.
파츠츠……!
이번엔 단검 끝에 맺힌 광휘가 점멸했다.
콰아아앙!
직선으로 뻗은 한 줄기 빛이 바위 거인의 안면을 강타했다.
[데이라이트]와 [만다라]를 극한까지 모아 방출했건만…….그럼에도 바위 거인의 균형은 무너지지 않았다.
그저, 표면을 살짝 그슬리는 게 고작이었다.
“꽤 흥미로운 연계였다만, 그뿐이다. 그 어떤 공격으로도 나에게 상처를 입힐 순 없으니까.”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는 듯. 아니, 심지어 방패로 막을 필요도 없다는 듯 스스로의 고유 능력을 과시했다.
“역시 단단하긴 하네. 공수 밸런스도 잘 잡혀 있고. 움직임도 뭐. 이 정도면 10층 부근에선 나쁘지 않은 편이야.”
“여전히 입은 살아 있구나.”
“그런 이야기 많이 듣는 편이긴 하지.”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자 바위 거인의 입에서 묘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좋구나. 아주 좋아. 그렇게 계속해서 이죽이거라. 그런 놈들을 짓밟는 맛이라도 있어야 내가 이 지겨운 과업에서 잠시라도 해방감을 맛볼 수 있을 터이니.”
상대가 아득바득 달려들수록.
여유 있는 척 으스댈수록.
박살냈을 때 쾌감 또한 커지는 법이다. 녀석은 그걸 알고 있었다.
“이야. 나도 그런 성향인데. 아무래도 우린 친해지기 힘들겠어. 서로 괴롭히는 걸 즐기니 역할 분담이 될 수가 있나?”
“그럴 것 같구나. 그러니 이만 끝내 주도록 하지.”
바위 거인은 또 다시 공격할 자세를 갖췄다.
허점이 군데군데 드러난 모습이다.
물론, 방어를 도외시한 채 오롯이 공격에만 모든 걸 쏟아 부을 수 있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지금 진혁이 갖고 있는 스킬 중에 그 어떤 걸로도 녀석의 몸에 상처를 입힐 순 없었으니까.
‘사실상 절대 판정 스킬이나 법칙을 무시하는 성유물이 있지 않는 한 결코 지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는 거겠지.’
하지만 상관없다.
언제부터 절대 판정 스킬들을 줄줄이 갖고 있어야만 승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숟가락 하나만 있어도 거신병들과 싸웠는데 이 정도 쯤이야.’
지금 갖고 있는 사소한 것들을 발판삼아 이길 수 있는 힘.
그것이 고인물이 탑을 오르는 방식이었다.
진혁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이미 방금 전 교전을 통해 녀석이 이번 페이즈에서 어떤 패턴을 구사할지 대충 파악이 끝났다.
***
무게중심이 평소보다 3도 가량 앞으로 쏠려 있는 모습.
거기에 대검을 잡은 손 역시 손잡이 상단 35cm에 위치해 있다.
진혁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모를 리가 없지.
어찌 모를 수가 있겠는가?
‘C-158’ 패턴.
이 바위 거인을 상대할 때 외워뒀던 패턴 중 하나다.
‘역시 공격 몇 번 주고받다 보면 자연스럽게 정보가 흘러나온다니까.’
몇 천개가 넘는 패턴을 정리하려다 보니 큰 특징별로 A, B, C, D로 나눴고 이후 숫자를 붙여 세부 패턴을 분류했다.
C는 그중에서 공격에 특화된 패턴.
간단히 말해 자기 영역을 벗어나 적극적으로 침입자를 제거하는 특징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위험 부담은 높겠지만, 대신 허점이 상대적으로 많이 드러나는 패턴이지.’
이쪽으로선 잘됐다.
제한 시간 30분 내에 이번 레이드를 성공시켜야 했으니까.
진혁이 재차 자리를 잡았다.
동시에 바위 거인이 대검과 방패를 든 채 돌격할 자세를 취했다.
“도전자여. 그대는 몇 번이나 내 공격을 받아낼 수 있는지 시험해 보도록 하겠다.”
음…….
“너 잘난 것도 알겠고 공격이 매서운 것도 알겠는데, 그 입을 좀 다물고 싸우면 안 될까?”
어떻게 매번 그런 멘트를 뱉으며 검을 휘두르는 건지 신기하다.
무적 능력이 주둥아리에 다 몰려 있는 것도 아니고.
“설마…… 쓰러질 때도 중2병 걸린 말을 하면서 쓰러질 건 아니지?”
‘후후. 좋은 싸움이었다’라든가.
‘과연, 이 몸의 최후에 어울리는 일격이었다’라든가.
‘드디어 안식을 취할 수 있게 되었구나’ 등등.
벌써부터 불안한 느낌이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가능하면 그런 오글거리는 엔딩은 피하고 싶은데 말이지.
“……건방진!”
콰앙!
자리를 박차고 질주하는 바위 거인.
쿵! 쿵! 쿵! 쿵!
풀과 흙이 마구잡이로 파헤쳐졌다.
하지만, 진혁은 여유롭게 상대가 지척까지 접근하도록 유도했다.
당황? 공포? 두려움?
그딴 건 없다.
녀석이 수많은 플레이어들의 치를 떨게 했다고 한들 진혁 입장에선 이미 수차례 쓰러뜨린 보스 몬스터일 뿐.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이곳은 수없이 통과해야 하는 지점 중 한 곳에 불과하다.
부우우웅!
대검이 또다시 바람을 갈랐다.
이번엔 무게중심을 제대로 실은 공격이었다.
‘피하는 건 슬슬 멈춰야겠네.’
패턴상 지금부터는 받아치며 조금씩 상대를 유인해야 한다. 그리고 당연히 단검으로 저 무게를 버티는 건 무리겠지.
어느새 진혁의 손에 든 무기가 바뀌었다.
이번엔 한 쌍의 예리한 쌍룡검이 눈이 시릴 정도의 검광을 쏟아냈다.
[고유 능력 ‘검의 무덤’이 발동됩니다!]순식간에 검게 물든 검신.
검마의 기억이 전신에 스며들었다.
그렇게.
눈에 보이는 시야가 완전히 달라졌다.
‘좋아.’
진혁이 날아오는 대검의 궤적에 맞춰 쌍룡검을 움직였다.
카카가가각!
카앙!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움직임.
검의 빗면을 이용해 적절하게 힘을 흘리면서도.
쾅! 콰앙!
변칙적으로 폭사된 검격이 바위 거인의 몸을 두드렸다.
카운터에 가까운. 보통이라면 이 공격 한 번으로 승부가 갈릴 만큼 날카로운 일격이었지만.
역시나 이번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바위 거인의 표면에 작은 상처 하나 나지 않았으니까.
하여간 역겨운 고유 능력이다.
“이런 거 보면, 사람들이 포기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이해가 돼.”
하루 종일 싸워도 상처하나 입힐 수 없다면, 그 누가 보람을 갖고 레이드에 참여하겠는가?
계속해서 시도해 보다 가래침 한 번 뱉고 접어 버릴 수밖에.
짧게 혀를 찬 진혁이 ‘대도서관’에 있는 능력들을 불러왔다.
우우우웅!
찬란한 운무와 함께 진혁의 등 뒤로 황금색 양피지가 펼쳐졌고.
스킬들이 저장되어 있는 무한 서고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에 모든 스킬들의 효율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려면…….
[대상과의 레벨 차이로 인해 ‘간극’이 최대치로 활성화됩니다!]간극과 행운 스탯은 물론, 적응형 스탯까지.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들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쿠쿠쿠쿠쿠!
별빛 사이로 낙하하는 한 줄기 빛.
‘별의 가호’까지 두른 진혁이 마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모든 힘을 아끼지 않는 건, 이제부터는 피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리라.
그 맹랑한 모습에, 바위 거인의 얼굴에 흥미롭다는 빛이 스쳐지나갔다.
“호오. 나를 상대로 정면 승부를 하겠다는 건가?”
“글쎄. 못할 것도 없지?”
진혁이 검 끝을 까딱였다.
대놓고 들어오라는 듯이.
그리고.
힘과 힘의 대결을 피할 바위 거인이 아니었다.
“재밌군!”
거대한 대검이 하늘 높이 솟구쳤다.
[녹색 보석 ‘중첩의 저주’가 발동됩니다!]대검의 무게가 대폭 증가했다. 검이라기 보단 쇳덩이에 육박한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그에 맞춰.
……지금이다!
진혁이 새로운 스킬을 꺼냈다.
[Lv2 ‘거인의 손아귀’가 발동됩니다!]손끝에서 어깨까지.
근육이 급속도로 팽창했다.
모든 스탯과 스킬들이 중첩된 상황에서 사용한 만큼, 그 위력은 단순히 레벨 2라는 카테고리 그 이상을 발휘할 수 있게 됐다.
콰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검과 검이 격돌했다.
발이 지면으로 파고들 정도로 무지막지한 충격이 가해졌지만, 진혁은 그 일격을 견뎌댔다.
녹색 보석의 효과로 인해 무게가 5배 가까이 증가한 걸 고려한다면,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결과다.
“이……럴수가. 이걸 버텼다고?”
그러자 놀란 건 바위 거인 쪽이었다.
순수한 힘에서 자신에게 맞설 수 있는 플레이어가 있으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던 탓이다.
“설마…… 이것도 힘이라고 쓴 건 아니겠지? 명색이 10층의 보스가 단순히 고유 능력 하나 때문에 대단한 거였다면, 글쎄. 이거 너무 실망스러운데.”
도발성 짙은 발언.
“이 빌어먹을 인간 따위가! 감히 누구 앞에서 만용을 부리는 것이냐!”
격노한 바위 거인이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처음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폭풍처럼 몰아치는 맹공이었다.
쾅! 콰앙! 콰아앙!
그러나 진혁은 그 공격들을 모조리 받아냈다.
아무리 빠르고 강한 공격일지라도 어차피 외워둔 패턴에 맞춰져 있을 뿐.
모든 것을 암기한 이상, 그저 몸이 반응하는 대로 움직이기만 하면 된다.
동시에 조금씩.
아주 조금씩.
상대를 끌어당겼다.
‘이제 거의 다 왔어.’
밤하늘에 떠 있는 별들과, 발현되어 있는 ‘별의 가호’의 빛이 교차하는 지점.
두 개의 빛이 하나로 모이는 바로 그곳이 이번 레이드의 성패를 가르는 포인트다.
여기서 부터가 중요하다.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두 개의 별빛이 마주하는 순간을 노려야 한다.’
바로 그때.
바위 거인의 몸체가 빛 속으로 들어왔다.
거인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라 할 수 있는 마정석이 보였다.
걸렸다!
진혁이 단 한 번뿐인 타이밍에 맞춰 룬어를 영창했다.
[1성급 결계 ‘빛을 가두는 창’이 발동됩니다!]새하얀 룬어가 바위 거인의 주위로 펼쳐졌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
“이, 이건……?”
바위 거인이 다급히 빠져나가려 했으나, 이번만큼은 녀석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콰아아앙!
결계에 막힌 대검이 도로 튕겨나갔다.
‘빛을 가두는 창’은 별빛을 가둘 수 있는 특수 결계로, 정확한 타이밍에 맞춰 발동할 경우 꽤나 강한 구속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제아무리 보스 몬스터라고 하더라도 일격에 파훼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틈.
진혁이 엄지손톱만큼 벌어진 결계의 구멍 사이로 ‘메두사의 피’를 집어넣었다.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던 핏방울은 이내, 바위 거인의 표면에 닿았다.
바로 그 순간.
[절대 판정 ‘석화의 저주’가 발동됩니다!] [절대 판정 ‘무적의 가호’가 저항합니다!]두 개의 능력이 맞부딪쳤다.
‘반드시 대상을 돌로 만들어 버린다.’라는 명제를 지닌 메두사의 고유 능력.
그리고 ‘반드시 대상을 죽지 않게 한다.’라는 명제를 지닌 바위 거인의 고유 능력.
창과 방패의 모순처럼, 절대 판정 능력과 절대 판정 능력이 맞붙을 경우 일종의 공백이 생기게 된다.
인과율조차 개입할 수 없는 백지의 영역.
그 팽팽한 균형을 무너뜨리는 건 오롯이 제3자인 진혁의 몫이었다.
“다른 방법도 있긴 하지만, 난 이게 제일 취향에 맞더라고.”
뭐랄까?
자신만만한 적의 얼굴이 절망으로 일그러지는 쾌감에 심장이 두근거린달까?
진혁이 바위 거인을 향해 생긋 웃었다.
이제, 움직이는 돌이 진정한 의미의 돌이 될 시간이다.